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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Magazine > 영화읽기 > 시네마 오디세이 21
[21세기 영화란 무엇인가?]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 - 우리가 잃어버린 숏

첫 번째 키워드 – 20세기의 기억

지난 세기를 건너온 다음 다시 되돌아서 그런데 그때 무슨 일이 있었지, 라고 질문하는 대신 무얼 잃어버렸지, 라고 물어보면 비로소 무슨 짓을 했는지를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랄 수도 있다. 그래서 영화가 해나간 일들이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라는 질문과 만나게 된다.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 무엇이었나. 누구나 할 수 있는 대답. 숏이 있었다. 거기에 카메라가 있었고, 카메라가 찍으면 그 시간은 영화라는 사건이 되었다. 이걸 구태여 설득할 필요가 있을까. 기차가 역으로 들어온다.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퇴근한다. 아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아이가 물장난하는 것을 영화라는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홍상수는 바다로 나가는 배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물결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람들이 눈싸움하는 거리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또 보았다. 거기에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거기에 무엇이 출현한 것일까. 여기에 개념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런 다음 각자 개념의 차이라는 구도 아래 의미를 부여하고, 영역을 나누고, 그 사이에서 서로의 공약 불가능한 자리를 만든 다음 그 차이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멀어질 때 결국은 숏에 대한 믿음의 부재에 이르게 될 것이다. 나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면 그다음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자동적으로 숏이 발생한다는 믿음으로부터 숏이라는 힘이 발생할 때 그것이 비로소 숏이라는 의심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여기서 의심이라는 말을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중이다. 말하자면 첫 번째 힘. 그러면 두 번째 힘은 어디에 있는가. 거기에 있다. 거기? 거기가 어디? 다시 한번 이미 들었던 예를 가져오겠다.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 퇴근하는 노동자. 다시 한번 읽어주길 바란다. 나는 주어의 자리를 옮겨놓았다. 동시적으로 움직이는 세상 안에서 연장하는 힘으로서의 그것. 매번 바뀌겠지만 항상 식별 가능한 그것. 그것들은 힘을 보여준다. 힘은 어디에 있는가. 운동이라는 인상. 시간이라는 이미지의 연장.

여기에 증인들이 있다. 첫 번째 증인. 플라톤. 당신들은 헛것을 보게 될 거예요. 벽 앞에서 우리는 관객이 아니라 죄수이고, 해방은 미루어질 것이다. 그저 우화라고 지나쳐갈 수 있을까. 영화가 우리 앞에 왔을 때 이미 질문이 시작되었다, 오래된 질문. 왜 무(無)가 아니고 존재가 있는가. 1895년에 무언가 잘못되었다. 헛것을 중심을 두고 공허한 벽을 홀린 듯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거기에 우리를 바친다면, 그런 다음, 거기서 무언가를 보았다고 주장하면 할수록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간다. 그렇게 영화의 역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기에 헛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음과 서로 뒤얽히면서 두리번거렸다. 두 번째 증인. 마르크스. 영화가 발명되기 전 1845년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카메라 옵스큐라를 예로 들면서 삶의 과정이 위아래가 뒤집혀 보인다면 그건 이데올로기 때문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마도 누군가는 이데올로기라는 말에 질겁을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역사 없는 이데올로기야말로 유령의 예술인 영화의 동어반복이라는 걸 먼저 인정해야 한다. 뻔한 정의. 이데올로기는 상상적인 표상이며, 동시에 물질적인 토대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문장 바꾸기. 이데올로기의 자리에 영화를 가져다놓는다고 해도 문장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반격. 그런 다음 개인들을 호명할 것이다. 당신은 개인으로 화면 앞에 앉아 있다. 그렇지 않은가요. 만일 이것을 부정하면 우리는 영화를 삭제시킬 용기를 내야 한다. 세 번째 증인. 귀스타브 플로베르. 1857년 <마담 보바리>에서 엠마는 마차를 타고 가면서 트래블링 숏의 시점으로 길거리를 바라본다. 그 문장을 따라가고 있으면 뤼미에르, 르누아르, 로셀리니, 고다르, 키아로스타미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들이 플로베르를 읽기는 했겠지만, 플로베르는 그들의 영화를 본 적이 없다. 네 번째 증인. 에두아르 마네. 1862년 50mm 표준렌즈로 야외에 나가서 찍은 것만 같은 초점으로 풀밭에서의 점심을 그렸다(<풀밭 위의 점심 식사>). 마치 아마추어 배우들 같은 어색한 시선 처리. 카메라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누드의 여성. 마주쳤다기보다는 바라보는 시선. 카메라를 애써 피하려는 것 같은 신사복의 남성.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 라파엘로, 조르조네를 카피하면서 조롱하는 이 거리감에서 어떤 서사도 상징도 없이 풍속의 외설성을 드러내 보여주는 이 그림 앞에 서면 한참 뒤에 고다르가 이 장면을 극장에 가서 나나에게 요구했을지도 모른다고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비브르 사비>). 사진이 아니라 인상주의 그림들이야말로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을 교육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된다. 이들이 교육한 것은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객이 아니라 카메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미래의 감독들이었다. 다섯 번째 증인. 샤를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1869년, 마침내 마차에서 내려서 길거리를 쏘다니면서 파리의 여기저기를 시선으로 건드린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서 지나가다(promener), 라는 동사를 쓴다. 때로 지나가면서 열린 창문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문장의 주어 산책자(frâneur)는 영화가 정지해서 시작했을 때보다 먼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영화적인 것이 있었다. 이걸 다시 각색한 베냐민의 마지막 순간까지 끝나지 않은 프로젝트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영화를 보는 방법에 관한 가장 위대한 책이다.

<동쪽으로 가는 길>

그다음에는 탄식이 있었다. 1947년 어느 인터뷰에서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 당신이 알고 있는 그 그리피스, 대부분 <국가의 탄생> 혹은 <인톨러런스>를 말하지만, 나에게는 <부서진 꽃>과 <동쪽으로 가는 길>로 기억되는 그리피스. 그가 사망하기 한해 전에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영화에서 사라진 게 있어요.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의 아름다움이요.” 나무도 그대로 있다. 바람도 그대로 불고 있다. 사라진 것은 무엇인가.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의 숏. 이 말을 후렴구처럼 반복할 것이다.

먼저 선을 그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지금 앙드레 고드로와 톰 거닝이 초기 영화사에서 잡아당긴 시네마 오브 어트랙션(들)(cinema of attraction(s))2)으로 돌아가는 따분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신 이 아름다운 대답을 나는 일부러 잘못 읽을 것(misreading)이다. 그리피스의 대답은 전쟁 직후에 나온 것이다. 물론 그리피스가 아직은 우리보다도 이 전쟁의 참상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 전쟁은 서쪽에서는 아우슈비츠에서 끝났고, 동쪽에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끝났다. 영화에서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스펙터클. 우파(UFA)의 실내 세트장, 치네치타의 야외 세트장, 파리의 카페에 모인 초현실주의자들, 모스크바의 쿨레쇼프 공장의 제자들, 로스앤젤레스의 값싼 오렌지 농장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은 세상을 자신들의 현장에서 다시 만든다고 믿었다. 하지만 세상 안에 영화가 있었다. 그리고, 이 접속부사로 하나의 역사를 둘로 절단시키는, 문자 그대로, 단절이 있었다. 1945년보다 영화와 세상이 더 멀리 벌어진 적은 없었다. 네장의 사진으로 남은 수용소. 빛에 눈에 멀어버린 백색 필름과 남겨진 참상으로 이루어진 두개의 도시. 구태여 사망자의 수를 헤아릴 필요가 있을까. 건설 대신 파괴가 있었고, 발명은 전멸로 이어졌다. 세상에 대해서 영화는 갑자기 몰이해의 상태가 되었다. 로버트 플래허티는 알래스카에 가서 가혹한 추위와 바람 속에서 5분20초 동안 바다표범을 잡는 에스키모 나누크를 ‘연출’했다. 지가 베르토프의 기록. (혁명이 벌어지는) 세상을 영화는 과장하고 있었다. 험프리 제닝스의 다큐멘터리를 보았을 때 영화는 세상에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그 매듭이 끊어졌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영화는 세상의 현실에서 소외되었다.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은 소외를 다룬 것이 아니라, 영화가 놓인 소외 상태를 다룬 것이다. 안간힘을 쓰고 쫓아가는 안나 마냐니는 차를 놓쳤고(<무방비 도시>), 아버지와 아들은 군중 속으로 사라진다(<자전거 도둑>). 잉그리드 버그먼은 가까스로 손을 놓친 남편과 포옹하지만, 군중은 주위에 서서 영화 촬영 현장을 구경한다(이탈리아 여행>).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는 맞은편 소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며(<달콤한 생활>), 모니카 비티는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화산 에트나를 하염없이 바라본다(<정사>). 그들은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을 보지 못한다. 물론 그들은 보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들이 보는 것은 텅 빈 공백의 의미이다. 그들은 결국 자신이 홀로 남겨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두편의 영화가 본 것이 없음을 인정한다. 클로드 란즈만은 어떤 자료화면 없이 증인들을 만나고 또 만난다. 그리고 아우슈비츠에 관해서 듣고 또 듣는다(<쇼아>). 여자가 말한다. “나는 전부 보았어요.” 남자가 말한다. “아니, 당신은 본 게 아무것도 없어.”(<히로시마 내 사랑>) 이보다 더 간명하게 영화가 처한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은 나무를 흔드는 바람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그저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영화는 공백을 바라보면서 기표만을 경유하여 기의를 상상한다. 영화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기의를 상상하는 예술이 되어갔다.

나는 똑같은 이야기를 한번 더 할 수 있다. 나머지 절반의 이야기. 할리우드의 위대한 이름들이 일제히 스튜디오로 철수한 것은 사물(das Ding)로서의 세상을 마주 보지 않기 위해서, 왜냐하면 너무 흐릿해서 구별할 수 없는 사물로서의 장소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그래서 세상과 비슷한 장소로서의 사물의 시뮬라크라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스튜디오로 피난하였다. 장소와 사물을 뒤집어서 두번 사용한 자리를 반복해서 읽어주길 바란다. 스튜디오의 정치경제학과 유토피아 사이의 협상. 명단의 목록들. 전쟁이 끝나자 필름누아르가 전염병처럼 음산하게 창궐한 것은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서부극은 얼마나 안전했을까. 멜로드라마는 히스테리와 신경증으로 가득 찬 ‘홈’(home) 안으로 철수하였다. 그들은 문법의 대가들이었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그들은 나무를 흔드는 바람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들은 영화를 세상과 더 잘 구분시켜주었다. 그러면서 어떤 객관적인 재현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세상의 무게로부터 그렇게 자유로웠을까.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이 은유에 몸을 감추었을 때 무언가 거기서 결여의 형상이 되었으며, 환유로 대체됐을 때 물신주의에 사로잡히면서 세상을 피해갔다.

그러면 재난 이후를 겪는 영화에서 무엇을 느껴보아야 할까. 재난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견뎌내지도 못했을지라도 느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아직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이미지 앞에 마주 선다는 것은 무엇일까. 수수께끼 앞에 서서 느껴보는 감정은 더도 덜도 아닌 고독이다. 기댈 곳 없는 그 느낌. 영화의 고독. 고다르는 구태여 영화의 죽음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고다르는 영화가 죽은 다음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한 일은 그걸 확인하는 것이었다. 세상은 폭력이 펼쳐놓은 형상으로 남겨졌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폭력을 보게 될 것이다. 고다르는 영화의 고독을 마주 본 첫 번째 영화감독이다. 조금 더 용기를 내서 말하겠다. 고다르는 그리피스 이후 두 번째 영화감독이다. 고독한 영화가 질문을 했다. 여전히 가능한가? 무엇이 가능한가? 어떻게 가능한가? 시급한 질문. 눈앞에 있는 세상. 손에 든 카메라. 그 둘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영화와 세상 사이에서 안과 바깥을 질문하는 대신에 이제는 항상 영화가 세상 안에 있음을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속죄하는 심정으로 긍정하고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계속해서 세상을 향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영화의 새로운 윤리가 되었다. 그렇다.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이 아름답다는 것 을 볼 수 있을 때가 끝났다. 그러면 나무가 재가 되었을 때 바람을 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의 세계성(Weltlichkeit)은 다시 정의되어야만 했다. 재난 이후의 영화 앞에 서 있는 고다르의 고독은 그런 의미에서 실존적 고독이 되었다. 이때 고다르는 에이젠슈테인과 마찬가지로 몽타주를 사용했지만, 그들은 정반대로 이용했다. 한쪽은 그렇게 해서 낡은 세상을 부수고 새로운 세상의 원리를 만들어냈지만, 다른 한쪽은 재난을 감추는 세상의 스크린을 찢어야 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방법도 부숴야만 했다. 재난 이후에 세상이 더이상 즐겁지 않은 것처럼 고다르는 재난 이후에 극장이 더이상 즐거워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두 가지 사실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왜 그렇게 고다르가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보자마자 찬사를 바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왜 허우샤오시엔이 <네 멋대로 해라>를 보고 비로소 <펑꾸이에서 온 소년>을 찍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네 멋대로 해라>

여기까지 따라오면서 틀림없이 내게 충고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당신은 아주 중요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 영화에서 자본의 문제. 고다르는 애처롭게 돈을 빌려 달라고 옛 친구 트뤼포에게 편지를 썼다. 로셀리니는 텔레비전 방송국에 가서 영화를 찍어야만 했다. 히치콕은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주겠다고 했을 때 퉁명스럽게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에게 양보했다. 영화에서 자본의 문제가 없는 것처럼 미학만 논할 때 철이 없어 보이거나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처음에는 둘로 나눠진 것처럼 보였다. 한쪽에서는 자본의 문제, 다른 한쪽에서는 정치의 문제.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다음 이제 단 하나의 문제가 되었다. 자본의 문제. 그때 신자유주의가 시작되었다. 영화는 단 한순간도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데이비드 O. 셀즈닉은 앙드레 바쟁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앙드레 바쟁은 셀즈닉이 제작한 영화를 열심히 보았다. MGM 스튜디오의 누구도 크리스티앙 메츠를 읽지 않았을 것이다. 크리스티앙 메츠는 못마땅하지만 를 예로 든다. 아메리칸 조이트로프는 장 보드리야르에게 관심이 없다. 장 보드리야르는 <지옥의 묵시록>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예로 들었다.

영화의 이론(들)은 한가하게 영화를 개념화하면서 자본의 법칙을 외면하고 고상한 언어를 노래한다. 교실의 학생들은 현장에 나가서야 비로소 영화라는 상품의 하부 토대의 실재와 마주하게 된다. 그런 다음 자신이 하는 일이 예술인지, 사기인지, 아니면 범죄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영화를 선택했을 때 자본주의의 무자비한 분쇄기 안에 들어갔음을 인정해야 한다. 영화라는 자본주의의 식민지. 일단 영화 안에 들어오면 누구도 방관주의자가 되지 못한다. 로베르 브레송은 돈을 구하기 위해 로마까지 갔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타르콥스키는 독일 제작자들과 긴 협상을 벌이다가 자신이 농락당하고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데이비드 린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내내 제작사와 방송국을 번갈아 전전하며 돈을 구하러 돌아다녔다. 예술가들은 진정성을 말한다. 자본가들은 이 시장에서 진정성이 잉여가치를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연대하면서 대항한 긴 역사가 있다. 일시적이지만 세 번째 길을 이야기한 영화들이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의 용기 있는 영화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자본가들은 이 저항을 통해 점점 더 세련된 전선을 만들어낸다. 더이상 아무도 ‘해방’을 믿지 않는다. 실재를 보기 위해서 애쓰지만, 현실이 이 모든 것을 덮어쓰고 있다. 그리고 그사이에 이데올로기가 개입한다. 나는 맨 처음 이야기로 돌아오고 있다. “오늘날 영화에서 사라진 게 있어요.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의 아름다움이요.” 당신이 물어볼 것이다. 그러면 무슨 영화를 보아야 하나요.

<스타워즈>

자, 알겠다. 이제 여기서는 그걸 보기는 틀렸다. 하지만 다른 별에서는 그걸 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자포자기한 아리아가 어디선가 들린다. <스타워즈>는 서둘러 도착한 다음 세기의 첫 번째 영화이다. 그러면서 이 영화를 스페이스오페라라고 불렀다. <니벨룽겐의 반지>가 예고한 것은 나치즘이었다. <스타워즈>를 찍으면서 조지 루커스레니 리펜슈탈의 <의지의 승리>를 ‘레퍼런스’로 삼았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이미 다음 세기가 시작되었다. 내가 부르는 아리아, 한번 더 부르겠다. 어디에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의 숏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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