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시기에 발생한 이야기를 동시에 진행시킨 구성이 매우 복잡한 흑백 작품으로, 20세기 초 미국 젊은이들의 고민, 16세기 유럽 종교개혁 시기의 위그노 학살, 예수의 생애에 대한 에피소드, 고대의 바빌로니아 이야기 등 네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more
- 제작 노트
-
왜 데이비드 그리피스인가?more
우리는 이 글이 왜 미국 영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리피스에서 시작하는지부터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그의 영화 <국가의 탄생>(1915)은 국가의 탄생과정을 통하여 미국의 지배적 신화를 그린 작품이다. 이후 서부극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장르 영화들이 이 신화를 재구축해 나갔고, 할리우드가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영화가 미국을 만들어 나갔다는 역설도 그리피스에서 시작되었다. 더욱이 그리피스는 할리우드가 전세계 영화시장을 헤게모니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감독이다.
켄터키 주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책 외판원으로 인생을 시작해, 아메리칸 드림의 주인공이 된 그리피스는 월트 휘트먼의 애독자였다. 그는 특히 휘트먼의 시집 「풀잎」에 나오는 ‘역사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된다’는 구절을 늘 외우고 다녔다. 그런데 드디어 그 구절을 영화화할 기회가 찾아왔다. 그에게 엄청난 부와 명예를 안겨준 <국가의 탄생>이 그 인종차별적 색채로 말미암아 흑인 인권운동가들에게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큐클럭스클랜(KKK)단을 옹호하다가 궁지에 몰린 그리피스는 오히려 흑인들이 자신에게 보이는 이러한 무자비한 불관용이 인류사를 통해 반복되었으며, 그래서 역사가 그 목적을 잃게 되었다는 자기 방어적인 작품을 들고 나왔다. 그것이 바로 <인톨러런스(불관용)>이다.
네 가지 이야기가 평행 몽타주(montage)로 전개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작품인 <인톨러런스>에는 20세기 초 미국의 한 젊은 연인들의 고난과 1572년에 일어난 위그노 학살, 예수의 삶에 대한 에피소드, 페르시아 왕에게 함락되는 바빌론이 동시에 등장한다. 즉, 시간적으로는 고대의 이교도들과 유대기독교 시기, 르네상스와 현대가 한꺼번에 다루어지고, 공간적으로는 오리엔트에서 시작해 지중해와 서유럽을 거쳐 미국으로 이동하는 제국들의 역사가 펼쳐진다.
더 놀라운 점은 각각의 에피소드가 그 당시 미국 관객들에게 이미 친숙한 여러 가지 영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필름 다르’(예술 영화)와 고몽사의 작품들, 이탈리아의 스펙터클 등이 각 에피소드마다 적절하게 인용된 이 영화는 유럽 영화를 미국식으로 길들이려는 그리피스의 야심에 찬 스펙터클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둥근 기둥에 코끼리들이 늘어선 거대한 바빌론 세트 장면은 이후 ‘할리우드 바빌론(탐욕과 악의 상징)’이라는 미국 영화산업의 이미지로 이어진다. 이 바빌론에서 그리피스는 바벨탑의 붕괴 이후 잃어버린 보편적 언어의 복권을 열망했고, 그것이 바로 미국 영화의 언어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의 세계 영화시장은, 그의 이러한 요구에 충분히 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소영 국립영상원 교수·영화평론가,<세계 영화 100>(한겨레신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