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나 호스와 파울라 베어가 갖는 공통점은 명확하다. 내가 이 두 배우에게서 좋아하는 점은 영혼이 망명하는 인물의 연기에 탁월하다는 점이다. 두 사람과는 언제나 고향과 조국을 잃고 새로운 집을 찾는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파울라 베어는 <거울 No.3>를 통해 크리스티안 페촐트와 네 번째 협업을 완수했고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매력을 발산한다. 라벨의 피아노곡 제목을 따온 이번 신작에서 베어는 교외에서의 교통사고 이후 중년 여성 베티(바르바라 아우어)에게 발견되어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는 인물 로라를 연기했다. “로라는 사고 이후 태어났고 풀밭의 모세처럼 발견된다. 그리고 따뜻한 침대로 옮겨져 커피와 옷을 제공받는다. 새집에서 첫 저녁, 첫 자전거, 첫 친구를 얻으며 사실상 재탄생의 과정을 거친다.”
<피닉스> <트랜짓>에서 시험한 복수의 정체성과 오인의 모티프를 잇되 보다 산뜻한 행장을 꾸린 이번 작업을 두고 감독은 고전의 영향도 거리낌없이 언급했다. “죽은 여성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고성에 도착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이며, 망자의 유령이 생자를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앨프리드 히치콕의 <레베카>를 의식하며 만들었다. 다만 로라는 과거의 인물로 완전히 대체되지 않는다. 진실과 대면한 후 자신이 살던 베를린으로 돌아간다.” 클로드 소테의 작품 역시 영감의 원천이었다. “<세자르와 로잘리>에서 배우 로미 슈나이더의 캐릭터를 둘러싸고 경쟁하던 두 남자의 관계가 여성의 부재 이후 우정으로 전환되는데, 울타리 너머에서 이를 지켜보며 미소 짓는 슈나이더의 마지막 숏을 <거울 No.3>의 결말에 참고했다.” 제목에 대해선 직접적인 부연 대신 틈이 주는 매혹을 간접적으로 어필하는 쪽을 택했다. “배급사들의 평가를 종합하면 적어도 자꾸 언급하게 되는 제목임은 틀림없는 것 같다. (웃음) 이 제목은 영화와 아무 관련이 없고, 그래서 영화와 너무 많은 관련이 있다.” 역사적 배경보다 일상성을 강조하며 90분이라는 간결한 러닝타임 동안 우화적으로 전개되는 <거울 No.3>는 페촐트의 영화 중 가장 접근하기 쉬운 작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가벼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상실과 애도를 비정통적인 방식으로 다루는 그의 신작에 흐르는 우아함은 여전히 현대 영화에서 희귀한 성질의 것이다. 마지막으로 페촐트는 “나는 인생을 살면서 내 안에서 많은 것을 죽였다. 떠나보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며 관계의 종료와 새로운 시작에 대한 주제적 관심사가 지속될 것임을 넌지시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