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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환의 영화비평] <벤허>와 <매그니피센트 7>의 서로 다른 리메이크 방식에 대하여

<벤허>

원작을 본 관객이 리메이크 영화를 관람한다면 그 시선은 두 스크린을 동시에 향할 수밖에 없다. 하나의 시선이 눈앞의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리메이크 영화를 향한다면 또 하나의 시선은 기억 속 원작 영화를 불러낸 가상의 스크린으로 향한다. <벤허>가 원작의 축약과 반복을 지향한다면, <매그니피센트 7>은 원작에 대한 해석을 감행한다. 물론 원작을 대하는 이러한 차이가 리메이크 작품의 성패를 결정짓는 절대 요인은 아니지만, 이 두 작품에 한해서는 그 차이가 작품의 질적 성패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미리 밝히자면 내 입장은 <벤허>는 참담한 실패이고, <매그니피센트 7>은 <황야의 7인>에 못지않은 재미를 주는 작품이라는 쪽이다.

<벤허>, 거두절미의 서사와 사라진 아우라

티무어 베크맘베토프의 리메이크 이전에도 <벤허>는 세번이나 제작되었지만, 우리가 <벤허>라 부르는 작품은 오로지 윌리엄 와일러의 1959년 작품이면 충분했다. 아마도 이 사실은 티무어 베크맘베토프의 <벤허> 이후에도 변화가 없을 듯하다(이 글에서 원작이라고 표현한 <벤허>는 윌리엄 와일러의 작품이다). 물론 티무어 베크맘베토프는 1억달러라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 원작의 스케일을 따라가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참고로 <고스트버스터즈>와 <매그니피센트 7>의 리메이크 제작비는 각각 1억4천만달러와 1억800만달러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윌리엄 와일러가 당대의 기술력으로는 제대로 구현할 수 없었던 해상 전투 장면을 제외하고 원작 <벤허>가 당대 관객을 압도하던 수준의 웅장한 스케일을 리메이크 <벤허>는 전혀 보여주지 못한다.

물론 리메이크 <벤허>의 문제가 단지 스케일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티무어 베크맘베토프가 3시간40여분에 달하는 원작의 러닝타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택한 전략은 ‘거두절미의 서사’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벤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해상 전투 장면과 전차 경주 장면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일단 줄이고 본다. 이 두 장면만 뚝 잘라서 본다면 리메이크 <벤허>가 원작에 비해 많이 뒤떨어진다고 말하기는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의 스펙터클은 단지 그 장면의 힘만으로 기억에 각인되는 것이 아니다. 원작 <벤허>의 윌리엄 와일러는 휘발성이 강한 스펙터클을 어떻게 드라마가 단단하게 붙들어맬 수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감독이었다. 가령 리메이크 <벤허>가 그렇게 공들였다는 전차 경주 장면만 보더라도 윌리엄 와일러는 말들이 치고받고 달리는 스펙터클뿐만 아니라 그 장면의 앞과 뒤를 전체적인 리듬감에 맞춰 ‘구성’하는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경주가 시작되기 전 경주마들이 일렬로 정렬한 채 경기장을 천천히 도는 장면(마치 이 장면은 웅장하면서도 압도적인 경기장에 울려퍼지는 죽음의 서곡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경주가 끝난 후 유다 벤허가 아무도 없는 경기장을 홀로 바라보는 장면은 리메이크 <벤허>에 거두절미의 대상일 뿐이다. 그저 치고받고 달리면 그만이다. 이것은 빠른 전개가 아니라 급한 전개다. 긴장감의 예열이나 여운의 짙은 잔상을 위한 장면은 서사적으로(또는 시각적으로) 꼭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장면들이 모여 관객의 정서적 파고의 높낮이를 결정한다는 것을 리메이크 <벤허>는 간과한다.

어쩌면 리메이크 <벤허>는 전차 경주 장면이 원작 <벤허>의 모든 것이라고, 또는 관객이 기대하는 모든 것이라고 과신했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 인물의 성격은 평면화되고 그 관계 역시 헐거워진다. 원작 <벤허>의 유다 벤허와 메살라에게는 각자의 신념이 있었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간에 그들은 그 신념에 따라 행동하기를 원했고 그것이 그들 사이에 갈등을 낳는다. 하지만 리메이크 <벤허>에는 유대인에게 자유를 달라던, 적과 동지 중 하나를 강요한다면 난 적이 되겠다던 유다 벤허가 없다. 원작 <벤허>에서 유다 벤허의 진짜 이야기는 전차 경주 이후에 펼쳐진다. 그것이 그 스펙터클 이후 무려 50여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 윌리엄 와일러에게 필요했던 이유다. 이는 원작 <벤허>가 목표를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분노와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전차 경주의 쾌감은 복수 이후 펼쳐지는 기적 같은 용서의 서사로 나아가기 위한 관문이었고, 이를 위해 예수의 존재가 필요했다. 원작에서 뒷모습과 실루엣으로만 보이던 예수를 직접적으로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리메이크 <벤허>에서 예수의 존재는 기계적으로 작동할 뿐 서사에 화학적으로 녹아있지 않다. 결국 리메이크 <벤허>는 원작의 목적과 수단을 전도한다. 원작 <벤허>는 복수와 용서의 서사를 위해 스펙터클을 경유했다면, 리메이크 <벤허>는 그것을 뒤집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원작 <벤허>의 아우라는 무너진다.

<매그니피센트 7>

<매그피센트 7>, 위대한 인간의 비명(碑銘) 또는 비명(悲鳴)

최근 리메이크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작품은 <매그니피센트7>이다. 나는 <매그니피센트 7>이 <7인의 사무라이>(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1954)에는 한참 모자라지만, <황야의 7인>(감독 존 스터지스, 1962)에는 그리 뒤질 게 없는 영화라고 본다. <매그니피센트 7>의 안톤 후쿠아는 <벤허>의 티무어 베크맘베토프와 원작을 대하는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 왜냐하면 <황야의 7인> 이후에도 서부영화는 계속 제작되었음을 안톤 후쿠아는 잘 알고 있고, 그래서 그는 50여년간 축적된 서부영화의 변화를 고려하면서 원작을 수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50여년의 시간을 두고 흔히 ‘수정주의 웨스턴’의 시대라 부른다. 안톤 후쿠아는 <황야의 7인>을 현대 관객의 취향에 맞게 변형하는 것에 더해 수정주의 웨스턴과 함께 발생한 변화를 작품에 흡수하려 하고, 그럴 때마다 <매그니피센트 7>은 흥미로워진다.

존 스터지스가 <황야의 7인>를 발표하던 1962년만 해도 서부영화는 백인 남성의 장르였다. 그리고 이는 서부영화의 절대적인 장르적 규범이었다. 하지만 <파시>(감독 마리오 반 피블스,1993), <퀵 앤 데드>(감독 샘 레이미, 1995), <장고: 분노의 추적자>(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2012) 등을 거치며 그 규범은 무너졌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황야의 7인>과 <매그니피센트 7>의 가장 큰 차이는 백인 남성의 자리에 흑인, 멕시칸, 아시안, 인디언을 배치하는 인물 구성에서 잘 드러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들이 로즈 크릭이라는 마을에 도착하는 장면에서, 서부영화에서 오랫동안 배제된 두 인종(흑인과 황인)인 샘 치섬(덴젤 워싱턴)과 빌리 락스(이병헌)를 앞세우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서부영화의 역사에 대한 안톤 후쿠아의 성찰적 관점이다.

하지만 안톤 후쿠아는 이러한 표면적 변화만으로 지난 50여년간 이뤄진 서부영화의 변화를 담아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이들 인물에게 <황야의 7인>의 인물에게는 없던 ‘사적 복수’와 ‘심리적 깊이’를 부여하는 부분이다. 안톤 후쿠아는 이러한 변화가 최근 관객 취향에 맞는 설정 정도로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매그니피센트 7>과 <황야의 7인> 사이에 보다 근본적인 변화, 즉 두 작품의 세계관이 서로 어긋나는 결과를 낳는다. <황야의 7인>(그리고 <7인의 사무라이>까지도)의 인물들을 아름답다고, 또는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은 그들이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약자들을 위해 칼과 총을 들었기 때문이다. <황야의 7인>은 그들을 그렇게 순수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던 시절의 영화다. 이로 인해 <황야의 7인>의 인물들이 평면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한 순수함이 위대한 사나이의 세계를 성립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매그니피센트 7>의 샘 치섬이 ‘로즈 크릭’을 위해 총을 든 이유를 어머니와 여동생을 죽음으로 이끈 보그(피터 사스가드)에 대한 ‘사적 원한’ 때문으로 변화시킬 때 그 파장은 샘 치섬의 선택을 이끈 심리적 원인을 강화하는 것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오로지 ‘그 이유’ 때문이었다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변화가 보그를 향한 샘 치섬의 행동을 공동체를 위한 순수한 봉사에서 사적 복수로 전환시키고, 그로 인해 <매그니피센트 7>은 ‘그 제목과 달리’ <황야의 7인>의 순수한 세계가 존재할 수 없음을, 달리 말해 아름답고도 위대한 인물의 시대가 끝났음을 고한다. 이러한 면에서 <매그니피센트 7>은 ‘매그니피센트한 인물’의 비명(碑銘) 혹은 비명(悲鳴)이다.

<매그니피센트 7>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굿나잇(에단 호크)일 것이다. 그는 <용서받지 못한 자>(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1993)의 윌리엄 머니(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심리적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것은 ‘죽이지 않으면 죽는’ 서부의 세계가 그에게 준 선물이다. 어쩌면 굿나잇만큼 서부영화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은 없다. 굿나잇이란 그의 이름은 서부의 영웅이 정말 원하는 것 한 가지, 또는 그가 절대 가질 수 없는 한 가지를 의미한다. 전통 웨스턴의 인물들에게는 감춰져왔지만 수정주의 웨스턴의 인물들은 곧잘 자신들에게 ‘굿나잇’이 없음에 괴로워했다. 이러한 면에서 굿나잇은 서부 영웅에 대한 안톤 후쿠아의 해석의 결과로 등장한 인물이다. <황야의 7인>의 인물들은 왜 자신과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마을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을 한 것일까, 라는 질문에 대해 안톤 후쿠아는 ‘굿나잇을 위해서’라는 사적인 이유를 그 답으로 떠올린 건지도 모르겠다.

‘굿나잇’이 흥미로운 또 다른 지점은 그가 서부영화에서 꾹꾹 눌러왔던 억압된 섹슈얼리티와 관계를 맺는 순간이다. 패러데이(크리스 프랫)가 엠마(헤일리 베넷)에게 보이는 관심이 장난질에 가깝다면, 영화 속 진짜 로맨스는 그보다 한층 아래에 감춰져 있다. <셰인>(감독 조지 스티븐슨, 1953)에서 셰인을 바라보던 스타렛 부인(진 아서)의 시선에는, 그리고 <수색자>(감독 존 포드, 1956)에서 이든(존 웨인)을 바라보던 마사(도러시 조던)의 시선에는 표면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섹슈얼한 긴장감이 내재해 있었다. 안톤 후쿠아는 서부영화 특유의 억압된 섹슈얼리티를 굿나잇과 빌리 락스의 관계 속에 넌지시 심어놓는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우정이 아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사람에게 총을 겨눌 수 없게 된 굿나잇이 떠나던 날 밤 홀로 술을 마시던 빌리 락스의 뒷모습과 마을로 다시 돌아온 굿나잇을 발견한 뒤 짓는 빌리 락스의 환한 미소에는 우정으로 담아낼 수 있는 ‘잉여의 감정’이 있다. 나는 총알이 빗발치는 싸움터가 동성애적인 로맨스로 환하게 빛나는 서부영화를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매그니피센트 7> 이전까지는 그랬다.

이처럼 <벤허>와 <매그니피센트 7>의 차이는 해석의 유무에서 발생한다. 어쩌면 굿나잇과 빌리 락스의 동성애적 코드는 리메이크 <벤허>의 유다 벤허와 메살라의 관계에 더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실제로 원작 <벤허>의 유다 벤허와 메살라의 관계를 동성애적인 코드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꽤 많이 있어왔다). 하지만 <벤허>는 해석보다는 축약을 지향하고, <매그니피센트 7>은 적극적인 해석을 한다. 그러한 차이가 두 작품을 보는 맛을 다르게 한다. 그것이 두 작품의 흥행이나 질적 성패를 가르는 갈림길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겠지만 분명한 것은 두 작품은 확실히 맛이 다르다, 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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