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각자 적국의 스파이로 활약하던 그렉 코테즈(안토니오 반데라스)와 잉그릿(칼라 구기노)은 첫눈에 반해 상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다. 스파이 활동을 그만둔 뒤 12살된 딸 카르멘(알렉사 베가)과 8살난 아들 주니(대닐 사바라)와 함께 단란한 가족을 이룬 코테즈 부부에게 어느날 비상호출이 온다. 그들이 맡은 임무는 최근 실종된 비밀요원들을 찾아오라는 것. 그러나 코테즈 부부는 출동하자마자 악당들한테 납치된다. 괴력을 지닌 복제인간을 만들어 지구를 정복하려는 악당은 TV의 어린이용 쇼프로그램 <플룹의 푸글리> 진행자인 페간 플룹(앨런 커밍)과 나쁜 과학자 미니언(토니 샬럽). 플룹과 미니언은 납치한 비밀요원들을 고무인형 푸글리로 변신시켜왔다. 그들은 복제인간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제3의 두뇌를 찾기 위해 코테즈 부부의 동료로 위장한 미모의 여인 그라덴코(테리 해처)를 보내지만 카르멘과 주니는 그들이 악당이라는 걸 눈치채고 도망친다. 이제 어린 남매 카르멘과 주니가 왕년의 스파이인 아버지와 어머니를 구하는 모험에 뛰어든다.
■ Review
<스파이 키드>는 어린이용 시리즈다. 12살 소녀와 8살 소년이 용기와 기지를 발휘해 지구 정복을 꿈꾸는 악당들을 물리치는 이야기이다. 여기엔 제임스 본드가 탐낼 만한 특수장비들이 즐비하다. 바다로 뛰어든 자동차는 잠수정으로 돌변하고, 로켓을 메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씹다뱉은 풍선껌으로 상대방의 움직임을 추적한다. 플러스 알파도 있다. 성인용 엔터테인먼트인 시리즈라면 본드걸의 몸매에 눈길을 줬을 시간에 가족용 엔터테인먼트 <스파이 키드>는 아기자기한 판타지에 이끌린다. 머리와 팔다리가 모두 엄지손가락으로 이뤄진 손가락 로봇, 찰흙으로 빚어 잡아늘인 듯한 고무인형 푸글리,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에게 영감을 얻은 세트는 현란한 원색 이미지에 취하게 한다. 혹시 감독이 팀 버튼? 대니 앨프먼의 음악까지 흘러나오면 그런 착각에 빠질 만하지만 놀랍게도 이 영화의 감독은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로버트 로드리게즈다. <엘 마리아치>로 시작해 <데스페라도> <패컬티> 등 아드레날린과 테스토스테론이 넘치는 영화로 널리 알려진 그는 <스파이 키드>에서 자신의 가볍고 경쾌하며 황당무계한 상상력이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지 보여준다. 21세기의 아이들은 마법의 성에 갇힌 공주를 구하는 모험담 대신 스파이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들으며 잠자리에 든다. 디즈니 애니메이션보다 존 카펜터와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배운 게 많은 로드리게즈에겐 그게 후대에게 들려줄 동화이다.슈퍼맨, 배트맨, 엑스맨, 제임스 본드, 닌자 거북이 등 지구를 지키는 전사들 가운데 가장 힘없는 축에 속하는 <스파이 키드>의 아이들은 지극히 평범하다는 게 매력이다. 잠들 때마다 스파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르는 소녀 카르멘과 학교에서 왕따당하는 소년 주니는 초능력이 아니라 동심으로 악의 무리와 맞선다. 겁많은 주니가 뒷걸음칠 때 누나는 동생에게 필요한 것은 풍선껌 폭탄이나 레이저 광선이 아니라 자신감이라는 걸 일깨워준다. 그리고 사실 그 정도만 있으면 물리칠 만큼 <스파이 키드>의 악당들은 허술하다. 한눈에 운동신경이 없어보이는 손가락 로봇은 떼지어 몰려다니지만 정작 하는 일은 별로 없고 단지 귀엽다. 복제인간인 아이들이 강력하긴 하나 위력을 발휘할 기회가 많지 않다. 아이들이 대적해도 될 만한 상대에게 꼼짝없이 당하는 건 오히려 어른들이다. 코테즈 부부는 왕년의 명성이 무색하게 어이없이 적의 포로가 되고 폼에 비해 실제 행동이 어설픈 편이다. 특히 <데스페라도>와 <마스크 오브 조로>의 멋진 남자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스타일이 말이 아니다. 콧수염까지 붙이고 근사한 비밀요원 자세를 취한 반데라스는 패러디 코미디의 주인공인 양 웃기는 행동만 한다. 여기서 감독 로드리게즈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고속촬영과 점프컷도 유머의 재료로 활용한다. 캐릭터에 무게와 깊이를 부여하는 데 관심이 없는 로드리게즈는 언제나처럼 인물과 스토리를 만화 컷처럼 배열한다. 어린이의 모험담에서 이런 스타일은 꽤 효과적이어서 북미 흥행수입 1억달러를 넘는 큰 성공을 거뒀다.
평단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로드리게즈는 액션장면을 잘 찍고 편집솜씨가 좋지만 캐릭터와 플롯이 약하다는 평을 듣곤 했는데 <스파이 키드>에 대한 평가는 신선하고 흥미로운 가족영화라는 쪽에 모아졌다. 그렇다고 캐릭터나 플롯을 매만지는 손길이 크게 달라진 건 아니다. 각본, 편집은 물론 일부 장면의 촬영까지 직접 한 로드리게즈는 단점을 극복하기보다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라틴 리듬의 강렬하면서 관능적인 특유의 시각효과를 살리면서 그는 전자레인지에 알약을 넣으면 햄버거 세트가 튀어나오는 유의 엉뚱한 상상을 화면에 옮겼다. <스파이 키드>의 진기한 발명품들을 보는 재미는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뱀파이어들 못지않다. 게다가 이 경우엔 뱀파이어처럼 무섭거나 기괴한 것도 아니다. 여전히 단순하고 평면적인 이야기지만 볼거리와 유머와 속도로 그런 단점을 추월한 셈.
장르의 변형으로 <스파이 키드>는 지난해 흥행작 <오스틴 파워>의 대구이기도 하다. 냉전시대의 깔끔한 첩보원 제임스 본드가 점잖지 못하며 색만 밝히는 남성으로 변한 데 이어 아내와 자식이 있는 어엿한, 하지만 우스운 가장이 됐다. <스파이 키드>는 스파이영화의 레퀴엠인가? 부활의 노래인가? 역사가 냉전을 걷어찬 뒤 농담거리가 된 스파이영화의 운명은 어딘지 아이러니해 보인다.
남동철 기자 namdong@hani.co.kr
<스파이 키드>의 배우들 언젠가 한번은 스쳤던 얼굴들
<스파이 키드>는 안토니오 반데라스를 빼면 스타급 배우는 거의 없는 영화다. ‘거의 없다’고 말한 이유는 조지 클루니가 나오는 대목이 한 군데 있기 때문인데 무척 애교있는 깜짝출연이다.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맡은 그렉 코테즈의 아내 잉그릿으로 나온 배우는 칼라 구기노. 국내관객에겐 낯선 얼굴이지만 마이클 J. 폭스가 주연한 TV드라마 <스핀 시티>에서 두각을 나타난 인물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스네이크 아이즈>에선 암살사건의 비밀을 밝혀줄 금발머리 여인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악당 플룹으로 나온 인물은 스코틀랜드 출신인 앨런 커밍. <엠마> 등에 출연해 낯익은 그는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제니퍼 제이슨 리와 공동연출한 영화 <기념파티>를 출품시키기도 했다.
나쁜 과학자 미니언 역의 토니 샬럽은 <맨 인 블랙> <바톤 핑크> <빅 나이트> 등으로 낯익고, 악당들의 우두머리로는 <터미네이터2>의 T-1000으로 잊혀지지 않는 로버트 패트릭이 나온다. 머리카락에 불이 붙어 흉한 몰골로 변한 악녀 그라덴코로 나온 배우는 TV시리즈로 방영한 <슈퍼맨>에서 루이스로 나왔던 테리 해처. <데스페라도>부터 꾸준히 로드리게즈 영화에 험상궂은 얼굴을 내민 대니 트레조는 경력이 흥미로운 사람이다. 마약거래, 강도 등의 혐의로 11년간 감옥을 들락거리던 그는 교도소에서 웰터급 복싱 타이틀을 땄다. 1985년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 감독이 <폭주기관차>를 찍는 현장에 아는 사람을 만나러갔던 트레조는 그의 복싱경력을 기억한 시나리오 작가의 제안으로 <폭주기관차> 현장에서 하루 350달러씩 받고 배우들에게 권투를 가르쳤다. 어느날 에릭 로버츠에게 권투를 가르치는 모습을 본 콘찰로프스키가 배역을 주면서 연기인생을 시작한 그는 지금까지 악역 전문배우로 뚜렷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두 주연 아역은 알렉스 베가와 대릴 사바라. 2살 때부터 영화에 출연한 알렉스 베가는 <트위스터> <글리머맨> 등에 나온 연기경력 10년된 배우지만 8살된 소년 대릴 사바라에겐 첫 연기경험이었다. 에 출연한 쌍둥이 형 에반이 조지 클루니의 눈에 띄어 <스파이 키드>에 출연한 대릴은 쌍둥이 형이 있어 1인2역을 하지 않아도 됐다. 에반이 복제인간으로, 대릴이 주니로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