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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2001-03-09

에브리원 세즈 원더풀!

◆<…JSA> 언론과 관객에게 호평, <반칙왕>도 성황

갈라진 하늘과 땅을 지녀본 자들의 공감이었는지도 모른다. 역시 베를린은 칸이나 베니스보다 영화 바깥의 현실 정치에 민감했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경쟁부문에 초청해 놓고는, 영화보다 한국의 분단상황에 더 관심을 쏟는 건 아무래도 특이했다. 지난 2월12일 열린 <…JSA> 팀의 공식 기자회견장에는 판문점의 실상이나 한국의 통일방안을 묻는 독일 기자들의 질문이 절반가량을 차지했고, 독일 신문들의 영화리뷰도 현재의 남북한 관계에 상당량을 할애했다. 분단을 경험한 그들에게 또다른 분단국의 영화에서 발견한 이데올로기와 인간이란 질문이 낯설지 않은 탓도 있는 듯 했다.

진보적 일간지 <타게스차이퉁>은 ‘인간에서 살인병기로, 다시 인간으로: 한국에서 온 놀라운 영화 <…JSA>’라는 제목의 리뷰를 바로 그 질문으로 끝냈다. “총격전에 임하는 군인들이 보이는 초긴장된 반응이 때때로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들이 처한 현실은 아주 심각하다. 파괴의 잠재력은 영화에서나 마찬가지로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고, 한반도에서 재난이 발생할 가능성도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 남북한 병사들의 우정도 현실 속에 존재한다. 영화에서는 비록 이데올로기가 인간을 재난으로 몰았지만, 이데올로기와 인간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강한가라는 질문은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

"독일에선 이런 영화 왜 안 나왔나"

남북의 대치전선에 우뚝 선 초소와 탐조등 따위가 동서로 갈라졌던 베를린의 과거를 연상시켰던 모양이다. <타게스슈피겔>은 “냉전으로 찢긴 또다른 나라에 내리는 이슬비를 보며 어떤 감동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JSA>에서 주목할 부분은 “흠잡을 데 없는 휴머니즘적 바탕과 상업적 성공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며, 이 두가지가 결합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는 평가로 리뷰를 시작했다. 지난 1988년 독일에서도 이같은 영화가 나올 수 있었을 텐데, <타게스슈피겔>은 그렇게 독일영화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왜 1988년이었을까?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기 전, 그리고 동독을 탈출하는 대량 난민들이 그 장벽붕괴를 예고하기 직전, 그러니까 분단이 아직도 굳은 현실이던 시대의 끝머리를 지칭하는 것이었으리라. 이튿날, 이 신문은 최근 판문점과 서울을 방문한 독일의 저명한 작가 한스 크리스토프 부흐의 판문점 르포를 실어 분단과 적대감의 해소를 이야기하는 영화에 공감을 표했다. 제3세계 문제에 관심이 지대한 이 작가는 지난 유신시대 `저항시인' 김지하의 존재를 자신이 만들던 문예지 <리테라투어 마가진>을 통해 유럽에 알림으로써 일찌기 한국과 인연을 맺은 바 있다.

영화를 정치적 의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영화비평'에 충실한 쪽은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나 <베를리너 차이퉁> 등 베를린 지방지들이었다. “오락물인 영화라는 장르를 수단으로 정치적 폐해를 고발하면서 이를 개인들의 운명을 통해 강렬하게 전달하는, 말 그대로 경계를 넘어서는 영화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금곰상의 유력한 후보임을 입증해 주었다.”(<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 “능숙한 콜라주 방식으로 시간을 처리하고 장면들간에 특이한 낙차를 설정하는 등 착상이 뛰어나다.”(<베를리너 차이퉁>) 그러나 <베를리너 차이퉁>은 후반부를 두고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서 드마라적인 것’으로 변하는 과정이 껄끄럽다는 토를 달았다.

영화 외적인 관심이 많은 것은 분단을 경험한 베를린의 특수성 때문일 수도 있지만, <공동경비구역 JSA>의 형식이나 어법이 익숙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어떻든 이 영화는 분명히 화제작이 됐고, 송강호씨는 다른 나라 감독이 공식 기자회견에서 그 이름을 거명할 정도로 국제무대에서 인지도가 올라갔다. 14일 열린 <이누가미> 팀의 공식 기자회견에서 하라다 마사토 감독은 “송강호씨를 출연시켜 다음 영화를 만들 구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송씨에게 따로 물었더니 “한국과 일본 형사가 공조해 마약사범을 쫓는 내용의 시나리오를 받고 읽어봤다가 내용에 공감이 가지 않아 이미 거절했는데 하라다 감독이 그 사실을 몰랐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비경쟁인 포럼부문에 나간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은 세 차례 시사 모두 성황을 이뤘다. 또 뉴욕필름페스티벌 주최쪽에서 봄에 여는 영화제 ‘뉴필름즈, 뉴디렉터즈’에 <반칙왕>을 초청했다. 그러나 파노라마 부문에 진출한 임상수 감독의 <눈물>은 이렇다할 주목을 받지 못했다. 15일 <눈물>의 공식기자회견장에는 기자가 10명 남짓 모여 썰렁한 분위기였다. 13일 저녁에 마련된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한국에서 부모의 권위가 저렇게 추락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이 나오는 등 청소년 문제라는 소재에 접근하는 것도 서구와 한국 사이에 차이가 크다는 게 드러나기도 했다.

◀<...JSA> 배우와 스탭들

외국 바이어들,제발로 한국 부스 찾는다

베를린 필름 마켓은 오는 21일부터 27일까지 열리는 아메리칸 필름 마켓(AFM)의 그늘에 가려, 서로 홍보만 할 뿐 거래 의사가 있더라도 계약은 AFM으로 옮겨가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반칙왕>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플란다스의 개> 등에도 많은 관심이 쏠렸지만 가시적 성과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상태다. 미로비전 이송원 이사는 “<플란다스의 개>에 대해 미국의 이름있는 제작자가 리메이크 판권을 사겠다고 해서, 먼저 이 영화를 미국에 배급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 제작자로부터 AFM에서 미국 배급선을 연결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텔미썸딩>도 독일의 영화사에서 리메이크 의사를 밝혀왔다고 덧붙였다.

한국영화를 외국에서 리메이크하는 것과 관련해, 독일에서 <접속>을 리메이크한 <해피엔드와 여인2>가 이번 베를린 마켓에서 상영됐다.(이 영화는 지난해 말 독일에서 개봉했으나 흥행성적은 좋지 않았다.) 또한 일본에서도 <조용한 가족>을 미이케 다카하시 감독이 리메이크하고 있으며, 올 가을 개봉할 예정이라고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밝혔다. 아무튼 해외시장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미로비전 이 이사는 “이전에는 마켓에서 외국 바이어들을 쫓아다녔는데, 지금은 그들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공동경비구역 JSA> 기자회견

▶▶난폭한 질문, 천진한 도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