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세계가 바라본 한국영화의 얼굴
국제무대에서 아시아영화의 전반적인 강세와 더불어 그간 중국, 홍콩, 일본 등에 집중되었던 미국영화계의 관심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로 확대되고 있으며 그 변화의 중심에 한국영화가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뉴욕의 경우 2000년 하반기에만 <거짓말> <춘향뎐>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한국영화 3편이 연달아 개봉을 했고 이에 맞춰 뉴욕에서 발행되는 정평있는 영화잡지 <필름 코멘트>는 2001년 신년호에서 ‘왕국의 도래’라는 제목으로 무려 7페이지에 달하는 한국영화 특집을 게재하기도 했다. 이제 <빌리지 보이스>나 <뉴욕타임스> 같은 유력지의 지면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기사를 발견하는 것은 더이상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한국영화에 대한 미국 시장의 관심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비평가들은 현재 아시아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영화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믿고 있는데 이러한 성과를 한국에서 온 세편의 영화만큼 잘 대변해주는 것은 없다”는 것이 토론토영화제의 아시아영화 프로그래머이자 <거짓말>의 미국 배급사인 카우보이 부킹 인터내셔널 대표 노아 코완의 평가이다. 아름다운 판소리가락에 전통적인 사랑이야기를 담은 <춘향뎐>과 새로운 실험으로 가득 찬 액션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성에 대한 적나라한 탐구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거짓말> 등 서로 그 성격이 완연히 다른 세 작품이 연달아 개봉됨으로써 그간 산발적으로 이뤄진 해외진출의 한계를 딛고 미국관객이나 영화관계자들에게 우리 영화의 실체를 좀더 정확하게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이중에서도 특히 <춘향뎐>이 거두고 있는 성과는 눈부시다. 가히 “판소리에 매료되었다”고 할 만한 현지 비평가들의 환대에 힘입어 흥행에서도 선전하고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관객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22일치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춘향뎐>은 전주 대비 112%의 놀라운 관객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스크린당 매표수익에서 전미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관객이 최고의 만족을 표시하고 있으며 특히 나이든 여성관객의 호응이 놀랄 만하다”는 것이 <춘향뎐>을 배급한 Lot47 필름의 제프 립스키 사장의 전언이다. 이와 같은 <춘향뎐>의 성공은 지난 뉴욕영화제 상영을 계기로 행사 기간에 집중적으로 이뤄진 홍보 활동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뉴욕영화제가 가지고 있는 비평적 권위와 현지매체들과의 끈끈한 유대를 십분 활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거짓말>과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각각 성공적으로 ‘자신들만의 열렬한 지지 관객’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어 지난 2000년은 가히 한국영화의 미국 진출 원년이었다고 할 만하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한국영화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많은 한인교포가 거주하고 있다는 뉴욕에서조차 여전히 낮은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외국영화라는 것 자체에 대단히 무관심한 것이 미국인들의 생리라지만 한국영화의 홍보 현황을 면밀히 살펴보다 보면 여러 가지 심각한 ‘영화적 이유’들을 함께 발견하게 된다.
우선 한국영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는 점. 그간 한국영화의 현지배급이 거의 이뤄지지 못했고 뉴욕 내 주요 상영 공간들 역시 이렇다 할 한국영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지의 유관단체들이 간헐적으로 한국영화를 상영하는 행사를 기획해 왔지만, 많은 경우 영화상영에 적합하지 않은 인근 대학의 강당이나 강의실을 빌려서 행사를 치러왔고 상영된 작품들 역시 그 내용이나 수준에서 한국영화의 현재를 제대로 보여주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았다는 평가다. 한국영화의 해외홍보에서 상영 프로그램의 부재보다도 더 큰 문제는 영어로 제공되는 영상자료 및 연구서를 전혀 구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간 미국에 비디오로 출시된 한국영화는 <산부인과>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등 세편뿐이다. 그리고 한국영화의 역사와 근황을 소개하는 믿을 만한 영문개론서 한권 없는 것도 우리의 현실이다.
한국영화를 해외에 홍보하는 데 있어 고려해야 할 또다른 중요한 점은 최대의 효과를 노릴 수 있는 ‘전략적 지점’을 제대로 포착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할리우드가 영화제작의 중심이라면 영화비평과 흥행의 중심은 단연 뉴욕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뉴욕에서의 평단 반응과 개봉 첫주의 흥행성적은 미국에서 개봉하는 영화의 운명을 좌우하는 실로 중대한 것이다. 따라서 이 지역은 한국영화와 문화를 알리고 세계의 문화적 흐름과 교류할 수 있는 하나의 전략적 요충지라고 할 수 있다. <춘향뎐>을 상영하고 있는 전체 4곳의 극장 중 3곳이 뉴욕의 맨해튼이라는 작은 섬에 몰려 있는 것도 이러한 점을 방증하는 것이다.
뉴욕=권재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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