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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캐릭터들이 말한다, 새해에는 이렇게 살아라

정해년이 밝았다. 돼지의 해를 맞이하여 로또 한번 터지는, 아니면 멋진 애인이 생겨 ‘러브러브’ 모드에 돌입하는 머나먼 환상에 잠시 빠져본다. 그러나 2005년과 2006년이 그 밥에 그 나물이었듯, 2007년이라고 그다지 화사하게 운세가 필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올해도 무탈하게, 적당히 묻어가는 삶이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을 뿐. 그 출발은 우선 본인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돼야 한다. 그래서 준비했다. 영화 속 캐릭터들에게서 배우는 바람직한 삶의 자세! 이들은 삶의 무게를 이겨내고, 지독한 액운의 포스도 눌러버릴 긍정적인 에너지의 소유자들이다. 부디 여러분도 이들처럼 새해에는 가볍게, 발랄한 하루하루를 맞이하시길(단, 자라나는 미래의 꿈나무들에겐 부작용이 생길 수 있음).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은 댄스 댄스!

<녹차의 맛>의 할아버지 가슈인 다츠야(아키라 도도로키)

할아버지, 나이를 망각해도 한참 망각하셨다. 9:1 가르마로 곱게 빗어넘긴 머리에 밤무대에서 막 뛰쳐나온 듯한 반짝이 의상. 일자 눈썹 아래로 꿈틀거리는 그로테스크한 표정은 또 어떤가. <녹차의 맛>의 가족 구성원들은 어른부터 아이까지 모두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기’를 실천하는 이상적인 가족상을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자칭 ‘마임 예술가’ 할아버지는 귀여운 손자들을 보듬어주는 일 따위엔 관심이 없다. 아침 먹고 안무 연구하기, 점심 먹고 안무 연구하기, 잠자기 전 안무 연구하기. 그리하여 마침내 완성된 할아버지의 ‘야마요’ 댄스! “야마요~, 야마와 이키테이루!” 굳이 해석하자면 ‘산이여~, 산은 살아 있어요!’란 알쏭달쏭한 말인데, 의미는 따지지 말고 긍정적 에너지가 철철 넘치는 안무를 무의식적으로 따라해보자. 영혼이 저 멀리 안드로메다를 오락가락하는 듯한 순결한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작용 사례: ‘댄스’보다 ‘댄서’에 흑심을 품었던 <댄서의 순정>의 채린(문근영) & 영새(박건형), 처자식은 나 몰라라 스텝만 밟아버린 <바람의 전설>의 풍식(이성재).

죽어도 굴하지 않는 사모님 정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메릴 스트립)

프라다는 돈만 있으면 입을 수 있을지 몰라도, 악마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왕따를 감수하고라도 사악한 언행을 서슴지 않아야 하고, 치고 올라오는 놈 없나 끊임없이 감시하는 주도면밀함이 필요하다. 고로, 의식주 해결이 급급한 우리네 월급쟁이로서는 <런웨이>의 편집장 미란다처럼 되기란 한국에서 <해리 포터> 미출간본을 얻는 것만큼이나 ‘임파서블’한 일이다. 다만, 미란다의 대책없는 자존심은 깊이 새겨둘 만하다. 웬 찌질한 놈이 와서 말도 안 되는 충고를 늘어놓을 때 “너나 잘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담력을 키워보자. 화룡점정으로 미란다처럼 “운전해~”라고 멋지게 마무리까지 하고 싶지만, 개인 운전기사는커녕 중고차 한대도 없으니 그건 패스! 어쨌거나 따끈따끈한 스타벅스 커피까지 대령할 비서가 없는 이상, 자칭 사모님이 되어 자존감을 키워보시길. 부작용 사례: 감옥까지 가서도 대접받으려다 비명횡사한 <친절한 금자씨>의 마녀(고수희).

한번뿐인 인생, 적당히 살자

<이웃집 야마다군>의 야마다씨 가족

어머님과 선생님과 선배님들은 말씀하셨다. “치열하게 살라”고. 그런데 왜? 다카하타 이사오의 애니메이션 <이웃집 야마다군>을 보고 있으면 이런 궁금증이 자꾸만 치밀어오른다. 학교에선 선생님이 새해 덕담으로 “적당히 살자”고 말하지 않나, 사위와 장모가 스스럼없이 유산 얘기로 옥신각신하고, 엄마는 야근에 시달리다 돌아온 아버지에게 멀뚱하니 바나나 한개를 내민다. 게다가 엄마의 게으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 누군가 집을 방문한다고 하면 아예 집을 돼지우리로 만들고는 “대청소 중이었다”고 둘러대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꽃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가족은 나름 행복해 보인다. 적당히 묻어가는 삶, 남이야 부동산 투기로 얼마를 벌었건 말건 적당한 게으름을 즐기는 삶. 그래, 케 세라 세라~ 인생 뭐 있냐. 치열함의 압력에 눌려 죽기 전에, 다들 조금씩 릴~랙스하셈. 부작용 사례: 묻어가는 것도 못하는 <두사부일체>의 대가리(정운택)와 삽질이 인생 컨셉인 <주몽>의 영포 왕자(원기준).

한 우물만 파면 엄마가 기뻐한다

<맨발의 기봉이>의 기봉이(신현준)

전 과목 70점 받는 것보다 한 과목 100점 받는 게 더 높이 평가받는 세상이다. 그러니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난 한놈만 팬다”던 무대포(유오성)의 말을 무시하지 말지어다. 만일 기봉이가 “어디 가서 노래는 하지 말라”던 노모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면, 백만불짜리 두 다리는 개다리춤 추는 데나 썼을지도 모를 일. 다행히 기봉이는 참 현명한 청년이다(영화에선 마빡이 사촌쯤으로 만들어놨지만!). 자신의 재능을 발굴해 달리고 또 달렸으니, 결국엔 훌륭한 마라톤 주자로 환골탈태했다.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해 어머니의 틀니를 사드리겠다는 동기 역시 참으로 순결하기 그지없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라 반박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기봉이의 모범적 사례에서 힘을 얻어 2007년에는 ‘한놈만 패는’ 자세로 살아보시길. 부작용 사례: <철도원>의 직업의식 투철한 철도원 오토마쓰(다카쿠라 겐). 역 지킨답시고 아내의 임종도 못 지켰으니…. 근데 거긴 3교대 근무도 안 하니?

착각에 빠져서 행복할 수 있다면

<스쿨 오브 락>의 듀이(잭 블랙)

원인 모를 열등감에 몸부림치는 이들이여, <스쿨 오브 락>의 듀이를 본받을지어다. 환갑이 넘어도 도저히 철들 것 같지 않은 그는, 열등감에 좀 빠져도 될 만한 루저이건만, 근거없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친구네 집에 얹혀살면서 식량만 축내는데다가, 취업의 기회마저 가로채는 기생충 같은 녀석. 실제로 그런 놈이 내 친구라면 ‘뻐큐’를 세배쯤 먹여주고 싶겠지만, 밟아도 밟히지 않는 자만심은 오히려 경이로울 정도다. “난 락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어. 내 음악으로 사람들을 해방시키지.” 꿈보다 해몽이라고, 때론 그가 늘어놓는 헛소리에도 굉장한 잠언이 있다. 하긴 멋져서 록을 하는 게 아니라, 록을 하기 때문에 멋쟁이가 되는 것이겠지. 뱃살이 좀 늘어지면 어떤가. 남들이 뭐라건 “내 경쟁상대는 전지현이다!”라고 외쳐서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착각에 빠져 사는 것도 괜찮다. 부작용 사례: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에로영감’ 슈트레제만(다케나카 나오토).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하긴 하지만, 꽃미남 치아키(다마키 히로시)를 경쟁상대로 생각하는 건 좀… 무리데스요!

임기응변의 달인이 돼라

<캐리비안의 해적>의 잭(조니 뎁)

뽀송뽀송한 마음으로 2007년을 맞는다 해도, 여전히 21세기의 대한민국은 해적들의 바다만큼이나 스펙터클할 것이다. 고로 어떻게 하면 이 시대를 정복할 것인가 하는 고민 따윈 집어던지고, 어떻게 하면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라. <캐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우처럼. 이제는 우리가 사랑한 이가 조니 뎁인지 잭 스패로우인지 분간은 잘 안 가지만, 여하튼 ‘블랙 펄’호의 선장 잭 스패로우의 가장 큰 장점은 임기응변에 강하다는 것이다. 사고 치다 들키면 적당히 얼버무리기, 식인종들에게 잡혀가 꼬치가 될 지경에 이르러도 말도 안 되는 유머 날리기, 의리 지킬 상황에 모른 척하기 등등. 별다른 감정 기복 없이 극한의 상황에서도 발군의 임기응변 실력을 발휘했던 잭 스패로우. 사방이 시끄러운 시대, 민폐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잭 스패로우처럼 살아보자. 사랑스러운 패션감각까지 벤치마킹하면 더욱 좋고. 부작용 사례: <작업의 정석>의 한지원(손예진)과 서민준(송일국). 미모와 재력을 내세워 위기를 모면했던 그들의 작업은, 임기응변이 아니라 산만하기만 해 평범한 이들의 마음에 불만 질러놨다.

사랑은… 노력이다, 콩이도 해냈다

<킹콩>의 킹콩

몇 년째 연애운이라고는 약에 쓰려 해도 없던 이들, 사랑은 운이 아니라 노력임을 명심하자. 짐승도 가슴 저린 사랑을 할 수 있음을 <킹콩>의 콩이는 멋지게 증명하지 않았던가. 콩이의 사랑은 듬직한 몸매만큼이나 무게감이 있었고, “우워워워” 하던 괴성은 앤(나오미 왓츠)에게 어떤 사랑고백보다 달콤하게 들렸을 터. 그녀가 기뻐한다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까지 기어올라 환상의 뷰(view)를 제공하는 담대함, 아수라장에서도 그녀를 간파해내는 시력, 생긴 거와 어울리지 않게 빙판을 구르며 ‘얼레리꼴레리’ 장면을 연출하는 로맨틱함 등은 연애에 서투른 이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무엇보다 인간 배우들의 코를 납작하게 했던 그 진심어린 표정연기! 지금부터 거울을 보며 부단히 연습해보셈. 2007년에 당신에게 다가올 그 혹은 그녀를 위해. 부작용 사례: 노력 이전에 상대부터 잘 고르자. 사랑도 ‘기브 앤 테이크’다.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영운(김승우)처럼 하나를 주면 둘을 요구하는 찌질이는 요주의 인물이다.

음란함이 엔도르핀을 솟게 하리니

<음란서생>의 황가(오달수)

음란함 앞에 장사 없다. 살색 찬란한 파노라마 앞에서는 대학교수님도 판사님도, 국회의원님도 다 똑같은 인간일 뿐이다. 게다가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니, ‘난 그런 거 몰라요’ 하는 눈빛으로 일관했다간 왕따당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지저분한 음담패설을 무용담처럼 떠벌리자는 말은 아니니, 전국에 산재해 계신 마초 여러분께서는 오해 마시길. 다만 이마에 ‘음란’이란 글자를 주홍글씨처럼 달고서도, 꿈꾸듯 행복한 표정을 지었던 윤서(한석규)의 삶을 곰곰이 생각해보자는 거다. 적당한 음란함은 엔도르핀 생성을 돕고, 당신의 얼굴에서 다크 포스를 지워줄 것이니. 뒤에서 호박씨 깔 바에야 황가처럼 아예 자기 욕망에 충실한 한해를 보내보는 것은 어떨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처럼 보여도, 알고 보면 황가는 명랑한 시대 만들기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 아닐지. 부작용 사례: 몰래카메라에 찍혀 난데없는 모텔 순례에 나선 <연애술사>의 희원(박진희)과 지훈(연정훈). 국민들의 성교육에 이바지할 게 아니라면, 조심 또 조심!

코스프레를 생활화하라

<라디오 스타>의 동강밴드(노브레인)

대한민국에 코스프레 마을 같은 게 하나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러던 차에 알록달록 총천연색 의상으로 우리를 즐겁게 한 이들이 영월에 나타났다. 바로 <라디오 스타>의 ‘동강밴드’ 노브레인. 2006년 패션 트렌드가 블랙이건 말건, 패션 공식 따윈 깡그리 무시한 듯한 이들. 이들의 의상은 처음 볼 땐 심란하고 기가 막혔으나, 보면 볼수록 정감이 갔다. 한적한 영월에 이런 므흣한 청년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 <프로젝트 런웨이>의 하이디 클룸이 경악할 만한 의상이라 할지라도, 존재감을 알리는 데는 100점짜리 의상이 아닐 수 없다. “코디가 안티”란 소릴 좀 들으면 어떤가. 2007년에는 새옷을 장만할 때 ‘무난함’이란 낱말은 잠시 잊자. 패션은 얼굴이란 말이 있듯, 대담하고 어처구니없는 패션이 여러분의 개성을 만방에 떨칠 것이다. 부작용 사례: <불량공주 모모코>의 모모코(후카다 교코). 그녀의 드레스 취향을 나무라는 게 아니다. 진품만 사들이기 전에, 얇은 지갑도 한번 생각하라는 뜻. 까딱 잘못하면 신용불량자 명부에 오를 수도 있을 테니.

백 마디 말보다 한번의 슬랩스틱!

<쿵푸 허슬>의 싱(주성치)

일찌기 성치옹께서는 슬랩스틱이 얼마나 감동적일 수 있는지 증명하셨다. 그가 흘리는 콧물 한 방울은 눈물 한 바가지보다 설득력이 있었고, 계단을 구르며 이를 닦는 애크러배틱한 자세는 페이소스가 샘솟는 경이로움을 선사했다. <홍콩 레옹> <홍콩 마스크> 등 무차별 패러디 속에서도 눈부신 창조력을 발휘했던 성치 형님. 그런 그가 <쿵푸 허슬>에서는 말수가 부쩍 줄었다. 대신 온몸으로 자신의 철학을 증명한다. 사시미칼 세례로 온몸이 벌집이 되어도, 마지막까지 허풍을 잊지 않는 센스! 웬만해선 상처받지 않을 그의 긍정적인 태도는, 2007년 우리가 취해야 할 궁극의 자세다. 누군가 당신에게 설교를 늘어놓을 때, 누군가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로 당신의 심장을 쑤셔놓을 때, 주성치옹의 애크러배틱한 슬랩스틱으로 진압해보시길. 때론 백 마디 변명보다 한번의 슬랩스틱 액션이 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법이다. 부작용 사례: <개그콘서트>의 마빡이(정종철). 그의 슬랩스틱은 즐겁긴 하지만, 지나친 지구력을 요구하는 액션이라 자칫 산소 부족으로 응급실에 실려갈지도 모를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