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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을 빛낸 영화, 배우, 명장면과 허허실실 퍼레이드
이다혜 2006-12-27

누가누가 잘했나, 누가누가 웃겼나. <me> 멋대로 2006년 영화계를 결산해보았다. 누가 가장 내숭을 잘 떨었나, 누구 혀가 짧아 보는 사람 마음 아프게 했나, 누구 뱃살이 가장 복스러웠나. 한해 본 영화들을 하나하나 꼽아가며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을 추억하고 어처구니없는 장면들을 솎아냈다. 무엇보다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에 해피 뉴 이어요!

1. 최고의 내숭

<해변의 여인>

<해변의 여인>에서는 (결혼에서) 돌아온 왕언니, 고현정이 내숭의 진수를 보여준다. 해변가에서 중래(김승우)와 한참 뽀뽀에 열중하던 문숙(고현정)은 난데없이 이렇게 말한다. “감독님 너무 이상해요.” 응? 뽀뽀하던 아가씨는 어데로 가고? 친구 따돌리고 뽀뽀하던 아가씨 어디 가셨어요? 곧이어 “나 사랑해요?”라고 물어 중래를 할 말 없게 만드는 일이야말로 정형돈 못지않게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감히 충고하고 싶다. 이 괴이한 상황은 같은 장소에서 선희(송선미)에 의해 재현된다. 선희야, “사랑해요”라는 말을 저렇게 얼버무리는 남자는 만나면 안 된다. 다음번에는 xx하는 도중에 문 두들기는 여자가 문을 따고 들어올지도 몰라요, 응?

2. 왜 돌아오셨삼

<원탁의 천사>

아버지의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 그건 알겠다. 그동안 소홀했던 아들에게 어떻게든 마지막 사랑을 베풀고 싶어하는 <원탁의 천사>의 아빠, 영규(임하룡)의 마음은 이해하고도 남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운명은 운명이고, 팔자는 팔자 아니겠는가. “있을 때 잘해”는 애인 찰 때만 날릴 수 있는 대사가 아니라는 거! 인생 헛살다 죽은 다음에 후회한다고 매번 다시 살려준다면 세상은 뭐가 되겠는가.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서 오달수가 날린 명대사를 떠올려보자. “아 씨발, 아버지는 아무나 되는 줄 아냐?” 생각해보라, 당신에게 어느 날 하하가 나타나서 옛날에 헤어진 아빠나, 할아버지나, 초등학교 친구라고 우긴다는 상상을 해보라… 미안하다, 막상 생각해보니 재미있을 것 같다. 하여튼 <원탁의 천사>에서는 영규가 동훈(하하)의 몸으로 다시 세상을 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고, 원탁(이민우)은 덕분에 쓸데없이 헷갈리기만 한다. 에고, 아버지, 다른 몸으로 오실 거면 미리 말씀을 하시던가.

3. 올해의 슬픈 혀

<청춘만화>

오호, 통재라. 혀가 너무 짧아 슬픈 짐승이여, 그대의 이름은… 흠흠. 참고로, 사진은 이 기사와 관계가 없습니다(정말?). 아마도 한 인간의 몸에 생길 수 있는 근육의 양에는 한계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한류 스타 권상우의 완벽한 근육질에는 그저 떡 벌어진 입이 닫히지 않을 따름이지만 혀에 붙었어야 할 근육이 아무래도 저 가슴에 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초반부, 지환(권상우)이 성룡을 흉내내는 장면. 지환은 이렇게 말한다. “성욕을 뛰어넘는 액션 배우가 되어.” 처음에는 이상한 줄도 몰랐다. 하긴 이소룡의 경우 복상사라는 주장이 있으니까 성욕을 꾹 참으면…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대사는 사실 “성룡을 뛰어넘는 액션 배우가 되어”였다는 말씀. 아아, 그런 것이었다. “사당은 돌아오는 거야!”가 사실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였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신 그분이니만큼 난 이해할 수 있다. 모두들, 이해해주길 바라. 근육은 소중하니까요!

4. 최고의 애크러배틱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자라나는 꿈나무들에게 먼저 한마디. 세상에 므흣한 일이 벌어지는 장소는 무궁무진하다. 물론 므흣한 일을 하는 방법도 무궁무진하다(므흣한 일이 ‘엄마 모르게 게임 하기’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살아도 좋겠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개 몇 가지 방식으로, 특정 장소에서 므흣한 일을 하게 되어 있다. 어째서? 몸이 괴롭기 때문이다. 한국영화들에서 보이는 18금 장면들이 대개 천편일률적이라는 것은 통계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바 그 변명을 대신 하자면 좀 지루하긴 해도 편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에 등장하는 은숙(문소리)은 꿈나무를 육성하는 교수라는 직업에 걸맞게, 세상의 편견과 관습을 깨부수는 애크러배틱한 체위를 구사하신다는 말씀. 도서관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하이힐을 신고 좁은 공간에서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몸을 휘던 은숙이 신음소리를 내기에, 난 정말… 허리가 아파서 저러나보다 하는 측은지심이 들었다. 초반 정사신에서도 마찬가지. 얼마나 허리가 아프기에 그렇게 소리를 질렀을까! 그나저나 소리 언니, 시집가서 잘사시길. 애크러배틱 너무 하지 마셈!

5. 어설픈 한국인

<레이디 인 더 워터>

<레이디 인 더 워터>에는 한국인 모녀가 등장한다. 그런데 엄마고 딸이고 한국어가 이상하다. 한국에서 대학까지 다닌 박찬호가 한국말을 잊어버리는 우주적으로 놀라운 신비를 떠올릴 때, 딸이 한국어에 서투른 것은 용서할 수 있다. 그런데 엄마는 어쩌다가? 클리브랜드(폴 지아매티)가 수영장에서 발견한 신비한 여인에 대한 신비를 풀고자 찾아온 이 모녀, 사실 한국계가 아니라 중국계다. 그러니 한국어가 서툴 수밖에. 만일 일요일 오전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이런 장면을 봤다면 그냥 넘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 배우가 꽤 많이 활동하는 할리우드에서 <레이디 인 더 워터>같이 했어야 하는 걸까 싶다. 한국인임을 자처하는 아줌마가 마치 저주를 내리는 무당 같은 무서운 말투로 “그 동화에서는 툭벼리 선택된 인가니” 운운하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막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존 조 만쉐이!

6. 변신하지 말걸 그랬지

<맨발의 기봉이>

요즘 어린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신현준은 원래 진지하고 잘생기고 신비로운 배우였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은행나무 침대>에 그가 황 장군으로 출연했을 때 과묵하고 책임감있는 그의 비장미에 한국의 소녀들 가슴이 벌렁벌렁거렸더랬다. 마치 응삼이 박윤배가 원조 얼짱이라고 출연하는 것 같은, 웃자고 하는 말이냐고? 아니란 말이지. <킬러들의 수다>부터 시작된 그의 귀여운 변신은 <달마야, 서울 가자>로 코미디의 루비콘 강을 건넜다. <가문의 위기: 가문의 영광2>에서 그 잘생긴 얼굴로 천연덕스럽게 코미디를 소화하던 그는 마침내, <맨발의 기봉이>에서 기봉이로 나선다. 황 장군이, 하필이면 98% 모자란 기봉이로 변신한단 말인가. TV 다큐로 본 기봉씨는 그저 해맑은 미소를 지닌, 행복하게 살 줄 아는 사람이었지만, 영화 속 기봉이는 떡 벌어진 어깨와 근육질 몸매를 한, 그저 바보 같은 남자였다. 이제 신현준 얼굴만 봐도 웃음이 실실 나오니 이를 어쩐다.

7. 올해의 명대사

<달콤, 살벌한 연인>

한국 로맨틱코미디에 한획을 그은 <달콤, 살벌한 연인>에는 명대사가 수시로 등장한다. 연애 초심자들이라면 한번쯤 해봤을 닭살 돋는 말들도 좋지만, 박용우의 속사포 같은 말투로 듣는 사랑에 빠진 바보 같은 말들은 압권이다. “너도 키스할 때 입에다 막 혀 집어넣고 그래?”, “당신을 만나지 못했던 20세기 따윈 똥통에나 처넣어버리라지”, “빼지마 빼지마 혀 너무 좋아 혀 최고야”. 하지만 그중 최고는 뭐니뭐니해도 미나(최강희)와 대우(박용우)가 처음으로 결전(?)을 치르는 날에 등장하는 혈압 발언 사태다. 대우의 입술이 진공청소기처럼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미나의 목덜미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미나는 대우를 밀어내는 척하며 말한다. “땀 때문에 씻어야 해요.” 그러자 허리 부실한 우리의 순결남, 이렇게 답한다. “아, 괜찮아요, 저혈압이라서 짜게 먹어도 돼요.” 땀 많이 흘리시는 분들, 부디 저혈압 애인을 두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와 쌍벽을 이루는 엉뚱발언 명대사는 <린다 린다 린다>에 나온다. 송(배두나)에게 애정고백을 하는 마키하라(마쓰야마 겐이치)는 열심히 외운 한국어로 덜덜 떨면서 이렇게 말한다. “소가크장 있능 데서 항상 망나게 도에네요.”(소각장 있는 데서 항상 만나게 되네요) 참 귀여운 총각이긴 한데, 왜 첫마디를 소각장으로 시작한 것인가! 참고로 마쓰야마 겐이치는 <데스노트>에 L로 출연한 배우다.

8. 어머니가 피해야 할 직업

<열혈남아>

어머니, 왜 식당을 하셨어요. 이상하게도, 올해 한국영화에 등장한 깡패들의 어머니들은 유달리 식당을 운영하는 일이 많다. <해바라기> <열혈남아> <타짜>에서 모두 그렇다. 다른 사람을 거둬먹이는 이 신성한 영업장을 운영하시는 어머니들의 아들들이 왜 깡패가 되었을까, 잘 모르겠다. 게다가 깡패였던 자식을 죽인 또 다른 깡패를 거두거나(<해바라기>), 아들을 죽이려는 깡패를 거두는(<열혈남아>), 그야말로 득도한 경지에 오른 모성애를 보여준다. 감독들이 왜 ‘깡패엄마=식당’ 설정을 좋아했는지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알 길이 없다. 그저 나오느니 한숨뿐. 어머니, 왜 식당을 하셨어요.

9. must-have 소품

<데스노트>

뱀은 이브에게 사과를 권했고, 운명은 라이토에게 데스노트를 내밀었다. 이름과 죽는 시간, 방법을 데스노트에 적으면 그 사람은 죽는다. 중요한 점 하나. 데스노트는 마치 신형 휴대폰 같아서 사용법 옵션이 아주 많기 때문에 미리 매뉴얼을 숙지해야만 한다(설명서 읽기 귀찮아하는 사람이 데스노트를 손에 넣었다가는 자기 공책이라고 이름을 썼다가 졸지에 죽을지도 모를 일이다). 예를 들면, “이름을 쓸 인물의 얼굴을 모르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동명이인이 단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죽지는 않는다. 세상의 전쟁을 없애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면, B로 시작하는 중년남의 이름을 적어보면 어떨까. 에효. 하지만 전쟁은 단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결국 세상에 인간이 없어지기 전까지 전쟁은 계속되지 않을까. 그러니 데스노트 한권 있다고 해서 세상의 악을 척결할 수는 없다. (흠칫) 미안하다. 다 쓰고 보니까 ‘must-have’가 되면 안 되는 물건이었다.

10. 뱃살을 만지러 갑니다

<천하장사 마돈나>

세상 모든 뱃살의 숙명은 “숨겨라, 숨겨라, 배꼽 보일라”로 직결된다. 게으름의 상징이자 섹시하지 못함의 대명사인 뱃살. 하지만 동구동구 오동구의 뱃살은 다르다. 격이 다르다. 정말이지 동구 역의 류덕환이 아직 살을 빼지 않고 있었다면, 한번 만져보게 해달라고 조르고 싶을 정도로 오동통하고 사랑스럽다. 이 말이 너무 변태같이 들린다면, 당신이 <천하장사 마돈나>를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천하장사 마돈나> 속, 여자가 되고 싶어하는 소년 오동구는 씨름에 타고난 소질이 있는 이른바 타고난 씨름선수다. 신은 그에게 절체절명의 위기에 상대방을 웃길 수 있는 얼굴의 점과 털마저 선사했다. 이 역할을 위해 류덕환은 27kg을 찌웠고, 살이 오른 그의 몸은 귀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동구야, 여자의 몸으로 살아가려면, 그래서 남자들의 이목을 끌고 사랑받으려면… 살은 빼야 한다. 이런 말을 하려니 입이 쓰지만, 진실인 걸 어쩌겠니?

11. 최악 겸 최고의 직장상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영화를 본 직장인들의 의견은 둘로 갈린다. 1. “저 편집장은 우리 회사 윗사람과 똑같군. 성격이 지랄맞아.” 2. “앤드리아는 뭐가 불만이야? 저런 상사 밑에서라면 당연히 열심히 일해야지.” 사회의 쓴맛을 못 본 순수한 영혼들의 눈에 ‘악마’로 지칭되는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는 성격 이상한 히스테리 환자에 불과하겠지만, 직장생활이라는 걸 겪어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치부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잡지사가 아닌 일반 회사에서 미란다보다 더한 사람과 일해봤다는 증언이나, 미란다같이 똑 부러지는 상사를 만나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탄식이 동시에 들려오는 것은 그래서다. 그래서 미란다는 최악 겸 최고의 직장상사 자리에 올랐다. 개인적인 업무까지 회사 아랫사람에게 시키는 미란다는 분명 저질 인간이라는 말을 들어 싸지만, 패션계 최고의 자리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는 미란다는 확실히 천재적인 능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능력인가, 인간성인가. 이 문제는 정말 직장인들에게 두고두고 해결되지 않는 물음표일 것이다. 능력 좋고 인간성도 좋은 직장 상사를 만날 가능성은, 초등학교 때 금발 머리 급우를 만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다.

12. 올해의 배우

<노다메 칸타빌레>

먼저 말해두어야 할 한 가지. 이 사진은 영화가 아닌 드라마 사진으로, <노다메 칸타빌레>의 한 장면이다. 이 배우는 바로 다케나카 나오토. 일본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영화배우 다케나카 나오토라면 변태스러운 아저씨를 떠올리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쉘 위 댄스>에서 그의 허리 움직임은 외설스럽긴 하나 전혀 섹시하지 않았으며, <완전한 사육>에서 그는 ‘변태 일본 아저씨’의 대명사였다. <도쿄 맑음>에서는 진지한 사진작가로 출연하기도 했지만, 어쩐지 그런 영화는 다케나카 나오토의 ‘외유’이고, 코미디야말로 그의 본질을 보여주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로 희극배우로서의 다케나카 나오토는 힘이 세다. 올해 개봉한 <스윙걸즈>에서 그는 음악을 사랑하지만 사실 악기를 다루지 못하는 선생으로 분해, 스윙을 연주하고 싶어하는 소녀들을 가르친다. 사랑스러운 소녀들 사이에서, 음악을 향한 꿈에 부푼 아저씨 선생님의 순수함을 그는 코믹하게 포현해냈다. 현재 일본에서 방영 중인 <노다메 칸타빌레>에서는 독일인 거장 지휘자로 분한 그의 코믹 연기를 확인할 수 있다. 올해뿐 아니라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최고의 코미디 배우.

13. 최고의 쫄바지

<수퍼맨 리턴즈>

여자들이 뽕브라를 하는 이유는 한 가지 이유다. “커보이라고.” 화장실이나 목욕탕에서 서로의 것을 흘끗거리는 남자들 역시 ‘크기’문제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쫄바지를 입어야 하는 슈퍼히어로를 연기하게 된 남자 배우들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커도 문제고 너무 작아도 문제다. 쫄바지 하의 부분이 케이트 모스의 복부처럼 밋밋하면 너무 없어 보이고, 반면에 참외를 다리 사이에 상비하고 다니는 듯한 불룩함은 거북해 보인다. <수퍼맨 리턴즈>의 브랜든 라우스는 후자의 문제로 고민을 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브랜든 라우스가 그런 고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영화사는 확실히 그 문제로 골치아팠다. 전신 타이츠를 입고 슝슝 날아다니는 거대한 남자의 그곳이 너무 웅장했기 때문이다. 여성 관객이 야릇한 상상을 하느라 영화에 집중하지 못할까봐 그랬는지, 아직 성장 중인 소년들에게 그릇된 환상을 심어줄까 그랬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들리는 후문에 의하면 영화사쪽에서 브랜든 라우스가 슈퍼맨 복장을 하고 있는 장면들, 특히 영화 홍보용 사진들을 손보았다고 한다. <킹 아더> 포스터에서는 키라 나이틀리의 가슴을 크게 포숍질했다는 소문이 돌더니, 이번에는 작게 보이려고 포숍질이라. 역시, 너무 커도, 작아도 문제로구나.

14. 최고의 루저

<돈 컴 노킹>

<돈 컴 노킹>의 몇몇 장면들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상기시킨다. 야트막한 건물과 높이 치솟은 건물이 나란히 배치되어 평화로운 분위기에 위기감을 드리운다. 콕 집어 말하기 힘든 인간의 불안을, 빔 벤더스는 사람들이 속해 있는 풍경들을 보여주는 것으로 표현해냈다. 이 영화의 하워드(샘 셰퍼드)는 처음부터 글러 먹은 아버지이고, 돌이킬 수 없는 루저다. 한때 유명한 배우였지만 이젠 그의 생활도 직업도 다 엉망이 되었다. 술과 마약, 여자가 없어도, 있어도 망가지는 그의 삶에 어느 날 변화가 생긴다. 자신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황폐하게 비어버렸다고, 더이상 남은 게 없다고 생각했던 삶에서 하워드는 아직 남은 희망이 있음을 알게 된다. 세상에는 수많은 거짓말이 있다. 그중 하나는 ‘아무도 필요없어, 꺼져버려’다. <돈 컴 노킹>은 염소똥만큼도 쓸모없어 보이는 한 중년의 남자를 연민하게 만들고 이해하게 만든다. 아마도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 남을, 최고의 루저.

15. 깜찍한 사운드트랙

<해피 피트>

예고편이 재미있는 영화는 모 아니면 도다. 예고편이 영화에서 재밌는 부분의 전부인 경우도 있고, 영화가 정말 재미있어서 예고편도 재미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피피트>는 퀸의 <Somebody to Love>를 부르는 펭귄들이 나오는 예고편부터 본편까지, 버릴 노래가 하나도 없는 영화.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 ‘하트송’으로 구애하는 펭귄 부족을 무대로 진행되는 영화 전반부에는 대중음악사에 한획을 그은 명곡들이 줄줄이 등장한다(펭귄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들의 노래가 원곡보다 뛰어나다는 뜻은 아니다. 영화와 잘 어울린다는 뜻이다). 비치 보이스의 <In My Room>, 프린스의 <Kiss> 등 영화를 보다 보면 펭귄들의 귀여운 몸동작을 따라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노래로 기억될 깜찍한 애니메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