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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별 가출 대처 요령-로드무비 완전학습
이종도 2006-07-18

최근 로드무비의 우리말로 국립국어원에서 채택한 여정영화는 로드무비의 ‘길’이 주는 느낌과 공간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로드무비는 그저 여행영화가 아니라 인생의 비유인 ‘길’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로드무비는 진지해’라는 진실 반 오해 반의 선입견이 생긴 것도 그 때문이다. 여정영화로는 또 말 그대로 ‘집을 나간다’는, ‘가출’이라는 오래된 로드무비의 주제를 끄집어내지 못한다. 로드무비는 바로 가출영화이기도 한 것이다. 아빠, 아내, 엄마, 아들, 언니, 오빠 등 집 나간 가족들의 이야기가 로드무비 아니던가. 길 위에서 비로소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과 가족을 돌아보고, 또 다른 길을 찾아 나선다. 로드무비를 가출영화로 뒤집어보면, 가출은 더 나은 길을 찾기 위한 아름다운 방황이 될 수도 있다. 혹시 집 나갔거나 집 나갈 식구가 있다면 로드무비를 다시 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집 나간 식구들은 길 위에서 어떻게 지내는가. 식구가 집을 나갔을 때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구성원별로 알아보았다.

제1장. 아빠가 집을 나갔을 때, 불혹방랑

<파리, 텍사스> <돈 컴 노킹> <브로큰 플라워> <기쿠지로의 여름> <스트레이트 스토리>

가출 지수-의외로 높음 가출시 행동 요령-참고 인내하라 귀가 유인책-핏줄이 땡겨요!

기러기아빠니, 아빠의 청춘이니, 40대 남성 사망률이니 하는 건 결국 가족 중 가장 불쌍한 게 아빠들이란 얘기에 다름 아니다. 가출 요인 만점이다. 가출은 불량자식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아빠들이야말로 요주의 인물인 것. 게다가 나이 들어 다시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로맨틱 지수도 높아진다. 최근 주목할 만한 가출영화로 로드무비의 거장인 빔 벤더스와 짐 자무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돈 컴 노킹>과 <브로큰 플라워>를 만든 이유도 거기에 있다는 믿거나 말거나풍의 무책임한 소식도 있다. 그러니 공자 가라사대 마흔을 불혹이라고 한 건, 현실의 묘사가 아니라 불가능한 것에 대한 희망에 불과하다.

<브로큰 플라워>

자, 그럼 아빠가 집을 나가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아빠가 생활비를 전담하는 경우 그가 집을 나가면 대책이 없다. 손가락을 빨아 먹으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아빠가 가출한 동안에도 먹고살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파리, 텍사스>의 트래비스는 가장 대책없는 경우인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트래비스가 공장 사장으로 돈 잘 버는 동생을 뒀다는 것. 돈 많은 삼촌이나 고모를 빨리 마련하는 것은 그러니 필수다. 아니면 <돈 컴 노킹>의 하워드 스펜스(샘 셰퍼드)처럼 한물가기는 했지만 명배우거나, <브로큰 플라워>의 돈 존스턴(빌 머레이)처럼 돈 많은 아빠도 괜찮다. <기쿠지로의 여름>의 기쿠지로(기타노 다케시)처럼 무식한 야쿠자 아빠도 때로 쓸모가 있는데, 따지는 못하지만 경마를 하거나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는 등 나름 자기 앞가림을 하려는 노력은 최소한이나마 기울이기 때문이다.

아빠들의 가출 요인은 ‘핏줄’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숨겨놓은 자식을 찾으러 가출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파리 텍사스>의 트래비스(해리 딘 스텐튼)가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사막을 헤매고 돌아다니며 속죄하듯 방랑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영화 스케줄을 펑크내고 영화사의 애간장을 태우는 천하의 ‘잡놈’ 샘 셰퍼드도 엄마가 던진 한마디에 나가떨어지지 않는가. “너한테 너도 모르는 자식이 있다”는 말 한마디 말이다. 소파와 일심동체가 되어 집 밖으로 한 발짝도 안 나가려는 <브로큰 플라워>의 방콕족 빌 머레이 마음을 움직인 것도 역시 ‘너에게 안 밝힌 네 자식이 있다’는 정체불명 여인의 편지 한통이다.

이런 말 못할 사연을 미리 안 밝히다니, 아빠 나빠요, 비난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그렇게 비뚤게 오랫동안 살아왔으니 삶을 교정하는데도 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가슴에 맺힌 한을 오랫동안 삭혀왔을 테니, <파리, 텍사스>에서 동생 월트(딘 스톡웰)처럼 쉽게 포기하지 않고 도망칠 때마다 잡아와야 한다. 그리고 ‘내가 네 애비다’라는 <스타워즈>의 명대사를 사용할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알려줄 것. <돈 컴 노킹>에서 하워드 스펜스는 너무 의외의 장소인 술집 주차장에서 자식을 만나다 보니 어설프게 ‘내가 네 애비다’ 하고는 뺑소니를 치고 말았다. 속은 좀 터지겠지만 그러다 보면 <브로큰 플라워>의 돈 존스턴처럼 아버지들은 어딘가 다치고, 어디선가 울고, 그리하여 마침내 어른이 되어 돌아온다.

<돈 컴 노킹>

<파리, 텍사스>

그런데 돈도 없고, 돈 있는 동생도 없는 고집만 남은 아버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스트레이트 스토리>). 일흔이 넘어 한번 쓰러지기까지 했는데, 보행기를 하고 다니라는 의사 지시도 무시한 채, 운전면허도 없으면서 형과 화해를 하러 500km 가까운 여행을 하겠다는 앨빈(리처드 판스워스) 같은 아빠는 어떻게 해야 하나. 잔디깎이 뒤에 트랙터를 붙여 가든, 트랙터 뒤에 잔디깎이를 붙여 가든 그저 믿고 기다려줘야 한다. 나이든 남자는 가출로 자신의 삶을 속죄하려 하니까.

제2장. 오빠, 남동생이 집을 나갔을 때, 예측불허 or 괄목상대

<디트로이트 락 시티> <스탠 바이 미> <아이다호> <브루스 브라더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가출 지수-높으나 걱정할 것 없음 가출시 행동 요령-되도록 빨리 내보낼 것 귀가 유인책-입 하나 더는 게 남는겨!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은 오빠들은 가출로 세월 다 보낸다는 게 로드무비계의 보고다. 이들의 행동 양태 가운데 다음 상황이 감지되면 가출이 멀지 않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허리 가운데로 급격하게 충혈이 자주 이루어질 때, 운전면허를 땄을 때, 갑자기 큰돈이 생겼거나 돈이 궁할 때, 끝으로 반항정신에 충실할 때다. 이들 유형은 종횡무진으로 조합되어 있으니, 오빠들이 딱히 한 가지 이유만으로 가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록그룹 키스를 사탄이라 규정짓고 오빠들을 닦달하다 못해 가출을 방조한 <디트로이트>스러운 엄마들도 한몫한다. <스탠 바이 미>나 <아이다호>처럼 자기 자신을 찾아가려는 진지함이 없지 않지만 그건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아이다호>

첫째 유형과 둘째 유형은 거의 동시에 나타나는데, 그 연관관계는 어린이의 꼬마 자동차에 대한 집착과 어른의 자동차에 대한 동경이 얼마나 가까운지를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이 투 마마>에서 17살 테노치(디에고 루나)와 훌리오(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에게 운전면허증이 없었다면 루이사(마리벨 베르두)와의 사랑도, ‘하늘의 입’이라는 알지도 못하는 곳을 향한 동경도 없었을 것이다. 셋째 유형은 <블루스 브라더스> <천국보다 낯선> <레인맨>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등이다. 반항정신은 <이지 라이더> <디트로이트> 등에서 살필 수 있다.

앞의 두 유형은 전혀 걱정할 게 없다. <이 투 마마>의 멕시코 개봉시 홍보문구처럼 ‘인생은 우리를 가르칠 방법을 알고 있다’니까. <천국보다 낯선>에서 멍청해 보이기만 한 에디(리처드 에드슨)가 뉴욕에서 클리블랜드로 놀러 왔다가 친구 윌리(존 루리)에게 이런 명언을 던졌다. “너무 웃긴다. 새로운 곳에 왔는데 왜 모든 게 똑같냐.” 설령 그런 게 값싸 보이는 깨달음이라 할지라도 오빠들은 그걸 통해서 어른이 된다. 가출한 뒤에야 자기들이 살던 동네가 ‘갑자기 작아 보이는’ <스탠 바이 미>스러운 성장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 투 마마>의 원제는 ‘그리고 네 엄마랑도….’라는 뜻인데, 어린이였을 때 금기인 성의 문턱을 넘어서면서 오빠는 어른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셋째도 그리 걱정할 것이 없다. 강철마저도 소화하는 젊음이 있지 않은가. 자신들이 전화를 걸던 공중전화 박스가 폭발해도, 오히려 공중전화에서 쏟아져 나온 동전이 7달러나 된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블루스 브라더스>적 낙천성이 가출한 오빠들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절대 송금 같은 건 하지 않아도 좋다! 인적 없는 얼어붙은 툰드라 땅에서 음악을 연주하다 지쳐 미국으로 건너가는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의 기백을 보라. “미국에나 가보게나, 온갖 쓰레기들이 다 모인 곳이니” 한마디에 고생길을 마다하지 않지 않는가. 결국 이들은 날 양파를 먹어가며 주린 배를 움켜쥐고서, 미국이 아니라 멕시코가 자신의 음악과 어울리는 곳임을 알지만 말이다. 다만 이런 유형의 가출에서 걱정해야 할 것이 있다. 이들이 주로 찾는 곳이 도박, 경마 등 사행성이 짙은 곳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천국보다 낯선>에서 개경마에 모든 걸 잃는 윌리와 에디를 보라. 혹시 전화가 걸려오면 최소한 경마잡지는 숙독한 뒤에 베팅할 것을 권고할 필요가 있다.

<스탠 바이 미>

<브루스 브라더스>

넷째 유형은 조금 말려주고 걱정해야 한다. 자칫 완고한 사회가 영원히 우리의 오빠들을 앗아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헬맷도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출하는 건 말려야 한다. <이지 라이더>의 멋쟁이 오빠들이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가다가 보수적인 아저씨들에게 불의의 일격을 맞는 장면은 얼마나 가슴 아픈가. 오빠들에게 헬맷을!

제3장. 아내나 언니가 집을 나갔을 때, 애정만세

<아이 엠 샘> <크레이머 vs 크레이머> <델마와 루이스> <밴디트> <이 투 마마>

가출 지수-높지 않으나 한번 나가면 안 돌아옴 가출시 행동 요령-어디서든 잘 살아주기를 축복할 것 귀가 유인책-더 나은 사회를, 우리 만들어보아요!

<이 투 마마>

아내나 언니가 집을 나가면 다시는 안 들어온다고 봐야 한다. 이들은 아빠나 오빠들이 받는 고통보다 더 심한 하중을 느꼈을 때 가출을 결심한다. 최대 허용치까지 압력을 받았다가 폭발하는 것인만큼 폭발 이후엔 수습이 불가하다. 그리고 그 고통은 가족 내부뿐 아니라 사회와도 연계되어 있어 해결이 쉽지 않다.

가장 대중적 유형은 IMF스러운 유형(<아이 엠 샘>), 애정결핍형(<크레이머 vs 크레이머> ) 등을 들 수 있다. 영화 속 비중은 작지만 받는 고통은 매우 크다. 이들은 대개 혼자 은밀히 트렁크 싸고 조용히 사라지기 때문에 영화상으로 부각되지 않는다. 가출영화의 주인공들이 혼자인 걸 보기란 무척 어렵다. 더구나 여자 혼자서! 영화상으로 자주 보게 되는 가출 사례는 폭력적인 남편들이 대개 원인을 제공한다. 그리고 거리의 폭력적인 남자들과 경찰들이 돌아오지 못할 더 큰 이유를 제공한다.

외출할 때조차 남편에게 허락받아야 하는 델마(지나 데이비스)가 집을 나왔다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운 게 당연한 일 아닐까. 술집에서 만난 치한이 강간 위협을 했다면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델마와 루이스>) 여성 죄수를 호송하면서 온갖 더러운 수작을 부리는 호송경찰이 있다면 모범수들도 ‘큰집’에서 무단가출을 하게 될 것이다.(<밴디트>. 밴드+젖꼭지(tit)의 합성어) 다른 여자랑 자고 나서 아내에게 전화해서는 “당신을 죽도록 사랑해” 하며 울먹이는 헛소리를 한다면 아내가 집에 없을 확률 100%다.(<이 투 마마>)

그래서 언니들의 가출에는 ‘있을 때 잘 하라’ 말고는 달리 대처 방안이 없다. 그나마 가능한 건 생계를 튼튼히 하고 결혼생활에 집중함으로써 IMF스러운 가출을 막는 것이다. 아내가 금요일 저녁에 뭘 먹고 싶으냐고 물으면 “카펫을 팔아야 해서 못 들어가” 하는 따위의 들통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델마와 루이스>). 혹시 가출했다면 전화가 왔을 때 미식축구나 보면서 화를 내지도 말고, 갑자기 착한 척도 하지 말고, 얌전히 루이스 남자친구처럼 송금하라. 그게 그나마 언니들에게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길이다.

집 나간 언니가 어디서든 잘 살아주기만을 바라야 하지만, 한 가지 걱정은 해줄 필요가 있다. 남자 조심하라는 충고 말이다. 델마의 혼과 돈을 모두 빼앗아버린 게 누구였던가. 쓰다듬어 주고픈 궁둥이를 사정 없이 흔들고 다니던 제이디(브래드 피트) 아니었나. <밴디트>의 록밴드 언니들로 하여금 머리채 잡고 싸우게 만든 건 또 누구였던가. 미국에서 놀러온 잘생긴 바람둥이 남자 웨스트(베르너 슈라이어) 아닌가. 그리고 경찰은 이 언니들이 받는 스트레스의 압도적인 크기를 잘 헤아려야 한다. 괜히 절벽이나 다리로 몰아붙이면 언니들은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다는 충동을 참지 못한다. <델마와 루이스>와 <밴디트>의 언니들이 공히, 경찰의 추격에 절벽 날아오르기와 다리 밑 강물로 뛰어내리기로 대응한 걸 떠올려야 한다. 얼마나 날아오르고 싶었을까. 밴디트가 교도소에서 ‘내게 날개만 있다면’이라고 노래 부른 게 괜히 심심해서가 아니다.

<밴디트>

<델마와 루이스>

가출을 통해서 언니들은 뒤늦게 억눌린 성의 해방구를 찾기도 하지만 그게 가출의 본래 목적은 아니다. <이 투 마마>의 루이사는 암에 걸려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다는 걸 알자 이제 어른 수컷이 되려는 훌리오와 테노키에게 사랑과 성을 알려주는 여행을 한다. 루이사는 자기 입으로 “아이들의 기저귀를 채워준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루이사는 <중앙역>의 노라(페르난다 몬테네그로), <글로리아>의 글로리아(샤론 스톤)와 친구다. 처음에 괴팍해 보이지만 결국 어린 남자의 길동무가 되어 그들에게 삶을 가르쳐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