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한국영화의 흥행은 코미디 장르가 견인했다. <좀비딸>이 564만명(11월26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으로 올해 한국영화 흥행 순위에서 1위를 기록했다. 이어서 <히트맨2>가 255만명으로 4위, <보스>가 244만명으로 5위에 자리했다. <하이파이브>도 190만명으로 선방했다. 하지만 코미디영화의 흥행 성공엔 어느 정도의 착시가 끼어 있다. 첫째로 한국 극장가의 전체 규모가 줄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점차 잦아든 2022년 이후, 천만 한국영화가 없는 해는 올해가 처음이다. 투자·배급사 A씨의 말처럼 “극장 시장이 반 토막, 아니 그 이하로 줄어든 상황”이다. 한국영화계의 위기야 수없이 재론되는 이야기지만, 연말을 앞둔 지금 수치로 느끼는 체감은 더욱 뼈저리다.
올해 극장가를 중급 규모(제작비 50억~100억원 내외)의 코미디영화가 책임질 것이란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성수기에 맞춘 텐트폴 영화들이 차례로 고배를 마신 2022년 무렵부터 극장가의 생존 대안 중 가장 많이 논의된 것이 바로 중급 규모 영화였기 때문이다. 2022년 관객수 198만명을 기록한 <육사오(6/45)>부터 2023년 한국영화계의 허리가 되어준 <30일> <달짝지근해: 7510>, 2024년의 <파일럿> <핸섬가이즈> <시민덕희> 등이 시장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대규모 블록버스터영화의 흥행 공식과 성수기·비성수기를 기점으로 한 배급 절차가 무너진 시점에, 제작비의 리스크가 덜하고 손익분기점을 돌파한 중급 규모 영화의 존재감은 부상할 수밖에 없었다. 이중에서도 코미디 장르의 영화는 적은 제작비로 효율을 낼 수 있는, 중급 규모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었다. 이러한 시장의 흐름이 2025년 중급 규모 코미디영화의 적극적인 제작과 배급을 이끈 것이다.
결과를 평가하자면 좋게 말해 선방했고, 나쁘게 말해 예상치를 넘는 성공까진 거두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좀비딸>의 관객수 564만명은 제작비가 100억원 내외였던 <파일럿>과 유사한 결과다. <히트맨2>와 <보스>는 각각 설과 추석 특수를 노렸음에도 <30일><시민덕희><핸섬가이즈>와 비슷한 규모의 200만 시장에 머물렀다. 한마디로 올해 박스오피스의 결과에 나타난 코미디영화의 약진은 텐트폴 영화의 부재와 <전지적 독자 시점>등 대작 영화의 약세로 인해 상대적으로 과대평가된 착시현상이기도 하다.
뭉툭해지는 코미디들
코미디영화의 석연치 않은 점은 흥행 성적에만 있지 않다. 작품의 내용과 코미디의 전반적 주제와 경향 역시 진취적이라고 하기엔 어렵다. 2019년 <씨네21>은 <극한직업>의 대흥행을 기점으로 한국 코미디영화의 계보를 정리하며 “<극한직업>이 이룬 기분 좋은 출발을 시작으로 향후 5년간 한국영화계의 답답함을 해소할 무지갯빛 코미디영화가 더 많이 나오길 바란다. 흥행 공식에 기반한 안전한 코미디가 아닌, 관객의 취향과 기호를 선도할 만한 용기 있는 코미디의 출현을 기다린다”(<씨네21> 1195호)고 소망했다. 이 관점에서 올해 “용기 있는 코미디의 출현”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는지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좀비딸>은 코미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가족드라마에 가까운 정서를 지닌 작품이었다. 작품 속 웃음의 상당 부분은 조정석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에 힘입은 것이었다. <보스>는 2000년대 초중반 범람했던 조폭 코미디를 일부 변주한 모양새였고, <히트맨2>도 휘발성의 일차적 코미디를 전제로 한 작품이며 전작에 비해 웃음의 타율도 높지 않았다.
코미디영화로 일련의 성취를 거뒀던 감독들의 좋지 않은 결과도 아쉬운 지점이다. <엑시트>의 이상근 감독은 올해 CJ ENM의 주요작 중 하나였던 <악마가 이사왔다>로 돌아왔으나 44만명이라는 성적표를 거뒀다. 로맨스 코미디의 골격을 취했지만, 2010년대 초반 <오싹한 연애>등 유행했던 이야기의 전형을 벗어나진 못했다. 유의미한 시도를 펼쳤으나 다소 아쉬운 성적에 머무른 작품들도 있다. <30일>로 코미디영화의 부활을 타진했던 남대중 감독의 <퍼스트 라이드>는 청춘 코미디영화를 표방한 작품으로, 겉으론 <위대한 소원>이나 <스물>을 떠올리게 했다. 다만 그 알맹이는 일련의 청춘 코미디와 달리 상실과 애수의 감정이었다. 마니악한 개그 코드를 지니고 있던 남대중 감독의 성향을 대중적 기호에 맞춰 주요 투자배급사가 배급한 모양새였지만, 뾰족함이 덜해진 코미디 탓인지 입소문을 타진 못했다. <써니> <스윙키즈> 등으로 독특한 세계를 일궈온 강형철 감독은 <하이파이브>를 통해 한국형 액션히어로 장르에 호기롭게 도전했으나 손익분기점을 넘진 못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올해, 다가오는 신작에 기대를 걸 수도 있겠다. <롤러코스터>부터 <로비>까지 벌써 10년 넘게 코미디영화 연출에 힘쓰고 있는 하정우 감독 겸 배우의 <윗집 사람들>은 <나의 PS 파트너>등을 넘는 과격한 섹스 코미디와 다량의 대사를 중심으로 연출자의 개성을 일관되게 부각시킬 예정이다. 다만 <완벽한 타인>처럼 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밀실 코미디이기에 대중에게 형식으로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안전한 코미디의 늪
시리즈물 역시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경향을 보였다. 도전보다는 안전주의였다. 아포칼립스 물에 코미디를 가미한 <뉴토피아>처럼 도전적인 장르를 택한 코미디물이 흥행에 실패했고,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등 블랙코미디를 깔고 세태를 한껏 머금은 작품이 시청자들의 선호를 받았다. 요컨대 올해 영화와 시리즈 시장에서 코미디는 너무 예리해서 제작되지 못하거나, 애매하게 날을 다듬어 실패하거나, 잘 다듬어 적당히 성공하는 정도의 ‘안정적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사회의 실상을 풍자하고 폐부를 찔러야 하는 코미디 장르의 본색이 점차 퇴색하고, 대중성마저 잃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왜 영화와 시리즈는 사회의 코미디 문화를 선도하지 못하고 예능이나 유튜브, 숏폼 콘텐츠 등 경쟁자에게 뒤처지고 있을까? 이에 대한 단서는 서두에 언급한 중급 규모 영화의 필요와 관련된 역설에 있다. 거대 자본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손익분기점 방어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현재 영화시장에서, 특정 취향이나 세대에 날카롭게 소구하는 코미디영화는 투자 위험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제작 기간과 개봉 시기 사이의 물리적인 시차 역시 무엇보다도 트렌드에 민감한 코미디 장르에 부정적 요소일 수밖에 없다. 이로써 안전함과 코미디라는 두개의 이율배반적 단어가 공존하는 비극적 현실이 지금 영화, 드라마의 희극 시장이다. 이 슬픈 공존의 이유와 맥락에 대해선 이어지는 올해 예능의 경향 분석, 최신의 코미디 콘텐츠에 안테나를 세우고 다니는 김홍기 작가와 이태동 감독의 대담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