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탈 아커만 감독의 1975년작 <잔느 딜망>이 영화 잡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가 뽑은 역대 세계 영화 1위에 선정됐다. 1932년 창간된 <사이트 앤드 사운드>는 1952년부터 10년 주기로 ‘역대 세계 영화 베스트’를 발표하고 있는데, 1952년 1위는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이 차지했다. 이후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이 1962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40여년간 1위 자리를 고수했다. 올해로 8번째를 맞이한 이번 조사에는 국제영화평론가, 학자, 배급사 및 작가, 큐레이터, 영화제 프로그래머 등 관련 산업 전문가 1600명 이상이 참여했는데, 이는 앨프리드 히치콕의 <현기증>을 1위로 올린 2012년 조사에 참여했던 인원의 2배에 달했다.

<잔느 딜망>은 생계가 어려워 매춘을 하던 중 고객 한명을 죽인 벨기에 과부의 3일을 좇은 작품으로, 이전 1위 수상작들만큼 대중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다. 하지만 개봉 직후 <르몽드>로부터 “영화 역사상 최초의 여성적 걸작”이란 평가를 받았으며, 이후로도 비평가들로부터 “획기적인 페미니스트 영화”라는 극찬을 끊임없이 받아온 숨겨진 수작이다. <사이트 앤드 사운드>의 편집자인 마이크 윌리엄스는 “<잔느 딜망>은 1975년 발표 당시에도 당대 현실을 반영한 혁신적인 작품이었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유효하다”라며 “획기적인 페미니스트 영화”라고 평가했다.

사실 ‘역대 세계 영화 베스트’ 조사는 그동안 다양성이 부족하는 비판을 받아왔다. 바로 직전이었던 2012년 발표에서 상위 100위에 든 여성감독의 작품은 <잔느 딜망>이 유일했으며, 흑인 감독의 작품 역시 지브럴 좁 맘베티의 <투키 부키>(93위)뿐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샹탈 아커만뿐만 아니라 무려 11편의 여성감독의 작품이 상위 100위 안에 이름을 올렸으며 이중 4편은 상위 20위에 포함되었다. 흑인 감독의 영화 역시 <투키 부키>(67위)를 비롯해 스파이크 리의 <똑바로 살아라>(24위), 배리 젠킨스의 <문라이트>(60위), 조던 필의 <겟 아웃>(공동 90위)과 우스만 셈벤의 <흑인 소녀>(공동 90위)가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영국영화협회(BFI)의 대중 및 공공 프로그램 담당이사인 제이슨 우드는 올해 조사 결과를 두고 “다양성과 포용성 측면에서 상당히 급진적으로 느껴지는 목록을 보게 돼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런던대 소속의 연구 중심 대학인 버벡대학교의 영화학과 교수 로라 멀비 역시 “여성의 관점에 충실한 영화인 <잔느 딜망>이 1위에 오른 것은, 참여한 비평가들의 취향의 변화가 시작된 일대 사건”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