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1993), <피와 뼈>(2004) 등 재일동포 사회를 그린 문제작으로 주목받았던 재일동포 영화감독 최양일이 27일 별세했다. 향년 73. 일본 아사히신문은 최 감독이 방광암으로 투병하다 도쿄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같은 날 보도했다. 최양일 감독은 <10층의 모기>(1983), <피와 뼈> 등으로 평단의 지지를 받는 한편, 강아지를 소재로 한 서정적인 영화 <퀼>(2004)로 높은 흥행기록을 세우는 등 작품성과 대중성 양쪽에서 일본 영화계에 큰 영향력을 미친 영화인이다.
영화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의 한 장면. 배급사 제공
영화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의 한 장면. 배급사 제공
1949년 일본 재일 조선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최 감독은 총련계인 조선학교 졸업 뒤 도쿄종합사진전문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하고 영화계에 투신했다. 일본 영화 뉴웨이브의 대표 감독으로 꼽히는 오시마 나기사의 대표작인 <감각의 제국> 조감독을 거쳤으며 오시마의 유작인 <고하토>에서는 배우로도 출연했다. 궁지에 몰리면서 광기에 빠져들어 가는 경찰을 주인공으로 한 첫 장편 연출작 <10층의 모기>가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초청받고 일본의 대표적인 영화 잡지 <키네마 준보> 그해 10대 영화 목록에 오르는 등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감독 데뷔를 했다.
재일동포 택시운전사를 소재로 한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가 그해 일본 영화 흥행 1위를 차지하면서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도 이름을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작품에서 최 감독은 천하태평에 여자를 유혹하는 데만 정신이 팔린 택시운전사 ‘강충남’과 비정상적인 주변 인물들을 통해 일본의 비약적 경제적 성장 뒤에 그늘처럼 자리 잡은 소외된 이들의 모습을 코미디 장르로 잘 그려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와 마찬가지로 재일동포 소설가 양석일의 작품을 영화로 옮긴 <피와 뼈>는 괴물과도 같은 재일조선인 ‘김준평’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 한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희극인이자 배우, 감독인 기타노 다케시가 김준평을 연기하고 오다기리 조 등이 출연한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재일조선인의 비틀린 삶과 비극을 그려낸 수작으로 언론과 평단에서 그해 일본 영화 최고의 걸작으로 꼽혔다. 2007년에는 한국 배우 지진희와 강성연이 주연을 맡은 한국영화 <수>를 연출하기도 했다. 2004년부터는 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 야마다 요지 등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감독들이 맡아온 일본영화감독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한겨레 김은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