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희(지수)와 세영(이주연)은 불안정한 현실 때문에 관계를 아슬아슬하게 이어가는 20대 커플이다. 한때 사진작가가 꿈이었던 찬희는 카메라 매장에서 카메라를 판다. 세영은 네일숍에서 일한다. 자신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남자가 세영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실을 알게 된 찬희는 세영의 마음을 돌리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함께 여행 갈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여행은 불협화음의 연속이다. 둘은 길 위에서 다투고, 사과하고, 또 후회하기를 반복한다.
연애조차 사치인 시대, 영화 속 젊은 커플은 언제 헤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이유빈 감독이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게 된 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화를 가르치며 20대들이 가진 가치관이나 고민이 우리 세대(1980년대생)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느껴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덥석 뛰어들어 꿈을 향해 돌진했던 우리 때와 달리 요즘 젊은 세대들은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너무나 많아 모든 정보를 수집해 판단할 만큼 조심스럽고, 실패하는 걸 두려워하며, 그래서 더 소극적이고 도약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제 앞가림도 하지 못하는 탓에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상대에게 선뜻 내비치지 못하는 찬희와 세영의 모습이 애잔하고 씁쓸하다.
“이만희 감독의 <휴일>(1968)이나 <여름의 폭풍우>(1944), <언덕 위의 천둥>(1951) 등 멜로드라마를 연출했던 더글러스 서크 감독을 좋아하는데 멜로드라마가 그 시대의 가치관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기쁜 우리 젊은 날>도, 이 영화에도 삽입된 <초우>(감독 정진우, 1966)도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의 다른 가치관을 보여주면서도, 또 한편으로 캐릭터(<휴일>의 신성일))만 놓고 보면 시대가 달라도 사람이 생각하고 사는 건 다 똑같구나 싶다. 되돌아보면 찬희는 <기쁜 우리 젊은 날> 속 안성기의 밝은 면과 <휴일> 속 신성일의 비겁한 면모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웃음)”
전작 <셔틀콕>이 이복남매의 첫사랑을 미스터리로 풀어낸 로드무비였듯이, <기쁜 우리 여름날> 역시 젊은 커플이 계속 어딘가로 이동하는 로드무비다. 거창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지만 시시각각으로 충돌하고, 또 봉합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아슬아슬하고 예측하기 어렵다. “왜 로드무비에 이끌리는지 생각해보니 서사가 멈추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다른 스토리텔링 매체에 비해 남성적인 매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데 연출자로서 내 스타일은 늘 머물렀고 앞으로 가기 어렵더라. 영화 속 인물을 어딘가로 보내면 앞으로 가게 되니까 로드무비가 내 단점을 상쇄하는 데 적합하다는 걸 깨달은 것 같다”는 게 이유빈 감독의 설명이다.
그의 차기작은 이미 준비 중이다. “범죄 장르인데 인물이 사건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로, 오리지널 시나리오다. 좀더 장르적으로 접근하는 작품이 될 것 같다.”
감독 이유빈 / 출연 지수, 이주연 / 제작연도 2020년 / 상영시간 114분 /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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