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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이란희 감독 - 발로 뛰어 만들어야 했다
남선우 사진 최성열 2020-11-11

'휴가' 이란희 감독

농성 1882일째. 선인가구 해고 노동자들은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 연이어 졌고, 이들의 투쟁 경비도 바닥이 났다. 싸움을 끝낼 수도, 지속할 수도 없는 상황. “고공(농성)이나 한번 더 할까?”라고 무심히 뱉었지만 사실 이들은 지칠 대로 지쳐 있다. 잠시 쉬고 돌아오라는 리더의 말에 집으로 향한 재복(이봉하)을 따라가는 <휴가>는 연극 수업에서 만난 아시아계 이주 여성의 경험담을 빌려 만든 단편 <파마>로 제6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받고, 제26회 함부르크국제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이란희 감독의 첫 장편이다.

2016년에 발표한 단편 <천막>에서부터 이번 영화 <휴가>까지, 그가 해고노동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일련의 이야기를 구상하기 시작한 시점은 8년 전. “2012년에 우연히 콜드콜텍 기타 노동자 밴드가 공연하는 걸 봤다. 그들의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고 싶어 3년 후 그들을 직접 찾아갔다. 그전에는 그들이 만든 인터넷 커뮤니티는 물론 그들에 관련한 기사, 영상 등을 열심히 수집하다 2015년 1월부터 농성장에 가서 아저씨들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이란희 감독은 현장에서 “연대했다기보다 관찰”하며 그들과 네편의 단편을 찍었다. 그중 제대로 스탭을 갖춰 찍은 작품이 <천막>인데, 이 단편에서 농성장을 잠시 이탈했다 돌아오는 인물이 떠나 있는 동안 뭘 했을까 되물으며 찍은 작품이 <휴가>다. 처음엔 콜드콜텍 기타 노동자 밴드의 리더를 중심에 놓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찍으려 했다는 이란희 감독은 “관객이 조금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영웅적 인물보다는 흔들리기도 투정부리기도 하면서 서포트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아 장편을 만드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휴가>라는 제목이 조금은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주인공 재복은 이 기간 동안 휴식을 취하기보다 밀린 집안일을 처리하고, 큰딸의 대학 예치금과 작은딸의 패딩 재킷을 위해 친구의 작업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취재한 이들은 무척 열심히 사는 분들이었다. 농성장에서도 밥을 잘 차려먹고 컵라면 하나를 먹어도 냄비에 끓여먹는,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라고나 할까.” 영화 속 재복 또한 농성장에서는 물론 집에서도 끊임없이 요리를 한다. 두딸뿐만이 아니라 잠시 같이 일하게 된 청년 준영(김아석)에게도 손수 싸온 도시락을 권하는 재복은 “조직화된 환경에서 쭉 노동을 해온 중년의 해고 노동자”로서 “소규모 사업장에서 동료를 계속해서 바꿔가며 일한 준영”의 옆자리에 있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재복이 딸들에게 불편한 존재이듯 준영도 그에게 방어적이다. “후배들은 선배가 실질적인 충고를 할 때엔 듣지만 사생활에 훅 들어올 때엔 방어적이 되기 마련이다. 때로 선배들이 투쟁했던 방식을 냉소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 차이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럼에도 재복은 준영에게 진심으로 손을 내민다. 이란희 감독이 바라본 재복은 “가난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인간으로서의 도리와 품위를 지키려는 사람”이기에, 재복은 자신이 믿는 가치가 준영에게도 의미를 갖길 바란다. 물론 준영도, 딸들도, 농성장도 재복의 마음 같지는 않다. “영화에서 재복이 겪는 일이 그를 변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영화에서 이 사람에게 벌어진 일을 관객에게 보여줌으로써 그의 속사정이 어떤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해야만하는 일을 해내기 위해 잠시 그 일로부터 멀어진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뚜벅뚜벅 삶을 걸어가는 사람. 이란희 감독은 그를 떠올리며 살포시 웃기를 반복했다. 이란희 감독이 발로 뛰어 만든 영화가 관객 각자에게 돌아갈 곳을 기억하게 만들기 바란다.

감독 이란희 / 출연 이봉하, 김아석, 신운섭 / 제작연도 2020년 / 상영시간 81분 / 뉴 커런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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