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6일 시네마서비스(대표 강우석)가 로커스홀딩스(대표 박 병무)에 인수됐다. 일대 지각변동이라 할 이번 인수계약이 있기 하루 전, 시네마서비스 사무실에서 만난 강우석 감독은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영화 만들 때마다 자금압박 을 받아온 그간 사정을 고려하면 이해할 만하다. “거액을 받고 회사를 팔았다”, “시네마서비스 우산 아래 있던 영화사들의 핵 분열이 예고된다”, “싸이더스와 시네마서비스가 합병하는 거 아 니냐” 등 이번 계약에 관해 업계에서 떠도는 말이 한둘이 아니기 에 강우석 감독은 간단명료하게 최근 변화의 실체를 털어놓았다.
그는 이번 계약이 메이저배급사로 자리잡는 필연적 수순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한해 20편 넘게 투자, 제작, 배급하고 비디오 출 시, 멀티플렉스 건설 등 신규사업을 벌이는 데는 로커스홀딩스처 럼 든든한 모회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는 지난해 워버그핀커스 에서 외자를 유치하는 일부터 이번 계약까지가 기반을 다지는 데 투자된 시간이라며 앞으로 기획, 제작, 연출에 전념하겠다고 한 다. 시네마서비스의 입장이건 강우석 감독 개인의 입장이건 이제 한고비를 넘기고 다음 고지를 바라볼 시점이 된 셈이다. 일단 지금 가장 큰 관심사는 로커스홀딩스가 시네마서비스를 인 수하는 것이다. 어떻게 시작된 일인지 궁금하다.
지난해 워버그핀커스로부터 투자를 유치했지만 한해 20편 넘는 영화를 배급하자면 안정적인 자금확보가 필요했다. 처음엔 워버그 핀커스 같은 외자를 끌어들이는 데 주력했지만 로커스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다. 금융자본이 많이 있지만 영화에 대해 장기적이고 합리적인 접근을 하는 곳은 별로 없다. 로커스는 단순히 주가상 승이나 단기적 이익을 보겠다는 입장이 아니었다. 시네마서비스 입장에선 비디오배급 등 신규사업도 해야 하는데 일을 벌일 수 있 게 뒷받침할 자본이 필요했고 개인적으론 자금에 대해 신경 안 쓰 고 한국영화 기획, 제작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급 선무였다.
-중간에 결정적으로 어긋난 적도 있다고 하던데.
=처음엔 워버그핀커스가 반대했다. 그러나 시네마서비스, 로커스 , 워버그핀커스 3자 모두에 최선일 수 있는 방향을 찾았다. 싸이 더스의 차승재 부사장이 중간에서 많은 도움을 줬다. 시네마서비 스와 싸이더스가 부딪치지 않고 로커스와 함께할 수 있도록. 싸이 더스가 매니지먼트사업이나 음반사업을 하니까 중복투자할 생각도 없고 잘하는 사람 밀어주는 게 나로서도 좋다.
-지분관계로 보면 로커스가 경영에 대한 전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있지 않나. 지분에 따른 경영권 행사에 대한 견제책이 있을 텐데.
상황을 조금만 알면 그런 염려가 필요없다는 걸 알 거다. 내가 없는 시네마서비스에 전권을 행사해봐야 어쩌겠나. 내가 독립해서 다른 회사 만들면 시네마서비스는 빈 껍데기처럼 될 텐데. 물론 계약서에도 김정상 사장에게 전권을 맡긴다는 조항이 있다. 내 지분을 로커스에 넘긴 건 로커스가 지주회사가 되는 데 필요한 조 건을 맞추기 위해서일 뿐이다.
-로커스로 인수되면 시네마서비스에 어떤 혜택이 있나. 개인적으로 얻는 로커스 지분만해도 90억원 상당이라 알려졌는데 거액을 챙기고 회사를 팔았다는 소리가 나온다.
=함께 연대하고 있는 제작사와의 관계는 인간적인 것이다. 나 혼 자 잘 먹고 잘살자고 했으면 로커스 투자 유치할 필요도 없다. 바깥에서는 팔고서 떼돈 벌었다는 말이 나돌지만, 그런 돈이라면 한 두번 만진 게 아니다. 사실 그런 식으로 돈을 챙겼다면 <투캅스> 시리즈와 <마누라 죽이기>까지로 번 돈만 100억원이 넘는다. 그 돈 금고에 넣어놓고 가끔 맘에 드는 작품의 감독하고 살면 그만 이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고 한국영화 제작, 투자하는 데 썼다. 늘 잘되는 것도 아니고 힘든 때도 많았지만 그렇게 해서 외국투자 사가 인정할 만한 위치까지 온 거다. 개인적으로 돈에 욕심이 있었으면 이런 식으로 안 해도 된다.
-싸이더스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그간 시네마서비스 만 믿었던 제작사들은 이제 싸이더스만 편애하게 되는 거 아닌지 걱정스런 눈치다. 아무래도 싸이더스가 작품 수가 많으니까 터무 니없는 염려는 아닌 것 같은데.
=싸이더스와 시네마서비스가 완전히 합쳐지는 건 절대 아니다. 그 간 싸이더스 작품을 CJ에서 배급하기도 했는데 앞으로는 시네마서 비스가 전부 배급하는 게 달라지는 점이겠지. 기존 제작사들은 나 와 오래 함께해왔고, 이번 계약건에 대해서도 미리 운을 뗐다. 심 적으로 불안한 점도 있겠지만 배급사가 어느 제작사를 편애하는 식으로 갈 수는 없다. 당장 극장 가서 주말 관객 수 나온 거 보면 아무도 말 못한다. 극장에서 관객 안 들어서 간판 내리겠다고 하 면 그만이다.
-쿠앤필름의 <하루>와 싸이더스의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가 1주 차이로 개봉해 쿠앤필름에서 불만을 토로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싸이더스쪽에서도 손해봤다고 하더라. 하지만 결국 영화가 불러 올 수 있는 관객만큼 든 것이지 먼저 개봉했다고 더 들고 1주 뒤 로 밀렸다고 덜 들고 하지 않았다.
-지난해 흥행성적은 그리 좋지 않다. 외자유치 등 다른 일에 신경 쓰느라 그런 것인가.
=그런 측면이 많다. 영화에 따라서는 어떤 작품인지 잘 모르고 투 자한 경우도 있으니까. 하지만 올해는 회사운영을 김정상 사장에 게 맡기고 한국영화 기획과 제작에 관여할 시간이 늘어났으니 시 나리오나 캐스팅이나 내가 관여하는 부분이 늘 거다. 지난해엔 회 사의 기초를 다지는 일에 신경쓰느라 시행착오를 한 셈인데, 적어 도 이제는 목표가 분명한 영화를 할 생각이다. 지난해엔 뭘 이야 기하려는지 명확하지 않은 영화들이 있었다. 상업영화인지 예술영 화인지 만들 때 판단하고 시작해야 하는데 그런 게 부족했다. 손 해를 보는 영화를 하더라도 예측할 수 있고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도저도 아닌 경우가 많았다.
-올해 여름 라인업이 약한 것 같다. 대작이 없다는 점이 불안하지 않나.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요즘 40억∼50억원짜리 영화들이 기획 되는데, 그럴 만한 영화라면 그 정도 제작비를 들여야겠지만 아무 영화나 제작비 많이 쓴다고 되는 건 아니다. 적정 제작비는 기획 에서 온다. <비천무> 같은 경우는 내가 돈 더 쓰라고 했다. 올해 개봉할 <화산고>도 그런 예다. 올해 여름에 <툼레이더> <진주만 > <쥬라기공원3> 등 외화가 강하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피해갈 생 각은 없다. 방학 한복판에 <엽기적인 그녀> <신라의 달밤> 같은 영화를 밀어넣을 생각이다. 기본적으로 한국영화를 찾는, 배우 보 고 찾아오는 고정 관객이 있다.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영화들만 나 란히 붙어 있을 때 잔잔한 한국영화를 걸면 더 잘될 수도 있다.
-배급편수가 늘어나면 한국영화의 경우 장르별로 골고루 안배해야 할 것 같은데. 지난 연말부터 비슷한 멜로영화가 연달아 개봉했는데 이런 건 피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신라의 달밤>이나 <세이 예스>가 예상보다 늦게 촬영에 들어가 는 바람에 멜로물만 연달아 하게 됐다. 우리가 하면 다들 따라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고. <킬러들의 수다>도 3, 4월에 개봉하려고 했는데 이제 촬영 시작이다. 영화란 게 늘 계획대로 되는 일이 아니어서 같은 장르의 영화가 한꺼번에 쏟아지기도 하는데 올해는 내가 직접 나서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서로 충돌하는 일은 없을 거다. 배급에 대해선 날 믿고 따르는 게 좋다. <주유소 습격사건 >만 해도 그렇다. 제작사에선 비수기에 개봉한다고 뭐라고 했지만 결국 개봉을 가을로 미뤄서 잘되지 않았나. 나중엔 나보고 한수 배웠다고 하더라.
-비디오 배급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다른 신규사업도 있나.
=올해 말부터 우리 브랜드로 비디오가 나오고 자체 조직도 갖출 생각이다. 우리가 극장 배급하면서 배급망을 갖고 있으면 노력 여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듯이 비디오 역시 위탁하는 것과 아무래 도 다를 거다. 요소요소에 멀티플렉스를 만드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
-올해는 연출도 할 생각이라고 누차 밝혔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아직 작품이 결정되지 않았나.
=무조건 형사영화다. 지금 준비하는 것만 3개의 시나리오가 있다 . 쿠앤필름에서 진행중인 게 하나 있고, 나머지 둘은 작가에게 의뢰한 상태다. 4월 말 정도면 윤곽이 나오겠지만, 이중 제일 자신 있는 걸 할 생각이다. 지난해까진 촬영장에 가도 그저 그랬는데 올 초부터는 부럽고 설레고 그러더라. 이름 뒤에 감독이라고 붙이 는 게 어색한 느낌이 나고. 친구들이 ‘강 회장’, ‘강 사장’ 하며 장난을 치는데 요즘은 거부반응이 인다. 건방지게 보일지 모 르지만 지금 나오는 영화들 보면 아직은 내가 연출해도 비난받을 정도는 아니겠구나 싶다. 지금 나오는 영화들이 세련되긴 했지만 , 관객과 착착 붙는 영화들이 별로 없다. 거칠지만 드라마로 호흡 하는, 내 영화에 대한 향수가 있다. 다른 감독의 영화를 편집하다 보면 내 영화를 편집하고 싶고,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강 감독 영화를 보고 싶다”는 소리를 들어도 그렇다. 어쨌든 감독으로 남고 싶다. 안 그러면 금융회사 사람과 차이가 뭐냐. 김정상 사장 이 결재하나, 내가 결재하나 무슨 차이가 있나. 오히려 그 사람에게 전권을 주는 게 더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다.
-김정상 사장을 영입하기 위해 대단히 노력했다고 하던데 ‘반드 시 이 사람이다’라는 판단이 있었나.
=그렇다. 오래된 친구이고 대단히 합리적인 사람이다.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도 많고, 미국 유학 시절 영화를 직접 만들려고도 했고 . 일에 대한 욕심도 많다. 나보다도 더.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 이고 경영에 관해선 나보다 훨씬 잘할 거라고 확신한다.
-지금까지 계획한 대로 된 셈인가. 강 감독이 늘 주장하던 대로 한국영화가 푸대접받지 않고 극장에 걸리는 상황이 됐는데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맞다. 지금까지는 잘해왔다. 하지만 다음 목표를 정하기까진 아 직 과도기인 것 같다. 한국영화 잘되는 게 현실이냐 아니면 일시 적인 현상이냐가 문제다. 지금 갈림길의 끝자락쯤에 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