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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배우 만세!

<터치>의 김지영부터 <창수>의 임창정과 정성화까지… 한국 배우의 힘을 재발견함

<터치>

프로그래머 노트 등에서 이미 역설했듯 2012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 한국영화의 으뜸 화두는, ‘배우의 (재)탄생, 연기의 (재)발견!’이다. 립 서비스가 아니라 윤여정, 백윤식, 최민식, 조재현 등 연기의 베테랑들로부터 예지원, 김지영, 조여정, 오달수, 유준상, 하정우, 류승범, 임창정 등 ‘연기 중견들’, 그리고 김고은, 수지, 정예진, 이제훈, 김준구 등 신예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존재감은 감동적이며 압도적이다. 그 감동, 압도는 총 8편을 소개하는 신영균 회고전에도 고스란히 해당된다. 확신컨대 이번 회고의 장을 통해 ‘거대한 배우’ 신영균의 진면모와 새 면모를 새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 화두는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및 비전은 물론 갈라프레젠테이션, 오픈시네마 등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콘돌은 날아간다>

복수는 그들의 힘

위 진술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 역시 담당 프로그래머로서 내세울 한국영화의 주된 경향이 없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그저 국산 영화들의 “외연의 확대와 내포의 심화”, 달리 말해 양적•질적 다양성을 최대한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큰 바람이다. 프로그래머 이전에 20년 차의 영화 평론가로서, 한국영화가 새롭지 않을 뿐 아니라 다양하지조차 않다, 는 세간의 주장에 전적으로는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상대적 기준에서 한국영화는 일정 정도 다양할 뿐 아니라 새롭다, 고 확신해왔고 지금도 그렇다. 그렇지 않다면 199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불기 시작해 2000년대 중반까지 타올랐던 우리 영화의 르네상스를, 지난해부터 일기 시작한 리-르네상스를 어찌 설명•이해할 수 있겠는가. 설사 충분히 새롭진 않더라도 우리 영화들이 전혀 다양하지 않은데도 작금과 같은 활황이 펼쳐지고 있다면, 어불성설 아니겠는가. 다양한 스토리•스타일•주제…의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소구되고, 그 소구에 까탈스러운 이 땅의 대중 관객들이 호응하기게 일찍이 예상치 못했던 열기가 일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올 BIFF의 한국영화들을 통해 강조하고픈 특징 내지 경향이 없는 것 아니다. 단서는 다분히 결과론적이라는 것이다. 가족, 사랑, 성장 등은 워낙 보편적•탈시간적 이슈들이니만큼 더 이상 말하지 말자. 그 첫째가 “결여된 무언가를 열망하는 감각”으로서 욕망의 문제다. 박철수 감독의 <B•E•D<, 전수일 감독의 <콘돌은 날아간다>(이상 갈라)를 비롯해 <후궁: 제왕의 첩>(김대승), <은교>(정지우), <화차>(변영주),<다른 나라에서>(홍상수), <용의자 X>(방은진), <돈의 맛>(임상수), <창수>(이덕희),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김조광수), <무게>(전규환) <내가 고백을 하면>(조성규), <마이 라띠마>(유지태), <멜로>(이로이), <러시안 소설>(신연식) 등 상당수 영화들은, 육체적•성적으로든 정신•지적으로든 직, 간접적으로 욕망의 문제를 짚는다. 그들은 한결 같이 욕망이 결코 사적 영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적 영역과 밀접히 연관돼 있음을 웅변한다.

그 둘째 특징은 사적 복수의 문제다. 김용한 감독과 이지승 감독은 장편 데뷔작 <돈 크라이 마미>(오픈시네마)와<공정사회>(비전)를 통해, 성폭행 당한 딸의 사적 복수에 나서는 엄마 이야기를 전혀 다른 스타일로 극화했다. 뉴커런츠의 <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는 우연한 사고로 동생을 잃은 형의 복수극이며,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에 빛나는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나 ‘포스트 <파이란>’ <창수>도 일종의 복수담이다. 상기 두 경향에 비해 수적으로는 열세긴 해도 책임(감) 또한 각별히 강조하고픈 문제다. 뉴커런츠의 <가시꽃>(이돈구)이 그 대표적 영화다. “10년 전 고등학교 시절 강압적으로 가담했던 성폭행 사건의 최책감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스물여덟 살 주인공의 속죄담”이자 “죄와 양심, 책임감에 관한 성장 드라마”. 예측 불허의 파국으로 치닫는 주인공의 선택들이 그야말로 얼얼한 충격•여운을 안겨준다. 고작 300만원의 초저예산으로 빚어낸 영화를 말하며 한국영화사의 걸작인 <>(이창동)를 끌어들인 까닭도 다름 아닌 책임감이라는 공통점 때문이었다.

다시 역설컨대 2012 BIFF의 한국영화들을 통해 새삼 방점을 찍고 싶은 것은 배우 및 연기다. “그렇다고 감독의 위상이나 연출력을 소홀히 했다는 건 아니다. 모름지기 영화제에서 핵심적 위상을 차지하는 존재는 여전히 감독들이다. 감독들의 존재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게 없다. 그럼에도 그 동안 일부 인기 스타들을 제외한 대다수 배우들이 상대적으로 덜 주목•논의돼 온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신인이나 무명 배우들일 경우 더 말할 나위 없다. 다름 아닌 양지를 향해 정진하고 있을 그들에게 신명나는 판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창수>

꼭 기억할 이름들, 배정화•박지수•송삼동•이재혜•김준구…

신부(<콘돌은 날아간다>)와 꼽추 염장이(<무게>)로 분해 그 간의 선 굵은 연기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연기를 향한 욕심을 아예 비운 듯한 이완된, 그러면서도 한 시도 긴장감의 끈을 놓지 않은 입체적 연기를 구현한 조재현이나,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지난 몇 년간의 부진을 떨쳐내고 달인적 경지의 연기를 뽐낸 최민식이야 워낙 베테랑 배우들이니 만큼 그러려니 치자. <터치>(민병훈)의 김지영을 필두로 <창수>의 임창정과 정성화, <돈 크라이 마미>의 유선, <후궁>의 조여정, <용의자 X>의 류승범, <미운 오리 새끼>의 오달수 등은 올해 연기의 참맛을 새삼 만끽시켜주면서 배우를 화두로 내세우게 해준 주인공들이자 ‘재발견’들이다.

<은교>의 김고은이나 <돈 크라이 마미>의 남보라 등은 어느덧 벌써 스타의 길로 향하고 있으니 넘어 가자. 더 큰 갈채는 유명세는 말할 것 없고 아직은 그 이름조차 선명히 기억되지 못하고 있을 일군의 무명 및 신인 배우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콘돌은 날아간다>에서 조재현과 짝을 이뤄, 더 이상 자연스러울 수 없을 듯 편해보이기까지 하는 전라 연기를 선사한 배정화에겐 아무리 큰 찬사를 보내도 과할 성싶지 않다. <마이 라따마>의 마이 라띠마 박지수, <개똥이>의 개똥이 송삼동, <러시안 소설>의 재혜 이재혜, 그리고 <미운 오리 새끼>의 낙만 김준구를 비롯해 혜림 정예진, 중대장 조지환, 행자 송율규 등도 그런 주역들이다. 이 자리를 빌어 올 BIFF 한국영화들의 배우들에게, 나아가 세상의 모든 배우들에게 진심어린 찬사를 보낸다. “배우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