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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허우샤오시엔의 일등공신
김성훈 2010-10-14

마스터클래스로 부산을 찾은 마크 리 촬영감독

흔히 감독과 촬영감독을 부부에 비유하곤 한다. 눈빛만으로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크 리 촬영감독은 거장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좋은 동반자다. 데뷔작인 <동년왕사>(1985)로 허우샤오시엔 감독과 인연을 맺은 그는 <남국재견>(1996) <밀레니엄 맘보>(2001) <카페 뤼미에르>(2003) 등, 허우 샤오시엔의 주요 작품들을 촬영해왔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를 가져야 좋은 촬영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사는 마크 리 촬영감독을 해운대에서 만났다.

-마스터클래스 내내 조명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빛은 세상의 모든 이미지를 존재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촬영의 시작은 조명이다.

-보통 감독이 되고 싶어 하지 않나. 촬영감독이 된 계기는 무엇인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장해야하는 감독과는 달리 촬영감독은 촬영만 생각하면 된다. 많은 감독과 작업할 수 있는 것도 촬영감독만의 매력이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즐겨봤다. 23살 때부터 4~5년 동안 여러 촬영감독들 밑에서 조수생활을 했다. 촬영이 없을 때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기도 했다.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동년왕사>로 촬영감독 데뷔했다. 허우샤오시엔 감독과의 첫 만남은 어땠나. =촬영조수 시절, 편집 기사였던 그와 알고 지냈다. 둘 다 감독 데뷔하기 전이었다. <펑쿠이에서 온 소년>(1983), <동동의 여름방학>(1984) 등 초기작들이 호평을 얻은 덕분에 그는 주목할 만한 감독이 되었다. 어느 날 그가 찾아와서 한마디 하더라. “함께 하자”고.

-현장에서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카메라 및 연기 리허설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연출 방식이 처음에는 적응하는데 어렵지 않았나. =촬영 시작한 뒤, 일주일 동안 그의 연출방식을 따라가느라 애를 먹었다. 실수도 많았다. 그러나 대화를 통해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씩 알게 됐고, 그의 스타일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와 성장환경, 인생에 대한 태도가 비슷해 뜻이 잘 맞았다. 어쩌면 이것이 그와 오랫동안 작업할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닌가싶다.

-조명을 안 쓴 것처럼 보이는 조명, 카메라의 존재를 잊게 하는 촬영이 그간의 작업 특징이다. 일례로 어두컴컴한 터널 안을 걸어가는 서기를 고속촬영으로 따라가는 <밀레니엄 맘보>의 첫 장면은 조명 없이 찍은 것 같다. =새로운 시대를 맞는 청춘들의 방황을 그린 이야기라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 작품이다. 특히, ‘원신 원테이크’로 찍은 장면은 단순한 오프닝 크레딧이 아니라 시대가 흘러가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실제 현장은 영화에 나타난 밝기보다 훨씬 어두웠다. 그래서 40W, 200W 백열등으로 터널 처음부터 끝까지 조명 세팅했다.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작품은 조명에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못 알고 있는 거다. 티가 나지 않게 세팅할 뿐이다.

-촬영하는 날,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무엇인가. =공간을 관찰하고, 빛을 찾는다. 오로지 이 둘만 생각한다. 이야기를 결정하는 것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어떤 순서로 찍을 것인지, 기술적으로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촬영 의도와 달리 벌어진 우연적인 상황이 영화를 훨씬 풍부하게 한 순간을 겪어봤나. =많다. <카페 뤼미에르>(2003)에서 주인공 요코가 자신의 방에 앉아 있는 장면이 있다. 바람이 들어오는 방이 아니었는데, 셔터를 누르니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아닌가. 셔터에서 손을 떼자 바람이 멈췄다. 극 중, 그때 찍은 장면만 방에 바람이 분다.

-큰 체구 때문에 힘이 세 보인다. 허우샤오시엔 감독 역시 어릴 때부터 힘이 세기로 유명한데, 둘 중에 누가 더 센가. =하하하. 당연히 허우샤오시엔 감독이 더 세다. 순간 발휘하는 폭발력이 장난 아니다. 무엇보다 그 분은 눈빛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웃음) 혹시 이 사실 아나. 허우샤오시엔 감독이 처음 만난 사람과 인사할 때 상대방의 눈빛을 보고 판단한다는 것. 나중에 그를 만나게 되면 염두에 둬라.

사진 박승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