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 그리고 둘> 재개봉에 맞춰 내한했다. 프로듀서로서 <하나 그리고 둘>을 처음 기획하던 때의 기억을 듣고 싶다.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부산국제영화제 관계자를 만났을 때, 부산 프로모션 플랜(Pusan Promotion Plan), 즉 PPP란 기획을 발족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정보를 듣고 다음 프로젝트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발표하겠다고 계획했다. 그렇게 아시아의 영화감독 세명과 함께 PPP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처음엔 이와이 슌지, 에드워드 양, 김지운 감독을 생각했다. <조용한 가족>을 워낙 재밌게 봤고 <반칙왕> 시나리오를 입수해서 읽고는 한국 감독 중에서는 김지운 감독을 모시고 싶었다. 한국에서 일본영화 수입이 개방된 게 1999년이고, PPP에서 <Y2K>란 이름의 프로젝트를 발표한 것은 1998년 일이라 당시 시대적인 상황 때문에 김지운 감독과는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고, 대신 홍콩의 관금붕 감독이 합류했다. 세 감독과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면서 변하는 것,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면서 변하는 것, 변하지 않는 것’에 관해 세 감독이 어떤 이야기를 계획했나.
에드워드 양 감독은 가족을 테마로 꺼내들었고, 관금붕 감독은 폭력을 키워드로, 이와이 슌지 감독은 이지메 문제를 모티브로 한 글을 써왔다. 다만 에드워드 양과 관금붕 감독은 시나리오가 착착 진행돼갔는데, 이와이 슌지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 그게 운명의 갈림길이 된 것 같다. 게다가 이와이 슌지 감독이 타이완의 타이난에 헌팅을 갔는데, 그곳에 7.6 규모의 큰 지진이 일어나면서 로케이션세트가 부서졌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염두에 둔 곳에서 영화를 찍을 수가 없게 됐고, 에드워드 양 감독은 <하나 그리고 둘>크랭크업 뒤에 지진을 겪었다. 어떻게 보면, 지진도 또 하나의 갈림길이 됐다. 각 작품의 발표 시기가 너무 차이가 나면 안되기에, 이와이 슌지 감독은 <Y2K> 프로젝트에서 이탈했다. 하지만 이와이 슌지 감독은 그때의 기획을 바탕으로 1년 후에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만들었다.
- 제작자로서 이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할 당시 몇 살이었나.
40살 때 일이다. 그 무렵 <링>과 PPP 프로젝트를 병행하며 진행했다.
- 에드워드 양 감독과는 어떤 식으로 소통했나.
주로 대면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 만난 건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가 타이완에서 개봉한 1996년 혹은 1997년에 이와이 슌지 감독과 타이베이를 방문했을 때다. 타이완에 왔으니 타이완 감독을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마침 에드워드 양 감독이 흔쾌히 만나주신다고 했다. 당시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는 일본에선 <러브레터>보다 3~4배 넘는 수익을 올린 영화였고, 모스크바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르기도 하고, 미국에서 상영되었다. 대사에 영어나 중국어의 비중이 클 정도로 해외 관객을 염두에 둔 작품이었는데, 막상 공개해보니 모스크바에서 반응이 좋지 않았고 수상도 불발됐다. 오히려 <러브레터>를 향한 해외 팬들의 반응이 더 좋았다. 그래서 국제영화제에서 통할 수 있는 작품을 이와이 슌지 감독과 만들어가고 싶어 영화제 수상 경력이 풍부한 에드워드 양,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 함께 작업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게 우리 만남의 첫 시작점이었다. 이런 마음을 전하며 함께 영화를 만들자고 얘기할 때 에드워드 양 감독은 엄지 두개를 들어 보였다. 그 포즈가 정말 인상 깊었다. (웃음) 영화제작과 관련한 대화를 나누면 그는 언제나 싫은 표정을 짓지 않았다.
- 그렇게 일본의 이와이 슌지, 홍콩의 관금붕, 타이완의 에드워드 양 감독을 모았다.
왕가위 감독을 만난 적도 있다. 이와이 슌지 감독과 <중경삼림>을 함께 보았는데 우리 둘 다 정말 좋아했서 왕가위 감독을 함께 만났다. 당시 왕가위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지 않는다고 말했고, 시나리오를 쓰더라도 절대 프로듀서에게 보여주지 않는다고 했다. 옆에서 그 말을 들은 이와이 슌지 감독이 충격을 받곤 진짜냐고 계속 물어볼 정도였다. 시나리오가 없고, 콘티가 없더라도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지만 그러다 촬영 기간이 늘어날 경우, 이와이 슌지 감독에게는 2억원의 제작비를, 왕가위 감독에게는 5억원의 제작비를 지원할 수 없어 함께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왕가위 감독이 ‘페이드아웃’됐다. 다른 감독을 찾아보던 중 장만옥, 이가흔, 서기 등 대부분의 여배우가 관금붕 감독과 영화를 만들면 함께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관금붕 감독과 코로나19 팬데믹이 벌어지기도 한참 전에 바이러스로 폐쇄된 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유시도무>를 완성했다.
- 처음부터 국제영화제를 염두에 둔 프로젝트였는데 어떤 영화제들을 염두에 두었나.
관금붕 감독은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상을 탔으면 좋겠고, 에드워드 양 감독은 칸에서 받았으면 했다. 이와이 슌지는 베니스에서 상을 받도록 하자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에드워드 양 감독은 감독상을 탔고, 관금붕 감독은 베를린 경쟁부문에 올랐지만 수상은 불발되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페이드아웃되었고. (웃음)
- 에드워드 양 감독은 <하나 그리고 둘>을 완성하기 전 다른 장르의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걸로 안다.
<시저스>(Scissors)라는 제목을 가진 영화로, 국제적인 여러 도시를 다니며 마피아가 등장하는 작품이었다. 금성무 배우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려고 타이베이에 있는 배우의 소속사를 에드워드 양 감독과 찾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배우가 향후 1년 이내 출연할 수 없는 스케줄인 데다 개런티 문제도 있었다. 그 자리에서 에드워드 양 감독이 “그만둘까요?”라는 한마디로 <시저스>를 정리했다. 그는 “2주 정도 시간을 주면 다음 이야기를 바로 쓰겠습니다”라고 했다. 이번에 자료를 다시 찾아보니 <시저스>의 기획안을 보면 9월8일이라고 메모돼 있더라. 그러니까 1998년 9월8일에 <시저스>의 기획안을 다 쓰고 1999년 4월8일에 <하나 그리고 둘>을 크랭크인했다. 그사이 금성무 배우의 소속사에 갔었고 <시저스> 영화화가 무산됐고 시나리오를 2주 만에 빠르게 완성해 곧바로 촬영에 들어간 것이다. 정말 숨 가쁜 일정이었다.
- 2주 만에 빠르게 완성된 시나리오를 봤을 때 느낌이 어땠나.
이미 좌절을 맛본 상황이 있어서 ‘뭐든 좋으니 시나리오만 나와라’ 하는 마음이었다. 게다가 1999년에 촬영하고 2000년에는 공개해야 한다는 마음속의 데드라인도 있었다. 그렇게 에드워드 양 감독이 갑자기 가져온 시나리오를 보았는데, <시저스>와는 전혀 다른 가족드라마였다. 할머니의 죽음과 손자의 성장이 얽혀 있는 가족 이야기였다. 정말 좋았다. 에드워드 양감독도 “이 영화라면 상을 받을 수 있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해서 “그럼 갑시다”라고 말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굉장히 놀라운 건 2주 만에 완성에 가까운 시나리오가 쓰여 있었다는 점이다. 그 짧은 기간 안에 인물들이 세밀하게 쓰여 있었던 게 마법같이 느껴진다.
- 촬영 내내 타이베이에 머물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어떻게 <하나 그리고 둘>의 프로덕션을 진행했나.
일본 자본으로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스태프는 타이완인들로 구성됐다. 에드워드 양 감독과 호흡한 그의 사단이 촬영한 거라 내가 딱히 관여할 필요가 없다시피 했다. 타이완 촬영분에 대해선 감독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다만 에드워드 양 감독이 도쿄에서도 일본 신을 꼭 넣고 싶다고 얘기했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촬영, 일본 배우 캐스팅에 주로 신경을 썼다.
- 도쿄로 돌아갔을 당시 배우를 바꾸는 사건도 있었던 걸로 안다.
딸 팅팅(켈리 리) 역이 한번 바뀌었다. NJ(오념진)의 아이들, 팅팅과 양양(조너선 창) 역은 오디션을 통해 연기 경험이 없는 아마추어 배우가 맡았다. 수십명의 후보 중에서 양양 역은 이 아이밖에 없다고 한번에 보자마자 감독이 캐스팅했지만, 팅팅 역은 한 차례 바뀌었다. 처음 팅팅 역에 캐스팅됐던 배우가 지금의 배우보다 어렸던 것 같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탄생하게 될 영화의 이미지는 감독의 머릿속에만 존재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그림인지 세세하게 알 수 없기에, 캐스팅은 전적으로 감독의 직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 칸영화제에서 <하나 그리고 둘>을 처음 공개했을 때를 기억하나.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지만, 영화가 상영될 때 비디오카메라를 돌리면서 에드워드 양 감독의 표정을 기록했다. 촬영하는 나를 보고 에드워드 양 감독이 안으면서 카메라가 바닥에 떨어진 채 돌아가기도 했다. 그런 생동감 있는 영상들이 남아 있다. (웃음) 상영이 끝나고 객석에서 7~10분 정도 긴 기립박수가 이어질 때야 비로소 ‘내가 정말 칸에 와 있구나’라고 느꼈다.
- 그리고 에드워드 양 감독이 감독상에 호명된 날 그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나.
상영 당시 감독이 나를 껴안으며 “수상할 수 있겠다”라고 말해서 ‘무슨 상이든 받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영화 상영 후 결과가 나오기까지 일주일 정도 걸리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나는 일본으로 돌아왔다. 일본에서 생중계되는 방송으로 에드워드 양 감독이 상 받는 장면을 보았을 땐 정말정말 기뻤다. 에드워드 양 감독 본인은 황금종려상을 받기를 기대했다. 최고상 수상은 불발돼 칸 현장에서는 서운한 분위기가 있었다더라. 그해 심사위원장이 뤼크 베송이었는데, <하나 그리고 둘>이 상영될 때 뤼크 베송 감독이 우리 뒷자리에 앉아서 영화를 보고 에드워드 양 감독과 짧게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가 “올해는 아시아영화가 정말 강세”라고 얘기했다고 들었다. 그해 칸에서 양조위 배우가 <화양연화>로 남우주연상을 받고, 강문 감독의 <귀신이 온다>가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하나 그리고 둘>이 상영된 이틀 후에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어둠속의 댄서>가 공개됐고 황금종려상은 그 작품이 가져갔다.
- 오프닝 시퀀스에서 탄생의 징후와 죽음의 징후를 교차시킨 다음 계속해서 만남과 이별이 등장한다. 영화를 보면 삶이란 만남과 이별의 반복 아닌가 생각한다. 살아보니 인생과 영화 사이에 유사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나.
이 영화를 만들 당시 에드워드 양 감독은 쉰을 넘긴 나이였다. 유소년 시절에 보고 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지만 감독은 자기 인생이 투영된 영화라고 보지 않길 바랐다. 20대는 20대만의 눈으로 등장인물에 자신을 투영해볼 수 있을 거고 60대라면 할머니에 감정이입해서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영화가 아니지만, 영화는 인생을 그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 내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들, 그리고 삶의 지침 비슷한 무언가를 이 영화에서 찾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