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6일/ 아홉은 너무 많아
아홉명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게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깨달아가고 있다. 문제는 이 영화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아홉명이 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많지 않으면 다행이랄까. 게다가 내가 한번 열이 오르면 열을 식히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문제다. 살을 쪄 보이게 하려고 입은 라텍스 옷 때문에 열이 잘 오르는 것 같은데, 붙인 코가 체열 때문에 흘러내릴 것 같으면 서둘러 어두운 구석으로 가서 잠시 열을 식힌다. 그럴 때는 마치 내가 열 오른 코끼리가 된 것 같다.
4월14일/ 표정이 풍부해서 곤란해
애들 아빠 역의 콜린 퍼스와 에반젤린 역의 켈리 맥도널드의 호흡은 환상적이다. 둘이 오랜 친구라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전에 진지한 역을 주로 했던 퍼스는 이번에는 코믹하고 과장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퍼스와 맥도널드는 너무나 편하게 나를 대해주기 때문에 별 노력 없이도 우리는 흥
<내니 맥피: 우리 유모는 마법사> 제작기 [2]
-
어린아이와 동물이 등장하는 영화는 컨트롤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거의 항상 함께 등장해야 하는 일곱 아이들과 심심찮게 튀어나오는 벌레들이 필수적이라면 촬영현장 모습은 어땠을까? 엄마를 잃은 천방지축 일곱 아이들의 삶에 등장한, 마법을 쓸 줄 아는 무서운 유모 이야기를 그린 <내니 맥피: 우리 유모는 마법사>에서 내니 맥피 역을 맡은 (그리고 시나리오를 쓴) 에마 톰슨이 쓴 일기는 정신없는 촬영현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아역배우 캐스팅에서부터 파이 던지는 장면 촬영에 이르기까지, <내니 맥피…>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1월22일/ 아역은 장난이 아니야
아역배우 캐스팅을 시작했다. 어리고 체구가 작은, 희망에 찬 수백명의 어린이들과 놀이하듯 오디션을 본 뒤, 이제야 우리는 몇명을 선정, 카메라 앞에서 대사를 읽어보게 했다. 매력적이고 똑똑한 동시에 재미있고 현명한 아이들을 찾고 있는데, 아이들 대부분이 우리가 찾는 점들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내니 맥피: 우리 유모는 마법사> 제작기 [1]
-
배우연습, 시트콤과 정극연기의 도전
“태규가 나를 무서워하긴 하더라. 일부러 걔만 혼내고 했던 것은 아닌데. 우리 드라마는 남녀주인공 두 사람의 드라마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스토리를 갖고 가는 드라마였다. 강수(봉태규)도 강수 나름의 스토리를 갖고 있는데 태규의 연기가 그에 비해 성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친구가 배우로서의 자의식이 굉장히 강해서 기라성 같은 배우들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까를 항상 의식하고 연기하는 것 같더라.” _최종수 PD·MBC 드라마국장(<한강수타령>)
첫 촬영날.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앞에서 상대배우 이윤지와 대사를 주고받다 애드리브를 했다. “애드리브라기보다는 대사를 내 입에 맞게 바꿨어요.” 최종수 PD가 그를 불렀다. “태규야, 너 지금 하고 있는 게 60부작 드라마인데, 이제 1부 찍고 있으면서 나중에 드라마 내용이 어떻게 될지 다 아냐.” 배우는 모른다고 답했다. PD는 말을 이었다. “네가 지금 네 입에 맞
오기의 소년, 희귀한 배우 봉태규 [2]
-
<눈물>의 노랑머리 소년이 뾰족한 눈으로 세상을 쏘아볼 때, 많은 사람들은 길거리 캐스팅된 생짜 신인배우의 미래를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다. 가능성을 눈여겨본 사람일지라도 그 소년이 어느 날 무색무취의 단정함과 또렷한 욕망을 오가는 연기를 해보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바람난 가족>). 봉태규는 여러 오락프로그램의 인기 게스트이기도 한 가수 MC몽과 콤비를 이뤄 친근한 재치도 부렸고(<논스톱4>) 투정과 애교 섞인 순정으로 연상 여인들의 마음도 사로잡았다(<광식이 동생 광태>). 골목 어귀에서 광장 한가운데로 뛰쳐나온 아이. 배우가 가진 살얼음 같은 기운은 곧잘 비딱하고 희귀한 매력으로 탈바꿈한다. 류승범이 그랬고, 그 때문에 초기 시절 봉태규는 비교당하곤 했다. 이제 봉태규는 자기만의 캐릭터 스펙트럼을 갖고 20대 배우 자리에 서 있다. 3월 중순 개봉예정인 학원코미디물 <방과후 옥상>의 이석훈 감독은 허약하고 소심한 고교생 주인공
오기의 소년, 희귀한 배우 봉태규 [1]
-
-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성선설이든, 성악설이든 좋다. 하지만 ‘친절한 <ME>씨’는 자신에게 쓰라린 변을 겪게 한 이에게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경험케 해주겠다는 삶을 철학을 지닌 당신들을 사랑한다. 너무너무 착한 사람은 너무너무 지루하지 않은가. 생에 첫 복수를 준비 중인 당신, 너무 떨지 마라. 괜히 ‘친절한 <ME>씨’가 아니다. 첫 복수 혹은 마지막 복수를 하려는 당신을 위해 평소에는 생각지 못했으나 유용한 고문도구가 될 수 있는 생활소품들의 목록을 마련했다. 단, 친절한 <ME>씨라도 당신 복수의 결과로 일어나는 사건·사고까지 책임져주진 않는다. 그러니 주의사항까지 꼼꼼히 읽고 행동에 옮겨라.
아, 착하게 포장된 인생을 바라는 당신이라면, 다소 소름 돋고 짜증스러워도 당신에게만 있는 착한 유전자를 충분히 활용해 무시하고 넘어가시길.
초급_ ‘손 안 대고 코풀기’ 시추에이션
참고서 목록: <나홀로 집에>, <톰과 제리>
영화에서 배우는 간편하며 잔인한 복수의 기술
-
11. 1979년 스탠 드라고티 감독의 <드라큐라 도시로 가다>는 흡혈귀 코미디로 대박을 터뜨렸다. 드라큘라 역으로 캐스팅된 조지 해밀턴이 벨라 루고시 흉내를 내며 드라큘라 백작을 코믹하게 패러디했다. 그 상황이 아닌 것은?
① 밖에서 늑대 떼가 울부짖자 드라큘라 왈, “어둠의 자식들이여…, 시끄럽다!!”
② 루마니아에서 관이 도착하지 않아 연미복에 망토 차림으로 할렘을 헤매는 드라큘라. 한 청년이 “어이, 멋쟁이 백인 아저씨 어디 가시나?” 하자 드라큘라 왈, “난 백인이 아니다. 난 루마니아인이다!”
③ 연극 분장실의 드라큘라 여자에게 “내가 그 유명한 뱀파이어다!” 하자… 여자 왈, “알았으니까 화장이나 좀 지워요. 청소도 하고.”
④ 디스코클럽에서 만난 여자를 따라 지저분한 그녀의 아파트에 간 드라큘라. 여자가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묻자 드라큘라 왈, “빗자루.”
정답 ③: 1935년 벨라 루고시 주연의 <마크 오브 더 뱀파이어>에 나오는 상황이다.
퀴즈로 보는, 뱀파이어에 관한 잡식백과 [2]
-
드라큘라 백작으로 대변되는 옛 영화 속 뱀파이어들은 사람을 묘하게 불편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남는 건 시간뿐이라는 듯 늘 천천히 다가오며, 느릿느릿 다가오는 동안 심지어 말도 한마디 안 한다. 그저 ‘있다는 것’으로, 그야말로 존재 자체로,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듯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뱀파이어들도 변했다. 저마다의 성격을 가진 갖가지 뱀파이어들이 나타났으며, 이들은 주장하고, 수다 떨고, 사람을 웃기기도 하고, 스스로 웃기도 한다. 거대한 무리를 이뤄 인간세상에 버젓이 살고 있는가 하면, 현란한 액션으로 사람을 매료시키고, 심지어 서울 한복판에서 비둘기를 사냥하기도 한다.
마침 모기에 물려 흡혈귀가 됐다는 코믹한 형사 뱀파이어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기에, 뱀파이어에 관한 잡지식들을 모아 퀴즈로 만들어보았다. 그야말로 잡식의 응결체이니, 평소 관심있으신 이들은 슬슬 풀어보고, 평소 관심없으신 이라면 슬슬 읽어보시라. 혹여 80점 이상 얻었다면 당신은 뱀파이어 전문가로
퀴즈로 보는, 뱀파이어에 관한 잡식백과 [1]
-
심사위원 대상
다큐멘터리
<신은 우리를 싫증내기 시작했다>(God Grew Tired of Us)(크리스토퍼 퀸)
극영화
<퀸시아네라>(Quinceanera)(워시 웨스트모어랜드, 리처드 글레이저)
월드시네마 심사위원상
다큐멘터리
<구멍 속에서>(In the Pit)(주앙 카를로스 룰포)
극영화
<13>(13 Tzameti)(젤라 바블루아니)
관객상
다큐멘터리
<신은 우리를 싫증내기 시작했다>(God Grew Tired of Us)(크리스토퍼 퀸)
극영화
<퀸시아네라>(Quinceanere)(워시 웨스트모어랜드, 리처드 글레이저)
월드시네마 관객상
다큐멘터리
<드 나디>(De Nadie)(틴 디르다말)
극영화
<넘버2>(No.2)(토아 프레이저)
감독상
다큐멘터리
제임스 롱리 <파편 속의 이라크>(IRAQ in Fragments)
극영화
디토 몬티엘 <너의
2006 선댄스 영화제 [3] - 수상결과
-
이곳과 저곳, 경계 위의 영화들
“이 영화는 새로운 미국 독립영화의 한 경향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 새로운 미국을 만드는 과정. 이것은 올해 선댄스 영화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프로그래머 캐롤라인 리브래스코가 일반 상영관에서 관객에게 <인 비트윈 데이즈>(In Between Days)를 소개한 말이다. 올해의 선댄스는 다양한 섹션에 걸친 열편의 영화를 통해 나고 자란 땅과 익숙한 문화를 등지고 새로운 땅에서 삶을 개척하려는 이들의 여러 얼굴을 조망했다. 미국영화들이 어깨를 겨루는 극영화 경쟁부문에는 미국으로 이민온 한국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인 비트윈 데이즈>를 포함하여 자국 언어로 이루어진 두편의 영화가 포진해 있다. 이중 멕시코계 이민자 가족을 배경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 <퀸시아네라>는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인 비트윈 데이즈>와 함께, 재일교포 부녀의 대립과 화해를 그린 다큐멘터리 <안녕
2006 선댄스 영화제 [2]
-
처음으로 경험한 해외영화제는 작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였다. 영화제의 주인공은 레드카펫 위의 거장과 스타였고, 언론과 평론가들은 이들의 권위를 재확인했다. 그것은 발견이나 즐김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반년 뒤, 선댄스 영화제를 찾았다. 지난 1월19일부터 26일까지, 솔트레이크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마을 파크시티. 영화를 만든 이들과 관객이 주인이 되는 그곳은 축제의 장이었다. 관객은 어떤 영화를 보거나 보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 곳곳에서 토론은 벌였다. 황혼이 깃들면 관객과 감독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파티가 줄을 이었다. 그곳에서 ‘저널리스트’는 별다른 소용이 없어 보였다. 공항에서 숙소로 향하는 택시 안. 출품영화의 스탭이거나, 배급업자이거나, 필름메이커를 대상으로 포럼을 진행하는 후반작업 회사의 직원 틈에 합승한 이국 땅의 기자는 왠지 모르게 외로웠다. 이를 부추기는 것은 선댄스가 엄연한 미국 영화제라는 사실. 월드시네마 경쟁부문이 지난해에 신설되었다지만, 선댄스의 주력 부문은
2006 선댄스 영화제 [1]
-
한국이 낳은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이 지난 1월29일(한국시각 1월30일) 미국 마이애미에서 숨을 거뒀다. 예술가로서는 한창 나이라 할 수 있는 일흔네살에 ‘아리랑’과 ‘엄마’를 흥얼거리며 먼 이국에서 눈을 감았다. 십대 후반에 조국을 떠나 일본과 독일과 미국을 떠돌며 지구적 예술가(글로벌 아티스트)로 살았던 그는 말년에 고향을 그리워하며 한국에 돌아가기를 원했다. 경기도 용인에 자신을 위해 세워질 백남준 미술관이 일종의 종착역이었으나 아쉽게도 개관이 늦어지고 말았다.
백남준은 전세계에 통하는 브랜드를 지닌 거의 유일한 한국 출신 예술가였다. ‘비디오 예술의 선구자’, ‘전위 음악가’, ‘행위 예술가’라는 소개 뒤에 따라붙던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라는 과격한 별명은 그에겐 훈장이자 별점이었다. 서구예술의 우월주의에 맞서 뚝심으로 ‘백남준표 예술’을 밀고 나간 그는 아시아 또는 한국 문화의 가능성을 낙관하고 있었다. 그가 1995년에 쓴 다음 글은 이런 믿음을 잘 보여준
[추모기획]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을 추모하다
-
비디콘, 16mm 카메라 제작까지
누군들 제 능력을 맘껏 펼쳐보고 싶지 않겠는가. “카메라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촬영감독”이 되고 싶었지만, 충무로에서 그의 꿈이 영글기엔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한동안 “카메라 고쳐주고 얻은 수입만으로도 짭짤했다”는 그가 1980년대 들어 CF 촬영을 주업으로 삼았던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기계라는 게 복잡한 거 같지만 실은 간단해. 자연처럼 암수로 짝지워져 있다는 단순한 원리만 몸으로 깨달으면 되거든. 거기까지가 어려운 거지.” 깨달은 이치를 밑천삼아 “응용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타올랐던 것도 그때부터였다. “돈이 조금 모이면 남대문과 청계천을 돌아다녔어. 공구와 부품 사모으는 데 모조리 쏟아부었다고.”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그는 일종의 모니터였던 비디콘과 16mm 무인카메라를 만들어 CF 현장 등에서 인정받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재주만으로 밀고 나가는 건. “10번 시도하면 8, 9번은 실패야. 그건 당연한 건데
충무로의 전설, 허남진 [2]
-
누구는 손에 꼽을 고수(高手)라고 했다. 디지털로도 불가능한 일을 눈대중과 손재주만으로 해낸다고 했다. 누구는 그저 그런 범인(凡人)이라고 했다. 별것 아닌 기술을 밑천으로 갖고 있을 뿐이라 했다. 허남진. 어쨌든 들어본 적 없는 인물이었다. 수소문 끝에 그의 연락처를 알아냈지만, 약속 장소로 향하면서도 불안을 떨치진 못했다. 전설의 고수가 맞긴 한 걸까. 그의 종적은 안개 속이었다. 그의 과거와 현재를 단번에 보증하는 이는 없었다. 그를 고수라고 칭한 이는 그의 과거를 몰랐다. 그를 범인이라고 부른 이는 그의 현재를 몰랐다. “손재주가 있긴 했는데, 지금은 뭐하는지 몰라.” 얼마되지 않는 동료들도 애매모호한 답변을 남겼을 뿐이다.
대면 외엔 방법이 없었다. 부천 지나 부개역. 약속 시간보다 10분 정도 늦었다. 전화를 걸었더니 일단 남쪽 방향 출입구로 나오라고 한다. 본 적 없는 그이지만,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외모가 특이한 분이에요.” 전날 통화했던 이재한 감
충무로의 전설, 허남진 [1]
-
다르덴 형제의 <로제타>에서 로제타와 어머니가 다툼을 벌이다 로제타가 강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장면은 당혹스럽게 흥미로웠다. 물속에서 온통 진흙투성이라며 소리 질러대는 로제타를, 카메라는 대상에 가깝게 다가가곤 하던 이전 태도와는 다른 태도로 대한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이의 위험에 대한 방관자가 될 때와 마찬가지로 다른 이의 곤경을 지켜보면서도 그 앞으로는 두렵다는 듯 더이상 다가서길 꺼려하는 것처럼 보인다(주인공의 위험을 대하는 이런 식의 거리는 <더 차일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때 다르덴 형제의 다분히 이기적이면서 편의적이기도 한 카메라는 인간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의 손에 들려 인간과 함께하는 기계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바로 그것이 결국에 로제타가 물에서 빠져나왔을 때 영화를 보는 우리의 손을 잡고서 재차 집요한 관찰의 행보에 따라나서게 만든다.
은근히 젖어드는 피로의 감각
비록 엄정한 분류 방식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어떤 영화를
<더 차일드>를 보는 네 가지 시선 [4] - 홍성남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