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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문세윤: 원석이 형은 영화에서 많이 봤지만, 실제로 보니까… 참 어떻게 저렇게 생겼나, 난 정말 예쁘게 뚱뚱한 거구구나 싶었어요. (웃음) 용훈씨는 전에 게임TV에서 프로그램 진행할 때 봤고, 서로 동갑이라는 사실에 놀라고 뻘쭘해하다가, 영화로 다시 만나서 친해졌죠. 덕환이는 딱 봤는데 일단 착하더라고요. 생긴 거 자체가 착하잖아요? 그리고 주연배우로서의 스타성이 있을 것 같지만, 그런 게 없고. (웃음)
김용훈: 세윤씨는 워낙 TV에 자주 나오기 때문에 그냥 연예인 보는 것 같았어요. 어, 간호사 왔구나. “으흐응~~”, 이거 할까봐 좀 겁이 났죠.
문세윤: 제가 이 영화를 찍으면서 배우들에게 보여준 개그가 2억4천만원어치는 될 겁니다.
김용훈: 메이킹 필름 빨리 보고 싶어요. 이건 위험한 발언이지만 영화보다 메이킹 필름이 더 웃길지도 몰라요.
-동구와 덩치 셋은 독특한 캐릭터들입니다. 배우들이 자신의 캐릭터가 되어가는 모습을 서로 지켜
<천하장사 마돈나> 류덕환과 씨름부 3인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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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깨물어주고 싶은 덩치들!
<천하장사 마돈나>의 씨름부는 바깥에서 보기엔 보잘것없을지 몰라도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부원 한명 한명이 빛을 내는 동아리다. 전국대회 우승은 멀기만 하지만 그들은 모두 꿈이 있고 서로를 인정해주는, 덩치만큼이나 넉넉한 관용이 있다. 그러기에 여자가 되고 싶어하는 아이 동구는 모여 앉아 떡볶이 10인분쯤 간식으로 해치우는 씨름부원들 틈에서 행복으로 향하는 험한 길을 계속 걸어갈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성전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장학금에 눈이 멀어 씨름을 시작했지만 이내 씨름을 좋아하게 되어버린 동구, 동구의 향수 냄새를 뿌리치지 않고 약간 헷갈려하기까지 하면서 음미하는 덩치1, 말 한마디 없지만 풍경으로 사라지지 않고 웃음을 주는 덩치2, 간지럼을 너무 타서 상대방과 맞붙기만 하면 혼자 나가떨어지는 덩치3, 그리고 그들 모두가 섞여 빚어진 씨름부라는 또 하나의 존재. 이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함께 영화를 찍었던 시간까지 궁금해졌기에, 늦
<천하장사 마돈나> 류덕환과 씨름부 3인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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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이 영화에서 또 한 가지 의아했던 부분은 가족의 심리적 발전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왜 삼촌과 고모가 쫓아가는가. 보통 이런 영화에서 이런 인물들은 처음엔 조카를 구할 생각이 없다가 점점 달라지고 자기가 해결해야 할 사연을 만들어서 내면화를 통해 외재화된 괴물을 처치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야기 구조다. 그런데 그들은 시작하자마자 급박하다. 이렇게 인물들의 심리가 평면적일 수 있는가. 에필로그에 현서에 대한 어떤 애도도 없다는 것도 신기하다. 아무리 아이가 (세주로) 대체되었다 하더라도 이 밤 속에서의 각성 중에 영화의 음악은 웃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괴물은 낮에만 나타난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밤이 나왔고, 그 밤이라는 실재는 동화라기보다 블랙홀 같은 거다.
허문영: 심리적 발전이 없다는 건 비판할 수 있지만 그건 애당초 봉준호 감독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감독에겐 괴물을 등장시킨 싸움의 과정이 필요했고, 괴물도 가족도 온전한 파토스를 지닌 존재로 그리는 데엔 관심
전영객잔 3인, <괴물>과 <한반도>를 논하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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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씨네21> 566호에 실린 허문영의 평을 보면, 자살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쓰면서 그 사람의 자살을 말리기 위해 달려온 등장인물들이 영화 후반부에 재등장조차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괴물>의 시나리오를 보면 초반에 강두가 낮잠에서 깨어나기까지 실제로 더 많은 신이 있다. 프롤로그가 긴 것이다. 우리가 본 버전은 타협한 버전이다. 프롤로그를 다 찍든지 혹은 다 버리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타협하고 난 결과, 관객은 프롤로그에 구애받지 않고 영화를 본다는 느낌이 있다. 만약 이 프롤로그없이 괴물의 공격으로 영화가 바로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그 프롤로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가.
허문영: 그 점이 봉준호 감독에게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하다. 나에게 선택하라고 했으면 초반의 세신은 드러내는 것이 맞다고 본다. 미군이 독극물을 방류했다는 설정은 나중에 미국의 바이러스 운운하는 내용과 직접 연결되지도 않는다. 그 설정이 없어도 뒷부분이 말이 된다. 자살하는 사
전영객잔 3인, <괴물>과 <한반도>를 논하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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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괴물>은 어찌되었건 대중적인 폭탄이 됐다. 충무로의 이른바 선수들조차 망연자실할 정도로 성공했는데, 2006년 7월 지금 대중에게 <괴물>이라는 영화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소영: 두편 모두 개봉시기가 기획된 영화다. <한반도>는 월드컵 이후 영화로 민족적 감정이 최고조일 때 터뜨렸다. <괴물>은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없는 시즌에 나왔고, CG로 잘 만들어진 괴물을 열대야에 가족끼리 피서용으로 보는 멀티플렉스 영화라는 게 핵심적 역할인 것 같다. 덧붙이면 믿을 만한 배우들 정도? 영화적으로 보자면 <괴물>은 장르영화치고 파토스(감정의 격앙·격정)를 지나치게 아낀다.
허문영: 파토스를 단절한다. 흥행된 영화를 놓고 왜 됐느냐라는 말을 하는 것만큼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도 없다. 기본적으로 대답할 수 없는 문제지만 굳이 이런 게 아닐까 짐작한다면, 그럴듯한 괴물
전영객잔 3인, <괴물>과 <한반도>를 논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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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김소영씨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서처럼, <괴물>을 둘러싸고 괴물적 현상이라 부를 만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는 <태극기 휘날리며> 때와 다른 느낌이다. <괴물>이 어떻게 흥행했는지(이 대담이 이뤄질 시점에 <괴물>의 관객 수는 전국 700만명을 넘어섰다)는 마케팅 담당자들이 논할 일이다. 다만 이런 성공 속에 만들어진 담론과 관련해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 그중 하나는 <괴물>을 영화 안에 가두려는 담론이고, 또 하나는 <괴물>을 ‘2006년 한국’이라 불리는 상황에 대한 정치적 판본의 하나로 읽으려는 담론이다. 또 다른 하나는 둘 사이의 중재라고나 할까, 대중이란 무엇일까란 방식으로 좌표를 재정립하려는 시도다. 매우 복합적인 담론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왕의 남자>의 성공요인 분석 등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담론이 번져나가고 있다. 언론이 만들어낸 문화담론의 헤게모니 장 안으로
전영객잔 3인, <괴물>과 <한반도>를 논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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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가장 어중간한 앵글이 예뻐 보인다”
인터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닌, 그러나 속깊은 인터뷰어 역할을 잘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홍상수의 영화처럼 말하면, <해변의 여인>에 대한 대화는 왠지 그래야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3년 전 박찬욱 감독을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었던 영화평론가 변성찬씨에게 이번에는 홍상수 감독을 만나보면 어떻겠느냐 제안했고,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영화 어떻게 봤냐”는 홍 감독의 물음과 “전작들에 비해 훨씬 풀어져 있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는 변성찬씨의 감상이 오가며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변성찬: 오늘은 <해변의 여인>에 관한 몇 가지 궁금증과 홍상수의 영화에서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확인해보고 싶다. 언제부턴가 당신의 영화가 나올 때마다 변화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물론, 어떤 변화가 언급될 때, 거기에는 일정한 오해와 이해가 항상 동시에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나.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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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게, 차갑도록 명징하게, 그녀를 이해한다
사랑은 종종 오독(誤讀)에서 비롯된다. 희고 어린 진돗개의 이름은 ‘돌이’다. 강아지의 목줄을 틀어쥔 채 나긋나긋한 발걸음으로 바닷가를 산책하던 주인은, 국도변에 돌연 녀석을 버리고 사라진다. 녀석을 거둔 새 주인은 ‘바다’라는 새 이름을 붙인다. ‘돌이’를 기억하던 누군가가 ‘바다’와 재회했을 때, 그 희고 어린 강아지는 ‘돌이’인가, ‘바다’인가. 그러나 해변의 그 여인, 문숙은 반가이 외친다. “똘이야!”
‘ㄷ’과 ‘ㄸ’ 사이, 그 사소하고 위대한 착각이 아니라면 유사 이래 어떤 사랑도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2006년 8월. 홍상수의 일곱 번째 영화 <해변의 여인>을 보았다. 그의 첫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조우한 지 십년 만이다. 십년 동안 나는 레티놀이 듬뿍 함유된 아이크림을 눈 밑에 바르기 시작했고, 내 이름으로 된 적금통장과 투자신탁거래통장을 가지게 되었다. 싫은 사람 앞에서도 방긋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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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홍상수의 고백적 자아들
영화감독이다. 시나리오가 안 풀린단다. 그래서 후배와 함께 지방으로 떠난다. 제작자에게 진행비도 받았겠다, 다리 긴 여자도 하나 끼어 있다. 이제 바람 좋은 곳에 가서 소주나 마시며 연애 좀 하는 거다. 하긴 서울에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 어차피 중앙이 내 것이 아닌 바에야. 그렇게 2006년의 선비는 다시 길을 떠난다. 언제나 그랬듯이….
멀리 삼류소설가에서 출발해 대학 강사와 화가, 영화감독 지망생 등 문화예술계 언저리를 배회하던 홍상수의 고백적 자아는 일곱 번째 영화를 통해 드디어 자신의 본래 직업인 감독으로 돌아왔다. 비로소 맨 얼굴을 드러낸 셈이지만 소주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는 건 여전하고 엇박자 대사와 뒤틀린 자의식도 영락없는 홍상수표 영화의 주인공답다.
전작, <극장전>에서 선배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베꼈다고 투정을 부리던 그 어설픈 충무로의 낭인이 이제는 알아보는 팬도 있고 그의 영화를 좋아해서 같이 자주는 여자도 있는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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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과 진실의 경계에서 유쾌하게 방황하자
소설수업을 받는 학생들에게 나는 말한다. 소설은 갈등구조야. 갈등은 긴장을 조성해. 그 긴장은 독자로 하여금 소설을 읽게 만드는 유인요소가 되지. 긴장감이 있어야 가독성(可讀性)이 높아지거든. 근데 말야. 누워서 떡먹기 식의 긴장감 조성방식이 무언지 알아? 젊은 남녀 두명을 떡하니 소설에 등장시켜 봐. 저절로 텐션이 생겨….
그런데 <해변의 여인>에서는 두 남자 사이에 한 여자를 끼워넣었다. 그러니 긴장감이 배가 될 수밖에. 문숙(고현정)은 원래 창욱(김태우)의 ‘이른바’ 애인이라는데, 배역의 중요도로 따져볼 때 아무래도 문숙은 중래(김승우)와 무슨 일인가를 저지를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여행 첫날밤부터 자버린다. 창욱이 알았다면 기분이 더러워질 수밖에. 하여튼 그렇고 그런 삼각관계.
얼마 뒤 어럽쇼, 요상한 구조가 떠오른다. 이번에는 남자 하나에 여자 둘이 된다. 중래를 가운데 두고 문숙과 선희(송선미)가 배치된다.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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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게 둥글게, 홍상수는 전진한다
홍상수의 영화는 점점 더 많은 선분과 꼭지점으로 이어진다. 이건 7번째 영화 <해변의 여인>의 주인공인 영화감독 중래의 설명에 빚진 것이다. 한편으로, 그 인물 중래를 만든 홍상수가 언젠가는 단단하고 둥그런 ‘구형’에 영화적으로 이르고 싶다고 말한 것에 또한 빚진 것이다.
그 구형에 다다르는 길목에 지금 상투성이 있다. 제목도 <해변의 여인>이다. 이보다 더 어떻게 상투적일 수 있나. 그런데 홍상수는 그 뻔해 보이는 상투성이 도리어 마음에 든다고 흡족해한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라는 혹은 <강원도의 힘>이라는 비범한 제목을 선보였던 게 그다. 그런데 상투성은 지금 제목으로 있을 뿐 아니라, 인물들의 관계에 더 깊숙이 들어가 있다.
홍상수는 연애담을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상투적인 것 중에 가장 널리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들 사이로 그가 뽑아내려는 세상의 실마리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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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만명을 훌쩍 뛰어넘은 <괴물>의 성공 요인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중 하나는 존재하지 않는 괴물을 스크린 위에 실감나게 표현해냈다는 점이다. 봉준호 감독과 제작진의 이야기에 따르면, 괴물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CG 기술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100억원짜리 <괴물> 프로젝트는 아예 출발조차 할 수 없었다. <괴물>의 성패에 있어 핵심적이었던 CG 작업의 중심부에는 케빈 래퍼티가 있었다. 1982년 컴퓨터그래픽 업계에 뛰어든 이래 그는 PDI(Pacific Data Images), ILM(Industrial Light and Magic) 등 CG 업체에서 일하며 <배트맨 리턴즈> <클리프 행어> <고인돌 가족> <캐스퍼> <드래곤 하트> <쥬라기 공원2: 잃어버린 세계>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 <맨 인 블랙2> 등에 참여해왔다. 2001년에는
<괴물> CG 총괄한 오퍼니지의 케빈 래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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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에도 9편(<어느날 갑자기-4주간의 공포> 시리즈의 에피소드들은 독립된 작품들로, 5부작 <코마>는 한 작품으로 친다면)의 한국 호러영화가 관객을 찾았다. 예년에 비해 많은 제작편수와 더불어 OCN과 SBS 등 TV 방송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2006 한국 호러영화를 진단하는 글을 영화평론가 듀나에게 부탁했다. 그는 슬래셔·좀비영화의 출연을 반가워하며서도 올해의 공포영화 중 무려 7편에서 사다코 클론이나 사다코와 가야코 하이브리드 귀신들이 등장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또 몇몇 영화들의 노골적인 표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의 글을 통해 올해 한국 공포영화를 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올해 한국 호러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귀찮은 부분은 여전히 사다코와 가야코의 클론들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여름 시즌에 개봉되고 방영된 9편의 호러영화들(<어느날 갑자기-4주간의 공포> 시리즈의 에피소드들은 독
2006 한국 호러 영화 무엇이 문제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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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는 광대하다
물론 의문표는 남아 있다. 과연 유튜브가 제대로 된 수익모델을 창출하면서도 현재의 자유로운 영상 공동체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혹여나 거대 기업들과의 결탁으로 인해 또 다른 억만장자 장사꾼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닐까. 아직 결론을 유추할 단계는 아니다. 우량아 유튜브는 이제 겨우 1살도 먹지 않은 신생아다. 그것은 젊은 이용자들이 대기업들보다 먼저 발견하고 먼저 시작한 인터넷 미디어의 혁명이다. 냅스터와 구글이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면 마이크소프트와 애플마저) 더벅머리 젊은이들이 창고에서 만들어낸 하나의 신화였듯이, 유튜브 또한 가난한 천재들의 창고에서 태어났다. 유튜브가 보여주는 세계는 할리우드와 화려한 힙합 뮤지션들의 자동차와 어설픈 홈비디오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거대 언론의 카메라에 담지 못하는 현장들이 유튜브의 튜브를 타고 전세계 이용자들의 컴퓨터로 전송된다. <CNN>은 최근 유튜브에서 찾아낸 동영상으로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을 보도했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닷컴의 성공신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