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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는 여성 캐릭터의 종합선물세트 같다. 착하면서 실수투성이인 여자, 둔하면서 감상적인 여자, 터프하면서 마음약한 여자, 푼수에 과격한 여자…. 대부분 ‘착한 나라’에 발을 걸치고 있는데 비해 ‘나쁜 나라’의 기운을 풍기는 이 여자, 단연 튄다. 또랑또랑한 하이톤의 목소리. 극중 정준호의 옛 애인으로 등장한 커리어우먼, 일명 ‘네! 실장님’을 연기한 김서형은 첫눈에 보기에도 ‘딱이다’ 싶을 만큼 서늘한 눈매에 길고 가는 팔다리를 가진 서구적인 미인이다.
“세련되고, 섹시하고, 화려했으면 좋겠어요.” 캐스팅 때의 주문이었다. 등장부터 신은경을 긴장시켜야 하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주인공과 대조되는 설정을 요구하는 인물이었다. 대사 중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 ‘이강연’ 대신에 처음 시나리오에는 그저 ‘킹카녀’로 표기되어 있었던 역할. 즉 ‘도도하고 잘 나가는 현대 여성’의 이미지만 담아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김서형이 연기하는 이강연은 조금 다르다.
킹카녀와 푼수녀 사이,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의 김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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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봄은 직원들이나 내놓는 영화의 분위기가, 서울의 강북보다는 강남의 그것에 가깝다. 사무실도 강남구 청담동에 있다. 세련되고 쿨해 보인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쓰리> 제작발표회 겸 해서 열었던 봄 주최의 파티는 살사댄스 파티였다. 대표 오정완(38)씨의 외모나 취향도 마찬가지다. 그러고보니 그와 비슷한 또래의 심재명씨가 대표로 있는 명필름은 강북의 분위기다. 사무실도 대학로에 있다.
이재용, 김지운 등 봄에서 영화를 찍었고 다음 영화도 봄에서 준비중인 두 감독도 사람이나 영화의 스타일이 세련됐다. 오씨까지 포함해 ‘멋쟁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나는 상업영화만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부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해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오씨의 모습도 쿨하다. “명성뿐 아니라 경제적 성취도 따라줘야 다음 세대들이 영화일에 더 야심차게 달려들지 않을까요.”
그러나 좀더 들여다보면 오씨에겐 흔히 ‘386세대’라고 말하는, 그 연배 세대의 냄새가 남아 있다. 10년 전
아시아 3개국 합작영화 <쓰리> 한국 제작사 봄 대표 오정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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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볼>은 사형수이던 남편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여인이 우연히 바로 그 남편의 사행집행인이었던 남자와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가슴 울리는 영화다. 할리 베리가 비운의 여인 레티샤로, 빌리 밥 손튼이 할리 베리의 상대역인 사형집행인 행크로 분해 절절한 내면연기를 선보인다. 할리 베리는 이 영화로 <물랑루즈>의 니콜 키드먼을 제치고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았고, 베를린영화제와 전미비평가협회의 여우주연상도 휩쓸었다. 전미비평가협회는 남우주연상까지 빌리 밥 손튼에게 줘 <몬스터 볼> 두 주연배우의 연기를 확실히 인정했다.레티샤는 사형수 남편 로렌스(퍼프 대디)를 11년째 면회하며 초콜릿 중독에 걸린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외로운 여자다. 남편의 면회를 다녀온 어느 날, 그녀는 이번 면회가 마지막 면회가 되고 곧 남편의 사형집행이 이루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오랫동안 끊었던 술에 다시 손을 댄다. 아들이 유난히 초콜릿을 밝히던
해외신작 <몬스터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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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몰래 팬티를 마구 버려야만 했던 그 시기, 머릿속에 온통 야한 걸로만 가득 찼던 답답했던 그 시기,국어사전에서 야한 단어들만 봐도 힘이 들어갔던 왕성했던 그 시기….영화 <몽정기>는 그 시기 중학생들의 성담(性談)을 소재로 한 코미디이다.부산의 한 학교에서 촬영중인 <몽정기>는 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여 몽정기에 돌입한 중학생 ‘동현’과 그의 친구들이 장소와 도구를 가리지 않고 성 호르몬 해소에 열을 올리는 이야기가 주축이다. 그리고 그들의 주대상은 바로 지적이고 육감적인 교생 ‘유리’. 유리는 또한 과거 자신의 은사인 수학선생님을 사랑하고…. 이 셋 사이의 묘한 삼각관계가 진행된다. 한마디로 <아메리칸 파이>의 중학생판이라고나 할까. 영화 속에는 참외, 컵라면, 철봉 등 다양한 소품들이 등장하는데 이 물건들이 어찌 쓰일지는 영화가 개봉될 때까지 기다려보는 수밖에….영화의 중요한 한축을 담당하게 될 사춘기 소년들 역은 경쟁률 150:1의 오디션을
<몽정기>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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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어디서 ‘스잔’을 들먹여? ‘경아’가 이렇게 멀쩡하게 눈뜨고 있는데.” <스잔>의 김승진이냐, <경아>의 박혜성이냐. 80년대에도 우상을 둘러싼 청춘들의 설전이 있었다. H.O.T냐 젝스키스냐처럼 말이다. <품행제로>의 두 여고생이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도 그 때문. 면도칼 씹는 오공주파 보스 나영(공효진)과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쓴 모범생 민희(임은경)의 1라운드 대결은 뮤직박스 쟁탈전이지만, 둘은 얼마 뒤면 ‘품행제로, 비행만점’의 전설적인 ‘고삐리’ 중필(류승범)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여야 하는 연적이 된다.“빠르게 빠르게! 더 퍼져도 돼. 크게 돌아!” 8월14일, 광주에 위치한 송정리 롤러스케이트장. 오전에 연출부, 촬영부 가릴 것 없는 스탭들의 열띤 독려 아래 50여명의 보조 출연자들과 함께 롤러스케이트를 타며 얼굴이 번들거리도록 땀을 뺐던 임은경, 공효진, 두 배우는 잠깐의 휴식 이후 계속된 오후 촬영에서도 여전히
<품행제로>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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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세 미키오(成瀨巳喜男·1905∼69), 일본영화 수입개방이 된 지 이미 오래지만, 그는 한국에서 아직도 미지의 작가다. 그러나 그는 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와 함께 일본영화 1세대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영화감독들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아니, 일본영화사에서조차 본격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진 건 1980년대부터라고 말하는 편이 옳다. 1920년, 열다섯 나이에 쇼치쿠 영화사에 입사하고 그 10년 뒤인 1930년에 <찬바라 부부>로 감독 데뷔를 한 나루세 미키오는, 1930년대와 1950년대에 <아내여 장미처럼>(1935), <츠루하치 츠루지로>(1938), <밥>(1951), <산의 소리>(1954), <부운>(1955) 등의 대표작을 발표했다. 보잘것없는 이들의 삶에 똬리튼 그의 영화세계는 오즈 야스지로와 종종 비교되지만, 오즈와는 또 다른 매력과 세계관으로 규정될 수 있다.8월24일부터 30일까지 7
나루세 미키오 회고전,8월24일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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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나루세 미키오의 초창기 걸작 <아내여 장미처럼>(1935)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토키영화로는 뉴욕에서 최초로 상영된 작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버라이어티>에 실린 이 영화의 리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예술을 애호한다고 떠드는 소수의 사람들에게서나 적당히 인기를 끌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실패할 것이고.” 일본에서는 대단한 인기를 끈 나루세의 영화에 대한 이런 식의 인색한 반응은, 황금기 일본영화의 대표적인 감독들 가운데 하나인 나루세가 이후 오랫동안 국제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게 될 것임에 대한 예견이었던 것일까?나루세는 <아내여 장미처럼>이 처음 미국 땅을 밟은 지도 거의 반세기가 지난 다음 유럽과 미국에서 그의 회고전이 열리면서 비로소 국제적인 재평가의 대상이 된 영화감독이다. 죽은 지 15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는 뒤늦게 그의 영화들을 보고 놀란 서구의
나루세 미키오 회고전,8월24일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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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세의 인물들 - ˝살겠다!˝우리가 만약 나루세적인 세계라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면 그 세계의 거주자로서 우선 편입될 만한 인물들은 가족과 자기 자신의 삶을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이다. 나루세의 영화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문제를 주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돈을 빌림으로써 해결하려 한다(아니, 그들의 처지상 그럴 수밖에 없다). 예컨대, 오빠로부터 소아마비로 고생하는 아들을 수술시켜야 하니 수술비를 마련해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는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1960)의 게이코가 그런 인물이다. 어떤 인물이 누군가에게 돈을 빌린다는 것은 나루세의 영화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장면들 가운데 하나다. 이것은 돈을 빌리는 나루세의 주인공들을 종종 무능력한 기식자와 거만한 빚쟁이 사이에 끼여 어쩔 줄 모르는 인물로 만들곤 한다. “영화역사상 가장 (섬세하게) 물질주의적인(materialist) 영화감독”- 저명한 영화평론가 필립 로페이트의 말을 빌리면- 인 나루세는 이런 식
나루세 미키오 회고전,8월24일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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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루하치 쓰루지로 鶴八鶴次郞, 1938년, 흑백, 89분메이지 시대 말기를 배경으로 여성 사미센 연주자 쓰루하치와 남자 가수 쓰루지로의 사랑과 갈등을 담은 ‘예도물’(藝道物) 장르의 영화. 젊은 나이의 두 사람은 인기가 높아서 극장 흥행주들에게 많은 돈을 벌게 해준다. 그러나 매번 공연이 끝날 때마다 싸우기 일쑤다. 두 사람은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했지만 둘 사이의 다툼이 계속 과열되면서 결국에는 헤어지게 된다. 조지 래프트, 캐롤 롬바드 주연의 미국영화 <볼레로>(웨슬리 러글스 감독, 1934)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원작보다 훨씬 뛰어난 수준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 훨씬 ‘모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밥 めし, 1951년, 흑백, 96분나루세 미키오는 일본의 근대 여류 작가 하야시 후미코(1904∼51)의 소설을 좋아해 그녀의 소설 여섯편을 영화로 만들었는데, <밥>은 그 여섯편 가운데 첫 번째 영화에 해당한다. 다른 한편으로 플롯은 최소화하고 인
<쓰루하치 쓰루지로>등 상영작 10편 미리보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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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 晩菊, 1954년, 흑백, 101분하야시 후미코가 쓴 세편의 단편소설을 한편의 영화로 옮겼다. 과거에 게이샤였던 세명의 중년 여성들을 담담하게 관찰하면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 사랑, 고독 등과 같은 것들에 대한 예리하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쿄의 한 안락한 집에서 살고 있는 긴은 인근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사채업자. 그녀의 채무자들 가운데에는 과거 그녀와 함께 게이샤 생활을 했던 토미와 타마에가 있다. 이 두 여인은 돈이 없는 것도 걱정이지만 자신들을 떠나려 하는 자식들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영화평론가 데이브 커는 <만국>을 두고 “나루세의 특징적인 무드가 여기서 그 형식적 정점에 올랐다”고 평했다. ----부운 浮雲, 1955년, 흑백, 123분하야시 후미코의 소설을 각색한 <부운>은 나루세 미키오의 명실상부한 대표작으로 꼽을 만한 영화다. 영화는 전쟁 동안 동남아시아에서 함께 근무했다가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전쟁 뒤 일
<쓰루하치 쓰루지로>등 상영작 10편 미리보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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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세네프영화제가 8월23일부터 29일까지 일주일 동안 문화일보홀과 정동A&C에서 열린다. 세네프영화제는 디지털영화를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디지털영화제로서 부산, 부천, 전주 등 국내 3대 국제영화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디지털영화라는 좀더 집중된 테마를 가지고 형식적 새로움과 실험성을 전시하는 개성있는 영화제다. 세네프영화제는 1999년 시작된 이래 올해로 3회째를 맞으면서 점차 세계 디지털영화의 현주소를 모색하는 장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올해의 주제는 ‘형식의 충격’. ‘상상, 공감, 변화’라는 세네프의 기본 캐치프레이즈하에서, 올해는 좀더 새로운 형식적 실험을 감행한 작품들에 주목한다.올해 세네프영화제는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경쟁부문인 디지털익스프레스 부문에 터키, 헝가리, 포르투갈, 일본 등에서 온 8작품, 유명 작가들의 디지털영화를 모은 퍼스펙티브 디 부문에 에릭 로메르, 야구치 시노부의 작품을 비롯한 8작품 등을 선보인다. 이 밖에 ‘프로듀서의 영화’
디지털전문영화제 제3회 세네프영화제 8월23일부터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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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헝가리/졸탄 카몬디/2002년/98분/35mm&DV35mm 흑백필름과 DV컬러를 혼용해 필름과 디지털의 ‘맛’의 차이를 한눈에 알게 하는 흥미로운 실험작. 원경에서는 주로 흑백필름을, 클로즈업에서는 주로 컬러디지털을 써서, 필름의 클래식한 안정감과 디지털의 다큐멘터리적 거친 느낌을 강하게 대비시키고 내러티브를 낯설게 하는 효과를 낸다. 이야기는 홀어머니와 사는 19살 젊은이 마치를 중심으로 그가 어머니 안나, 애인 엘비라, 10살짜리 집시소녀 줄리,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된 아버지와 맺는 여러 가지 관계를 따라간다. 아버지의 회사에 정체를 숨기고 취직해 양파깎기, 짚더미 쌓기 등 험한 일을 하며 아버지에 접근해가고 금발 미녀 엘비라와 또래다운 사랑을 나누고 은행을 해킹해 불법으로 돈을 빼내다가 감옥신세까지 지는 마치, 그런 마치에게 과잉된 집착을 보이는 어머니 안나, 자신을 보살펴주는 마치를 남편으로 여기고 엘비라를 질투하는 집시소녀 줄리 등이 유머와 광기의 경계를
디지털 익스프레스 부문 - 신인감독 작품 8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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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션>영국/톰 클레이/2001년/65분/DV음악과 영화를 넘나드는 1979년생 호기심 많은 영국 아티스트 톰 클레이가 슈퍼마켓에서 일한 돈을 모아 만든 저예산 디지털영화. 어느 노숙자에 관한 이야기로, 사실적인 현실묘사에서 환상적인 공간으로 이동하여 눈길을 끈다. 대상과 카메라의 관계를 전혀 고민하지 않는 듯 휘두르는 카메라가 생경하고 거친 이미지들을 담아낸다. ---------<심야>포르투갈/클라우디아 토마즈/2000년/73분/DV 리스본의 두 마약중독자의 삶에 관한 다큐멘터리적 드라마. 감독 자신이 여주인공을 맡았다. 토마즈의 감독 데뷔작으로, 2000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거꾸로 뛰어라>미국/해리 도지·실라스 하워드/2001년/98분/DV연출과 시나리오집필을 함께한 두 여자 해리 도지와 실라스 하워드의 ‘버치(남자 역을 하는 여자동성애자)영화’. 해리 도지와 실라스 하워드가직접 두
디지털 익스프레스 부문 - 신인감독 작품 8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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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코 픽션>일본/야구치 시노부·스즈키 다구치/2002년/65분/HG720P<워터 보이즈>의 야구치 시노부가 <원피스 프로젝트>를 함께 만든 친구 스즈키 다구치와 함께 일본 파르코 백화점의 지원을 받아 다섯개의 경쾌한 에피소드를 엮었다. ‘파르코’라는 이름의 근원을 밝히는, 서로 머리와 꼬리를 맞대는 사건이 절묘하게 이어지는 첫 번째 에피소드 <파르코 탄생>부터 각기 신비하거나 어처구니없거나 따뜻한 사연들이 펼쳐진다.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은 두 번째 에피소드 <입사시험>. 파르코 백화점에 들어간 신입사원이 이상한 임무를 수행하는 이 에피소드의 끝은 세 번째 <하루코>의 결정적인 단서가 되고, 각각의 에피소드는 그런 식으로 또 다른 에피소드에 끼어든다. 친한 친구 둘이 농담하며 낄낄대듯 만든 <파르코 픽션>의 재기는 파나소닉 HG720P 카메라의 자유로운 움직임에 힘입은 것. 딸깍대는 소음으로 한편의 공연
퍼스펙티브디 부문 - 유명 작가들의 디지털 영화 8편(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