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영화의 흐름오늘, 여기, 우리는...‘한국영화의 흐름’에서는 한국영화의 오늘을 확인할 수 있는 기성감독과 신인감독의 영화를 모았다.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로 주목받았던 남기웅 감독의 신작 <우렁각시>가 전주에서 첫선을 보인다. 불법 총기제조장인 ‘뒷거래철공소’ 직원 건태가 어느 날 우렁이를 사람으로 변하게 하는 독을 얻고 우렁각시를 만난다. <대학로…>에서 액션과 누아르의 형식을 마구 뒤섞었던 남기웅 감독은 이번엔 괴수영화 등 B급영화 스타일을 엮어 ‘디지털 동화’를 만들었다.‘일흔이 넘은 노인의 사랑’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적인 <죽어도 좋아>(박진표 감독)는 실제 주인공이 출연해 노년의 사랑과 섹스를 낱낱이 재연한다. 카메라는 담담하게, 때로는 쓸쓸하게 그들을 지켜본다. <아미그달라>(이충직, 이현승, 김의석, 한상준, 김명화 감독)는 ‘기억’을 주제로 만든 5
한국단편의 선택: 비평가 주간, 한국영화의 흐름
-
중국과 일본의 전쟁영화: 전쟁의 유령‘중국과 일본의 전쟁영화: 전쟁의 유령’에서는 일본과 중국의 전쟁 관련 영화 6편을 소개한다. 유실된 것으로 알려졌다가 1976년 미국에서 발견된 다큐멘터리 <싸우는 군인들>(Fighting Soldiers, 일본, 1939)은 특히 눈길을 끈다. 일본 다큐멘터리의 원조격이자 평단에서 반전작가로 이름높은 가메이 후미오의 작품으로, 1939년 전쟁시기에 만들어져 직접적인 전쟁을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전쟁의 공포를 은유적으로 잘 표현한 수작이다. 가메이 후미오의 또 다른 다큐 <일본의 비극>(A Japanese Tragedy, 1946)은 만주사변에서 태평양전쟁까지 일본의 침략사를 뉴스릴을 사용해 설명하면서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이유가 외국시장을 얻기 위함이었음을 고발한다.<잊혀진 군대>와 <그 눈물 다시 한번>은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에 대한 ‘일본의 참회록’이다. 일본 뉴웨이브의 기수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중국과 일본의 전쟁영화·어린이 영화궁전 부문
-
할리우드가 꿈의 공장이라는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는 얘기다. 영화로 세상을 배우고 영화로 꿈을 꾸는 이들에게 할리우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그러나 영화는 어디에서 누구와 찍든, 그 자체로 험하고 지난한 작업이다. 낯설고 물설은 땅에서 마음이 맞지 않는 이들과 손발을 맞추는 일이 고통스런 투쟁을 수반한다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충무로에서 <축제> <장밋빛 인생>의 시나리오를 썼던 육상효 감독은 미국 유학의 길에서 첫 영화 <아이언 팜>의 열쇠를 쥐었다. 그리고 글쟁이 특유의 예민한 촉수로 체험한 할리우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할리우드 키드가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그래서 행복했을까. 대신 그는 이런 얘길 들려준다. 환상을 접고, 현실을 만나자. 영화를 만드는 건 언제나 어디서나 외로운 싸움일지니. 편집자 주1999년 10월수업을 곱씹으며, 모욕을 되씹으며지난밤을 꼬박 새우다. 그래도 스스로 대견하다. 25장짜리 트리트먼트를, 그
<아이언 팜>, 할리우드에서 한국영화 만들기
-
2001년 10월감독 ‘쌩 효 육’사무실에 입주했다. 한평도 안 되는 아주 비좁은 사무실을 감독방이라고. 내 표정을 보고 미국 프로듀서가 그래도 창 밖으로 보이는 게 파라마운트 스튜디오라고 너스레를 떨고 나간다. 그 파라마운트 스튜디오를 본다. 난 충남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605번지에서 태어났다. 요즘 드라마 <상도>의 촬영지가 돼서 갑자기 고향이 유명해졌단다. 그래 여기가 할리우드다. 충남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605번지 육상효 많이 컸다. 파라마운트 스튜디오가 바로 건너 보이지 않는가. 난 내 방에서 그 스튜디오를 건너다 본다. 이기성 조감독이 와서 멋지게 만들어진 사무실 팻말을 자랑한다. 아이언 팜, 감독 쌩 효 육.널 상처주지 않으면 내가 상처받는다스토리보드 영의 그림 그리는 속도가 오늘은 유난히 느리다. 말은 안 하지만 내 컷 아이디어를 맘에 안 들어하기 때문에 속도가 느려지는 거다. 봉황의 뜻을 뱁새가 어찌 아랴. 구조와 캐릭터. 이게 이 코미디의 두축이다.
2001. 10 ~
-
-
2001년 11월“충남 금산에서 왔소”이틀째의 자동차 신 촬영이다. 오늘은 앵글을 위해 숏메이커라는 이동형 크레인도 왔다. 트럭 위에 탐재된 숏메이커가 썩 멋지다. 코리아타운의 한 중심 올림픽 대로를 달리면서 촬영을 한다. 한국 선술집에서 나오는 한 취객이 영화 촬영 하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손을 번쩍 들면서 “재키챈!” 하고 외치다가 차 안에 차인표가 앉아 있는 걸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어, 진짜 차인표다!” 하고 외친다. 로스앤젤레스 경찰이 앞뒤에서 우리를 호위한다. 무섭기만 하던 미국 경찰이 나를 호휘하는 것 같아 기분좋다. 신호대기를 하는데, 옆차의 미국 사람들이 신기한 듯 본다. 그들을 아주 늠름한 표정으로 본다. “그래, 내가 바로 한국 충남 금산 출신의 육상효다.”2001년 12월촬영은 싸움이다촬영 12일째 배우들의 체력이 눈에 띄게 떨어져간다. 차인표의 피부가 부쩍 거칠어졌다. 얼굴도 눈에 띄게 빠졌다. 배우도 힘든 직업이다. 차인표는 촬영기간 내내 쉬는 날이
2001. 11 ~ 2001. 12. 31
-
또다시 반전이다. 1980년대의 침체를 <플레이어>(1992)로 보기 좋게 역전시켰던 로버트 알트먼 감독은, 장 르누아르의 시선으로 추리한 앙상블 미스터리 <고스포드 파크>로 근작 <진저브레드 맨>과 <닥터 T>가 남긴 미진한 뒷맛을 후련하게 일소했다. <고스포드 파크>에서도 인간 군상들의 쇼는 알트먼 영화에서 늘 그렇듯이 난장판으로 끝나고, 그 아수라장을 빚어나가는 솜씨는 경이롭다.유사시 연출을 대행할 감독을 두고 메가폰을 잡는 77살의 나이에도 인간 일반과 주류 할리우드를 향한 독설을 누그러뜨릴 줄 모르는 로버트 알트먼 감독은 지금도 차기작을 위해 신발끈을 고쳐 매고 있다. 최근 본 할리우드영화를 묻는 질문에 “기억이 잘 안 난다”라고 대답하는 이 오만하고 냉정한 노장의 스테이지 뒤쪽을 영화평론가 유운성이 들여다보았다. 편집자1990년은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사망한 지 꼭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때 구로자와 아키라와
<고스포드 파크>, 혹은 인간 난장의 오만한 지휘자 로버트 알트먼
-
알트먼의 명성을 확고히 한 영화는 블랙코미디 <매쉬>(1970)이다. 이후 알트먼 영화가 세련된 복합성을 지닌 작품으로 변화하는 것은 촬영감독 빌모스 지그몬트의 참여로 인해 비로소 가능해졌다. 지그몬트는 <맥케이브와 밀러부인>(1971), <이미지>(1972) 그리고 <기나긴 이별>(1973)에서 알트먼과 함께 작업했다. 그는 당시 막 명성을 쌓아나가기 시작하던 새로운 감독들과 많은 작업을 같이 했는데, 그중에는 스티븐 스필버그(<슈가랜드 특급>(1974), <미지와의 조우>(1977)), 마이클 치미노(<디어 헌터>(1978), <천국의 문>(1980)), 존 부어맨(<서바이벌 게임>(1972)) 등이 포함되어 있다.70년대 이루어진 장르영화의 쇄신에 지그몬트의 유려한 영상이 큰 몫을 담당했음을 주목해둘 필요가 있다. 마이클 치미노의 대작 서부극 <천국의 문> 작업 당시, 지
로버트 알트먼의 동료들
-
<집으로…> 가는 길에서 한 걸음 떨어져 뒷짐만 지고 서 있는다는 건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힘들다. 꺼슬한 손, 굽은 허리, 할머니의 느릿한 몸짓은 때묻은 유년의 문지방 안으로 어느새 관객들을 불러들인다. 그리고 그 풍경에서 우리는 한때 상우였던 자신을 본다. 김치를 찢어 밥 위에 얹어주는 할머니에게 입을 삐죽이며 앙탈하고, 마른 가슴팍을 끝내 밀쳐내던 못된 아이를. 이 영화를 흐뭇한 추억에 젖어서만 볼 수 없는 것은 그 넘치는 사랑을 당연하게 받고 함부로 대했던 죄책감과 되갚을 길 없는 쓸쓸함 때문일 것이며, 극장 문을 나와서도 ‘내 할머니·외할머니’께로 향한 길은 각자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다. 결국 응석을 그치는 손주가 밤새 써서 건네는 크레용 편지처럼,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께 바친다”는 이정향 감독의 헌사처럼, 여기 <집으로…>를 본 평론가, 작가들이 보내온 글은 그 꼬불꼬불한 마음의 길을 타박타박 따라가며 쓴 엽서다. 편집자학식높고 교양있는
`액자` 속의 외할머니
-
형,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우리 속담이 저주스럽습니다. 사이버펑크를 얘기하는 시대에 무슨 놈의 얼어죽을 색깔론입니까. 홧술깨나 마신 듯한 후배가 전화로 분통을 터뜨린다. 어느 문학잡지의 추천으로 시단에 나온 후배는 자기 본업이야말로 재야 영화평론가라고 떠들고 다닌다. 그 바닥 인간들 수준이 본래 그런 걸 어떡하냐는 내 말투가 못마땅했는지 녀석은 영화판을 겨냥한다. 한국영화와 조폭의 인연 한번 질깁디다. 욕을 못해 환장했습니까. 도대체 왜 그리 거칠고 시끄럽죠? 세상도 나도 물 속으로 가라앉았으면 좋겠어요. 침묵이 그립습니다.침묵이 그리운 녀석에게 침묵의 힘을 보여주기로 했다. 비를 맞으며 매표소 앞에 늘어선 사람들을 보는 감독보다 행복한 이가 또 있을까. 부럽고 흐뭇한 풍경이었다. 닭백숙을 뜯을까, 자장면을 말아올릴까. <집으로…> 를 보고 나온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하던 끝에 중국집에 들어갔다. 아무리 자장면이 맛있어도 옆에서 짬뽕 국물 들이키는 소리가 들리면
마침내 망막에 남은, 주름진 할머니의 실루엣이여!
-
나에게 할당된 원고지가 10장 이내인 관계로, 필요한 몇몇 정보를 짧게 설명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정보 1) 난 외할머니가 계시다. 아직까지 건강하시다.(정보 2) 외할머니랑은 다섯살 때부터 여덟살 때까지 같이 살았었다.(정보 3) 외할머니랑 살던 시절, 옆집엔 인종이란 동갑 친구가 살았었고, 양 집안간엔 잦은 왕래가 있었다. 그래서 인종이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날 어떻게 키우셨는지 정확히 기억하고 계시다.할머니가 나한테 뭘 해주셨더라?난 가끔씩 인종이 집엘 놀러 간다. 그때마다 인종이 어머니는 날 반갑게 맞이해주시고는, 인종이가 여자친구가 없다면서 걱정걱정을 하시다가, 5만원 상당의 팔뚝만한 굴비를 구워주신다. 그리고는 내 외할머니께서 건강하신지 안부를 물으신다. “너 니네 외할머니께 잘 해 드려야 된다. 너한테 정말 잘 해주셨다.”솔직히 난 외할머니께서 나한테 뭘 얼마나 잘 해주셨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내가 기껏 기억하고 있는 건, 엄마한테 왜 등을 안 긁어주냐고
상우는 반드시 큰 돈을 벌어야 한다
-
김상진 감독과 장규성 감독. 두 사람은 ‘부적절한 관계’다. 그렇게 지낸 지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래서인지 요즘 두 사람은 굳이 숨기려고 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필요할 때면 실컷 까발리고 다닌다. “이번에 <재밌는 영화> 만든 장규성이, 사실 내가 낳았다”라거나, “저, <신라의 달밤>의 김상진 감독 새끼거든요” 하고.그저 웃자고 하는 농담이 아니다. 두 감독의 나이 차이는 고작해야 세살. 하지만 장 감독에게 김 감독은 그것 ‘이상’이다. 적어도 “웃길 수만 있다면, 망가져도 좋다”며 당분간 코미디 장르만을 시추하겠다는 장 감독에게 김상진 감독은 지금까지 믿음직한 길잡이였다. <돈을 갖고 튀어라>부터 <투캅스3>까지 조감독을 맡아 자신을 믿고 따라준 장 감독에 대한 김 감독의 애정도 마찬가지.4월12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장 감독의 데뷔작 <재밌는 영화>의 첫 시사회가 있던 날. 낮술이라도 한잔 걸친 듯한 김 감독의 상
전반전 - <재밌는 영화> 재밌는 대담
-
김정은이 자리를 뜨자 그 사이를 틈타 두 감독은 각각 자기 일에 열심이다. 김 감독은 사진기자에게 “<광복절 특사> 아시죠. 제 작품도 좀 신경 좀 써주세요”라고 홍보전을 펼치고, 장 감독은 휴대폰을 들고서 “뭐, <할리데이> 원곡은 안 된다는 게 말이 돼”라고 다소 언성을 높인다. 막간 5분이 지나고, 두 사람 다 “이제 됐죠?”라고 한마디. 바쁜 모양이다. 그러나 사제간의 허물없고 뼈있는 대화가 궁금한 이들은 “아니, 이제 시작인데요”라고 응수했다. 후반전은 그렇게 재개됐다.김상진 >>> 지금이 비수기라 어떨지 모르지만 난 폭발적인 관객층을 모을 것 같아. 다시 보는 관객도 꽤 많을걸.장규성 >>> 전 신기한 게 감독님의 바로 그런 긍정적인 반응이거든요. 한없이 유치하고 황당하다고 하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아, 그런데 잘될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아요?김상진 >>> 그냥 감이지 뭐. 그걸 어떻게 따지냐. 다소 그런
후반전 - <재밌는 영화> 재밌는 대담
-
<생활의 발견>엔 비밀이 있다. 홍상수 감독은 훨씬 부드럽고 평이한 듯 보이는 <생활의 발견>에 그 비밀을 전작들에서보다 더욱 깊이 묻어놓았다. 정성일씨는 홍상수 감독이 면밀한 계산으로 혹은 직관과 무의식으로 묻어놓은 비밀을 찾아나섰다. 이 비밀 찾기 여행은 간단하지 않다. 꽤 길고 난코스도 있지만, 무사히 완수한다면 보답이 있다. 영화를 읽는다는 것의 진정한 기쁨. <생활의 발견>은 정말 비밀투성이었다! 편집자나는 그 작품을 전체적으로 다시 한번 읽고 나서 나의 생각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허구적 작품 속에서 독자는 매번 여러 가지 가능성과 마주치게 되는데, 그는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나머지들은 버리게 됩니다. (중략) 이렇게 해서 그는 다양한 미래들, 다양한 시간들을 선택하게 되고, 그것들은 무한히 두 갈래로 갈라지면서 증식하게 됩니다. 여기서 이 ‘이야기’가 가진 모순들의 정체가 밝혀집니다. 호르헤 보르헤스, <끝없이 두 갈
성일, 상수의 영화를 보고 회전문을 떠올리다
-
2일어나는 것, 즉 사실은 사태들의 존립이다. 그러니까 이 산술법과 달리 영화 안에서 벌어진 사실들로 다시 말할 수도 있다. 우선 이 영화를 나누는 방법은 날짜로 계산하는 방법이 있다. 여기에는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이 영화의 홍보 카피는 ‘그의 본色과 그녀들의 본心이 함께하는 6박7일 트루(?) 로맨스’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5박6일의 여행이다. 더더구나 ‘그녀들과 함께하는’ 로맨스가 시작되기 위해서는 여기서 다시 하루를 빼야 한다. 만일 6박7일이 맞으려면 선배 성우의 전화를 받고 집에 가는 길에 ‘트루 로맨스’가 한번 있어야 한다. 여기서 ‘그녀들’도 모호하긴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춘천에 가서 옷 벗는 술집에서 파트너와 ‘트루 로맨스’가 하나 더 있어야 이 셈이 맞기 때문이다(만일 술집 파트너들과 옷벗기 내기 한 것도 ‘트루 로맨스’라고 해도 5박6일이 맞다). 그러나 경수는 (추정하건대) 서울에서 선배 상우의 전화를 받고 그냥 집에 가서 잤으며, 춘천의 첫날밤에
제2장 자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