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토록 할말이 많았을 줄은, 미처 몰랐다. 한 사람이 두개씩, 세개씩 끝도 없이 쏟아놓던 질문들, 질문들. 열혈 영화광들이 열혈 영화감독들을 만난 자리는 스파크가 일 만큼 열띠었다. 하긴, 그동안 관객이 감독을 접선할 수 있는 기회는 너무 없었다. 고작 영화제에서 영화상영이 끝난 뒤 20분 정도 마련되는 짧은 Q&A 시간, 아니면 대학에서 간헐적으로 열리는 특강이 다였으니.
창간 7주년이 되어 <씨네21>은 ‘진이 빠질 만큼’ 길고도 긴 감독과 관객간의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고 장진, 류승완, 김지운, 박찬욱 감독을 섭외했다. 최장 3시간 동안 관객 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자리, 감독들은 어느 때보다 긴장했다. 많은 독자/관객이 찾았고, 때로는 감독의 입이 헤벌어질 만한 사랑 고백을, 때로는 감독의 이마에 진땀이 흐를 만한 집요한 추궁을 서슴없이 했다. ‘도대체 감독은 어떻게 되냐’, ‘시나리오는 도대체 어떻게 쓰냐’, ‘내 나이 때 당신은 뭐했냐’ 등등 젊은 관객이 젊은
젊은 감독, 관객을 만나다 [1] - 장진, 류승완 편
-
“영화 많이 좋아하지 마세요, 아류가 돼요”
이날은 원래 박찬욱 감독과의 대화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전주영화제에서 <공동경비구역 JSA> 상영행사에 참가하고 올라오던 박찬욱 감독은 6시쯤 차가 너무나 막혀 제 시간에 닿기 힘들 거라는 소식을 전해왔고, <씨네21> 진행자는 부랴부랴 5월2일 순서로 예정돼 있던 장진 감독님을 모셨습니다. 박찬욱 감독을 만나러 참석했던 독자 여러분, 그리고 5월2일 장진감독과의 대화를 기다리던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드립니다. 이탈리아의 ‘우디네영화제’에 참가했다가 서울에 온 지 불과 2시간 만이라 경황도 없으셨을 텐데 특유의 재치있는 솜씨로 행사를 이끌어준 장진 감독님께는 감사하다는 말씀을 다시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장진입니다. (박수) (마이크를 뽑아들고 일어서며, 사회자석에 앉아 있는 남동철 기자에게) 여기 계속 앉아 계실 건가요? (남동철 기자, 웃으며 내려간다. 단상 테이블에 걸터앉는 장진 감독.)
젊은 감독, 관객을 만나다 [2] - 장진 ①
-
감독은, 카리스마
-장진 감독한테 딴죽 거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시나리오는 좋은데 영화가 영화적이지 못하고 연극적이다, 라는 거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좋아하는 한국 감독, 외국 감독을 알려주세요.
=연극적이다, 영화적이다, 이런 말을 저는 별로 고민 안 해요. <기막한 사내들> 내놨을 때 모 기자가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뭐라고 썼죠? 남 기자님? ‘비영화적’이라고 했는데, 그리 나쁘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제 영화를 보고 관습화되지 않은 것에 반응을 했거든요. 저는 영화 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영화 보는 걸 좋아했다면 양식 같은 걸 따라했을 텐데, 다행이다 싶었어요, 본 게 없어서. 영화에서 화자의 숨소리가 느껴진다면 연극적인 거고, 어떤 배우의 다이얼로그에서 다른 서브텍스트, 다른 감성이 연상된다면 그건 또 문학적인 거겠죠. 어떤 영화가 연극적이다, 문학적이다, 하는 것은 객관적인 게 아니에요. 만약 영화가 안 좋다면 ‘쟨 영화를 못 만들었어’
젊은 감독, 관객을 만나다 [3] - 장진 ②
-
(두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일어나) 안녕하세요. 영화배우 류승완입니다. (웃음) ‘나의 인생 나의 영화’라는 걸로 아무 얘기나 하라는데, 학교 다닐 때 보면 듣기 싫은 얘기 자기 혼자 몰입해서 막 떠드는 사람들 짜증나잖아요. 지금 지나다가 그냥 시간이 남아서 들어오신 분도 있고 하실 테니까. 그냥 류승완이라는 사람이 영화를 만들기까지 어떻게 살았나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저는 1973년 12월15일 충남 온양에서 태어났구요, (웃음) 다섯살 땐가 여섯살 때, 천안아카데미극장에서 영화를 처음 봤는데, 장철 감독의 <철장>이라는 영화였어요. 일본 도장에서 배신자의 눈알을 뽑는 장면이 인상깊었죠. (웃음) 저는 어려서 주위가 산만한 아이였고,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에 성룡 영화를 처음 봤는데, 바로 그해에 류승범이 태어났어요. 제 장난감을 부러뜨리는 바람에 류승범이 액션연기 하는 데 제가 많은 도움을 줬죠. (웃음) 저는 지방에 살아선지 특히나 영화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학
젊은 감독, 관객을 만나다 [4] - 류승완 ①
-
-
감독은 체력, 그리고 냉정함
-<오아시스>에 출연하고 계신데, 본인 영화와는 아주 다른 장르의 영화에 출연하는 기분이 어떠세요?
=저는 <초록물고기>가 제대로 된 필름누아르여서 좋았어요. <박하사탕>도 젠체하지 않으면서 장르 냄새가 나서 좋았고. 감독마다 장르가 정해져 있다는, 말씀하신 식의 선입관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영화에 올바로 접근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창동 감독님 영화와 제 영화는 장르보다는 스타일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영화에 출연한 제 심리상태를 말씀드리죠. 저는 배우를 ‘야매’로만 해봤지(웃음) 디렉션을 받은 적이 없었거든요. 한수 배우자는 심정으로 나갔는데 디렉션을 받으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제 작품에도 영향이 있을 것 같아요. 느낀 것 중에 하나를 얘기하자면, 현장에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 감독의 아주 원초적인 핵에 해당하는 무엇이 중요하다는 것이에요.
-저는 불쌍한 영화광들 중 한명입니다. 공대에서
젊은 감독, 관객을 만나다 [5] - 류승완 ②
-
21세기의 할리우드는 거대한 만화 가게를 방불케 할 것이다. 88년의 <배트맨>부터 <블레이드> <엑스맨>과 같은 영화들로 인해,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감독의 독특한 시각적 스타일을 과시할 수 있는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2002년 여름, <스파이더 맨>은 원작만화 40년만의 첫 스크린 나들이에 나선다.만화책 컬렉션을 팔아 영화제작 비용을 마련했다는 만화광 출신 감독들의 뒷이야기, 그리고 만화 혁명으로 촉발된 수퍼 히어로의 변화와 만화광들이 주도하는 만화의 영화화의 의미를 영화평론가 김봉석이 짚어보았다. 그리고 <스파이더 맨> 감독 샘 레이미의 인터뷰는 무엇이 슈퍼 히어로들을 잠에서 깨웠는지를 좀더 분명하게 알려줄 것이다.격렬하고 선동적인, 성인을 위한 ‘그래픽 노블’이 낳은 만화광들이 할리우드로 갔을때, 그 21세기 극장의 풍경을 미리 만난다. 여기, 쌍생아처럼 닮은 듯하지만 어쩌면 다른 만화와 영화, 그리고 ‘만화
<스파이더 맨>, 혹은 음울한 만화영웅들의 신세기 영화세상 점령기
-
배트맨이 무장봉기를 일으킨다?영국에서 <캡틴 브리튼>으로 출발한 앨런 무어는 <마블맨>(미국명 <미라클 맨>)에서 슈퍼 히어로를 재해석하기 시작한다. 니체의 초인사상을 만화에서 논하고, 자신의 힘에 도취되어 파시스트적인 폭력을 가하는 슈퍼 히어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앨런 무어는 <스웜프 싱>에서 늪의 괴물을 신화적, 환경문제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앨런 무어의 대표작 <워치맨>은 핵전쟁의 예감이 감돌던 8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동료의 죽음의 수수께끼를 찾아나선 왕년의 슈퍼 히어로들이 부닥치는 거대한 음모를 그린다.‘20세기의 소설 베스트 200’에도 꼽힌 <워치맨>은 장르는 슈퍼 히어로물이지만 50년대풍의 SF스타일과 냉전에 대한 정치비평, 시각적으로는 상징주의와 대위법을 적절하게 구사하여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처럼 볼 때마다 새롭게 읽’히는 위대한 작품이다. 앨런 무어는
<스파이더 맨>, 혹은 음울한 만화영웅들의 신세기 영화세상 점령기
-
미국 만화에서 슈퍼 히어로의 역사는 거의 100년에 근접한다. 미국 만화에서 등장한 최초의 히어로는 1929년 등장한 <버크 로저스>다. 우주에서 악당과 싸우는 버크 로저스에 이어 <타잔> <섀도우> <독 새비지> 등이 등장한다. 당시 만화는 주로 신문연재 형식이었다. 1934년에 최초의 만화잡지 <페이머스 퍼니>가 등장한다. 다음해에는 DC 코믹스의 첫 만화잡지인 <뉴 펀>이 발매된다. 36년에는 처음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복면을 쓰고 등장하는 히어로 <더 팬톰>이 신문만화에 등장한다.슈퍼 히어로의 대명사인 슈퍼맨이 등장한 것은 1938년의 일이다. <슈퍼맨>은 <액션 코믹스>(DC 코믹스)에, 다음해에는 <배트맨>이 <디텍티브 코믹스>에 등장한다. 39년에는 DC 코믹스의 영원한 라이벌 마블 코믹스의 전신인 타임리 코믹스가 <마블 코믹스>를 창간하
1986년까지, 미국 슈퍼 히어로 만화 소사
-
<이블 데드> <크라임 웨이브> <다크맨> <심플 플랜> 등을 통해 특유의 전복적 세계를 구축해온 ‘비주류 작가’ 샘 레이미가 제작비 1억달러대의 초대형 블록버스터 <스파이더맨>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큰 부조화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레이미는 자신이야말로 이 영화의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크맨>을 통해 초인적 캐릭터를 다뤄봤고, <퀵 앤 데드>에선 특급 배우들을 상대해봤다는 경력에서 나오는 자신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열성적인 만화광이었던 레이미의 머릿속에 자신이 가장 사랑한 캐릭터 스파이더맨을 스크린으로 되살려올 구상이 이미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블 코믹스 사상 가장 많은 인기를 누려온 이 캐릭터에 피와 살을 불어넣은 샘 레이미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본다.왜 스파이더맨인가.나는 만화책, 특히 스파이더맨의 열렬한 팬이었다. 특히 일러스트레이션과 스토리가
<스파이더맨> 감독 샘 레이미 인터뷰
-
카페인과 농담, 어리석은 연애에 구제불능으로 중독된 뉴욕의 여섯 친구들이 돌아온다. 케이블 채널 ‘동아TV’(스카이라이프 채널 713)는 현재 미국 에서 목요일 밤마다 방영되는 시트콤 <프렌즈>의 8부를 5월6일부터 방영한다. 8년 동안 갠 날도 궂은 날도 있었지만 폭넓은 대중적 인기와 컬트적 추종을 놓치지 않으며 시트콤의 새로운 장을 연 <프렌즈>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그들이 들려주는 질리지 않는 6중주를 분석한다.
아아, 저 소파에서 뒹굴고 싶다!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커피 가게 ‘센트럴 퍼크’ 한복판의 길고 둥근 안락의자는, 시트콤 <프렌즈>에 매료된 사람들에게 신화 속 어느 낙원 못지않은 푹신한 이상향이다. 혈연, 동창, 이웃 관계로 얽혀 단짝이 된 여섯명의 20대 백인 뉴요커들이 스크럼을 짜고 진짜 어른의 삶에 들어선다는 단출한 컨셉트의 시트콤 <프렌즈>는 1994년 가을 파일럿 프로그램이 첫 전파를 탄 이래, 평균 2
<프렌즈> 그 초강력 ‘프렌드십’의 비밀 [1]
-
따뜻한 여섯 인물의 정육각 구도
재능있는 코미디언인 동시에 시청자들에게 동일시와 연모의 대상으로 나무랄 데 없는 배우들의 캐스팅과 맞물려 <프렌즈>의 성공을 끌어낸 주력은 물론 탁월한 시나리오다. 열세명의 작가들로 이루어진 팀이 달라붙어 써내는 <프렌즈> 각본은 보통 두개의 스토리라인으로 엮이는 시트콤의 공식을 깨고 매회 세 갈래의 스토리를 전개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런 방식은 에피소드에 따라 일부 인물이 소외되는 일을 막고 여섯 캐릭터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프렌즈>는 보통 시트콤보다 신의 수가 많고 각 신의 길이는 짧은 형태를 갖게 됐다. 그 점은 한 채널을 지긋이 보지 못하는 리모컨 시대의 참을성 없는 시청자들의 주의를 잡는 데에도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한편 <프렌즈>가 장수 프로그램이 된 원동력은 사회적으로 자리잡지 못한 여섯 주인공의 무한한 잠재성 혹은 불안 안에 있다. 좀처럼 여섯명의 색깔을 온전히 맞
<프렌즈> 그 초강력 ‘프렌드십’의 비밀 [2]
-
감칠맛 있는 우리말 번역은 마니아들 사이에 회자되는 <프렌즈>의 또 한 가지 매력이다. 각각 6부부터의 한글 자막 연출과 3, 4부를 제외한 모든 시즌의 번역을 맡고 있는 동아TV 정현석 PD와 프리랜서 박찬혜 작가가 한국 방송의 숨은 공신들. 71년, 70년생으로 극중 <프렌즈> 주인공들과 또래이기도 한 이들로부터 제작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동아TV는 ‘여성채널’로 출발해 지금은 패션전문채널이 되었다. 영화채널이나 엔터테인먼트 방송사가 아닌데 시트콤을 수입하게 된 경위가 궁금하다.
=정현석: 케이블 첫 출범 때는 채널 이름을 알리고 시선을 끌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했는데, 그야말로 ‘운좋게’ <프렌즈>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동아TV에서 시청률 1, 2위를 다투며 간판 프로로 자리잡았다.
-5월 초 8부 방영을 앞두고 있다. 95년 첫 한국 방영 이후로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을 것 같은데.
=정현석: 워너브러더스로부터 테이프를
<프렌즈> 그 초강력 ‘프렌드십’의 비밀 [3] - 한국제작진 인터뷰
-
한국영화 시장점유율 42.7%, <친구>를 포함 5편의 한국영화가 1∼5위 석권, 극장 상영매출은 전해 대비 52% 상승. ‘폭발’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2001년 한국영화의 파워 분출은 참으로 경이로웠고, 이 추세는 해를 넘겨서도 시들 줄 모르고 의연하다.
<씨네21>은 매년 창간 기념으로 ‘한국의 영화산업을 움직이는 인물 50인’을 선정해왔고, 올해 결과를 보면 지난해 돌풍을 일으켰던 ‘주역’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그러나 이는 지난 1년간 단순한 판세의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만은 아니다. 그렇게 받아들여져서도 안 된다. 스탭의 처우개선, 투명하고 효율적인 시스템 구축, 한국영화의 해외진출 확대 등 한국영화산업이 질적으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파워50’은, 그 무거운 소임을 앞서 맡을 일꾼들을 선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설문은 관련인사 98인에게 의뢰했고, 외유중이거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마감시간 내 회신지를 보내지 못한
2002 충무로 파워 50 - [1] 선정원칙과 투표인단
-
1 강우석 시네마서비스 회장·감독 1위
“올해도 1위”라는 말에 그는 “당연한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특유의 자신감이 덧붙여진 이런 반응에 ‘겸손’을 주문하는 건 어리석다. 그런 공격적인 태도야말로 그를 부동의 파워맨으로 만든 힘이 아닌가. 사실 올해 강우석 감독의 1위 수성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3년 만에 내놓은 영화 <공공의 적>이 1분기 한국영화 최대 흥행작이 되면서 사업가 강우석 못지않은 감독 강우석의 파워도 입증됐다. 연출을 하면서 경영일선에서 물러섰지만 시네마서비스의 입지는 오히려 탄탄해졌다. 시네마서비스는 지난해 배급사 가운데 최고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고 올해 로커스홀딩스와 합병함으로써 좀더 안정적인 운영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강우석 감독은 “영화인들이 인정해준다면 뭔가 새로운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한다. 메이저 영화사에 걸맞은 스튜디오로서 아트서비스를 설립, 5월에 착공될 예정이고 로커스홀딩스의 자금동원력을 빌려 멀티플렉스
2002 충무로 파워 50 - [2] 1위~10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