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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스 오브 뉴욕>은 길지 않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혼탁하고 어지러운 시절이었던 19세기 초반의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초기 이민자들이 평화로운 공존을 거부한 채 갈등하고 다투고 죽고 죽이는 사이, 남북전쟁이 발발하고, 그 와중에 아일랜드계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1860년대까지, 그 자체로 드라마틱했던 격변의 시대를 이야기의 배경으로 두르고 있다.이야기는 당시 뉴욕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던 초기 이민자의 사악한 리더, 그에게 아버지를 잃고 오랜 세월 복수를 꿈꾼 아일랜드 소년, 그리고 그들 두 남자의 사랑을 받는 바람 같은 여인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도살자 빌’로 통하는 빌(대니얼 데이 루이스)은 미국에 정착한 초기 이민세대로서, 과격한 이민반대주의자다. 밀려드는 이민자들을 무단침입자로 규정한 빌과 그의 패거리는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정신적인 지주인 발론 신부(리암 니슨)와 그의 추종자들을 살해한다. 발론 신부의 어린 아들 암스테르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현
<갱스 오브 뉴욕> 20분 시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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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은 술집인데 영업방해라고?8월29일, 부산 초량동 러시안 거리│25차 촬영밤새 4컷밖엔 소화하지 못한다. 전혀 예상을 못한 건 아니지만 갑작스레 출현한 암초에 걸렸다. 애초에 유명한 유흥가인지라 촬영이 쉽지 않을 건 예상했었다. 하지만 상가나 거리의 분위기가 러시안, 중국계 상대로 형성된 독특함이 있어서 욕심을 냈었고 그런 거리를 오픈 세트로 구현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우리 프로덕션 현실에서는 다른 대안 없는 선택이었다. 그 거리는 섭외 초기부터 갖은 고생을 다했고, 러시안 진영과 중국계 진영의 실력자를 찾아다니며 설득을 해야 했다. 촬영 당일 역시 술집 외에 일반 상가가 문을 닫는 밤 10시에나 촬영팀이 들어갈 수 있었지만 내심 촬영허가를 받은 것만 해도 제작부의 성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취객과 불량배, 혹은 상인들의 불만과 언제 부딪칠지 모르는 상황이라 스탭 모두 긴장하고 조심하며 촬영준비를 했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상가번영회, 해병전우회, 칠성파 인사들이 현장에 나와
정윤수 감독이 쓴 <예스터데이> 1000일의 제작 기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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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를 만나러 가는 길에 들은 인상적인 이야기 하나. 이제는 칸영화제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레드카펫 세리머니에서는 주인공은 물론 민간인도 턱시도나 이브닝 드레스 차림이어야 한다. 그런데 누군가 말하길, 언젠가 딱 한 사람, 바로 켄 로치가 청바지 차림으로 레드카펫에 오른 적이 있다는 것이다. 딱 그다운 행동이다 싶어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슬그머니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대중매체에서 사라져간 좌파의 자리를 40년 가까이 씩씩하게 지켜온 고집스런 감독. 혹 꼬장꼬장한 성미라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쫓아내는 건 아닐까.그러나 모든 게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적한 호텔 정원에서 다른 기자와 인터뷰중인 켄 로치를 발견했는데, 그는 온화하고 겸손한 얼굴로 경청하거나 대답하고 있었다. 그리고 창백한 얼굴에 맑은 미소를 띠며 이쪽으로 다가와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는 칸영화제의 단골 손님으로 느끼는 남다른 소회를 털어놓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스위트 식스틴>의 켄 로치가 이야기하는 ‘좌파영화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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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에서 <베일>로, 다시 <예스터데이>로. 제목이 바뀌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관객을 만나기까지 최소한 몇년의 시간을 야금야금 베어먹는 것은 영화의 어두운 숙명일지도 모른다. 과장도 엄살도 아닌 현실. 기획에서 촬영종료까지 3년여의 시간이 걸린 <예스터데이>도 그 현실을 비켜갈 순 없었다. 애초에 작은 영화로 기획되었던 <예스터데이>는 제작비 80억원짜리 블록버스터가 되면서 감독의 ‘고난지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고 결국 촬영기간 9개월, 촬영횟수 112회를 기록했다. 관객과의 조우를 앞둔 <예스터데이> 감독이 털어놓는, 현장에서 생긴 일들. 편집자감독을 존중한다, 제목은 <예스터데이>!1999년 5월 혹은 6월│프롤로그1999년 5월인가 6월의 어느 날- 아! 그날은 명동에서 스크린쿼터를 반대하는 영화인들의 삭발 집회가 있었다- 삭발한 안병주 미라신코리아 대표를 처음 만났다. 일은 그렇게 시작
정윤수 감독이 쓴 <예스터데이> 1000일의 제작 기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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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영화제에서 시나리오상을 수상한 <스위트 식스틴>은 켄 로치의 파트너인 폴 레버티의 작품이다. <스위트 식스틴>은 폴 레버티가 켄 로치와 함께 한 4번째 작품. 자신이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한 소년의 고군분투, 그리고 좌절을 그린 <스위트 식스틴>은 캐릭터의 리얼리티와 상황의 아이러니를 잘 살려낸 수작이다.폴 레버티는 작가가 되기 전에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법조인으로 일하다가, 중앙아메리카의 인권단체에서 일했다. 스페인 내전을 다룬 영화 <랜드 앤 프리덤>을 찍던 켄 로치가 스페인어에 능통한 폴 레버티를 단역으로 출연시킨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됐다. 폴 레버티는 다양한 지역에서 생활하며, 인권단체를 통해 각계의 노동자들과 교류해왔는데, 그런 그의 데이터베이스는 켄 로치에게 좋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했다. “대개 영화의 아이디어는 폴이 먼저 준다”는 게 켄 로치의 설명. 폴 레버티는 켄 로치와 니카라과
켄 로치-폴 레버티의 파트너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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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에 나는 무릎을 쳤다
1. <스타워즈>(1977)
특수효과 총감독을 맡은 존 딕스트라는 기존 영화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던 기술들을 여러 장면에서 시도했는데, 특히나 모션 컨트롤 카메라를 활용한 마지막 우주전투 시퀀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역동감을 선사한다. <스타워즈> 이전의 영화들이 특수효과 장면에서 정지된 화면이나 단선적인 카메라워킹만을 보여줬던 것과 비교하자면 가히 혁명적인 시도였고, 이 작품을 위해 연구된 우주선의 동선과 카메라 무브먼트는 이후의 SF영화에 교과서가 됐다.
2. <제다이의 귀환>(1983)
<스타워즈>는 한편만 언급하고 싶었지만 빼먹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가 있어서 하나 더. <스타워즈>의 골수팬들조차도 시리즈 중 가장 떨어지는 작품으로 꼽는 <제다이의 귀환>은 기술적으로 보면 말도 안 되게 황당한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다. 다름 아니라 다스베이더가 루크를 끌어들이기 위해 설득하는 동안
특수효과의 메카 ILM을 가다 [6] - ILM 최고의 CG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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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없는 기술은 아무것도 아니다”
히피 같은 스타일에 긴 금발머리를 휘날리며 인터뷰장으로 들어온 존 버튼은 각국 기자들에게 악수를 청하던 중 ‘코리아’에서 왔다는 말에 “폴란드전은 대단했다”, “미국과의 경기는 어떨 것 같으냐”는 등 월드컵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표하는 전혀 ‘미국인답지 않은’ 미국인이었다.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예술교육과 컴퓨터그래픽 석사과정을 이수한 그는 1990년 <터미네이터2>의 CG 애니메이터로 일하면서 ILM과 처음 인연을 맺었고 이후 <마스크> <쥬라기 공원> 등의 CG 오퍼레이션 매니저를 거쳐 <미이라> <미이라2>의 시각효과 슈퍼바이저로 굵직굵직한 ILM의 작업들을 도맡아서 진행하고 있다. <맨 인 블랙2>에서는 시각효과 전체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아 전편보다 훨씬 많아진 외계괴물들과 싸우느라 일년을 꼬박 지새웠다는 그는 “다음 작업에 대한 대답은 바로 휴가!”라며 너스레를 떨었
특수효과의 메카 ILM을 가다 [5] - 존 버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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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특수효과업계는 생존경쟁의 시대로 돌입했다. 현재 미국 내에서 단기적으로 일자리를 잃은 3D 인력은 수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1500∼2천여명의 인력을 거느린 매머드급 3D 제작사들이 1차, 2차에 나누어 많은 인력을 방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외로 많은 대형 작품들이 빠져 나가고 있는 추세라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다. 실제 <반지의 제왕>의 경우 제작이 대부분 뉴질랜드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로 디즈니에서 일하던 실력있는 3D 제작진들이 비행기를 탔으며, 그 밖에도 많은 인재들이 자리를 털고 새 일터로 향하고 있다. ILM의 경우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600명의 인력들을 1차 방출한 뒤 얼마 전 또 700명을 방출했고, 조지 루카스도 자리를 옮겨 독립적인 R&D(Research&Development)회사를 구상중이라는 설이 있어 여러모로 변화를 겪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여러 가지 현상을 동반하는데, 한 가지는 실력있는 소수의 정예들이 뭉쳐
특수효과의 메카 ILM을 가다 [4] - 미국 특수효과업계의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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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D2부터 자자 뱅크스까지, <스타워즈> 시리즈의 스타 군단
컴퓨터 관련 정보 및 수리에 능한 R2-D2, 은하계 수많은 종족의 언어와 문화를 훤히 꿰고 있는 영민한 가이드 C-3PO 등 각양각색의 드로이드, 키는 작지만 제다이들의 마스터이자 우주의 현자인 요다,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에 등장하는 수다쟁이 건간족 자자 뱅크스까지 <스타워즈>는 다양한 특수효과를 거쳐 탄생한 무수한 캐릭터들의 전장이기도 하다. 뒤에서 사람(나중에 디지털 작업으로 화면에서 지워진다)이 조종하는 R2-D2와 C-3PO, 폼 라텍스에서 좀더 가볍고 부드러운 실리콘으로 업그레이드된 요다 등 일종의 인형들부터 원격 조종이 가능한 애니메트로닉스 가면을 뒤집어쓴 네이모디안, 배우 레이 파크를 뿔과 컬러로 특수 분장시킨 다스 몰, 완전히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자자와 배틀 드로이드 등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운 상상력의 산물들이 개성의 경합을 벌인다.
<용과
특수효과의 메카 ILM을 가다 [3] - ILM의 피조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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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CG와 전통 효과의 놀라운 조합
“ILM에 빚지지 않은 특수효과회사는 거의 없을 정도다. ILM은 시각효과에 필요한 포맷을 거의 마련했고 소프트웨어의 결정을 주도했다”는 모팩 장성호 실장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노하우의 축적이 필요한 전통적 특수효과가 퇴보하고 컴퓨터를 이용한 디지털 특수효과가 발달하면서 ILM의 뒤를 잇는 후발주자들의 추월은 훨씬 용의해졌을 뿐 아니라 그 속도도 위협적이 되었다. ILM과 <터미네이터2> 작업을 함께했던 제임스 카메론이 설립한 디지털도메인, <글래디에이터>로 2001년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받은 토니 스콧과 리들리 스콧이 만든 영국의 밀필름과 다음해 시각효과상을 수상한 <반지의 제왕>의 뉴질랜드의 WETA디지털 등이 만들어내는 영상은 기술적으로 비교해볼 때 ILM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여전히 ILM의 ‘가장 파워풀한 디지털하우스’로서의 입지가 흔들
특수효과의 메카 ILM을 가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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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공장을 지나, 영화여 훨훨 날아라
이상한 여름이 찾아왔다. 1관에서는 은하계를 가로지르며 추락과 급상승을 오가는 우주선들이 아찔한 추격전을 벌이고 2관에서는 집채만한 외계인이 지하철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팔이 1천개쯤 달린 외계인이 검은 옷의 사나이들과 한판 대결을 벌이며 3관에서는 범죄를 미리 예방하는 완벽한 시스템이 마련된 근미래의 사실적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스타워즈 에피소드2: 클론의 습격> <맨 인 블랙2>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선사하는 이 예사롭지 않은 여름풍경을 만든 진짜 주인공은 그러나, 조지 루카스도, 윌 스미스도, 스티븐 스필버그도 아니다. 감독의 머릿속에 있는 상상의 세계가 관객의 눈앞에 펼쳐지기까지, 이 일련의 작품들은 특수효과를 담당한 ILM(Industrial Light+Magic)이라는 마법사의 손을 통해 세상과 조우할수 있었다. 1975년, <스타워즈> 시리즈를 구상하던 조지 루카스의 야심 아
특수효과의 메카 ILM을 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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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감독 8인방의 출사표, 그들의 첫 영화 미리보기영화의 역사는 늘 새로운 물결로 다음 장을 열어젖힌다. 프랑스의 누벨바그, 할리우드의 아메리칸뉴시네마, 영국의 앵그리영맨, 독일의 뉴저먼시네마, 일본의 쇼치쿠누벨바그…. 영화사의 어떤 대목을 펼치던 주류의 흐름을 바꿔놓은 신인들의 데뷔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과연 90년대 중반 이후 급물살을 탄 한국영화의 변화엔 어떤 이름이 붙을 것인가? 그 흐름은 올해도 변함없다. 낯선 영화를 들고 우리 곁을 찾아올 새로운 감독들, 그들을 미리 만나보는 자리는 언제나 조금 흥분된다.<씨네21>이 미리 만난 8명의 신인감독은 이미 촬영을 했거나 곧 크랭크인할 영화의 연출자들이다. 전혀 다른 경로를 거쳐 입봉을 눈앞에 둔 그들의 출사표, 거기엔 장강의 앞물결을 밀고 앞으로 나가려는 패기가 깃들어 있다. 신은경·정준호 주연의 로맨틱코미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이병헌·이미연 주연의 멜로드라마 <중독>, 한석
신인감독 8인 (1) - <이중간첩>의 김현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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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감독이 되었나턱선이 조금만 더 단정했어도 그는 감독이 되지 않았을 거다. 어떻게 생겼냐고? 윤종찬 감독의 <소름>에서, 이발소에 걸린 가족사진의 아버지를 기억하는지. 김명민-장진영, 배다른 남매의 아버지로 모든 비극의 출발이 되는 이 개망나니 같은 인간은 사진으로만 모습을 보일 뿐이다. 그 얼굴의 주인공이 박영훈이다. 원래 그의 꿈은 배우였다.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연기전공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선배 학생들의 단편영화들에 출연했다. 화면을 보니 정면은 그런대로 볼 만했지만, 측면이 너무 안 좋았다. “이 얼굴로는 한계가 있겠다, 게다가 나는 발음까지 샌다.” 3학년 때 연기에서 연출로 바꿨다. 그때도 영화감독을 꿈꾸진 않았다. 졸업작품으로 내놓은 것도 연극이다. 영화는, “가정사정이 썩 넉넉한 것도 아닌” 그에게 돈이 많이 들었다.취직시험을 조금만 더 잘 봤어도 그는 감독이 되지 않았을 거다. 방송사 PD 시험을 봤다. 1년 동안 공부했는데, 떨어졌다. 서울텔레콤에
신인감독 8인 (2) - <중독>의 박영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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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감독이 되었나모지은 감독은 대학교 3학년 처음으로 단편영화를 찍었다. 배추장사를 하면서 어렵게 사는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마음을 열게 되는, 단순하지만 힘들었던 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는 감독이 되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던 것과는 뭔가 다른 공부를 해야할 것 같아” 연극영화과에 진학했고, 영화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연극 대신 영화를 선택했다. 치열할 것도 없는 그 과정을 들어보면 이 여자, 너무 생각이 없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그러나 스물여덟 어린 나이에 촬영현장을 휘어잡은 모지은 감독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고민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곧바로 뛰어드는 편을 택하는 저돌적인 젊은이다. “영화를 만들어야지 생각하니까, 바로 감독을 해야지라는 생각이 따라오더라구요.” 그 이후로는 딴 길로 새지 않고 영화만 했다.그의 늦은 결정이 느닷없이 튀어나온 것만은 아니다. 모지은 감독 역시 영화감독들이 흔히 거친 어린 시절을 고만고만하
신인감독 8인 (3) -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의 모지은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