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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일간지 <미러>는 파졸리니의 영화 <마태복음>이 가지는 특별한 힘을 이렇게 설명했다.“할리우드 영화와 달리 파졸리니의 예수는 정말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서있다. 그 차이는 매우 특별한 힘을 발휘한다.”그 문장은 살아 있었을 때 좌파와 우파 모두로부터 미움 받았던 파졸리니가 어떻게 죽은 뒤에도 수많은 영화에 화상처럼 깊은 흔적을 남길 수 있는지 설명해주는 한 예일 것이다. 그는 농민의 딸로 태어난 자신의 어머니를 강인하면서도 가엾은 마리아로 기용했고, 이탈리아 농촌의 가난한 풍경 속에서 카메라를 돌렸다. 시인이자 영화감독이었던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는 삶이 영화보다 지독하다는 사실을 한번도 잊지 않았다.파졸리니는 1922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태어났다. 그는 귀족 출신이었던 아버지보다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 어렵게 교사가 된 어머니를 더 사랑했고, 어머니가 뿌리를 두고있는 농촌 문화를 경애하게 됐다. 세살 때 이미 소년들의 다리에서 관능을 발견한 파졸리니는
[2002전주데일리]특집 - 피에르 파울로 파졸리니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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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히 사이들의 밤 Ulrich Seidl 's Night전주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오스트리아의 울리히 사이들(50)은 현대인들의 파편화된 욕망과 삶을 에누리없이 일러바치는 것으로 자신의 영화세계를 구축한 작가다. 그와 가깝게 지내면서 영화제작을 후원해온 것으로 알려진 독일의 거장 베르너 헤어조크는 그의 작품을 두고서 “그처럼 곧바로 지옥으로 뛰어드는 영화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울리히 사이들은 인간들이 고립되고 뒤틀려 해괴한 짓을 해대는 걸 찾아내는 데에 희열을 느끼는 매저키스트 같지만, 가끔씩 그 보잘 것 없는 인간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애정이 깃들어 있음이 읽히기도 한다. 20대 후반부터 만든 10여편 가까운 다큐멘타리와 세미다큐멘타리도 그랬지만, 50살이 다 돼 만든 첫 극영화 <개같은 나날>(Dog Days 2001년, 114분)은 야멸찬 풍자의 정점을 선보인다. 비엔나 외곽의 한 마을을 무대삼아 스트레스에 가득찬 세일즈맨, 자신을 학대하는 남자를 떨치지
[2002전주데일리]28일 추천영화 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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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Spirited Away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 일본 2001년 / 125분 / 35mm / 애니메이션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을 받은 이 작품은 붉고 푸른 일본 전통의 색채를 과시하며 수많은 민담과 신화 속을 헤엄쳐 간다. 미야자키가 꿈꾸는, 일본의 진짜 옛날 이야기. 터널 끝에 숨어 있는 이 신(神)들의 온천은 어떤 서양 동화보다도 위험하고 이상하다.치히로는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떠난 열 살 짜리 소녀. 지루하고 따분하던 여행길은 부모가 불길한 터널을 통과해 주인 없이 차려진 음식을 먹어치우다 돼지로 변한 다음부터 아슬아슬한 모험으로 돌변한다. 치히로는 이름을 센으로 바꾸고선 부모를 구할 때까지 이상한 온천에서 일하기로 한다. 온천 주인인 탐욕스런 노파 유바바, 센을 좋아하는 벙어리 귀신 가오나시, 문명 세계에서 끌고 온 오물을 온천에서 씻어내는 강의 신, 층층이 포개진 채 다니는 세 쌍둥이. 센의 세계는 어느덧 온천을 벗어나 강물 너머까지
[2002전주데일리]FOCUS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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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4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남기웅 감독의 <우렁각시> 상영이 끝난 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의 사회로 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남기웅 감독과 함께 가수 ‘고구마’로 더 잘 알려진 권병준, 채명지 등 주연배우들이 무대에 올라왔다.아직 일반 극장에서 개봉되지 않은 <우렁각시>는 우렁각시 설화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저예산 디지털 영화. <다찌마와 리>같은 신파적인 과장법, 키치적인 감수성으로 그려낸 천연덕스러운 판타지다. 주윤발을 동경하며 ‘뒷거래 철공소’에서 불법으로 총을 만들어 파는 청년 건태, <스타 트랙>에 나올 법한 외계인의 귀를 가진 악당 용백, 킬러와 색색의 우렁이 인간들과 다방 마담의 사연이 뒤얽힌 황당한 코미디에 객석에서는 소소한 웃음이 일곤 했다. 왜 우렁각시냐는 첫 질문에 남 감독은 “알던 설화 중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 같아서”라며 말문을 열었다. 어둡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세트와 독특한 이미지를 궁금해하는 질문
[2002전주데일리]관객과의 대화 - <우렁각시> 남기웅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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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상영 첫날인 27일. 디지털 영화 <매닉>의 상영장인 대한극장 로비에 등장한 카븐 드라 쿠르즈(28)는 여러모로 눈에 띄는 심사위원이었다. 불타는 빨강 머리에 비보이(B-Boy)를 연상케 하는 어슬렁거리는 걸음걸이, 왕성한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장난스러운 눈빛까지 영화제의 슬로건에 맞춘 듯한 정말이지 ‘젊은’ 심사위원이었던 것. 사춘기의 절망을 그린 내용 탓인지 유독 어린 관객이 몰린 <매닉>의 상영장 한 구석에서 그는 예의 그 빛나는 눈초리로 한국 관객들의 마니아적인 호기심을 탐닉하는 듯했다.사실 외모만으로 그의 독특함을 논할 순 없다. 스스로 “대중적인 사교 예술로서 상업영화의 가능성이 싹튼 지 얼마 안 되는 필리핀에서 상업영화 감독의 길을 과감히 포기하고 디지털 카메라를 든 비디오 액티비스트”를 천명한 그는 자국에서도 디지털 영화의 ‘선봉장’으로 유명하다. 1997년 이후로 꾸준히 각종 단편 독립영화의 제작, 배급을 도와온 그는 올해 2월 드디오
[2002전주데일리] 피플-카븐 드라크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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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수선의 여름>을 통해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리 지시안(39). <북경 자전거>의 왕 샤오솨이, 이번 영화제에 초청된 <침묵의 강>의 닝 징우와 함께 북경영화아카데미에서 수학한 그는 실제로 이번 영화제에 오랜 친구인 닝 징우와 함께 일정을 잡았다. 시골 마을로 영화를 촬영하러 온 촬영팀과, 영화의 주인공을 맡고 싶지만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 12살짜리 아이 왕수선의 이야기인 <왕수선의 여름>은 그의 말에 따르면 스스로 매우 만족스러운 영화다.이번이 첫 장편연출작이다. 영화를 시작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북경영화아카데미에서도 미술 전공으로 시작했다. 같은 기숙사에 묵었던 왕 샤오솨이, 닝 징우 등과의 교류를 통해 연출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으나 정작 영화에 관해 깊이있게 알게된 것은 졸업 이후라고 생각한다.왕수선과 대칭되는 어른인 따리우의 역할을 조감독으로 잡았다. 실제 경험에
[2002전주데일리]<왕수선의 여름> 감독 리 지시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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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6시30분부터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야외상영장에서 열린 코스튬 플레이쇼에서 모델들이 각국의 다양한 의상을 선보이고 있다.HD영화 한국최초로 HD 방식으로 상영한국에서 최초로 HD(High Definition) 영화가 HD방식으로 상영됐다. 옴니버스 형식의 디지털 영화 <아미그달라> 중 2,3,4편이 27일 전주영화제 디지털 전용관인 덕진예술회관에서 HD 디지털 영사시스템을 통해 상영된 것이다. iMBC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추계예술대학 영상문예대학원이 공동으로 참여한 <아미그달라>는 김의석과 이현승, 이충직 감독 등이 잃어버린 기억을 소재로 다섯 편의 영화를 연출하는 프로젝트. 전체적인 조율의 역할을 맡은 프로젝트 수퍼바이저 이현승 감독은 상영이 끝난 뒤 “국내 최고 수준의 프로젝터를 사용했기 때문에 화질은 만족할 만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현승 감독은 또 “HD 영화는 정서가 부족한 반면,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에서 많은 시도를 해볼 여지가 있다”
[2002전주데일리]27일의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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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미소 Butterfly Smile
| 허 젠준 | 중국 | 2001 | 90분
여자를 훔쳐보는 남자라는 이색적인 설정을 통해 지금의 중국 사회를 비춰본 조감도이다. 소비사회의 징표로 관음증을 내세운 설정이 배창호 감독의 <적도의 꽃>을 연상시킨다. 모델 출신의 디자이너가 한밤중에 사람을 치고 뺑소니를 친다. 이 여자의 남편의 부탁을 받고 여자를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던 사진사가 그 장면을 목격한다. 매일밤 여자의 의상실 건너편 건물에 죽치면서 고성능 카메라로 여자를 지켜보는 사진사의 갈등은 복잡하다. 여자가 디자인한 감각적인 현대의상을, 자신의 엄마가 직접 만든 전통 의상과 견주어보는 이 남자의 머리 속에선 전통적 가치관과 현대의 물신적 개인주의가 대립한다. 여자에 대한 연정은 암시만 될 뿐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허 젠준은 중국 6세대 감독 답지 않게 플레시백과 극단적인 클로스업 등 감각적인 연출을 선보인다.▶ 씨네21 [2002전주데일리]홈페이지로 가기
[2002전주데일리] FOCUS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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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The Gospel Acoording to St.Matthew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 이탈리아·프랑스 | 1964 | 133분<마태복음>은 불경으로 점철된 파졸리니의 인생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영화다. 99년 바티칸 교황청은 일명 ‘황의 오스카’라 불리는, 신앙을 품고 세상을 사는 데 도움이 될 영화 45편을 발표했다. <마태복음>은 이 리스트에서 <쉰들러 리스트>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평생 권력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공격당했던 파졸리니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그럼에도 <마태복음>은 굽히지 않는 파졸리니의 고집과 함께 이탈리아 민중의 공동체 문화를 먹고 자란 그의 시인으로서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마태복음>은 예수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영화. 그러나 다른 영화들과 달리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버거워하는 모습이 아니라, 칼을 든 전사이자 세심한 신경을 가
[2002전주데일리]추천하는 영화 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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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섹스장면이 많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면 실망하게 될 거다.”28일 씨네21극장에서 상영된 <섹스와 사랑의 지도>의 에반스 찬 감독은 영화 상영 전 관객들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상영 시간이 2시간11분에 달하는 이 영화는 사실 감독이 경고한 그대로였다. 쏟아지듯 흘러나오는 나레이션과 세 인물이 되짚는 고통스러운 기억은 감독의 말대로 “세 가지 비밀을 담고 있는” 사적이면서 공적인 홍콩의 현재였다.홍콩 최초의 디지털 영화인 <섹스와 사랑의 지도>는 등장 인물 세 명의 상처를 따라 각각 ‘고무밴드’와 ‘벨그라드’ ‘나치 골드’라는 작은 제목으로 나뉘어 진다. 동성애자인 댄서 래리는 남자를 보고 욕망을 느낄 때마다 따끔하게 튕기라며 고무밴드를 준 상담 교사에게 상처받았고 상처를 줬다. 역시 동성애자인 다큐멘터리 감독 웨이밍은 과거 마카오에 살았던 자신의 아버지가 나치로부터 흘러나온 황금으로 가족을 먹여 살렸을 거라는 의심을 품고 있다. 미미는 정신병자였던
[2002전주데일리]관객과의 대화 - <섹스와 사랑의 지도> 감독 에반스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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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젠준(42) 감독은 전주와 인연이 깊다. 전작 <붉은 구슬>(93년)과 <우체부>(95년)가 재작년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허 젠준은 그러나 세번째 영화 <나비의 미소>를 촬영중이어서 한국에 오지 못했다. 그 <나비의 미소>가 올해 초청돼, 결국 전주가 그의 첫 한국 방문지가 됐다. 그는 “한국은 세계영화로 뻗어나가는 창구다, 앞으로도 자주 오고 싶다”고 말했다. 허 젠준은 20년전인 1982년 중국 4세대 감독인 황지엔종의 조감독으로 영화 인생을 시작했다. 이어 5세대인 첸 카이거, 장이무 밑에서 <황토지> <홍등> 등의 조감독을 맡았다. 1988년 베이징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 1년반동안 수업한 뒤 <붉은 구슬> 등 독립영화 두편를 만들었다. <나비의 미소>(2000년)는 그가 베이징필름스튜디오(북경재편창)에서 만든 첫 영화다.독립적으로 영화를 만들 때와 베이징필름스튜디오에서 만들 때
[2002전주데일리]<나비의 미소> 감독 허 젠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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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4시 20분 씨네21 극장에서 <장마> 상영후 최민 영화제위원장(맨 오른쪽)이 유현목 감독(맨 왼쪽)에게 페이스프린팅을 전달하고 28일 오후 4시 20분 씨네21 극장에서 <장마> 상영후 최민 영화제위원장(맨 오른쪽)이 유현목 감독(맨 왼쪽)에게 페이스프린팅을 전달하고 있다.미국독립영화의 대모가 왔다.28일 크리스틴 바숑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세미나 ‘크리스틴 바숑을 만나다’에 언론인 뿐 아니라 국내외 영화제 관계자, 한국의 독립영화인들이 행사장을 가득 메워 바숑이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주목받는 게스트임을 입증했다. 독립영화가 시들해지던 1990년대 미국에서 토드 헤인즈, 토드 솔론즈 등 역량있는 작가들의 영화를 만들어 ‘미국 독립영화의 대모’로 불리는 바숑은 토드 헤인즈의 <독약>, 토드 솔론즈의 <행복> 등 자신이 제작한 영화 10편으로 차려진 ‘크리스틴 버천 회고전’에 참석차 전주에 왔다.“바빠서 한국에 오는 걸 4번 이상
[2002전주데일리]28일의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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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도 아닌 여배우의 몸으로 타국의 관객과 홀로 대면하고 있는 비키 창(37)은 열성적인 교사의 모습 그 자체였다. 한 명의 관객이 평균 3개씩의 질문을 토해낸 덕에 벌써 끝났어야 할 <인간희극>의 GV(Guest Visit)가 40분째 연장되고 있었지만 상영장 안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대만에서 학생들에게 5년째 연기와 탭댄스를 가르치고 있다는 자신의 이력이 무색하지 않게 한국 관객들의 굶주린 영화 열정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주기 위한 비키의 열성은 대단해 보였다.남기웅 감독의 <우렁각시>가 우리 고전설화를 재구성한 것이라면, 대만의 홍홍 감독은 <인간희극>에서 중국에 전해 내려오는 ‘효행에 관한 24가지 계율’을 현대 사회에 투영시켰다. 영화의 주제를 묻는 관객의 질문에 그녀는 “모기 때문에 잠 못 드시는 부모님을 위해 자신의 등을 내놓아 모기를 유인하라는 옛 효행의 가르침이, 바퀴벌레를 무서워하는 애인을 위해 밤새 뜬눈으로 잠든 애인의 옆을
[2002전주데일리]<인간희극> 여배우 비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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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프로듀서는 문제적인 영화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장벽을 돌파해왔는가’.크리스틴 바숑은 자신의 영화 여정을 담은 책 <슈팅 투 킬>(Shooting To Kill-How an Independent Producer Blasts Through the Barriers to Make Movies that Matter)에서 “저예산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출산하는 것과 같다”고 쓴 바 있다. 거절당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고, 끊임없는 설득과 절충을 거쳐야 하는 독립영화 만들기의 과정을 산고에 비유한 것이다. 이같은 저예산 독립영화를 고수해온 배경에는, “독창적이고 도발적인” 감독들의 개성적인 시선을 최대한 살리고자 하는 프로듀서로서의 고집이 숨어있다. 프로듀서로서 처음 이름을 올린 토드 헤인즈의 91년작 <독약>부터 <졸도> <고 피쉬> <키즈> <나는 앤디 워홀을 쐈다> 등 바숑이 제작한 영화들은 할리우드 주류영화에서 좀처럼
[2002전주데일리]특별기획 - 그리스틴 바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