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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4일_ “역시… 고사부터 지낼걸 그랬지?”
첫 촬영날이다. 아침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비 올 확률이 오전에는 40%, 오후에는 60%란다. 이게 무슨 뜻일까. 최기섭 제작부장의 해석에 따르면 비가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단 말이란다. 음… 그렇군. “비가 온다면 얼마나 온다는 얘기지?” 최 부장이 얼른 기상청에 전화를 걸어보더니 진지하게 대답한다. “그게… 아주 많이 올 수도 있고 전혀 안 올 수도 있다는데요.” “음… 그렇군.” 마치 부조리극의 대사 같다.
어쨌건 촬영은 시작되었다. 찬경(양택조)의 구멍가게에서 찬경 처(이주실)와 철수 엄마(홍정혜)가 썰렁한 수다를 떠는 장면이다. 첫 테이크에 NG가 난다. 이주실 선생의 사투리 억양이 갑자기 이상해졌다. 컷 소리가 나자마자 호호호 겸연쩍은 웃음을 날리더니 얼른 감춰둔 노트를 꺼내본다. 가만보니 낱낱이 억양과 강세를 표시해놓은 연습대본이다. 아하, 문제는 거기 있었다. 감각적으로 체화해야 할 걸 주
<고독이 몸부림칠 때> 촬영일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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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짜 감독이 고참 배우들 모시고 몸부림칠 때<고독이 몸부림칠 때> 이수인 감독의 층층시하 좌충우돌 제작일기
첫 영화를 세상에 내놓는 일은 천지신명이 물심양면으로 도와도 허리가 휘는 작업이다. 나 혼자 이 악문다고, 나 혼자 재미있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더 힘들다. 그리고 고독하다. 친숙한 연극무대를 떠나 신인 영화감독이 된 <고독이 몸부림칠 때>의 이수인 감독에게는 유난히 데뷔 여정에 동행이 많았다. 매체를 넘나들며 누가 감히 뭐랄 수 없는 공력과 경력을 쌓은 베테랑 연기자들은 천군만마처럼 든든한가 하면 문중 어르신들처럼 어렵기도 했다. 넘치는 애드리브 아이디어에 벅찬 날도 있었고 연출할 수 없는 ‘선수’들의 에너지를 포착했다 쾌재를 부를라치면 고장난 장비가 재를 뿌리는 날도 있었다. 속으로는 몸부림쳐도 언제나 낙천적이었던 데뷔 감독의 몸살 기운 어린 촬영일지를 훔쳐보았다.
6월8일_ “선생님, 굿 아이디어… 는 다음 작품에서^^”
시나리오 독회.
<고독이 몸부림칠 때> 촬영일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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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 장기수 스스로를 들여다보아야 할 시간
김 감독은 송환 뒤 북한에서 새 삶을 살고 있는 선생들의 모습을 직접 카메라에 담아 작품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평양행 티켓을 손에 쥔 적까지 있으나 끝내 이 희망은 이뤄지지 않았고 지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성사됐다. 찍어온 화면과 자료 사진을 통해 선생들의 지금을 바라보며 김 감독은 이런 내레이션을 한다. “그들 앞엔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혁명과 투쟁의 길이 놓여 있다. 어쩌면 남한에서보다 더 힘들게 그 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긴장감을 주던 투쟁의 대상이 눈앞에 없고 이젠 스스로의 문제를 들여다보아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라고. ‘강성대국’을 읊조리던 선생들이 감독의 이같은 말에 얼마나 동의할까? “다는 아니겠지만 깊이 생각한 몇몇 분들은 하실 거다. 선생들이 하실 것 다했으니 이제 쉬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던 것 같다. (선전용 사진을) 딱 찍으라고 포즈를 취하고
배우 문소리, <송환>의 김동원 감독에게 묻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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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로서의 거리, 바라볼 공간으로서의 거리
조창손 선생과 김 감독은 본인들 말처럼 ‘아버지와 아들’처럼 가깝게 지냈다. 그렇지만 송환 직전까지 김 감독은 내심에 두고 있었던 인터뷰를 마무리짓지 못했다. 식량난 문제, 북의 권력 시스템 등에 대한 견해를 직접 물어보고 싶었으나 끝내 하지 못했다. 첫 만남 이후 4년이 지났음에도 선생들이 민감한 사안에 대한 촬영을 거부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김 감독과 장기수 선생의 괴리감은 사라질 듯하면서 이따금 불거져나오곤 했다. 초기에 “김일성 장군…”을 기리는 노래를 부르는 선생들의 모습에 정서적 이질감을 느꼈던 것처럼 송환 결정이 난 뒤 술자리에서 선생들이 벌써 평양에 가 있는 듯 “강성대국”이라고 외치며 술잔을 부딪히는 순간에도 그랬다. “거리는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또 가까이 본다고 잘 보는 것도 아니야. 코를 맞대고 있으면 오히려 상대방이 안 보여. 너무 가까우면 찍을 수가 없는거야.”
문소리 | 선생들을 결국
배우 문소리, <송환>의 김동원 감독에게 묻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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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수 주변으로 90년대 한국인의 단면을 펼치다
<송환>에 등장하는 장기수 선생의 주변 인물들은 몇 가지 갈래로 나뉜다. 장기수 선생의 존재로부터 어떤 정화를 받으려는 386세대처럼 그들의 존재에 대해 막연한 존경과 연대감을 품고 있는 이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선 그들을 돕고자 하나 철저히 자기중심적 방법으로 접근하는 이들이 있다(<송환>에선 반신불수의 류한옥 선생을 보호하고 있는 꽃마을이 그를 ‘가둬놓는다’는 인상으로 묘사된다. 오웅진 신부는 성경의 잠언을 읽게 해달라는 류 선생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관계를 맺고 있으나 그 관계를 애써 부정하려는 장기수 선생의 가족과 친인척의 피해의식이 비중있게 등장한다. 김선명 선생의 누이동생은 어머니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끝내 알려주지 않는다. 또 장기수 선생들과 작은 충돌을 빚는 납북자 가족들. 이런 다양한 인물과 사건이 ‘90년대 한국인의 단면’을 다채롭게 펼쳐간다.
김동원 |
배우 문소리, <송환>의 김동원 감독에게 묻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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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의 미세한 굴곡과 역설, 그리고 유머
‘절제했다’는 표현은 틀리지 않는다. 애초 김 감독이 작품의 중심에 놓으려 했던 건 조창손 선생이 아니라 김석형 선생이었다. 촬영을 해가면서 고위급 간부 출신에 사명감과 사상이 아주 투철한 김 선생보다는 조 선생에게 화자의 시선이 옮겨갔다. 편집단계에서 ‘주인공’은 완전히 조 선생으로 교체됐고, 인터뷰와 촬영을 통해 두 선생 사이의 괴리감이나 모순이 자연스레 포착됐으나 작품에서 모두 빠졌다. 예컨대 빨래와 청소, 설거지 등은 온전히 조 선생의 몫으로 돌아가면서 생기는 작은 갈등들, 김 선생에게 가졌던 동네 사람들의 경계심 등. 역시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선명 선생의 연애 이야기가 있다. 이 연애는 자못 심각해서 송환문제와 얽혀 복잡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 속내를 속속들이 알지만 김 감독은 이를 작품에 넣지 않았다. 김 감독은 “카메라는 왜곡이나 미화는 피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선생들이 예쁜 척하거나 잘난 척하는
배우 문소리, <송환>의 김동원 감독에게 묻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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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이 12년간의 긴 제작 여정을 마침내 끝냈다. 3월19일 예술영화전용관 네트워크 ‘아트플러스’를 타고 일반에 공개되는 <송환>의 주인공은 비전향 장기수다. 촬영 테이프 500여개, 촬영시간 800여 시간 가운데 고작 2시간을 추려낸 <송환>은 선동과 계몽의 욕구가 앞서는 정치 다큐멘터리가 될 수 없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스펙터클 비극이 도저히 담아내지 못하는 인간사의 미세한 굴곡과 역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비극의 카타르시스가 눈물을 뽑아낼 수는 있어도, 단단하고 현란한 논리가 구호와 행동을 자극할 수는 있어도, 삶의 고단한 역정이 동반하는 그 넓은 느낌까지 끌어안기란 쉽지 않다. <송환>은 섣부른 욕심이나 속단없이 그 모든 걸 하나씩 끌어내 보여준다.
배우 문소리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작업을 마친 김동원 감독을 만났다. 문소리는 “자격도 능력도 없지만 <송환>의 개봉에 조금의 보탬이라도 된다
배우 문소리, <송환>의 김동원 감독에게 묻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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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사하몽콜필름의 세일저 매니저 위 촘사지와 논지 니미부트르 감독 (위부터)
최근 등장하고 있는 신인감독군은 논지 세대와는 또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다. 논지 세대가 주로 광고업계에서 건너온 인재들인 반면 최근의 신인감독들은 영화아카데미 출신이나 평론가, TV 연출, 연극연출가 등 다양한 주변의 영상 관련 인력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시외버스 안의 뒷좌석을 연속극의 배경으로 설정하여 두 가지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가는 독창적 형식의 <아이산 특급>(2002)의 밍몽콜 소나쿤(그녀의 작업은 아핏차퐁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그녀의 차기작은 아마도 아핏차퐁과 함께 하게 될 것이다)과 PPP 프로젝트였으며 남성중심 사회에서 소외된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해낸 <원 나잇 허즈번드>(2003)의 핌파카 토위라(제작은 다름 아닌 밍몽콜 소나쿤이다)는 모두 평론가 출신이다. 지난 연말 개봉되어 흥행돌풍을 일으켰던 <마이 걸>(My Girl)은 감독이 무려 6
아시아 신흥 영화강국, 타이 영화산업 현지취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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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는 게이나 트랜스젠더에 대해 비교적 관대하다. 그 때문인지 트랜스젠더영화도 많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해외시장에서 가장 각광받는 장르영화이기도 하다. 용유스 통큰턴의 <철의 여인들>(2000)로부터 촉발된 트랜스젠더영화의 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지난해만 해도 용유스 통큰턴의 <철의 여인들2>(2003)를 비롯, 포이 아농의 <치어리더 퀸>(2003), 레오 키티코른의 <투씨 이병 구하기> 등 여러 편의 트랜스젠더영화가 만들어졌다. 이들 작품들이 대부분 코미디영화의 범주에 속하는 반면, 올해 공개될 에카차이 우에크롱담의 <아름다운 복서>는 유명한 타이복서였다가 여성으로 성전환한 실존인물 농뚬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 처음으로 트랜스젠더의 성 정체성을 진지하게 묻고 있는 작품이다. 액션영화는 타이 상업영화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가능성은 <옹박>(2003)으로 인해 촉발되었다. 감독
아시아 신흥 영화강국, 타이 영화산업 현지취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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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2004 태국의 작가와 장르영화 개괄
퀘논지 니미부트르 감독의 <낭낙>과 지리 말리굴 감독의 <메콩강의 보름달 파티>(위부터).
1997년, 타이영화는 갑자기 부활하였다. 80년대 초반까지 한때 200여편에 달했던 연간 제작편수가 경제침체와 맞물려 10여편 내외로 추락한 것이 90년대 중반까지의 타이영화의 상황이었다. 말하자면, 90년대 중반 타이의 영화산업은 거의 붕괴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1997년 논지 니미부트르, 펜엑 라타나루앙, 옥사이드 팡이 한꺼번에 데뷔하면서 타이영화는 기적처럼 부활하기 시작하였다(놀랍게도 당시는 타이의 바트화가 폭락하여 외환위기가 절정으로 치닫던 시점이었다). 2001년, 논지 니미부트르의 <낭낙>은 이러한 부활의 조짐에 불을 질렀다. <낭낙>이 역대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우자 그동안 영화제작을 등한시했던 메이저 제작사들도 제작을 늘리기 시작하였고, 타 분야에서 제작자본이 물밀듯이 밀
아시아 신흥 영화강국, 타이 영화산업 현지취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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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중심의 비교적 탄탄한 산업 구조
이런 상황에서 올해를 내다보는 타이의 영화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제작편수 감소를 이야기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어쩌면 그리되지 않을 수도 있다. 호황기를 충분히 누린 메이저들은 그 반대를 상상하고 있는 것 같다. 일부 영화에서 손해를 봤어도 “대부분의 큰 이익은 자국영화에서 나온” 사실을 잊지 않는다. 최대 메이저인 사하몽콜필름만 해도 그렇다. 지난해 11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외화를 포함해 총 80편을 배급한 사하몽콜은 올해도 자체제작으로 14편을 개봉할 예정이다. 외화 배급규모도 그대로 유지한다. 한해 평균 250여편의 영화가 개봉하는 타이에서 사하몽콜이 차지하는 30%의 점유율은, 전체 개봉편수가 줄어든다면 오히려 증가할 것이다. 사하몽콜의 관계자는 RS나 GMM도 올해 편수를 더 늘릴 것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스크린 수도 더욱 확대될 예정이다. 방콕은 이미 스크린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멀티플렉스들의 목표는 지방에 있다. S
아시아 신흥 영화강국, 타이 영화산업 현지취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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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가 자국 내 시장점유율 40%를 확보하고 동시에 산업적 시스템을 갖춰가면서 아시아에서 홍콩의 빈자리를 채워가기 시작한 것이 90년대 말이다. 바로 그 시기에, 또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영화산업이 부흥기를 맞고 자국영화를 해외에 알리기 시작했다. 3년 전 <씨네21>이 특집기사로도 다루었던 타이의 영화산업은, 그러나 현재 빠른 성장의 부작용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이곳 영화인들에 따르면 올해는 타이 영화계에 매우 중요한 해다. 거품을 빼기 위해 구조조정에 들어선 것처럼 보이는 타이. 위기 혹은 기회를 내포한 이곳 영화산업의 스케치를 담고, 김지석 프로그래머가 짚어준 타이 시네마의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지난 1월14일치 <뉴스위크> 한국판은 현 타이 총리 탁신 시나와트라를 커버스토리로 내세웠다. 7년 전 아시아 금융위기 때 바닥으로 추락한 타이 경제를 빠른 속도로 회복시키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 기사의 요지였다. 재벌 출신의 탁신 총리는 공공지출의 비중을 늘
아시아 신흥 영화강국, 타이 영화산업 현지취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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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스톱>은 이제 하나의 브랜드다"
권익준 PD는 4년 동안 <논스톱> 시리즈를 연출해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초창기의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뉴 논스톱>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뒤 이제 그는 ‘청춘 시트콤’의 역할과 가능성을 정확히 파악했다고 한다. 한국식 변종 시리즈 시트콤으로서 <논스톱>의 정체성, 그리고 그 속에서 <논스톱4>만이 노리고 있던 회심의 카드는 무엇이었을까.
-한국 최초의 시트콤 시리즈를 해온 PD로서 자부심이 있을 것 같다.
=시작할 때 농담처럼 시리즈로 가자고 얘기한 적은 있지만 작정하고 시리즈로 만든 건 아니다. MBC가 7시를 청춘 시트콤 시간대로 선점했다는 점에서 뿌듯하다. 사실 아무리 재미있는 아이템도 최소 6개월은 있어야 자리를 잡는다. <논스톱>이라는 이름을 계속 유지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좋은 제목이라서가 아니라 브랜드로서 지명도가 있기 때문이다.
-<논스톱&
<논스톱> 시리즈, 그 얄팍한 매력에 대하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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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메인 캐릭터들을 설정하고, 사이사이 후보선수 격으로 배치되는 조연들이 다음 시리즈까지 등장하는 것은 <뉴 논스톱>과 <논스톱3>를 연결하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논스톱4>는 배경을 기숙사에서 논스톱 밴드로 바꾸고, 전 시리즈의 멤버들을 전원 교체했다. 따라서 유독 <논스톱4>에서, 그간 익숙하게 변주되지 았았던 새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 <논스톱4>만이 내세우는 회심의 인물들은 누구인가.
트러블 메이커라고? 난 뭐 그렇다∼ /몽봉 콤비
한국 시트콤 사상 최초의 콤비 트러블 메이커. <뉴 논스톱>의 양동근, <논스톱3>의 하하로부터 이어지는 계보를 양분하고 있는 셈. 유사한 엽기 외모를 내세우면서 항상 붙어다니기 때문에 한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엄연히 다른 영역을 고수하고 있다. 이를테면 잔꾀 박사 봉이 브레인이면, 몽은 행동대장이다. 지지리 궁상이어도 ‘시리어스’한 동정을
<논스톱> 시리즈, 그 얄팍한 매력에 대하여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