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1_거장 : 이름값을 하는 거장의 작품 9편
쿠스투리차와 허우샤오시엔이 떴다!
거장이라는 말은 거북한 표현이긴 하지만 쉽게 버릴 말은 아니다. 세월을 짊어지고 영화 세계사를 새로 써가는 그들의 노정을 여기에서 확인한다면 동의할 수 있을지도.
사회적 학살 A Social Genocide
감독 페르난도 솔라나스 l 아르헨티나 l 120분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1968)로 세계 다큐멘터리사에 한획을 그었던 페르난도 솔라나스의 최근작. 영화는 경제공황으로 최악의 상황에 몰린 아르헨티나의 현실을 되짚는다. 2001년 10월에 있었던 아르헨티나 시민들의 시위장면을 보여주면서 영화를 시작한 페르난도 솔라나스는 질문한다. “도대체 아르헨티나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회적 학살>은 요즘 유행하고 있는 마이클 무어식의 다큐멘터리와는 거리가 있다. 이 영화가 선택한 방식은 질문에 철저히 구조적으로 대답해보는 것이다. 각각 “끝없는 빚더미, 경제 모델, 민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총력가이드 [2] - 거장의 작품 9편
-
영화의 바다에서 발견의 즐거움을!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0월7일부터 15일까지 9일간의 영화축제를 연다. 올해 칸영화제 상영 이후 재촬영과 재편집을 거듭하면서 초유의 화제를 모았던 왕가위의 신작 <2046>이 극적인 과정을 거쳐 마침내 개막작으로 선정됐고, 새로운 스타일의 스릴러로 예상되는 변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주홍글씨>가 폐막작으로 결정됐다.
누가 뭐래도 영화제의 즐거움은 좋은 영화, 신나는 영화와의 조우이다. 9일간 총 266편의 장·단편이 상영될 이번 영화제는 예년에 못지않은 관람의 즐거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굵직한 특별전과 회고전이 눈에 띈다. 먼저 그리스의 거장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장편 전작을 상영하는 뜻깊은 회고전이 준비되어 있다. 앙겔로풀로스는 이번 회고전을 맞아 최초로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기도 하다. 한편, 알렉산더 클루거, 폴커 슐뢴도르프 등 뉴저먼 시네마 기수들의 어제와 오늘의 작품을 마주할 수 있는 독일영화 특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총력가이드 [1]
-
인위성을 거부하는 도발
개인적 감회부터 시작하자. 난니 모레티의 <아들의 방>에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안기며 막을 내린 지난 2001년 제54회 칸영화제에서 본 40편가량의 영화들 중 내 뇌리에 가장 강력히 머물러 있는 건 아르헨티나가 낳은 미지의 신예가 쓰고 연출한 <자유>(La Libertad)라는 작품이다. 뭐 예의 걸작 내지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빼어나거나 내 취향에 완벽히 조응해서는 아니다. 그럼에도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선보인 영화는, 그간 극히 다양한 영화들을 적잖이 접해온 내게도 단연 주목할 만했다. 한마디로 그것은 특기할 만한 아무런 극적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 영화의 지독한 사례였다.
극저예산으로 만들어진 게 틀림없는 영화는 겨우 70분여 동안 미사엘이라는 한 사내의 하루 일과를 별 다른 인위적 포장이나 설명없이, 아주 느린 호흡으로 보여준다. 딱히 다큐멘터리라고도 극영화라고도 할 수 없을, 달리 말하면 현실과 허구 사이
거장 예감, 세계의 新星 감독 10인 [10] - 리산드로 알론소
-
차가운 피가 흐르는 여자
이 여자의 영화는 건조하다. 이 여자의 눈매는 냉정하다. 이 여자의 유머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루크레시아 마르텔은 최근 최악의 경제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상승세를 타고 있는 아르헨티나영화를 이끄는 실력있는 여성감독이다. 1966년생으로 35살에 데뷔한 이 늦깎이 여성감독은 대학에서 신문학을 전공하면서, 남는 시간으로 시나리오를 만드는 등 차근차근 감독의 길을 닦아왔다. 그녀에게 ‘보수적이고 인종차별이 심한’ 아르헨티나 북부는 그녀가 창조한 세계의 중심에 해당하는 곳이다. 자신의 영화 모두의 배경이 되는 이 마을을 등 뒤로 하고, 그녀는 아르헨티나의 지배 계급인 백인 부르주아의 타락한 이면을 냉혈동물의 온도 감각으로 예리하게 짚어낸다. 물 웅덩이처럼 깊게 고여 있는 수영장에는 술에 절어 사는 어머니와 서로의 몸을 더듬는 형제 자매들의 성마르고 끈기없는 욕망이 켜켜이 침전해 있다. <늪>과 <성스런 소녀>, 이 두편의 영화는 루
거장 예감, 세계의 新星 감독 10인 [9] - 루크레시아 마르텔
-
-
브레송과 포르노의 만남
“1968년 5월, 난 파리에서 나의 첫 번째 포르노영화를 만들었어. 1958년에는 알제리 전쟁이 있었는데, 그때 난 너무 어렸지.” 베르트랑 보넬로(1968년생)의 두 번째 영화 <포르노그래프>(2001)에 등장하는 포르노 영화감독 자크 로랑의 말이다. 흥미롭게도 여기서 자크 역을 맡은 배우는 누벨바그의 아이콘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장 피에르 레오이다. <포르노그래프>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열정, 실패한 68혁명, 그리고 그것들을 씁쓸하게 반추한 몇몇 개인적인 영화들- 예컨대 장 외스타슈의 <엄마와 창녀>나 필립 가렐의 <사랑의 탄생>- 이 켜켜이 쌓여 이루어진 두터운 층을 파고드는 고고학적 텍스트이다. 영화 엔딩 크레딧 말미에 다음과 같은 파졸리니의 말이 인용된 것도 그 때문이다. “역사란 아버지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아들들의 열정이다.”
자크 로랑은 은퇴한 포르노 감독이지만,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다시
거장 예감, 세계의 新星 감독 10인 [8] - 베르트랑 보넬로
-
섬뜩하고 냉정한 리얼리스트
90년대 후반, 프랑스영화에 새로운 기운이 생겨났다. 인간의 사적 세계를 미분해 들어가던 그곳 영화의 주류적 흐름과 달리 정치·사회문제를 선정적일 만큼 정면으로 부각시키는 영화들이 나왔다. 로랑 캉테는 99년 38살의 나이로 뒤늦게 데뷔하면서 알랭 기로디, 로베르 게디기앙과 함께 이런 기류의 대표주자로 올라섰다. 데뷔작 <인력자원부>는 당시 논란이 된 주 35시간 노동제 도입을 강행하려는 회사에 파업으로 맞서는 노조의 투쟁을 다뤘다. 비전문배우들로 출연진을 꾸리고 음악도 쓰지 않고 영화의 무대를 주인공의 집과 공장으로 제한한 채 이야기를 좁혀 담백하게 끌고갔다.
모처럼 만에 노동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영화를 들고 나타난 캉테는, 수십년간 줄기차게 노동계급을 위한 영화를 만들어온 영국의 켄 로치를 떠올리게 했지만 그의 어법은 켄 로치보다 차가웠다. 켄 로치처럼 조그만 희망이라도 남겨놓고 북돋우려는 모습이 그에겐 없었다. <인
거장 예감, 세계의 新星 감독 10인 [7] - 로랑 캉테
-
상실의 나락, 희망 연주자
2000년, 세계 영화계는 멕시코시티를 질주하는 자동차가 낸 굉음에 깜짝 놀라 한동안 잊고 있던 대륙을 향해 일제히 눈길을 돌렸다. 립스테인과 조도로프스키의 전통이 서려 있는 멕시코영화를 다시 주목하게 한 이 영화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41)의 <아모레스 페로스>였다.
갑작스런 자동차 충돌사고를 축으로 가해자, 피해자, 그리고 목격자의 이야기를 교묘하게 얽어놓은 이 작품은 폭발적인 에너지와 MTV 스타일의 빠른 화면 전개, 세 사람의 시점을 교차시키는 내러티브 등으로 보는 이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 각각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개를 이용해 사람들과 세상을 비웃는 대목은 정치적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아모레스…>는 새 세기의 첫 번째 고전으로 느껴진다”(<뉴욕타임스>) 등 평단의 찬사는 그해 칸영화제에서 비평가주간 대상으로 이어졌으며, 곳곳의 영화제는 두팔을 벌려 이 영화를 환영했다. 특히 멕시코뿐 아니라 미국
거장 예감, 세계의 新星 감독 10인 [6] -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
5세대를 껴안은 지하전영
2002년 11월에 부산영화제를 찾았던 왕차오는 <씨네21> 데일리에 지아장커의 롱테이크와 롱숏이 자기만의 형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을 남겼다. 그 다음달 <씨네21>에 실린 지아장커의 인터뷰에는 왕차오의 미학적 성취가 현실과의 관계를 벗어나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지적이 실려 있다. 근소한 시차를 두고 우연히 한마디씩 남겨진 그 비판의 왕래가 흥미롭지 않았다면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유릭와이의 <명일천애>를 이 자리에 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거장의 열에 오른 지아장커의 영화파트너(유릭와이는 <소무> <플랫폼> <임소요> 등의 촬영기사였다)에 대한 소개는 솔직히 덜 신선하다. 지하전영 내부에서 다양한 대립적 비판의 각을 세울 수 있는 독불장군 하나가 나왔다는 것이 더 생생하다. 왕차오는 충분히 그런 논쟁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 감독이다.
왕차오는 영화감독 이전에 이미 영화평론가
거장 예감, 세계의 新星 감독 10인 [5] - 왕차오
-
시정(詩情)으로 가득한 현실의 이면
린 램지를 두고 그저 ‘주목할 만한 신예’라고 말하는 건 어쩐지 좀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녀가 지금까지 만든 작품은 세편의 단편영화와 두편의 장편영화가 고작이지만, 이들은 모두 독특한 시정으로 가시적인 현실의 표면을 파고들어 그 아래 깃들인 열정과 불안을 건져올리는 마술적인 힘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손쉽게 영화사적 전통에 기대지 않고 조금씩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해나가고 있는 린 램지는 우리로 하여금 (이제는 지나치게 많아진 감이 없지 않은) 영화학교 졸업생들의 그럴싸한 ‘의사-예술영화’가 얼마나 게으르고 안이한 선택이었는가를 여실히 깨닫게 만든다.
영화학교 졸업 작품인 <작은 죽음들>(1995), 그리고 뒤이어 제작한 <소일하기>(1996), <가스맨>(1997)으로 칸영화제 단편부문 및 클레르몽 페랑 영화제에서 수상함으로써 린 램지는 일찌감치 자신의 재능을 입증했다. 통상적인 영화에서라면 거의 중요하게
거장 예감, 세계의 新星 감독 10인 [4] - 린 램지
-
실험영화보다 낯선 형식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현재(8월29일), 부산시립미술관에서는 부산비엔날레가 한창이다. 부산비엔날레의 메인 행사 중에 <현대미술전>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영화욕망’이라고 하는 주제의 전시가 있다. 이 전시는 ‘스크린 기반 미술’(Screen-based Art)의 현재를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행사이다. ‘영화욕망’에 초대된 작가 중에 낯익은 이름이 몇 있다. 중국의 양푸동과 우얼샨(양푸동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부문에 <백생천당>이라는 작품이 초청된 바 있으며, 우얼샨은 데뷔작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될 예정이다), 그리고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다. 아핏차퐁의 작품은 <당신의 마음만으로는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라는 긴 제목의 일종의 실험영화이다.
아핏차퐁은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타이영화 감독들 가운데서도 가장 낯선 감독이다. 그가 만든 작품들이 대부분 실험영화이기 때문이다. 국내에
거장 예감, 세계의 新星 감독 10인 [3] -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
사실주의자에서 스타일리스트로
내가 마테오 가로네(1968∼)라는 이름을 처음 본 것은 이탈리아 볼로냐의 어떤 궁전 뜰이었다. 거의 모든 시민들이 바캉스를 떠나버린 텅 빈 도시의 여름, 나처럼 도시에 남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볼로냐 시네마테크는 중세 궁전의 뜰을 빌려 밤마다 영화상영회를 한다. 그때 전혀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이탈리아 신예감독의 작품이 ‘감히’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 같은 걸작과 함께 프로그래밍돼 있었다. 그 영화는 바로 가로네의 장편 데뷔작 <수단의 땅>(Terra di mezzo, 1997)으로 신예감독들의 대결장인 토리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작품이다.
<수단의 땅>은 당시 불법입국자, 불법노동자 문제 등이 연일 신문의 1면을 장식할 때 발표돼, 관객의 반응은 아주 민감했다. 다큐드라마 형식인 이 영화는 외국인 불법이민자의 하루를 따라간다. 일을 찾아 새벽 노동시장으로 나간 한 알바니아 출신 10대 소년
거장 예감, 세계의 新星 감독 10인 [2] - 마테오 가로네
-
세상에는 거장이라 불리는 영화감독들이 있다. 이들은 영화가 120분짜리 롤러코스터가 되어선 안 되며, 팝콘과 콜라를 먹기 위한 배경화면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들의 영화에는 세계와 사람과 진실이 견고한 스타일에 녹아들어 있다. 물론 거장의 영화만으로 가득 찬 멀티플렉스를 상상할 수는 없다. 대다수의 관객에게 그건 불행한 일이다. ‘다행히도’ 현실의 멀티플레스는 즐겁고 행복한 영화로 대부분의 스크린을 채우고 있다. 하지만 거장의 영화가, 세상과 인생과 진리를 말하는 작품이 사라진다면, 이 또한 불행한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홀로 앉은 어두운 객석 안에서 세상의 비정함과 인생의 쓴맛과 진리의 고통을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여기 소개하는 10명의 감독은 아직 거장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조만간 그 반열에 이름을 올릴 세계 영화계의 샛별들이다. 이들은 노동계급의 현실에 주목하거나 인위성을 배제한 영화를 꿈꾸거나 외설을 통해 인간의 본질에 접근하는 등 각각 추구
거장 예감, 세계의 新星 감독 10인 [1] - 가와세 나오미
-
카탄(the Settlers of Catan)
보드게임계의 대명사라고 불릴 만큼 막강한 인기와 지명도를 가진 그야말로 ‘작품’이다. 카탄이라는 가상의 섬에 도착한 우리는 집과 길을 내면서, 목재, 곡물, 광물 등의 자원을 얻고 그것을 이용해 다시 집과 성을 만들어가며 정해진 점수를 먼저 얻어 승리하게 된다.
좋은 땅을 차지하고 그것을 통해 부를 넓혀가는 ‘부익부 빈익빈’ 게임의 성격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데, 부루마블이나 그 원형이 되는 모노폴리처럼 한번 발을 헛디디면 도저히 가난을 헤어날 수 없는 게임들과는 한 차원 다른 수준을 지니고 있다. 개발 카드를 통해 특수한 힘을 발휘할 수도 있고, 길을 넓혀가며 상대를 봉쇄하고 점수를 얻을 수 있는 등의 다양한 전략들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임 초반에 강자가 되었다고 절대 안심할 수 없는 것이, 약자들이 연합해서 영토를 황폐화시키면 헛주사위만 굴리다 게임을 그르친다. 보드게임 중에는 카탄처럼 육각형의 타일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
<씨네21>의 추석 선물세트 [5] - 보드게임 명작 6편
-
<마빈스 룸> Marvin’s Room
1996년 l 제리 잭스 l 98분 l 1.85:1 비아나모픽 l DD 5.1 영어 l 한글, 영어 자막 l 스펙트럼
베시는 아버지와 고모를 모시면서 독신으로 살아왔다. 돌아가신 엄마처럼 백혈병에 걸린 그녀는 20년간 헤어져 살던 여동생 그리고 아이들과 재회한다. <마빈스 룸>에 등장하는 가족은 산산이 부서지고 초라할 뿐 새로 가족을 이루기엔 힘들어 보인다. 침대에서만 지내는 병든 아버지와 TV 속 세상에 빠진 철없는 고모,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아이들 앞에서 두 자매는 오랜 세월 미워하고 무관심했던 자신들의 모습을 마주한다. 존재 그 자체로만 가족이 될 수는 없는가 보다. 현실은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기만 하는데, 힘들게 보낸 세월 속에 얻은 지혜와 사랑으로 그들을 묶으려는 베시의 노력이 아름답다. 베시의 아버지 마빈의 방에선 거울이 마법을 부린다. 영화의 마지막, 거울로 비춘 햇살을 좋아하는 아버지 옆으로 일가족이
<씨네21>의 추석 선물세트 [4] - ‘귀향’을 다룬 DVD타이틀 6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