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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구속을 뛰어넘어 서로를 만나는 여성들
뉴저먼 시네마의 어머니, 마가레테 폰 트로타 특별전
<독일 자매>
1981년 / 106분 / 35mm / 드라마 / 감독특별전
‘이상을 위한 폭력’이라는 모순에 대해 트로타가 해답으로 제시하는 것은 여성의 유대를 통한 폭력적 상황의 극복이다. 이 영화부터 일관되게 제시되는 트로타의 여성적 유대는 단순한 친밀감의 차원을 넘어서 독일 현대사의 상흔과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성격을 띤다. 그녀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인 <독일 자매>(1981)는 이같은 트로타의 생각이 더욱 구체화된 작품이다. 영화는 페미니스트 언니와 테러리스트 동생의 상반된 길을 보여준다. 결국 동생의 투옥과 의문의 자살을 통해, 언니는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려는 자매의 행동이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반항이라는 어떤 공통의 뿌리에서 나왔음을 이해하게 된다.
<로젠슈트라세>
2003년 / 136분 / 35mm / 드라마 /
4가지 욕망코드로 골라보는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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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기 위해 싸운다
<우리 시대> Our Times…
릭샨 바니 에테맛 / 이란 / 2002년 / 75분 / 35mm / 다큐멘터리 / 새로운 물결
2001년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모티브를 얻은 <우리 시대>는 개혁의 순간을 기록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해 한 여성의 생존투쟁을 지켜보며 끝을 맺는다는 점에서 여성영화제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정치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의 허울 아래서>가 지난해 여성영화제에 초청됐고 이란의 대표적인 여성감독 중 하나이기도 한 락샨 바니 에테맛은 혼란에 빠진 독백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그녀는 카메라를 들기로 결심했지만, 어디에서부터 촬영을 시작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에테맛은 개혁주의 성향을 가진 현 대통령 모하마드 하타미를 지지하는 자신의 딸과 그 친구들을 인터뷰하다가 정부로부터 출마를 금지당한 48명의 여성 후보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그렇게 만난 여자가 홀로 어린 딸과 눈먼 어
4가지 욕망코드로 골라보는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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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근대성-여성, 삼각축의 불가해한 매력
미조구치 겐지에서 이치가와 곤까지 일본 고전영화 속의 여성
Ten Dark Women
이치가와 곤 / 1961년 / 103분 / 35mm / 아시아특별전
한 남자가 있다. 아내와 9명의 정부 사이에서 줏대없이 왔다갔다하는 TV 프로듀서 카제 마츠키치는 그의 정부들이 자신을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그는 급기야 호색한 남편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사업에서 즐거움을 찾던 아내에게 도움을 구한다. 영리한 아내는 덜미를 잡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정부들은 자기 꾀에 빠져 여기에 걸려들고 만다. 누아르풍의 화면을 보여주는 〈1명의 아내, 9명의 정부>는 1960년대 영화라는 것을 믿기 힘들다. 정교한 유머감각이 그렇고 스타일이 그렇다. 열명의 여성들이 한 남자를 실질적으로 ‘공유’하면서 때로 라이벌이 되고 때로 친구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TV방송사라는 배경은 여성의 노동, 근대성의 상징으로 비춰 더욱 흥미진진
4가지 욕망코드로 골라보는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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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관계들의 상처
세상 끝까지> To thr other End of the World
<리사 마도에린 / 스위스 / 2003년 / 28분 / 베타 / 다큐멘터리 / 여성영상공동체
한국계 스위스인인 리사 마도에린 감독의 자전적 다큐멘터리 <세상 끝까지>는 자기 어머니의 과거를 통해 가족 또는 관계에 대한 여성의 욕망을 이야기한다. 30분이 채 되지 않는 이 짧은 다큐멘터리는 옛날 것으로 보이는 젊은 연인의 사진을 비추며 시작한다. 그들은 마도에린 감독의 친부모, 아키오 이치가와와 김명희다. 마도에린 감독은 클럽 가수였던 어머니와 당시 딸 셋을 둔 가장이었던 아버지가 어떻게 사랑을 시작했고 끝을 맺게 됐는지, 어머니와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하나하나 기록해나간다. “세상 끝까지라도 당신을 쫓아가겠어”라는 달콤한 사랑고백을 한 아버지와 그런 남자의 아이를 결국엔 혼자서 낳아야 했던 어머니. 그리고 딸은, 두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 친아버
4가지 욕망코드로 골라보는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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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인 활동가로 불러주오
<벌거벗은 페미니스트> The Naked Feminist
루이사 아칼리 / 호주 / 2003년 / 58분 / 베타 / 다큐멘터리 / 영페미니스트 포럼
<벌거벗은 페미니스트>가 선택한 장은 포르노 산업이다. 장편 극영화 <원 테이크>를 만들었으며, 독립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루이사 아킬리는 한 잡지에서 포르노 스타 니나 하틀리에 관한 기사를 읽고 포르노 산업 내의 페미니즘 가능성을 발견하고는 곧 <벌거벗은 페미니스트>의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이 다큐멘터리는 오랜 기간 남성들의 시각적 쾌락에 종속돼온 것으로 악명 높았던 포르노 산업 속에서 오히려 ‘전복적인’ 페미니즘 투사들을 발견한다. 포르노 스타 베로니카 하트, 캔디다 로얄, 글로리아 레오나드, 애니 스프링클, 베로니카 베라 등은 자신들의 긍정적인 자부심과 세계관, 활동 방식, 작업 형태들을 준거로 포르노그라피가 단순히 남성 전유물
4가지 욕망코드로 골라보는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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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욕망은 지금 몇시인가?”
아마도 부산영화제나 부천판타스틱영화제를 이런 식으로 재편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4월2∼9일)의 섹션 구획을 임의로 해체해 ‘여성의 욕망은 지금 몇시인가?’라는 조금은 억지스러운 시침으로 상영작을 분류하자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성적 욕망, 문화적 욕망, 정치적 욕망, 가족·관계에의 욕망이란 그물망에 상영작들이 대체로 분류됐다(아시아 단편경선과 성장영화 정도를 빼놓고 아시아특별전과 감독특별전까지 이를 적용할 수 있었다). ‘여성’이란 이름으로 말해야 하고, 해야 할 것이 그만큼 곳곳에 산적해 있다는 뜻일 게다. ‘의외의 일’이란 이런 분류가 가능했다는 것이 아니라 이 분류를 통해 좀더 명확히 드러나는 변화와 차이다. 예컨대 페미니즘과 웬만해선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어 보였던 포르노가 어느 순간 페미니즘의 무기가 되어 있고, 자신의 몸을 토대로 한 성적 욕망이더라도 그 여성이 어느 땅에서 태어났느냐, 어떤 계급에 속해 있느냐에
4가지 욕망코드로 골라보는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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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질적인 것’과 ‘배창호적인 것’
배창호 감독은 <황진이> 이후 자신의 영화가 변화했다고 늘 말한다. 거기에 한번의 전환을 더 덧붙이자면, <젊은 남자> 이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꼬방동네 사람들>(1982)로 시작한 필모그래피는 <고래사냥>(1984)을 기점으로 흥행사로서의 80년대를 지났으며, <황진이>(1986) 이후 적지 않은 실험작 목록을 남겨놓았다. 그러나 명백히 <천국의 계단>과 <젊은 남자>는 젊은 세대들의 감성에 밀착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 다음이 지금의 <길>을 설명할 수 있는 궤도이다. 그는 자신의 세대적, 또는 내적 감성으로 회귀했다. <러브스토리>에서부터 <정>과 <흑수선>을 지나 <길>까지 젊은 세대들을 뒤쫓기보다는 과거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으면서, 그가 말하고 싶어하는 “한국적인 것 속에 있는 배창호적인 것, 우리
용서의 드라마로 돌아온 배창호의 신작 <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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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흥행사 배창호 감독의 저예산영화, <길>의 지난한 여정
<흑수선> 이후 2년이 지났다. 배창호 감독은 다시 저예산영화 <길>을 들고 찾아왔다. 개봉시기는 잡히지 않았고, 언제 이 영화를 볼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씨네21>은 한국 중견감독의, 오랜만의 신작이 어서 관객과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영화 <길>의 고된 제작의 길과 그 작품의 길, 그리고 감독이 말하는 신념의 길을 함께 싣는다.
배창호 감독의 새 영화 <길>은 그가 자주 쓰는 표현처럼 “굳은 신념 없이는 만들 수 없는” 그런 영화이다. 사비를 털고, 친지들의 주머니를 뒤져 제작과 감독을 겸하면서 <러브스토리>(1996)와 <정>(1998)을 완성했지만 관객의 발걸음은 늘어나지 않았다. 그뒤 주위의 기대를 모으며 미스터리스릴러물 <흑수선>(2001)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불시착한 영화처럼 보였다. 그것을 배
용서의 드라마로 돌아온 배창호의 신작 <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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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녀는 사자굴에서 살아날 수 있을까요? 다음주 후속편을 기대하세요!” 사상 최초의 영화 예고편은 1912년 뉴욕에서 상영된 <캐슬린의 모험> 말미에 불쑥 등장했다. 뉴욕 광고인들이 세운 내셔널 스크린 서비스사가 독점 제작한 초기 예고편들은 도리어 극장으로부터 돈을 받고 제공됐다. 독점 생산된 초기 트레일러들은 스펙터클과 스타, 최대한 두꺼운 글씨체의 타이틀에 곡마단 사회자풍의 내레이션이 버무려진 ‘그 밥에 그 나물’이었다. 몰개성한 예고편의 밀물 속에서도 데이비드 O. 셀즈닉, 세실 B. 드밀, 앨프리드 히치콕 같은 흥행사들의 감각은 빛났다. 특히 <싸이코> 예고편에서 베이츠 모텔 동네의 투어를 행했던 히치콕은, <로프> 예고편을 극중 인물이 영화 속 사건이 터지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보여주는 프롤로그로 연출하기도 했다. 1960년대에 상업적 편집기교를 업그레이드한 할리우드 예고편은 1975년 <죠스>가 TV광고와 전미 대규모 동시개
영화 예고편 완전정복 [4] - 헐리우드 예고편 / 국내 예고편 제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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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온 국내영화 예고편을 통틀어서 최고를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이 리스트는 예고편 감독들과 마케터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여러 번 회자된 예고편들을 중심으로 했고, 그중 독특한 시도나 내적 완성도로 높이 평가받은 작품들을 추려 완성했다. 진정 최고인가 하는 점에서는 이견의 여지가 있겠지만, 다시 곱씹더라도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의 장점은 분명히 갖고 있는 예고편들이다.
<하류인생> : 신중현의 기타 선율위에 강렬한 액션신
뮤직비디오 형식을 취한 <하류인생> 1차 티저 예고편은 던지는 첫인상이 매우 강렬하다. 강한 콘트라스트와 거친 입자로 흔들리는 화면은 군중 액션신과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잡은 두 주인공의 얼굴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면서 에코 효과를 입힌 낭만적인 대사들로 가끔씩 귓전을 울린다. 공들여 촬영한 연출 컷으로 보이는 이 화면들은 모두 영화에서 따왔다. 이 예고편에서 무엇보다 매력적인 요소는 <하류인생>의 음악감독을 맡은 신중현의 기
영화 예고편 완전정복 [3] - 국내 예고편 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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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과 내용을 교차하며 유형별로 보기
영화제작에서 마케팅의 영역에 속하는 예고편은 자신의 아버지인 광고처럼 ‘순간’의 예술이다. 다른 아버지인 영화의 본편은 가끔 자신을 떠올려주는 팬이나 다른 채널에 의해 뒤늦게 부활하고 복권되지만 예고편은 사람들이 본편을 기다리는 정해진 순간에만 자신을 드러내고 본편이 개봉되면 기억에서조차 말끔히 사라진다. 예고편을 제작하는 전문가들도 최근의 예고편들을 주로 기억하는 것은 그러한 예고편의 숙명에서 비롯된다.
“할리우드에서도 극소수의 티저를 제외하면, 예고편 개별 제작은 없다”라고 자탄하는 한 예고편 감독의 목소리에는 자신감과 자기 부정이 기묘하게 섞여 있다. CF 감독, 예고편 전문 감독, 본 영화의 조감독, 영화감독 등 다양한 주체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방법론으로 연출하는 한국영화의 예고편들은 자신들의 아버지인 현대 한국영화처럼 강한 개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과잉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러한 활발하고 다양한 예고편 제작활동은 한국영
영화 예고편 완전정복 [2] - 유형별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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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킹 필름,드라마 패러디,뮤직 비디오 등 형식&내용 파격
관객몰이 120초의 승부 - 예고편의 ‘때깔’이 달라지고 있다
한국영화의 예고편이 달라지고 있다. 인상적인 영화 컷을 끌어모아 영화의 내용을 미리 알려주던 단순한 클립에서 벗어나 독특한 기획력과 아이디어, 형식이 총동원된 예고편들이, 때로는 영화 본편과는 상관없이 예고편만으로 경쟁하듯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30초에 모든 것을 걸고 소비자에게 구애하는 광고처럼, 지금의 한국영화 예고편들은 2시간짜리 영화를 2분 안에 설명하고 관객의 옷자락까지 물고늘어져야 한다는 자신의 숙명을 너무도 절실하게 깨닫고 있는 듯하다. 때로는 TV광고보다도 참신한 아이디어로, 때론 본 영화보다도 더 극적인 구성으로 우리를 사로잡는 예고편들. 이런 예고편들이 어떻게 기획되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자세한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편집자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를 고집하는 A모씨. <그녀를 믿지 마세요>를 관람하러 극장에 갔다가 이상한 예
영화 예고편 완전정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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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게 보내는, 뒤늦게 쓴 반성문
-작가 노희경이 말하는 <꽃보다 아름다워>
=묻고 싶은 것도,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고독> 이후 많은 시청자들이 한때 자신들이 추앙해 마지않던 작가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을 때부터. 결국 2년 뒤 <꽃보다 아름다워>란 드라마와 함께 무덤에서 걸어나온 노희경에 대한 궁금증과 조급증은 최종회를 쓰기 위해 “점이 돼서 안 보일 만큼” 말라버린 그의 목에 빨대를 꽂는 만행을 저지르게 만들었다.
-<고독>을 끝내고 꽤 방황했던 것으로 안다.
=배운 게 많았다. 내가 어느새 장사를 하고 있구나, 같지도 않은 기교를 부리는구나, 섣부르게 이 정도쯤이면 드라마의 무게감을 줄 수 있겠지, 만만하게 생각했다. 그게 시청자들에게 들키니까 창피했다. 결국 내가 제일제일 싫어했던 작가가 돼버렸구나, 정말 바닥을 쳤다는 생각이 끔찍하게 들었다. 그때 스스로에게 느낀 치욕감 같은 걸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다른 드라
세상 모든 호로자식들의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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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하나뿐인 사랑하는 영자씨”
누구에게나 엄마가 있다. 태어나 얼굴 한번 못 보았다 해도, 혹 더이상 볼 수 없다 할지라도. 세상에 난 모든 것들에겐, 엄마가 있다. 이 분명한 사실이 어쩌면 ‘마니아 드라마’나 ‘배고픈 명예’ 등으로 수식돼왔던 노희경 작가의 신작, <꽃보다 아름다워>를 시청률 20%에 가까운 대중적 지지로 이끌었는지 모른다. 부모와 자식에 대한, 혹은 사랑과 용서에 대한 이야기인 <꽃보다 아름다워>는 노희경 드라마의 종합판이자, 확장판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뒤늦은 반성과 <거짓말>의 안타까운 선택, <슬픈 유혹>의 벅찬 포옹과 <바보같은 사랑>의 미련한 기다림을 경유해 비로소 도착한 안도의 화원(花園). <고독> 이후 가장 고독한 한철을 보낸 작가 노희경의 꽃 같은 귀환, <꽃보다 아름다워>는 왜 아름다운가.
세상 모든 호로자식들의 드라마
바보
세상 모든 호로자식들의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