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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신작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가 칸의 붉은 카펫을 밟는다. 오는 5월12일부터 23일까지 열리는 제57회 칸영화제가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과 <취화선>에 이어 홍 감독의 신작을 한국영화로는 세 번째로 경쟁부문에 초청했다. <씨네21>은 아직 공식 시사회를 갖지 않은 이 작품을 독자들에게 가장 먼저 소개하는 ‘반칙성 행운’을 안게 됐다(이성욱 기자가 영화진흥위의 2004년 제1차 자막 번역 및 프린트 제작지원을 위한 심사위원으로 위촉돼 이 영화를 볼 수 있었고, 인터뷰어로 나서준 영화평론가 허문영씨는 부산국제영화제의 한국영화 프로그래머로서 이 작품을 누구보다 먼저 접할 수 있었다). 홍상수 감독은 최근 프랑스 주요 매체들과의 연쇄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온 직후, <씨네21>과의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편집자
홍상수의 영화들에서 사람들은 예외없이 여행자이거나 여행자가 되려고 한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홍상수 감독의 신작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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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함과 모험 ‘숨은 소리’ 찾기
영화 성찬3 - ATG 회고전으로 보는 일본 예술영화의 힘
1961년에 발족된 일본의 ATG(Art Theater Guild)는 ‘예술영화’를 제작하고 배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일본 전역에서 10여개의 예술영화전용관을 확보하고, 그 영화관에서 상영할 영화를 직접 만들기 위해 조직된 ATG는 일본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들을 양산했고, 다양한 성향을 가진 감독들이 메이저 영화사에서 시도할 수 없는 영화를 저예산으로 만들 기회를 제공하였다. ATG는 86년까지 활발하게 활동했고, 참가한 감독의 성향에 따라 크게 3기로 구분된다. 메이저 영화사가 거부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곳, ATG는 감독의 자유로운 창작욕을 불태웠다는 점에서 일본 예술영화의 수원지라고 할 수 있다. 1, 2기는 메이저와 불화를 겪은 감독, 아예 접촉조차 하지 않았던 예술영화 감독들이 활동한 시기다. 반면 3기는 기존의 영화나 TV에서는 하지 않은 무엇인가를 시도해
선택! 2004 전주국제영화제 - [3] 일본 예술영화 ATG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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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아, 솔라스의 ‘혁명영화’와의 조우
영화 성찬2 - 쿠바영화 특별전
1960년대 브라질에서 글라우버 로샤가 ‘굶주림의 미학’을 주창했다면 비슷한 시기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나라인 쿠바에서는 훌리오 가르시아 에스피노자라는 영화감독이 ‘불완전한 영화’를 새로운 영화의 시학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에스피노자의 이 개념은 당연히, 당시의 쿠바처럼 영화적 자원이 풍부하지 못한 나라에서 기술적·예술적 완성도를 지향하는 영화적 시도란 소모적일 뿐 아니라 그릇된 것이라는 생각과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이 ‘불완전한 영화’가 단지 당대의 물질적 제한에만 대응하는 영화, 그래서 부주의하게 혹은 볼품없이 만들어도 되는 영화라고 생각하는 건 분명 에스피노자의 생각을 오해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나중에 그는 자신이 의미하는 게 새로운 영화문화의 전개에도 동화하고 그것에 관심을 갖는 영화라는 점을 재차 밝혀야만 했다. 즉 필요에 의해 그 어떤 양식이나 장르를 활용하는 절충주의의 방법
선택! 2004 전주국제영화제 - [2] 쿠바영화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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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은 계속된다영화 성찬1 - 거장들의 과감한 도전에서 젊은 감독들의 날카로운 시선까지, 강력추천 8편
<커피와 담배> Coffee and Cigarettes
감독 짐 자무시/ 미국/ 2003년
<블루 인 더 페이스>(1995)에 출연하여 애연가의 철학을 읊조리기도 했던 짐 자무시는 1986년과 1989년, 그리고 1993년 각각 10분 내외의 단편 연작 <커피와 담배> 시리즈(이중 1993년에 만든 3편은 그해 칸영화제 단편부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바 있다)를 만들었다. 총 11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번 상영작 <커피와 담배>는 그 단편작업의 확장이며, 또한 모음집이다. 로베르트 베니니와 스티븐 라이트가 우스꽝스런 만남을 갖고, 이기 팝과 톰 웨이츠가 심오하게 횡설수설하며, 케이트 블란쳇이 전혀 다른 성격의 1인2역을 하고, 록밴드 화이트 스트라이프의 멤버들이 일장설을 늘어놓고, 빌 머레이와 랩그룹 우탕클랜의 멤버들이 엇갈린
선택! 2004 전주국제영화제 - [1] 강력추천 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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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외딴 숲속 미술관에 초대된 다섯명
외딴 숲속의 작은 미술관. 인형제작자(인형사)가 만드는 인형의 모델이 되기 위해 조각가, 여고생, 사진작가, 직업모델, 인형 마니아가 초대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석연치 않은 인물들, 미술관 곳곳에 위치한 인형들이 내뿜는 기운으로 인한 미묘한 불안감이 감지될 무렵, 첫 번째 희생자가 발생한다. 모인 사람들 중 누군가는 범인으로 지목되고, 그들 사이의 죽음은 끊이지 않는다.
Motive●● 구체관절인형
정용기 감독은 처음 인터넷에서 구체관절인형을 보았을 때, 인형의 아름다움 속에 배어 있는 무서움에 반했다고 한다. <인형사>에 등장하는 인형들은 모두 구체관절인형인데, 이는 신체와 동일한 움직임과 포즈가 가능하고, 안구교체, 가발착용, 메이크업 등이 가능하도록 제작된 인형을 말한다. 이 인형은 어떻게 치장하는지에 따라 그 이미지가 급변하는 것이 특징이다. 1980년대부터 일본 작가들에 의해 발전됐다는 구체관절인형은 많은
2004 여름을 책임질 한국 공포영화 다섯편 [6] - <인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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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죽음의 계곡이 울부짖는 잔혹한 기억
베트남전 당시 각국의 병사들이 수없이 죽어간 죽음의 계곡 알 포인트 지역. 어느 날 그곳에서 영문 모를 무선 호출이 날아온다. 최태원 중위가 이끄는 소대원들은 실종된 한국 533대대원들의 생사를 확인하라는 출동명령을 받는다. 그러나 악명 높은 알 포인트 지역의 존재를 모르고 출동한 소대원들은 점점 떠도는 병사들의 원혼과 마주치면서 공포에 떨게 된다. 그 즈음 그들 또한 이곳에서 사라진 다른 병사들처럼 하나둘씩 죽거나 실종되어간다.
Motive●● 30년 전 무인도의 혼령
<알 포인트>는 지금 캄보디아 밀림에서 촬영 중이다. 현재 연출을 맡고 있는 공수창 감독은 이 작품의 각본가이기도 하다. 원래 이 영화의 단상은 70년대 1개소대가 몰살당한 한국의 어느 무인도에 30년 뒤 다른 소대원들이 경비병으로 긴급 파견된다는 시놉시스에서 출발했다. 뼈대가 되는 내용은 지금도 유사하지만, 구체적인 시나리오 과정에서 장소와 배경은 살
2004 여름을 책임질 한국 공포영화 다섯편 [5] - <알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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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나를 괴롭히는 애들을 없애줘
서울에서 전학왔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던 유진은 친구들에게 저주를 내리기 위해 영혼을 부르는 주문 ‘분신사바’를 외운다. 주문은 현실로 나타나고 친구들은 끔찍한 방법으로 한명 한명 목숨을 잃는다. 새로 부임한 미술교사 은주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에 의혹을 품게 되지만 그녀 역시 의문의 원혼에 시달리다 결국 그 원혼의 정체에 대한 무서운 진실에 맞닥뜨리게 되는데….
Motive●● ‘분신사바’ 주문과 모녀 귀신
‘분신사바 분신사바 오이떼 구다사이’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분신사바는 귀신을 불러내는 주문이다. 연필을 두 사람이 함께 쥐고 종이 위에 올려놓으면 주문에 맞추어 연필이 저절로 움직이며 귀신의 이야기를 전한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건너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주문은 여학교들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비밀스럽게 인기를 끌어왔다. 안병기 감독은 여기서 착안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어느 호러영화 동호회에서 건네진 <모녀
2004 여름을 책임질 한국 공포영화 다섯편 [4] - <분신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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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연쇄살인과 딸의 심장이식과의 의문
피부를 녹여 사체의 두개골만 남겨두는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진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복안 전문가 현민(신현준)은 심장이식수술 후유증을 앓는 딸을 돌보기 위해 일을 그만둔 상태. 신입 연구원 선영(송윤아)이 도움을 간청한 이후로, 사체 복원 작업을 재개한 현민은 이 연쇄살인이 딸의 심장이식과 관련돼 있음을 깨닫는다. 복안이 완성돼가고, 피해자의 신원이 밝혀질 즈음, 현민은 이상한 환영과 환청에 시달리고, 극심한 공포와 혼란에 휩싸인다.
Motive●● 얼굴 복원
살인사건이 벌어졌는데, 아무런 단서가 없다면, 유전자 감식조차 불가능한 증거 제로의 상황이라면,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이런 의문을 품었을 즈음, 유상곤 감독은 우연히 김대건 신부의 얼굴 복원 소식을 접했다. 연쇄살인사건과 새로운 수사 개념으로서의 복안은 이때 연결지어졌다. 애초 스릴러의 뼈대 위에 얹으려던 이 이야기는 ‘얼굴’이 갖는 다양한 함의, 즉 어떤 현상과 그 이면에
2004 여름을 책임질 한국 공포영화 다섯편 [3] - <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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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과거의 기억 찾기
지원은 ‘그날’ 이후, 기억상실과 악몽으로 고통받고 있다. 남자친구 준호와 언제, 어떻게 만났는지조차 모를 정도다. 심리치료를 위해 수영장에 다니지만 별 소용없다. 친구들은 과거의 흔적들을 불쑥불쑥 그녀 앞에 들이민다. 당혹스럽다 못해 이제는 무섭다. 새로운 기억을 갖겠다고 마음먹은 지원. 유학을 결심하지만 이조차 쉽지 않다. 남편이 죽은 뒤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버린 엄마는 자신을 어떻게 내버릴 수 있냐며 윽박지른다. 그러던 중 지원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친구들이 한명씩 미쳐가고 죽어가는 걸 알게 된다. 서서히 부상하는 기억. 지원은 친구들의 죽음이 ‘그날’의 사건과 관련있음을 직감한다.
Motive●● 숨바꼭질 노래
김태경(30) 감독은 2년 전 머리나 식힐 겸 인디밴드 공연장에 갔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어둠 속 공연 직전 흘러나온 여자아이의 가녀린 목소리. 마침 스크린에는 일제시대 순사가 단속하
2004 여름을 책임질 한국 공포영화 다섯편 [2] - <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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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공포는 무엇일까?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링>과 <식스 센스>는 우리의 공포가 일상적인 영역에서 출발하는 것임을 말해주었다. 더이상 원혼은 산속의 폐가에만 숨어 있거나, 직접적인 가해자만을 쫓아다니지 않는다. 불특정 다수를 향하여, 휴대폰이나 엘리베이터 같은 문명의 이기를 통하여 분노와 억울함을 토해낸다. 그건 우리의 잘못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지만, 당신이 직접 행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우리에게 다가온다. 〈4인용 식탁>을 기억해보자. 단지 그들을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가련한 영혼들은 그 남자를 쫓아다닌다.
지난 여름의 공포를 알고 있다
2003년의 공포영화는 훌륭한 첫걸음이었다. 흥행에 성공을 거둔 영화도 있고,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도 있다. 무엇보다 각각의 영화들은 자신만의 공포에 도전했고,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사이코 살인마와 스플래터에만 집착했던 2000년과는 전혀 달랐다. <장화, 홍련
2004 여름을 책임질 한국 공포영화 다섯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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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공포, 프라하 침공을 스크린으로 옮기다
이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를 이루는 세계관과 인물은, 대규모 전쟁 이후 근대문명을 잃고 퇴행해버린 인류, 이런 인류를 대신하여 지구를 지배하는 거인 종족, 그리고 이 존재들의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구하기 위해 인도하는 현자로 요약된다. 이것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물론이고 <판타스틱 플래닛>의 제작 기간에 해당하는 1968년부터 1973년까지 연달아 발표된 <행성 탈출>의 5부작도 떠올린다. 흥미롭게도 <행성 탈출>의 원작자 역시 피에르 불이라는 프랑스 작가이다(그는 <콰이강의 다리>(1957)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이들 ‘포스트 묵시록적’(post-apocalyptic) 장르의 공상과학영화들이 갖는 공통점이 핵 시대의 히스테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환경이 아니라 히로시마 원폭의 기억을 안은 채 살아가야 하는 일본 사람
르네 랄루 & 롤랑 토포르의 <판타스틱 플래닛>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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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랄루의 애니메이션 <판타스틱 플래닛>은 탄생한 지 30년이 지나서야 정식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프랑스의 애니메이터 르네 랄루는 1960년 단편 <쥐의 이빨>로 그의 세계를 열었다. 이 작품은 한때 정신병원에서 치료의 일환으로 인형극과 연극을 상연했던 르네 랄루가 환자들의 집단 창작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그뒤 르네 랄루는 단편 <데드 타임즈>(1964)와 <달팽이들>(1965)을 만들었고, 1973년에는 장편 데뷔작 <판타스틱 플래닛>으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이후에도 르네 랄루는 <타임마스터>(1982), <간다하르>(1988)에 이르기까지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지닌 애니메이터로 인정받아왔다. <씨네21>은 애니메이션의 철학적 신기원을 이룬 르네 랄루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 중이었지만, 갑자기 날아온 비보는 그의 죽음을 대신 전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목적으
르네 랄루 & 롤랑 토포르의 <판타스틱 플래닛>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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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일에 귀천은 없다. 그래도 프랑스에서 우아하게 금속공예를 전공한 사람이 한국의 거칠고 험난한 영화현장에서 일하고 있다면 사정이 궁금한 것도 당연하다. 영화 <누구나 비밀은 있다>의 스탭 최윤영(25)씨는, 원래 보석디자이너로 취직했다가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일러스트레이션만 하고 있는 게 싫어져서 회사를 관뒀다 한다. 1년 만에. 영화미술팀 합류가 결정된 뒤 그의 두달은, 특히 12월은 악몽이었다. 공간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학원과 학원을 오갔다. 점심시간 포함해 이동시간 20분. 집에 돌아와선 쌓인 숙제가 휴식보다 먼저였다. 남자친구는 “여자가 그런 일 하면 드세진다”며 싫어했다. 그 사람과는 결혼 얘기도 오갔었는데, 헤어졌다. 이런 ‘험난한’ 과정을 버텨낸 막내 최윤영씨는, 크랭크인 들어간 지 한달도 안 된 영화의 미술쪽 완성도를 운운할 만큼 진지하고 당찬 새내기다.
-01 어쩌다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됐나.
=프랑스에서 금속공예를
충무로 청춘 스케치 [10] - 미술팀 최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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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강변11의 영사실로 들어선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엔지니어다. 짧은 스포츠 머리에 군복 재킷. 최영옥(28)씨가 그 숫자가 미미한 여성 영사기사로 일하기 시작한 지 9개월. 고교 졸업 뒤 9년 동안 은행, 지하철 택배, 컴퓨터 등 온갖 직업을 거쳐 이제야 “너무 맘에 드는 일”을 찾았다며 행복에 겨운 표정이다. 필기와 실기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국가고시’를 거쳐 대기업에 취직했기 때문이 아닌 건 그의 얼굴이 증명한다. 유니섹스 스타일을 좋아하는 그는 무심한 표정이다가도 영사 일에 대해 묻기만 하면 얼굴빛이 환해지며 마구 ‘떠든다’. 3교대 근무로 낮이든 밤이든 자기 순서가 되면 한명의 보조 스탭과 함께 11개 스크린을 9시간 동안 돌봐야 한다. 적어도 한 스크린에 필름을 세 차례는 걸어야 하니 33번 동안 광고, 예고편, 본편의 상영을 차질없이 진행해야 한다.
-01 어쩌다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됐나.
=어렸을 때부터 극장에 가면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다. 아줌마들이 영화
충무로 청춘 스케치 [9] - 영사기사 최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