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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궁금했을까. 유영철의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박찬욱 감독의 생각이. 그런데 그도 궁금해했다. “그가 그려놓은 그림을 보고 악마적 범죄자와 예술가의 관계가 궁금했다. 그런 경우가 많이 있지 않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긴 했는데, 그러려면 그에 대한 조사가 많이 필요할 거다. 아직은 호기심만 갖고 있는 정도다.”
물론, 박찬욱의 <쓰리, 몬스터>는 실제가 아닌 상상의 산물이다. 그렇지만 인간들 위를 배회하는 악마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현실의 조건과 무관하지 않다. 게다가 영화감독이 만든 영화감독과 엑스트라의 목숨 건 대결 이야기가 아닌가. 그의 영화들이 고약하다고들 한다. <쓰리, 몬스터>에서 인형이 돼버린 인질의 처지가 그렇다. 감독의 아내는 온몸을 피아노 줄로 꽁꽁 묶인 채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 손가락이 잘리고, 잘려나간 손가락은 또 한번 수난을 당한다. 박찬욱 감독의 현실은 이와 정반대다. 그는 아내의 조언에 자신이 얼마나 귀기울이며 아내
<쓰리, 몬스터>의 박찬욱·강혜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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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혈의 누> 촬영을 시작한 김대승 감독은 온몸이 구릿빛으로 그을어 있었다. 3년 전, <번지점프를 하다>로 세상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사랑을 들려주었던 그는, 탐욕이 빚어낸 지옥 속에서 1년 넘는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매우 무서운 영화로 만들고 싶은” 역사 스릴러 <혈의 누>. 김대승 감독은, 향수가 따뜻하게 내려앉은 80년대와 17년 만에 돌아온 연인을 눈물로 맞는 순정으로부터, 왜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는 영화로 몸을 옮긴 것일까. 원한과 죽음으로 뒤덮인 섬 동화도에서 잠깐 돌아온 그는, 스스로 ‘멜로영화 감독’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낚아챈 영화 <혈의 누>의 청사진을 펼쳐보였다.
실마리 - 탐욕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았다
김대승 감독은 공포영화나 연쇄살인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무서운 장면은 견디고 보지를 못하는 천성 탓이다. 그러나 김성제 프로듀서가 건네준 <혈의 누> 시나리오는 그 자체로 완성도가
두둥! 신작 프로젝트 5인 5색 [5] - 김대승 감독의 <혈의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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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준 감독 영화에 폼나는 인생들은 안 나온다. 라이터와 목숨을 바꾸는 백수(<라이터를 켜라>)의 무모함이나, 남이 해준 이야기를 받아먹고 사는 삼류 대필 작가(<불어라 봄바람>)의 뻔뻔함 정도는 갖춰야 주인공을 꿰찰 수 있다. 그렇담, 이번에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긴 ‘겉저리 인생’은 누구일까. 얼마나 꾀죄죄하고 후줄근한 인생이기에, 한달 전까지만 해도 <깊은 산 먼 친척>이라는 구미호 이야기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그를 변심케 만들었을까.
전개도 - ‘실화’엔 역시 뭉클한 뭔가가
씨네2000 제작 스탭이었던 신도영씨가 자작 시나리오를 들고 왔을 때, 장항준 감독은 “이 양반이 왜 이런 소재 영화를 내게 들고 왔지” 싶었다. 수중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시나리오가 유행 타는 코미디 일색. 그런데 1950년대라는 낯선 시대가 강하게 드러나는 드라마의 연출자로 자신을 선택한 게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아닌가’ 했던 것이다. “그날 반신욕하면서
두둥! 신작 프로젝트 5인 5색 [4] - 장항준 감독의 <꿈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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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행제로> 끝내고 1년 정도 빈둥거렸더니 노는 게 지겹고 돈도 떨어지더라. 게다가 영화 잘 봤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30대 마초 아저씨들뿐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엔 사랑 이야길 쓰자. 그러면 우아하고 교양 있는 여성 팬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웃음) 현실적인(?) 이유로 차기작 구상에 시동을 건 뒤, 조근식 감독은 한동안 제작사인 KM컬쳐에 “멜로영화를 쓰고 있다”고만 통보했다. 제목조차 불문에 붙였다. 지금 와서 털어놓지만 당시 그가 쓰던 시나리오의 제목은 <천재소년과 척척박사>. <품행제로>의 원제였던 <명랑만화와 권법소년>처럼, 제작사가 들으면 ‘뜨악’할 이름을 가진 “서늘한 느낌의 러브스토리”였다고 그는 전한다. 그렇다면 연내에 제작에 들어간다고 알려진 조 감독의 신작 멜로영화가 바로 이 작품?
실마리 - 따뜻한 온기+칙칙한 감수성
비밀리에 <천재소년과 척척박사>의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하던 도중 그는 <
두둥! 신작 프로젝트 5인 5색 [3] - 조근식 감독의 <여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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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부탁해>가 개봉됐을 때, 정재은 감독은 "여자아이들이 주인공인 성장영화를 만든 여성감독"이었다. 정리하기를 좋아하는 것이 언론의 속성이라지만, 영화를 만드는 감독을 타고난 성(性)으로 구분짓고, 한 영화를 그저 ’성장’이라는 수식어를 통해 단정짓는 단순함은 그에게 있어 사실 지루한 것이었다. <고양이…> 이후 2년 반. 정재은 감독은 약간의 휴식을 취했고, <여섯개의 시선>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그남자의 사정>을 연출했다. 우연히 관심을 가지게 된 소재를 가지고 시작한 그의 두번째 장편이 구체적 제작공정에 들어선 것은 지난 6월. 어그레시브 인라인 스케이트에 미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의 이야기인 <태풍태양>의 크랭크인은 이제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물론 이번에도 정감독은 처음으로 남자들을 주인공으로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사실 그가 만든 단편영화 중에는 남자가 주인공인 영화도 많다), 그리고 또다시 성장영화를 찍게 된
두둥! 신작 프로젝트 5인 5색 [2] - 정재은 감독의 <태풍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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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에 쏟아지는 한국 영화는 대략 60∼70편. 시사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부지런을 떨었다 치더라도 조금 지나면 제목조차 가물가물한 영화들이 적지 않다. 하물며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이름까지 줄줄줄 머리에서 불러내기란 더더욱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여기 다섯 감독들은 조금 별난 위치를 갖고 있다. 1∼2편의 영화만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세간에 각인시켰고, 이후에도 차기작이 과연 뭘까, 충무로 안팎의 관심을 독차지해왔기 떄문이다. <해피엔드>의 정지우를 시작으로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품행제로>의 조근식, <번지점프를 하다>의 김대승, 그리고 <라이터를 켜라> <불어라 봄바람>의 장항준까지, 세간의 주목과 기대가 어쩌면 이들의 행보를 더더욱 조심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어쨌든 새로운 돛을 단 배가 진수됐고, 이제 목적지에 닿기까지 숨가쁜 여정을 계속해야만 할 다섯 선장의 포부를 미리 들었다. /편집
두둥! 신작 프로젝트 5인 5색 [1] - 정지우 감독의 <사랑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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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주의자 일본의 소외감을 자극하며 3국 합작 전선에 최대 위기가 닥친 건 홍콩 감독이 유위강에서 프루트 챈으로 바뀔 때였다. <무간도>가 아시아에서 워낙 이름을 떨친 작품이어서 유위강에 대해 일본도 반색하고 있었는데, 유위강이 거대한 장편영화 프로젝트를 갑자기 떠안게 되면서 일이 꼬였다. 홍콩에선 유위강의 장편 작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감독을 바꾸거나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선택지를 내놨다. 한국이라고 당황하지 않았을 리 없다. 대안이 될 만한 감독을 찾지 못하면 자기라도 하겠다는 진가신의 설득에 ‘뭐 하는 수 없군’ 하며 상황을 수긍했다. 완강한 건 일본이었다. 유위강이란 이름을 넣고 사인한 계약서는 뭐냐는 것이었다. 하긴 일본 처지에서는 ‘파이널’을 보낸 지 석달이나 지난 시점에서 감독을 바꾸겠다니 답답한 노릇이었을 게다. 원칙을 준수하는 건 자기뿐이고 한국과 홍콩은 자기들끼리 입을 맞춰가며 일을 진행한다는 소외감이 극에 달했다.
일본이 원칙 우선주의라면 홍
3개국 옴니버스 호러 <쓰리, 몬스터> 악몽의 제작기 - 프루트 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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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 영화사 봄은 여전히 국내 프로덕션에 무게중심을 두지만 제작의 삼각추 가운데 하나는 해외쪽에 내딛고 있다. <쓰리, 몬스터>는 그중 하나의 작업일 뿐이다. 자본이 완전히 해외에서 오는 경우, 로케이션이 외국이어서 자본과 인력을 공유해야 하는 경우, 외국 감독을 초청해 한국에서 한국의 배우, 스탭과 작업하는 경우 등 다양한 방식을 진행하고 있다. <쓰리> 시리즈가 <쓰리10>까지 이어가며 성공한 브랜드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아직 알 수 없으나, <쓰리, 몬스터>가 해외로 뻗는 제작 노하우에 보탬이 된 건 분명해 보인다. “한국의 시스템은 비경제적이다. 홍콩과 일본은 어찌됐든 한편 찍는 데 한달이면 모든 걸 끝내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우린 최소 석달이다. 감독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는 우리의 시스템이 크리에이티브에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지만, 준비하고 진행하고 마무리하는 스피드는 확실히 우리가 늦다. 우리에겐 시간이 돈이 아니니까.
3개국 옴니버스 호러 <쓰리, 몬스터> 악몽의 제작기 - 박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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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아시아 3국 최초의 합작 영화 <쓰리>(감독 김지운, 진가신, 논지 니미부트르)가 ‘옴니버스호러’로 선을 보였다. 홍콩과 타이에선 흥행에 성공했으나 한국에선 빛을 보지 못했다. “1편 때는 캐치프레이즈 때문에 시작한 거고, 나도 자신이 없었다. 개봉해보니 국내에 시장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비록 실패했지만. 요즘 관객은 새로운 것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좀더 열려 있구나라고.” 그래서 영화사 봄의 오정완 대표는 같은 해 도쿄영화제에서 <쓰리>의 발의자인 홍콩의 진가신을 만나 한번 더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하나의 컨셉으로 이어간 단편 시리즈 <어메이징 스토리>처럼 <쓰리>를 아시아 대표 호러 브랜드로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홍콩이나 타이에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제작비는 상대적으로 낮고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성공하지 못한 한국에서 의욕을 보이니 뜻밖으로 받아들였다.
2편 &
3개국 옴니버스 호러 <쓰리, 몬스터> 악몽의 제작기 - 미이케 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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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하라 데쓰오 감독 프로필
1962년 도쿄 출생
메이지대학 법학부 졸업
1984년 단편 <거북이 얼굴의 소년>
1989년 단편 <러닝 하이>
1993년 16mm로 찍은 <초원 위의 일>로 장편 데뷔
국내에서 시노하라 데쓰오 감독은 2002년 5월 개봉한 다나카 레나 주연의 멜로영화 <첫사랑>(일본 개봉 2000년)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도 그는 ‘멜로영화 전문감독’으로 통한다. 광대하고 눈부신 자연, 서정적인 음악, 젊은 남녀의 절절한 순애보가 그의 멜로영화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이번 부천에서 상영된 <쇼와 가요 대전집>은 그런데 잔혹하고 건조하다. 1994년 <플레이보이>에 연재돼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무라카미 류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논란의 초점이 됐던 일본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피해가지도, 선정적으로 이용하지도 않는다. 별 하는 일 없이 몰려다니는 20대의 젊은이들과 언제나 새로운 재
일본 젊은 감독 4인과의 조우 - <쇼와 가요 대전집> 시노하라 데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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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이 가쓰히토 감독 프로필
1966년생
1992년 CF감독으로 데뷔
1996년 단편 으로 유바리국제영화제 그랑프리 수상
1999년 <상어가죽 남자와 복숭아 소녀>로 장편 데뷔
2000년 <파티7>
2002년 <킬 빌 vol.1>에서 오렌 이시이 어린 시절을 담은 애니메이션 시퀀스 연출
<녹차의 맛>은 이시이 가쓰히토 감독의 전작 두 편과 다르고도 같다. 소년의 성적 환상을 그린 <상어가죽 남자와 복숭아 소녀>, 할리우드 스타일을 모방하면서도 일본만화의 감수성으로 개성을 표현한 액션영화 <파티7>은, 화려하고 숨가쁘다. 반면 <녹차의 맛>은 일본 전원을 배경으로 한 정갈한 화면 속에 느린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학교에 갓 입학한 소녀 사치코와 중학생 오빠 하지메, 음반 엔지니어인 외삼촌 아야노와 괴짜 만화가인 친삼촌 도도로키, 애니메이터 일을 했다가 전업주부가 된 엄마와 변변찮은 정신과 의사 아빠,
일본 젊은 감독 4인과의 조우 - <녹차의 맛> 이시이 가쓰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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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구치 유다이 감독 프로필
1971년 도쿄 출생
일본 영화학교 졸업
교토 필름 스튜디오 입사
기타무라 류헤이의 <다운 투 헬> <버수스> <얼라이브> 공동 시나리오 및 촬영
2002년 <지옥갑자원>으로 데뷔
다섯편의 짧은 이야기를 옴니버스로 구성한 <만가타로 단막극>은 괴상한 영화다. 매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못나고 보잘것없고, 낙서하듯 막 써내려간 스토리는 예외없이 허무한 결말에 이른다. 게다가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는 조악한 특수효과, 이유를 알 수 없는 특정 장면들의 반복, 심하게 과장된 코미디 연기 등 일반 관객들이 이 영화를 무난히 받아들이기엔 방해 요소가 많다. 일본 만화가 ‘망☆가타로’(漫☆畵太郞)의 단편 만화들을 원작으로 한 <만가타로 단막극>은 역시 같은 작가의 만화가 원작인 <지옥갑자원>(국내 개봉 9월3일 예정)으로 데뷔한 야마구치 유다이 감독의 두 번째 영화다. 전편
일본 젊은 감독 4인과의 조우 - <만가타로 단막극> 야마구치 유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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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24일 폐막한 올해 부천영화제에는 현해탄을 건너온 영화들이 유난히 많았다. 전체 상영작 261편 가운데 일본영화는 82편. 특별전을 제외하고 정식 부문의 장편들만 따져봐도 64편 중 13편이 일본영화다. “일본 문화 4차 개방을 고려해 의도적으로 일본영화들을 많이 배치했다”는 부천영화제의 일본영화는 세계적인 감독의 화제작부터 생경한 신인들의 데뷔작까지 편수만큼 종류도 다양했다. 그 가운데 흥미로운 네편의 감독들을 만났다. 젊은이들의 하루 일상을 통해 시간의 의미를 묻는 <오늘의 사건사고>의 감독 유키사다 이사오, 원작인 동명 단편만화집을 고스란히 빼박은 <만가타로 단막극>의 감독 야마구치 유다이, 올해 칸국제영화제 초청작이며 조용한 상상력의 힘을 뚝심있게 보여준 <녹차의 맛>의 감독 이시이 가쓰히토,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라카미 류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쇼와 시대의 풍자극 <쇼와 가요 대전집>의 감독 시노하라 데쓰오. 오시이 마모
일본 젊은 감독 4인과의 조우 - <오늘의 사건사고> 유키사다 이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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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에드워즈/ <버라이어티> 평론가·<엠파이어> 기자
지난 10년간 한국영화의 양적·질적 발전을 고려한다면 호주와 같은 주요한 무역 파트너의 경우 한국영화에 뚜렷한 관심을 가졌을 것이라 생각해도 용서될 것이다. 결국 문화는 무역의 부산물이지 않은가? 우리는 석탄, 천연가스, 오렌지 등도 맞바꾸는데… 한국영화를 진지하게 살펴보고 있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뭐, 우리 중 관심을 갖고 살펴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호주에서 상업적인 극장 개봉을 한 마지막 한국영화는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로 2001년에 개봉했다.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은 한국에서 왔다는 것 때문이기보다 성적인 주제 때문에 나타난 것이었고, 영화는 호주에서 흥행실적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이 영화가 성공하지 못한 것은 배급업자들이 다른 한국영화에 승산을 걸어보는 것을 피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쉬리> 계기로 소규모의 영화 마케팅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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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바라보는 한국영화 [7] - 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