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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째 홈런을 때릴 수 있을지 불안했다”
브래드 버드 감독은 3살 때부터 만화를 그렸다. 베이비 붐 시대에 태어난 그는 동년배들처럼 토요일 오전 TV만화를 빼놓지 않았으며, 14살 때는 단편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이어서 픽사의 창조력을 이끄는 존 래스터, 팀 버튼 등과 함께 칼아츠에서 캐릭터애니메이션을 전공했으며, 졸업 뒤에는 <인어공주> 이전 ‘암흑기’의 디즈니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가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들었던 TV시리즈 <어메이징 스토리>에서 <패밀리 도그>라는 에피소드를 만들면서였다. 강아지의 시점에서 가족들을 바라보는 이 작품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의 다음 행보는 <심슨 가족>이었다. 그는 이 시리즈의 컨설턴트 역할을 하면서 에피소드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마이크 저지의 TV시리즈 애니메이션 <킹 오브 더 힐>에서 컨설턴트로 일한 뒤 그는 장편애니메이션 <아이언 자이언트&g
픽사의 여섯 번째 장편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에 대한 모든 것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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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 영화에 뒤지지 않는 정교한 액션 신
사실 <인크레더블>은 브래드 버드가 <아이언 자이언트>의 제작사 워너에 제안했다 거절당한 아이템이다. 말 안 통하는 상사를 벽에 메다꽂는 미스터 인크레더블처럼 할리우드에서 좌절을 거듭한 브래드 버드는 칼아츠 동기 존 래스터가 이끄는 픽사에서 12년 묵은 아이디어를 실현하게 되자 의욕과 조바심으로 꽤나 불타올랐던 모양이다. 늘어난 물량과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픽사의 전작과 비슷한 예산 1억4500만달러를 맞추겠다고 세밀한 준비에 몰두한 버드는, 연신 불안해했다. “그건 그렇고 높은 사람들은 내 아이디어 뜯어고치러 언제쯤 오나?”라고 묻는 경계 태세였던 그를 존 래스터는 이렇게 묘사한다. “버드는 무거운 쟁기에 묶인 경주마 같았다. 우리는 그를 풀어 언덕을 달리게 했는데 그는 자유인 줄 모르고 자꾸 쟁기 옆으로 가더라. 그러나 얼마 뒤 그는 어느 때보다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브래드 버드 감독의 열의에 호응한 픽사의
픽사의 여섯 번째 장편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에 대한 모든 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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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원정대의 여정도 추억담이 된 쓸쓸한 올 겨울, 픽사의 여섯 번째 장편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12월15일 국내 개봉)이 공개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면 당신은 스스로를 금욕주의자라고 부를 자격이 있다. 1990년대 여름마다 디즈니 장편애니메이션이 모았던 주목과 기대는 이제 고스란히 픽사에 옮아간 것이다. 2시간에 육박하는 상영시간, 픽사 최초의 PG등급을 받은 현란한 액션으로 별안간 할리우드 오락영화의 스타일에 성큼 다가선 슈퍼히어로 가족드라마 <인크레더블>에서 브래드 버드 감독이 업그레이드한 픽사의 미덕은 무엇이며, 새롭게 드러낸 야심은 무엇일까? 또, 그 야심은 픽사의 충실한 팬들에게 어떤 우려를 자아내는가? 픽사의 ‘미션 인크레더블’을 분석해본다.
사상 최초의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 <백설공주>를 만들겠다는 월트 디즈니에게 사람들은 말했다. “만화영화를 극장에서 1시간 넘게 보고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로부터 60년 뒤 최초의 장편 3
픽사의 여섯 번째 장편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에 대한 모든 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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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의 호흡법-필이 꽂히는 명확한 컨셉 전달
<달콤한 인생>의 촬영현장은 치밀하고, 계속 논의를 해가며 진행된다.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 한컷을 제대로 카메라에 담기 위해 무한의 열정과 노력이 가해진다. “<달콤한 인생>은 선우의 감정 상태에 따라서 점점 강도가 세어진다. 폭력적이 되고, 제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간다. 거기에 따라서 어두운 공간, 빛의 디테일, 강도도 높아진다. 그 느낌의 강도를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다.” 영화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이미 전작들에서 확인되었다. 내러티브가 혼란스러웠던 <장화, 홍련>에서도, 소녀의 후회, 분노 등 모든 감정이 어떻게 회오리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아주 강렬하게. “내러티브만이 아니라 이미지, 텍스처, 표정, 뉘앙스 등으로 주제를 표현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 영화는 명확한, 강철 같은 내러티브가 있어서 어떻게 만들어도 이야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섬세한 구조 안에서 다양한 요
<주먹이 운다>·<달콤한 인생> 현장 방문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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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럽지 않게, 아주 진정성 있게 안 들리게”
11월27일 저녁, 분당 미금역 앞에 위치한 오피스텔 8층에서는 <달콤한 인생>을 촬영하고 있다. 아직 마감이 덜 끝난 듯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좁은 오피스텔 안에 다 들어가지 못해 복도에 서 있는 촬영팀이 보인다. 호수를 찾을 필요도 없다. 좁은 현관, 사람들 틈을 헤치고 들어가니 리허설을 하는 액션스쿨 배우들이 보인다. 오늘 촬영분은 선우가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필리핀 갱에게 습격을 당하는 장면이다. 보스에게 인정받아 성공가도를 달리던 선우는, 이 장면을 기점으로 지옥에 떨어진다. 보스에게 버림받고, 업신여기던 동료에게 반대로 모멸을 당하고,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선우의 달콤한 인생은, 이 장면을 끝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급작스러운 일이 벌어진다. 주인공은 하루아침에 지옥으로, 악몽으로 들어가버린다. 시나리오 앞뒤의 톤이 바뀌는 것은, 그것이 주제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주먹이 운다>·<달콤한 인생> 현장 방문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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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태식과 20대 상환의 모든 것을 건 맞대결
<주먹이 운다>에는 핸드헬드가 많이 나온다. 현장에서는 두대의 카메라가 계속해서 연기자를 쫓아간다. 핸드헬드는 연기자의 동선을 쫓거나, 감정을 좇아간다. 동선을 쫓다가 배우가 프레임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금기이지만, <주먹이 운다>에서는 설사 그런 일이 벌어져도 큰 문제가 없다. 프레임 안에 그들이 없어도, 여전히 그들의 감정은 남아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이 그렇듯이, 우리의 시선과 동선이 그렇듯이, 잠시 프레임 바깥으로 나가버려도, 가끔은 인생의 큰길에서 어긋나버려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진짜라면, 진심이라면. <주먹이 운다>에는 류승완 감독 개인의 경험도 약간 녹아 있고, 실제 인물이 되어 생각하고 행동하는 최민식과 류승범의 마음을 따라가며 보여줄 생각이다. “예전과는 다르게, 아이들을 보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이를테면 내 복제품의 인생이 될 텐데. 나는 내 아이들에게
<주먹이 운다>·<달콤한 인생> 현장 방문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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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테크닉이 아니라 감정에 집중한다”
11월24일 오후 3시, 분당 서현역 앞 옥외주차장 5층.오늘 촬영분이라며 받은, 달랑 3쪽짜리 <주먹이 운다>의 시나리오에는, 시간배경이 분명 밤이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낮이다. 엘리베이터를 찾지 못해 터벅터벅 5층까지 걸어 올라가니, 주차된 차들 사이에서 30여명의 촬영진이 한참 열을 올리고 있다. 가죽점퍼를 입은 최민식이 누군가를 때리고 있다. 두대의 헨드헬드 카메라가 바쁘게 움직이며, 그 모습을 찍고 있다. 태식(최민식)의 후배이며 한때 같은 체급의 라이벌이기도 했던 용대. 43살의 태식은 거리에서 매를 맞아가며 돈을 벌고, 마지막 승부라 생각하며 뒤늦게 프로 신인왕전에 뛰어들었다. 반면 용대는 밤의 세계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은 건달이다. 졸개들을 거느리고 건들거리던 용대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태식의 주먹에 맞고 쓰러진다. 그런데 이미 받은 시나리오에서는, 이 장면이 용대가 태식을 때리는 것이었다. 이미 바
<주먹이 운다>·<달콤한 인생> 현장 방문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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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째 선택, 그것이 궁금하다
술자리에서 제안을 받았다.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과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의 촬영현장을 찾아보고, 인터뷰를 한 뒤에 기사를 쓰지 않겠냐고. 아마도 이유는, 개인적으로 두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했다. 장르의 즐거움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김지운과 류승완의 영화는 언제나 환영이다. 게으른 탓에 현장에 잘 다니지는 않지만, 미리 이야기를 들어보고, 나중에 영화를 보며 ‘목적’과 비교하는 것도 즐겁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런 개인적인 이유로, 현장에 갔다.
사실 어떤 영화의 현장을 찾아 그 느낌을 표현하려면, 한번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적어도 5, 6번 아니 10번 정도는 현장을 찾아 분위기를 살피고, 이야기를 듣고, 꼼꼼하게 지켜보아야 한다. 그러니 이 글은 절대로 현장취재가 아니다. 그저 현장을 찾아 감독과 인사를 나누고, 한 장면의 인상을 얻고, 감독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것에 대한 인상기
<주먹이 운다>·<달콤한 인생> 현장 방문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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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글을 써보고 싶더라고
조선희 l 이창동 선배는 농담을 잘하는 사람이고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해 애정있고 낙관적인 데가 있어요. 김영호가 고통받고 망가지는 것도 그 사람에게 어떤 맑은 심성이 있었기 때문이고, 홍종두도 그렇고. 지금까지는 굉장히 비극적이고 우울한 분위기를 즐겨왔지만 결국은 밝고 낙관적인 영화로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이창동 l 그러지는 않을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낙관하지. 인간에 대해. 한국사회도 긍정적으로 나아갈 거라고 봐요. 사람들 하나하나의 내면은 뭔가 이해하고 사랑하고 받아들이고 긍정하지만 그걸 위해서는 어떤 어두운 걸 통과해야 해요. 어둠을 통해서 빛을 본다고 할까. 그게 예술체험의 과정이랄까. 아까 분열을 말했는데 작가는 기본적으로 속에 분열을 갖고 있다고 봐요. 영화감독도 굉장히 많은 다중인격적인 게 있어야 돼. 그러니 분열을 받아들이세요. (웃음) 나는 장관도 내 역할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 속에 그런 것도 있을 테니까.
독점인터뷰[6] 돌아온 이창동 감독, 갑자기 글을 써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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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영화로 이어진 힘
조선희 l 무엇이 이창동 감독을 작가로 만들었을까요.
이창동 l 아, 이건 어려운 단답형 질문이다. 외로움 같아. 외로움. 십대 초반에 이미, 나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했거든. 그때 소설도 썼어요. <삼국지>도 썼고. 촉나라 오나라 위나라 그림도 그려가면서 내 나름대로 쓴 거예요. 누구한테 보여준 적은 없지만 내가 그 무엇과 통신하는 방법이야. 외로우니까, 현실하고 소통이 안 되니까 그랬던 거 같아요. 지금도 그 정서나 심리상태가 거의 변하지 않은 거 같아요.
조선희 l 소설 쓰다가, 아 이거 못해먹겠다 해서 딴 데로 간 게 또 다른 작가의 길이었잖아요.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소설로, 영화로 끌고 온 힘이 뭘까요.
이창동 l 글쎄요, 힘이 있었나? 그냥 흘러오다보니까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는데. 조선희씨가 잘 알겠지만 그건 있었어요. 이른바 80년대에 내가 글을 썼잖아. 우린 20대 때엔 인문학적 감수성이었거든. 그런데 80년대는 인문학
독점인터뷰[5] 이창동 감독을 작가로 만든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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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그야말로 폼이지”
조선희 l 지난해에 <오아시스>가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돼서 칸에 가셨죠? 그 기사 보면서 ‘딴지일보’식으로 ‘아, 쓰바, 저거 너무 폼나는 거 아니야’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장관이 다른 나라 방문할 수도 있고 감독이 초청받을 수도 있는데, 장관이 감독 자격으로 칸영화제에 간다는 건, 진짜 폼나 보이더라고요.
이창동 l 그렇게 폼나진 않아요, 실제로 그 폼을 취하고 있으면. 근데 실은 일이 있어서 갔던 거예요. 해외문화원장회의라는 게 있어요. 그게 파리에서 있었고, 또 프랑스 문화부 장관하고 만나게 돼 있었어요. 문화분야에서는 프랑스와의 국제적 유대가 굉장히 중요하죠. 미국은 문화에
대한 개념이 없는 나라예요. 근데 어쨌든 우연인지 그쪽에서 기획을 한 건지는 모르겠어요. <오아시스>는 베니스에 나갔던 작품이라 칸에선 안 받아야 하는 거였거든.
조선희 l 전에 한길사 사옥 오픈하면서 단재상 시상식 할 때 정도상이 상받는다
독점인터뷰[4] 이창동, “권력, 그야말로 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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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 만의 영화계 복귀
조선희ㅣ 저는 여행을 좀 다녀와도 처음엔 집이 낯설거든요? 집안 분위기도 낯설고 아침밥 준비해서 애들 학교 보내야 하는 것도 내 일이 아닌 거 같거든요. 근데 1년 반 만에 영화계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건데, 고향은 고향인데, 좀 낯선 느낌은 없으세요?
이창동ㅣ 전혀.
조선희ㅣ 아무런 이물감이 없으세요?
이창동ㅣ 그럼요.
조선희ㅣ 자신은 예전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해도 사람들 태도가 예전과 달라진 것, 어려워하는 건 없어요? 저도 예전엔 좀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장관 하시고 나선 아주 어려워 죽겠는데요. (웃음)
이창동ㅣ 영화계 사람들은 괜찮아요. 나를 다르게 보지 않아요. 근데 일상적으론 많이 느끼거든요. 이건 심각해요, 나한테. 물론 예상은 했었어요. 그런 문제가 심각하게 걱정돼서 가능하면 안 하려 그랬죠. 공직을 하기 전에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별로 신경 안 썼어요. 그만큼 자유로웠던 거죠, 책임감도 없고. 이번엔 좀 달라요.
독점인터뷰[3] 이창동, 1년 반 만의 영화계 복귀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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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작 <밀양>, 회수를 건너 <선샤인 스트리트>로
조선희ㅣ 차기작에 대해서 얘기들이 벌써 나오던데요. 강우석 감독이 돈 대기로 했다는 얘기도 있고 벌써 시나리오가 나왔다고도 하고. 어떤 기사 보니까 제목이 <선샤인 스트리트>인데 40대 여자 이야기다, 어쩌고 하는 기사들이 난무하던데….
이창동ㅣ (웃음) 내가 공무원 되기 전에 좀 생각하던 게 있었어요. 제목이 <밀양>, 경남 밀양. 영어로 하면 ‘secret sunshine’이에요. 실제론 빽빽하다는 밀(密)자인데, 햇볕이 좋단 말이지. 거기 강가에 서 있으면 햇볕이 좋다는 느낌이 들거든. 제목이 <밀양>이 뭐냐고 해서 ‘시크릿 선샤인’ 하면 영어제목은 괜찮다고 농담처럼 했는데 그걸 누군가 기억하고 있다가 얘기를 한 거예요. 근데 그걸 ‘선샤인 스트리트’로 잘못 들은 거고, 누구는 ‘선샤인 불리바드’라고도 그러고.
조선희ㅣ 그럼 그걸 영화할 생각은 없는 거예요?
이창
독점인터뷰[2] 감독으로 돌아온 이창동 감독의 차기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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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판 사람들 만나면 편해져, 좀 숨쉴 만해”
이창동 감독을 12월1일 오후 일산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잘 빗지도 감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는 장발, 우중충한 배색의 후줄근한 옷차림, 느릿느릿한 말투, 농담까지, 모든 게 예전 그대로였다. 늘 자기 내부를 향하는 감시의 안테나도 여전히 성능 좋게 작동하고 있었고, 자학에 가깝게 자신을 엄격하게 다루는 결벽증 증세도 전혀 차도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작가의 정체성도 그대로인데, 그것은 작가주의 감독의 태도로 또 다른 현장을 지휘하다 돌아왔다는 뜻일 수도 있다.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의 관객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대로, 그에게서, 권력의 맛을 보았거나 신분적으로 수직상승한 흔적 같은 건 없었다. 다만 긴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 특유의 여독 같은 게 짙게 느껴졌다. 그 여독을 푸는 게 당분간 그의 숙제처럼 보였다.
그는 장관 취임 초기 인터뷰에 응한 뒤 1년 반 만에 <씨네2
독점인터뷰[1] 소설가 조선희가 만난 장관에서 감독으로 돌아온 이창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