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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살레스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미리보기
‘게바라’가 ‘체 게바라’가 되기까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남미대륙과 남미인들에 대해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뜨거운 애정만 갖고 자기 고국 땅을 넘어서서 쿠바로, 볼리비아로 건너간 혁명 지도자.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혁명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를 영화화하기란 어떤 면에서 참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월터 살레스의 체 게바라 전기는 그를 영광스럽게 기리지 않는다. 살레스의 신작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쿠바혁명이 성공하는 해로부터 일곱번 거슬러올라가, 오토바이 한대만을 이끌고 친구와 무작정 길을 떠난 한 청년의 남미대륙 여행기를 소박하고 깨끗하게 그리는 영화다. 지난 9월9일부터 19일까지 열린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월터 살레스를 만났다. 거기서 이루어진 단독 인터뷰와 자료들 그리고 게바라가 쓴 원작을 토대로, 게바라-그라나도 혹은 살레스 일행의 남미여행에 미리 동참할 수 있는 티켓을 끊어왔다. 11월
체 게바라의 젊은 날,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미리보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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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의 방법’과 ‘감정의 액션’에 대한 이명세의 모색
대신, 이 영화의 전모는 동력이 될 영화적 개념과 구성의 과정을 통해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우선 <형사>는 범죄자 집단을 쫓는 하지원과 안성기를 신참과 베테랑 형사(포교)의 캐릭터로 놓는다. 그리고는 그 상대 진영에 ‘슬픈 눈’이라는 범죄자를 대치시킨다. “<형사>는 간단하게 말해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조선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추적편’이었다면, 이번 영화는 ‘대결편’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영어 제목도 듀얼리스트이고, 한글 제목도 <형사: 듀얼리스트>로 할까 생각 중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추적신을 공들여 찍고, 영화의 전체 구조를 추적이라는 설정에 맞춰갔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번 영화의 ‘대결이라는 구조’가 어떻게 표현될지가 궁금하다. 그 예로 지금까지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던(어떤 영화에
돌아온 이명세, 신작 <형사>를 이야기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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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세가 돌아온다. 제목은 <형사>. 시대는 조선이고, 주인공은 여형사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후속편으로 기대된다. 오랜만에 새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에게 매번 들러붙는 클리셰, ‘돌아오다’라는 표현이 이번만큼은 좀 감동적으로 들린다. 말 그대로 이명세는 근 5년 동안의 미국 작업 일지를 잠시 덮고, 다시 충무로 안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직 촬영도 시작하지 않았지만, 궁금한 마음에 미리 만나보고, 또 예상해본다.
크랭크인 60여일 전. 이명세 감독의 새 영화 <형사>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므로 무슨 진지한 평을 하기보다는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마음으로 지난 5년간의 미국 생활과 앞으로 만들어질 영화 <형사>에 대한 기대를 펼쳐보자. 우선 그가 미국에서의 작업을 잠시 접고 다시 충무로에 입성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 짧지 않은 여정은 신작 <형사>의 출생과도 관계가 있다.
돌아온 이명세, 신작 <형사>를 이야기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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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경구를 모조리 모은 개인적인 잠언집
관객과 비평가들의 가장 큰 불만은 “자막읽기에 급급해서 대체 스토리를 따라갈 여지가 없다”라는 사실이었다. <할리우드 리포터>가 “<이노센스>는 주인공들이 밀턴, 데카르트, 공자와 성경을 인용하며 이야기하는 매우 철학적인 영화다. 관객은 자막을 따라가기가 힘에 부칠 수도 있다. 드림웍스가 이 작품을 더빙한다면 영화를 이해하는 게 약간은 쉬워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던졌던 조언은 일리가 있다. “우리의 신과 희망이 과학적 현상이라면 사랑 또한 과학현상이라고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라는 빌리에 드 릴라당의 1886년 SF소설 <미래의 이브>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시작된 영화는, 오시이 마모루가 끌어온 온갖 경구로 가득 차 있다. “시저를 이해하기 위해서 시저가 될 필요는 없다”는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잠언, “자신의 얼굴이 비뚤어져 있는데 거울을 탓해서 뭐 하나”라는 고골리의 잠언이 일상적인 대화 속
애니메이션의 작가주의, 오시이 마모루의 <이노센스> 해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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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관객을 확 잡아끄는 것은 무시무시한 물량으로 완성된 영화의 비주얼이다. “뉴욕이야말로 고딕의 마을이었다. 솟아오른 마천루의 단호한 수직선의 거리. 어디를 걸어도 대면하는 것은 수직으로 뻗은 벽뿐으로, 원경없는 폐쇄된 거리. 고층건물의 틈으로부터 들이비치는 거대한 반사광이 근대적인 거리를 거대한 사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공각기동대>의 로케이션 헌팅으로 방문했던 홍콩에서, 굉장한 소나기를 만나 대로가 일순간 운하처럼 변모했던 것을 보고 <공각기동대>의 미래도시를 창조했던 그 감각이 되살아났다”는 오시이 마모루의 말처럼, 현대 홍콩을 도쿄만에 옮겨놓은 듯했던 전편의 미래도시는 좀더 인공적인 고딕의 메트로폴리스 이미지로 <스왈로우 테일>과 <킬 빌>의 프로덕션디자인을 담당했던 다네다 요헤이의 손에 의해 완성되었다. 전편의 배경이 전형적인 사이버 펑크 모험담의 세계였다면, <이노센스>의 도시는 어둠침침한 누아르의 세계가 더 잘
애니메이션의 작가주의, 오시이 마모루의 <이노센스> 해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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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는 광대해.”
내무성 공안 9과(<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 소좌가 그렇게 읊조리며 네트 속으로 사라진 건 1995년이었다. “어쩌면 나는 훨씬 이전에 죽었고, 지금의 나는 전뇌와 의체로 구성된 가상인격인 게 아닐까. 아니, 처음부터 나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 아닐까”라며 데카르트적 질문을 서슴없이 던졌던 <공각기동대>는, 식상한 표현을 구태여 빌려보자면 당대의 ‘컬트영화’가 되었다.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를 위시한 서구 감독들은 인터뷰에서, <공각기동대>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 토로하기도 했고 미국과 유럽에서는 기록적인 DVD 판매수익을 올렸다. 일본 내에서 겨우 12만 관객을 동원했던 <공각기동대>는 그렇게 부활했다. 부활이라고? 그랬다. 그것은 부활이었다. 일본 대중에게 <공각기동대>는- 오토모 가쓰히로의 <아키라>처럼- 외국에서의 컬트적 인기로 역수입된 문화적 상품의 사례 중 하
애니메이션의 작가주의, 오시이 마모루의 <이노센스> 해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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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의 집과 감옥을 교차편집한 이유?
정성일 l 감옥과 선화의 집을 교차편집하고 있습니다. 감독님의 방식은 미장센 영화가 아니라 몽타주 형식인데. 선화의 집을 감옥으로 만들기도 하면서 동시에 계속되고 있는 가정폭력의 이미지를 중첩시키고 있습니다. 태석이 새 흉내를 낼 때 선화는 그들이 가장 행복했던 한옥가옥을 찾아가서 낮잠을 잡니다. 이것은 두 장소의 몽타주인 동시에 지적인 몽타주 방식이기도 한데. 더 중요한 것은 교차편집의 방식이 감옥 전체를 초현실적인 상황으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사가 없기는 하지만 사실주의적이었던 영화에서 별안간 판타지로 탈바꿈을 해버리는데, 탈바꿈의 의도는 무엇을 목표로 한 것입니까.
김기덕 l 위대한 해석입니다(웃음). 일차적으로 저는 그것이 꼭 교차편집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백과 이해의 공백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변해가는 것에 똑같이 보조를 맞추어주어야만 했습니다. 선화는 남편이 때리면 맞받아치기도
김기덕과 <빈 집>에 관한 모든 것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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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아이언과 폭력과의 관계?
△ 한강 중지도에서 남편인 민규(권혁호)에게 3번 아이언을 휘두르는 것을 지도하는 김기덕 감독.
정성일 l 골프채로 공을 쳐서 사람을 공격한다는 것을 떠올렸을 때 생각한 정서적 효과는 무엇입니까.
김기덕 l 골프를 5년 전에 처음 해보면서 흥미를 느꼈습니다. 부르주아 운동으로 보이지만 사실 섬세한 계산과 인내가 있어야 하는 운동입니다. 언젠가 골프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사람들이 싫어하는 3번 아이언을 주제로요. 3번 아이언은 직선코스에 강하고 총알처럼 날아가기 때문에 전화번호부 책도 뚫습니다. 이것으로 공을 치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테러라는 것을 떠올릴 때 생각하지 못하는 백색의 공과 반짝이는 은빛 골프채. 그것으로 폭력을 휘두르면 그 임팩트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력적인 폭력이라는 생각이지요.
정성일 l 태석과 선화가 함께 들르는 첫 번째 집은 사진작가의 집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
김기덕과 <빈 집>에 관한 모든 것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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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석은 선화가 만들어낸 판타지?
정성일 l 혹시 태석은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던 것은 아닙니까. 그러니까 태석은 선화가 만들어낸 일종의 판타지인 것입니다. 그녀의 내면에서는 두 사람의 여행이지만, 사실 그것은 혼자만의 여행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사는 원래부터 성립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감독님은 프로덕션 노트에서 ‘우리는 모두 빈집이다. 굳게 잠긴 내 자물쇠를 누군가 열고 들어와 나를 해방시켜주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그러던 어느 날, 유령 같은 한 남자가 나타나 나의 자물쇠를 열고 나를 데려간다. 오늘, 난 무작정 그 남자를 믿고 따라간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나’는 태석이 아니라 선화입니다.
김기덕 l (웃음) 등골이 짜르르한 게 너무나 정확하게 보셨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선화의 판타지입니다. 선화에게는 한국의 주부들이 생각하는 불만이 모두 들어 있지요. 박탈당한 경제권, 언제나 집안에 갇힌 식물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 그런 것들을 스스로의 의지로는 파괴할
김기덕과 <빈 집>에 관한 모든 것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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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5일 오후 3시. 약속장소로 가는 길에 정성일 영화평론가가 말했다. “김기덕 감독이 웬 인사동? 영등포나 구로에서 만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웃음) 농담이지만 김기덕 영화의 변화를 암시하는 듯한 말이다. <빈 집>을 연상시키는, 한옥을 개조한 찻집에서 이루어진 3시간에 걸친 대화는 “베니스영화제 수상 축하합니다”로 시작해 “우리 밥이나 먹으러 갈까요?”로 끝났다. 그러므로 여기에 싣는 것은, 그 기나긴 애정표현의 일부를 간신히 추슬러 담은 여백없는 편지이자 <빈 집>의 나침반 구실을 해줄 김기덕의 첫 번째 고백일 것이다. /편집자
“10년간 나는 내 노선을 지켰다”
정성일 l 베니스영화제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김기덕 l 감사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더이상 대담할 말이 남아 있나요? (웃음)
정성일 l 우리가 벌써 인터뷰를 했던 게 4년인데, 영화를 너무 빨리 찍으셔서 개정증보판을 내야 할 형편입니다. (웃음) 우선 이 인터뷰는 일종의 소개라는
김기덕과 <빈 집>에 관한 모든 것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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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들은 자기들의 주인의 마음의 실내화이며, 삶의 환유이자, 그들 자신의 작은 세계이다. 집은 세상에 떠 있는 작은 섬들이다. 그러므로 그 남자와 그 여자는 세상에 흩어져 있는 작은 섬들을 찾아 그들이 잠시 머물기 위해서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런 다음 그 여자는 집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반복이 아니다. 차라리 그것은 잉여지식과의 동거이다. 혹은 <빈 집>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유령연습”이다.
견딜 수 없는 현실을 뒤집어서 견뎌내다
그러나 <빈 집>은 여기서부터가 핵심이다. 혹은 다시 시작한다(이것은 이제 김기덕 영화에서 하나의 패턴이 되었다. 그는 영화를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중단하고 다시 시작한다. 이를테면 <나쁜 남자>의 마지막 장면, 혹은 <사마리아>의 세 번째 에피소드). 이제 그 (유령과 같은, 혹은 유령인) 남자는 자기의 존재에 대해서 스스로를 증명해야만 한다. 여기서 그 남자는 연습한다. 혹은 그것은 다시 태어
김기덕과 <빈 집>에 관한 모든 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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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유령연습’
“사람들은 내가 일에 미쳤다고 하죠. 한편이 끝나면 곧바로 다음 영화에 들어가고 결국 많은 작품을 찍어냈으니까요. 그러나 세트에서 난 휴식을 취합니다. 나에게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 해야 할 것만을 하고는 집으로 가죠. 그리고 쉽니다. 그 다음날 다시 시작하고요. 절대 스트레스는 없습니다. 전 차분한 성격이거든요.”
해외 언론들엔 김기덕은 괴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제6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폐막식 직후 열린 기자회견. 올해 베를린과 베니스의 감독상을 독식한 이 놀라운 감독의 지치지 않는 먹성에 질문이 집중됐다. 그러나 김기덕 감독은 “촬영현장은 내게 사무실이나 다름없다”는 태연한 답변으로 그들의 호기심을 더욱 부추겼다. <빈 집>에 대한 질문에도 김기덕 감독은 짧은 답변으로만 응수했다. 어디 해외 언론들뿐이었을까.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을 거머쥔 김기덕 감독과 <빈 집>에 대한 관심은 국내에서도 못지않았고, 결국
김기덕과 <빈 집>에 관한 모든 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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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6_그리스의 거장 테오 앙겔로풀로스 회고전
거대한 역사와 작은 개인이 만나 엮는 시
그리스 출신의 영화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를 두고서, 그의 오랜 찬미자인 영화학자 데이비드 보드웰은 독창적인 예술가(original)라기보다는 ‘종합하는 예술가’(synthesizer)라고 쓴 적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보드웰이 이야기하는 종합하는 예술가란 이를테면 프로코피예프나 모딜리아니가 동일한 범주에 속할 때처럼 절대로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보드웰은 앙겔로풀로스의 영화세계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장 뤽 고다르 같은 모더니스트들로부터 배운 바를 잘 융합해 구축된 것, 그럼으로써 영화 만들기의 전통이 동시대에 새로이 재건될 수 있음을 생생하게 예증하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런 맥락에서, 앙겔로풀로스야말로 영화적 모더니즘이 여전히 우리의 눈을 열어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감독이라고 보드웰은 정의한다. (그의 또 다른 경배자인 앤드루 호튼이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총력가이드 [8] - 테오 앙겔로풀로스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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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5_다큐멘터리 : 북한의 일상부터 패스트푸드 실험까지 다큐멘터리 추천작 5편
차가운 세상에 대한 따뜻한 관찰
거짓말이 힘을 갖는 세상이라지만 다큐멘터리는 아직 할말이 많다. 보여줄 것이 너무 많다. 여기 이 영화들은 그 가장 원초적인 진실을 믿는 관객을 감동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
어떤 나라 A State of Mind
감독 대니얼 고든 l 영국 l 2004년 l 93분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조직적인 매스게임을 펼치는 나라로 꼽힌다. 각종 기념일에 맞춰 펼치는 매스게임은 정치적 내용을 차치한다면, 체조와 음악 등 각종 예술의 오묘한 집합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을 것. 평양에 사는 두 여중생이 초대형 매스게임을 준비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 <어떤 나라>가 흥미로운 것은 단지 오묘한 북한의 매스게임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영화가 우리의 눈길을 붙잡는 진짜 이유는 박현선과 김성연이라는 두 여중생과 그 가족의 일상생활이 별다른 여과없이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총력가이드 [7] - 다큐멘터리 추천작 5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