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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태식과 20대 상환의 모든 것을 건 맞대결
<주먹이 운다>에는 핸드헬드가 많이 나온다. 현장에서는 두대의 카메라가 계속해서 연기자를 쫓아간다. 핸드헬드는 연기자의 동선을 쫓거나, 감정을 좇아간다. 동선을 쫓다가 배우가 프레임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금기이지만, <주먹이 운다>에서는 설사 그런 일이 벌어져도 큰 문제가 없다. 프레임 안에 그들이 없어도, 여전히 그들의 감정은 남아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이 그렇듯이, 우리의 시선과 동선이 그렇듯이, 잠시 프레임 바깥으로 나가버려도, 가끔은 인생의 큰길에서 어긋나버려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진짜라면, 진심이라면. <주먹이 운다>에는 류승완 감독 개인의 경험도 약간 녹아 있고, 실제 인물이 되어 생각하고 행동하는 최민식과 류승범의 마음을 따라가며 보여줄 생각이다. “예전과는 다르게, 아이들을 보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이를테면 내 복제품의 인생이 될 텐데. 나는 내 아이들에게
<주먹이 운다>·<달콤한 인생> 현장 방문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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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테크닉이 아니라 감정에 집중한다”
11월24일 오후 3시, 분당 서현역 앞 옥외주차장 5층.오늘 촬영분이라며 받은, 달랑 3쪽짜리 <주먹이 운다>의 시나리오에는, 시간배경이 분명 밤이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낮이다. 엘리베이터를 찾지 못해 터벅터벅 5층까지 걸어 올라가니, 주차된 차들 사이에서 30여명의 촬영진이 한참 열을 올리고 있다. 가죽점퍼를 입은 최민식이 누군가를 때리고 있다. 두대의 헨드헬드 카메라가 바쁘게 움직이며, 그 모습을 찍고 있다. 태식(최민식)의 후배이며 한때 같은 체급의 라이벌이기도 했던 용대. 43살의 태식은 거리에서 매를 맞아가며 돈을 벌고, 마지막 승부라 생각하며 뒤늦게 프로 신인왕전에 뛰어들었다. 반면 용대는 밤의 세계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은 건달이다. 졸개들을 거느리고 건들거리던 용대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태식의 주먹에 맞고 쓰러진다. 그런데 이미 받은 시나리오에서는, 이 장면이 용대가 태식을 때리는 것이었다. 이미 바
<주먹이 운다>·<달콤한 인생> 현장 방문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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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째 선택, 그것이 궁금하다
술자리에서 제안을 받았다.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과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의 촬영현장을 찾아보고, 인터뷰를 한 뒤에 기사를 쓰지 않겠냐고. 아마도 이유는, 개인적으로 두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했다. 장르의 즐거움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김지운과 류승완의 영화는 언제나 환영이다. 게으른 탓에 현장에 잘 다니지는 않지만, 미리 이야기를 들어보고, 나중에 영화를 보며 ‘목적’과 비교하는 것도 즐겁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런 개인적인 이유로, 현장에 갔다.
사실 어떤 영화의 현장을 찾아 그 느낌을 표현하려면, 한번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적어도 5, 6번 아니 10번 정도는 현장을 찾아 분위기를 살피고, 이야기를 듣고, 꼼꼼하게 지켜보아야 한다. 그러니 이 글은 절대로 현장취재가 아니다. 그저 현장을 찾아 감독과 인사를 나누고, 한 장면의 인상을 얻고, 감독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것에 대한 인상기
<주먹이 운다>·<달콤한 인생> 현장 방문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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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글을 써보고 싶더라고
조선희 l 이창동 선배는 농담을 잘하는 사람이고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해 애정있고 낙관적인 데가 있어요. 김영호가 고통받고 망가지는 것도 그 사람에게 어떤 맑은 심성이 있었기 때문이고, 홍종두도 그렇고. 지금까지는 굉장히 비극적이고 우울한 분위기를 즐겨왔지만 결국은 밝고 낙관적인 영화로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이창동 l 그러지는 않을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낙관하지. 인간에 대해. 한국사회도 긍정적으로 나아갈 거라고 봐요. 사람들 하나하나의 내면은 뭔가 이해하고 사랑하고 받아들이고 긍정하지만 그걸 위해서는 어떤 어두운 걸 통과해야 해요. 어둠을 통해서 빛을 본다고 할까. 그게 예술체험의 과정이랄까. 아까 분열을 말했는데 작가는 기본적으로 속에 분열을 갖고 있다고 봐요. 영화감독도 굉장히 많은 다중인격적인 게 있어야 돼. 그러니 분열을 받아들이세요. (웃음) 나는 장관도 내 역할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 속에 그런 것도 있을 테니까.
독점인터뷰[6] 돌아온 이창동 감독, 갑자기 글을 써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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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영화로 이어진 힘
조선희 l 무엇이 이창동 감독을 작가로 만들었을까요.
이창동 l 아, 이건 어려운 단답형 질문이다. 외로움 같아. 외로움. 십대 초반에 이미, 나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했거든. 그때 소설도 썼어요. <삼국지>도 썼고. 촉나라 오나라 위나라 그림도 그려가면서 내 나름대로 쓴 거예요. 누구한테 보여준 적은 없지만 내가 그 무엇과 통신하는 방법이야. 외로우니까, 현실하고 소통이 안 되니까 그랬던 거 같아요. 지금도 그 정서나 심리상태가 거의 변하지 않은 거 같아요.
조선희 l 소설 쓰다가, 아 이거 못해먹겠다 해서 딴 데로 간 게 또 다른 작가의 길이었잖아요.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소설로, 영화로 끌고 온 힘이 뭘까요.
이창동 l 글쎄요, 힘이 있었나? 그냥 흘러오다보니까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는데. 조선희씨가 잘 알겠지만 그건 있었어요. 이른바 80년대에 내가 글을 썼잖아. 우린 20대 때엔 인문학적 감수성이었거든. 그런데 80년대는 인문학
독점인터뷰[5] 이창동 감독을 작가로 만든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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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그야말로 폼이지”
조선희 l 지난해에 <오아시스>가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돼서 칸에 가셨죠? 그 기사 보면서 ‘딴지일보’식으로 ‘아, 쓰바, 저거 너무 폼나는 거 아니야’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장관이 다른 나라 방문할 수도 있고 감독이 초청받을 수도 있는데, 장관이 감독 자격으로 칸영화제에 간다는 건, 진짜 폼나 보이더라고요.
이창동 l 그렇게 폼나진 않아요, 실제로 그 폼을 취하고 있으면. 근데 실은 일이 있어서 갔던 거예요. 해외문화원장회의라는 게 있어요. 그게 파리에서 있었고, 또 프랑스 문화부 장관하고 만나게 돼 있었어요. 문화분야에서는 프랑스와의 국제적 유대가 굉장히 중요하죠. 미국은 문화에
대한 개념이 없는 나라예요. 근데 어쨌든 우연인지 그쪽에서 기획을 한 건지는 모르겠어요. <오아시스>는 베니스에 나갔던 작품이라 칸에선 안 받아야 하는 거였거든.
조선희 l 전에 한길사 사옥 오픈하면서 단재상 시상식 할 때 정도상이 상받는다
독점인터뷰[4] 이창동, “권력, 그야말로 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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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 만의 영화계 복귀
조선희ㅣ 저는 여행을 좀 다녀와도 처음엔 집이 낯설거든요? 집안 분위기도 낯설고 아침밥 준비해서 애들 학교 보내야 하는 것도 내 일이 아닌 거 같거든요. 근데 1년 반 만에 영화계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건데, 고향은 고향인데, 좀 낯선 느낌은 없으세요?
이창동ㅣ 전혀.
조선희ㅣ 아무런 이물감이 없으세요?
이창동ㅣ 그럼요.
조선희ㅣ 자신은 예전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해도 사람들 태도가 예전과 달라진 것, 어려워하는 건 없어요? 저도 예전엔 좀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장관 하시고 나선 아주 어려워 죽겠는데요. (웃음)
이창동ㅣ 영화계 사람들은 괜찮아요. 나를 다르게 보지 않아요. 근데 일상적으론 많이 느끼거든요. 이건 심각해요, 나한테. 물론 예상은 했었어요. 그런 문제가 심각하게 걱정돼서 가능하면 안 하려 그랬죠. 공직을 하기 전에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별로 신경 안 썼어요. 그만큼 자유로웠던 거죠, 책임감도 없고. 이번엔 좀 달라요.
독점인터뷰[3] 이창동, 1년 반 만의 영화계 복귀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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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작 <밀양>, 회수를 건너 <선샤인 스트리트>로
조선희ㅣ 차기작에 대해서 얘기들이 벌써 나오던데요. 강우석 감독이 돈 대기로 했다는 얘기도 있고 벌써 시나리오가 나왔다고도 하고. 어떤 기사 보니까 제목이 <선샤인 스트리트>인데 40대 여자 이야기다, 어쩌고 하는 기사들이 난무하던데….
이창동ㅣ (웃음) 내가 공무원 되기 전에 좀 생각하던 게 있었어요. 제목이 <밀양>, 경남 밀양. 영어로 하면 ‘secret sunshine’이에요. 실제론 빽빽하다는 밀(密)자인데, 햇볕이 좋단 말이지. 거기 강가에 서 있으면 햇볕이 좋다는 느낌이 들거든. 제목이 <밀양>이 뭐냐고 해서 ‘시크릿 선샤인’ 하면 영어제목은 괜찮다고 농담처럼 했는데 그걸 누군가 기억하고 있다가 얘기를 한 거예요. 근데 그걸 ‘선샤인 스트리트’로 잘못 들은 거고, 누구는 ‘선샤인 불리바드’라고도 그러고.
조선희ㅣ 그럼 그걸 영화할 생각은 없는 거예요?
이창
독점인터뷰[2] 감독으로 돌아온 이창동 감독의 차기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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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판 사람들 만나면 편해져, 좀 숨쉴 만해”
이창동 감독을 12월1일 오후 일산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잘 빗지도 감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는 장발, 우중충한 배색의 후줄근한 옷차림, 느릿느릿한 말투, 농담까지, 모든 게 예전 그대로였다. 늘 자기 내부를 향하는 감시의 안테나도 여전히 성능 좋게 작동하고 있었고, 자학에 가깝게 자신을 엄격하게 다루는 결벽증 증세도 전혀 차도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작가의 정체성도 그대로인데, 그것은 작가주의 감독의 태도로 또 다른 현장을 지휘하다 돌아왔다는 뜻일 수도 있다.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의 관객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대로, 그에게서, 권력의 맛을 보았거나 신분적으로 수직상승한 흔적 같은 건 없었다. 다만 긴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 특유의 여독 같은 게 짙게 느껴졌다. 그 여독을 푸는 게 당분간 그의 숙제처럼 보였다.
그는 장관 취임 초기 인터뷰에 응한 뒤 1년 반 만에 <씨네2
독점인터뷰[1] 소설가 조선희가 만난 장관에서 감독으로 돌아온 이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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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미 레슬러 샤프 형제를 쓰러뜨리는 역도산
찍다보니 케이블 프로레슬링 경기네
송해성 l 드디어 레슬링 장면이군요. 고통의 연속이었죠. 이 시합은 1954년에 열렸던 역도산 대 기무라 전하고 똑같이 찍으려고 했는데 실제보다는 리얼하진 않더라고요. (웃음) 당시 자료화면을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인데 상대에 대한 배려로서의 룰은 전혀 없어요. 워낙 살벌해서 관중이 소리를 내지도 못할 정도니까.
김형구 l 일본 관중이 거구의 미국 레슬러인 샤프 형제를 쓰러뜨리는 역도산을 보고 ‘만사이’를 부르는 첫 번째 경기장면에는 풍부한 컬러를 썼고, 이후 경기들로 가면서 서서히 탈색됩니다. 나중 경기들은 점점 콘트라스트가 강하고 어두워요.
송해성 l 경기장면은 CG를 전제로 촬영을 해야 했는데.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제가 CG 노이로제가 있습니다.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파이란>에서 CG 쓴 건 제목 뜨는 부분에서 물안개 심은 거 딱 한 장면이거든요. 근데 이번에는 938컷
<역도산> 미리 보기 [4] - 주요 장면 코멘터리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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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못할 롱테이크 액션의 고통
송해성 감독과 김형구 촬영감독은 <역도산> 촬영을 이끈 쌍두마차. “드라마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촬영감독”, “통솔력이 대단한 연출자”라고 서로를 인정하는 이들은 <역도산>이 첫 공동 작업이지만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뜻을 읽을 수 있을 만큼 현장에서 호흡이 좋았다고 한다. 개봉을 앞두고 긴장과 흥분이 교차한다는 두 사람으로부터 <역도산>의 주요 장면 코멘터리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 1 죽음의 위기를 맞이한 역도산
36시간 연속촬영, 미리 자둘까?
송해성 l 당시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던 클럽 라틴 쿼터에서 역도산은 칼을 맞습니다. 영화의 도입부와 마지막에 배치될 이 장면 촬영은 신주쿠의 한 클럽에서 진행됐습니다. 60년대 클럽 분위기가 나는 곳을 찾아다녔는데 대부분이 연신내 카바레처럼 생겼더라고요.
김형구 l 저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장면이네요. 천장이 스펀지로 만든 흡음장치로 덮여 있어서 라이트를 달
<역도산> 미리 보기 [3] - 주요 장면 코멘터리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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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말해두는데, 난 죽기 살기로 싸운다” -<역도산> 중-
레슬링 장면은 그야말로 악전고투였다. 첫날 팔 하나가 내 허벅지만한 놈들이 촬영장으로 들어오는데, 내 옆에 있던 정두홍 무술감독의 입이 쩌억 벌어지고…. 그걸 본 경구가 “형 내가 저 새끼들 들어올리고 말 거다”라고 다짐을 하더니 곧장 집에다가 바벨 가져다놓고 열심히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악바리 같은 게 결국엔 본촬영에서 그놈들을 번쩍 들어올려버렸다. 그걸 찍고나서는 나한테 다가와서 그러더라. “형. 남들이 이 장면 보고나서 와이어 쓴 거 아니냐고 물어보면 그 새끼들 다 죽여버릴 거야!” 레슬링 장면은 경구가 너무 고통스러워 하니까 어떻게든 빨리 찍으려는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보니 롱테이크로 갈 수밖에 없는 게, 컷을 나누어서 찍으면 들고 던지는 장면들을 여러 번 다시 찍어야 하지 않나. 나중에는 잔머리를 썼다. 화난 표정으로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으면 경구가 먼저 ‘이게 잘 안 찍혔나보구
<역도산> 미리 보기 [2] - 송해성 감독이 말하는 배우 설경구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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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 묻혔던 역도산이 드디어 입을 연다. 그의 기일인 12월15일에 개봉하는 <역도산>은 충무로 안팎에서 하반기 최대 화제작으로 꼽히는 영화. 일본에서 천황 다음 가는 영웅으로 꼽히는 전설의 프로레슬러 역도산을 사후 41년 만에 한국과 일본의 배우와 스탭들이 함께 스크린으로 불러들였다는 점에서 이 합작 프로젝트에 대한 궁금증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역도산을 연기한 설경구에 대한 관심이 가장 뜨거울 것이다. 뜨거웠던 8월, 촬영을 끝낸 뒤 링과 싸우며 분노를 내뿜고 증기 기관차처럼 뛰어야 했던 지난 시간에 대한 설경구의 토로(<씨네21> 466호)를 기억하는가. <공공의 적2> 촬영이 계속되어 이번엔 설경구에게 인터뷰를 제의하지 못했지만, 그를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야 했던 송해성 감독이 둘도 없는 배우에 대한 친절한 덧말을 줬고, 송해성 감독과 김형구 촬영감독이 주고받은 <역도산> 주요 장면 코멘터리를 뒤에 덧붙여 아쉬움을 대신
<역도산> 미리 보기 [1] - 송해성 감독이 말하는 배우 설경구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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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형> 장치적 캐릭터는 장치일 뿐… 조용히 사라진 성현과 미령과의 재회
정회석 프로듀서는 “영화를 본 사람들이 미령(이보영) 캐릭터가 갑작스레 없어진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부분이 가장 아쉽다”고, 상황상 찍지 못한 장면을 별 고민없이 꼽았다. 영화는 성현(신하균)과 종현(원빈)이 고등학교 때 함께 연모했던 여학생 미령의 이야기를 둘의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더이상 담지 않지만, 미령인 그후 아마추어 연극배우와 내레이터 모델을 겸하며 살고 있었다. 대학생이 된 성현이 학교 앞에서 우연히 미령을 만나고, 미령이 연극표를 건네주며 “공연 한번 보러오렴” 하며 인사한다. 이 장면을 찍지 못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후반부에 해결해야 될 두 형제의 갈등이 극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부산대를 섭외하고 촬영일정을 잡아보기도 했지만, 찍을 때가 되니 배우 스케줄이 어긋나고 그래서 미루고나니 장마가 찾아왔다.
안권태 l 미령은 이 영화에 잘 맞는 캐릭터이지만 또 전
2004 한국영화가 찍지 못한 장면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