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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장 의아한 점은 이것이다. 왜 <사랑해, 말순씨>일까? 왜, <사랑해, 엄마>가 아니라 <사랑해, 말순씨>일까? 영화를 보기 전까지 별다른 사전 지식이 없었으므로, 나는 박흥식은 이제 엄마가 아닌, 엄마의 ‘이름’을 부르고 있구나, 했다.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고, 말순씨라고 부르는 것의 그 의미심장함. 아마도 그는 <인어공주>에서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 한 발자국 나아간 게 분명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뒤, 동일한 제목이 다른 의미로 다시 의아해진다. “사랑해, 말순씨”라고 말하는 자는 누구인가? 왜 하필이면, “사랑해, 은숙(주인공 광호가 짝사랑해 마지않던 여인)씨” 혹은 “사랑해, 내 십대의 추억”이 아니라, 말순씨란 말인가? 이 영화에서 말순씨가 다른 인물들에 비해 그다지 특별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음을 깨달은 순간, 나는 더욱 궁금해졌다. 단순히 관객 동원용이었나, 아니면
<사랑해, 말순씨> 찬반양론 [2] - 남다은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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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식 감독의 세 번째 영화 <사랑해, 말순씨>가 오는 11월4일 개봉한다. 자잘한 우연들을 통해 남녀의 만남을 이뤄내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시간여행이라는 판타지 구조를 통해 구질한 모녀관계를 긍정적인 현실로 이해하고자 하는 <인어공주>에 이어 1980년을 배경으로 한 14살 소년의 성장기 <사랑해, 말순씨>는, ‘나도 80년대에 소년이었다’는 문장으로 서두를 뗀 많은 성장영화들과 궤를 같이하는 뒤늦은 편지다. 그 소년들에게 똑같은 모양의 상처를 남긴 시절을 자신만의 디테일하고 온기어린 손길로 매만진 박흥식 감독의 <사랑해, 말순씨>에 대해 영화평론가 심영섭과 남다은이 각각 지지와 비판의 의견을 보내왔다. 그리고 감독에게 직접 이 영화를 왜, 어떻게 만들고자 했는지 물었다.
심영섭이 <사랑해, 말순씨>를 지지하는 이유
인간에 대한 조용한 연민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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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말순씨> 찬반양론 [1] - 심영섭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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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의 일본 아가씨
港の日本娘 | 1933년 | 감독 시미즈 히로시 | 출연 오이카와 미치코, 이노우에 유키코
시미즈 히로시의 영화들에는 추락해버려서 떠다니는 신세가 된 영혼들이 자주 나온다. <항구의 일본 아가씨> 역시 그런 주인공이 사랑과 우정의 문제로 동요(動搖)를 경험하는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다. 요코하마에 사는 스나코는 헨리라는 이름의 멋지게 생긴 남성과 교제 중이다. 하지만 자신의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안 그녀는 남자친구의 다른 연인을 총으로 쏜다. 세월이 흘러 스나코는 교도소를 나와 고베의 바로 흘러들어온다. 그 사이에 헨리는 스나코의 절친한 친구 도라와 부부 사이가 되어 있었고 고향에 돌아온 스나코는 그들과 재회한다. <항구의 일본 아가씨>는 이야기의 얼개만 놓고 보면 뻔하게 감상적인 멜로드라마를 예상할 수 있는 영화이지만 인물들의 심리보다는 어떤 환경 속에 놓인 인물을 관찰하는 시미즈 특유의 시선에 의해 세련미를 획득했
감독의 스튜디오, 쇼치쿠 110년 [4] - 쇼치쿠 대표작 1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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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견지에서 보자면, 후지산을 담은 쇼치쿠의 그 오래되고 친숙한 로고 숏은 이제 영화의 인장이 스타가 아니라 감독에게 속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한 증표이기도 했다. 일본 영화사를 서술하는 이들은 그런 흐름이 대략 1920년대 초, 즉 쇼치쿠가 당시 할리우드에서 카메라맨으로 활동하던 헨리 고타니(히로시마에서 태어나 아홉살 때 부모와 함께 하와이로 이주했던)를 데려와서 영화에 대한 선진의 기술들을 전수받은 때로부터 발원했다고 쓴다.
하지만 영화사 시스템의 중심을 스타에서 감독으로 완전히 옮겨놓은 이는 기도 시로(1894∼1977)라는 인물이었다.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하고 1924년, 서른이란 이른 나이에 쇼치쿠 가마타 촬영소의 소장 자리에 오른 그는 신파극과 가부키의 묵은 유산을 털고 내용과 스타일 양면에서 ‘모던한’ 풍취가 나는 (순)영화들을 제작하고자 했다. 그의 영향을 받은, 또는 그와 뜻을 같이하는 쇼치쿠의 감독들과 조감독들은 기도 앞에서 토론할 기회를 가졌고 외국영화들을
감독의 스튜디오, 쇼치쿠 110년 [3] - 쇼치쿠가 사랑한 감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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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치쿠 누벨바그와 <남자는 괴로워>
1953년 텔레비전이 첫 등장할 때만 해도 영화계의 우려는 크지 않았다. 1958년 당시 관객은 현재의 10배인 연간 11억2745만명에 달했다. 민간방송 출범 당시 영화계도 미국에 시찰단까지 보냈지만 흐지부지되었고 방송국은 신문사들이 맡게 된다. “여기에서 영화계의 운명은 갈렸다”고 하마노 교수는 말한다. 1965년 관객이 3억6천만명으로 격감했고, 1975년엔 처음으로 일본영화 관객이 외국영화 아래로 떨어졌다. 장기가 TV의 홈드라마, 가정극과 가장 비슷했던 쇼치쿠가 가장 타격이 컸다. 이전까지 확고한 업계 1위였던 쇼치쿠는 1958년 이미 3위로 떨어졌다.
하마노 교수는 역설적이지만 “일본에 홈드라마라는 장르를 확립한 것”이 쇼치쿠의 기여라고 했다. 기노시타 감독은 1970년대 실제 <TBS>가 지원해준 기노시타 프로덕션을 통해 수많은 홈드라마들을 만들어냈다. 일본의 2대 드라마 작가 중 한명인 야마다 다이치는
감독의 스튜디오, 쇼치쿠 110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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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형제가 사람들에게 영화라는 멋진 신세계를 선사한 지 110년인 올해. 일본의 영화 메이저 스튜디오 중 하나인 쇼치쿠가 11월에 110주년을 맞는다. 쇼치쿠는 1895년 교토의 유명 가부키 극장을 오타니 다케지로가 인수한 데서 시작되었다. 쌍둥이 형인 시라이 마쓰지로 역시 극장흥행업주였는데, 1902년 <오오사카 아사히 신문>에 두 형제의 이름을 따 ‘쇼치쿠의 신년’이란 제목의 기사가 나며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다. 형제가 영화계에 뛰어든 건 1920년, ‘쇼치쿠 키네마 합명사’를 만들면서다. 1912년 일본 최초의 영화사로 닛카쓰가 태어났지만 중간에 문을 닫았던 데 비해 쇼치쿠는 중단없이 110년을 ‘생존’해왔다. 말이 쉽지, 100년 넘게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유지되어온 건 세계에서 드문 예다. 쇼치쿠의 부침의 역사는 일본 영화사의 부침과 궤를 같이한다. 이 오래된 일본영화의 시니세(대를 잇는 노점포)의 과거와 오늘을 들어봤다.
도쿄의 긴자에서 몇분만 쓰키지
감독의 스튜디오, 쇼치쿠 110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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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살
감독 이치카와 곤 | 출연 스즈키 히로오, 후나코시 에이지 | 88분 | 제작 다이에 | 1962년
막 태어난 사내아기 타로의 독백이 영화를 연다. “발을 움직였더니 체중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고독을 깨닫고 슬퍼졌다.” 아기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스타일이 에이미 해커링의 1989년작 <마이키 이야기>를 앞선 가족영화다. 그러나 아기를 관찰자로 내세워 결국 어른들의 사연을 풀어놓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 전체를 ‘육아’라는 테마에 바쳤다. 8남매를 둔 타로의 이모는 “애들이 빽빽 울 때면 한 셋쯤 죽여버릴까 생각도 해”라면서도 동생에게 아이를 더 갖지 않냐고 묻는다. 하지만 신세대 초보부모는 하나만으로도 벅차다. 아기 기르기에 위험한 신식 가옥 구조부터 고부간의 육아 갈등까지, 고도 경제성장 시대 일본의 젊은 샐러리맨 부부가 첫 아이를 키우며 겪을 만한 시행착오들을 두루 보여주는 연출은, 다큐멘터리적 분위기를 낸다. 타로 역의 아기는 3240:1의 오디
제2회 메가박스 일본영화제 가이드 [3] - 프리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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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한 여자
감독 다카하시 반메이 | 출연 시모모토 시로, 야마지 가즈히로, 사노미 요시코 | 67분 | 제작 다카하시 프로덕션 | 1981년
걸출한 핑크 무비 감독 다카하시 반메이가 1981년 만든 수작. 그해 다카하시 반메이는 17편의 핑크영화를 연출했다. 띠동갑인 젠상과 히로시는 가출소녀 찾기부터 남창 노릇까지 공중전화로 잡다한 청탁을 접수해 먹고사는 해결사다. 둘이 자주 들르는 술집의 미미는 젊은 히로시를 짝사랑하지만, 정작 미미를 사모하는 남자는 젠상이다. 자기를 갉아먹는 삶에 지쳐가던 두 남자는 야쿠자 보스의 정사 사진을 찍으면 큰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인생 역전을 꿈꾼다. 결국 히로시는 미미에게 희생을 부탁하고 두 남자와 ‘한패’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품어온 미미는 순교자 같은 태도로 응한다. 짧은 러닝타임과 그 대부분을 지배하는 섹스신에도 불구하고 극히 단순한 장면으로 날것의 감정을 섬뜩하게 드러내는 화술과 돌파력이 인상적이다. <쉘 위 댄스>의 수오
제2회 메가박스 일본영화제 가이드 [2] - 프리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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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딩가딩가 딩딩딩> <살아 있는 게 최고야 죽으면 끝이지 당선언> <당한 여자> <하늘이 이렇게 푸를 리 없다>. 이처럼 자못 예사롭지 않은 제목의 영화들이 몰려오는 축제는 11월10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리는 제2회 메가박스 일본영화제(주최 일본 문화청, 공동주최 메가박스 씨네플렉스, 일본 영상산업진흥기구 VIPO)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의 제목만이 아니다. 재미는 이번 영화제가 소개하는 대중 장르영화들의 다름 아닌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청춘물과 로망 포르노를 중심으로, 문화교류가 단절된 동안 만들어진 일본 대중영화 45편을 상영해 평균 좌석점유율 약 75%를 기록한 2004년 ‘사랑과 청춘 1965-1998’에 이어 열리는 제2회 일본영화제는 장르를 테마로 선택했다. “첫해의 대중적 호응을 이어가면서도 장르가 유난히 번성한 일본 영화산업의 특색을 보여줄 수 있고, 서구의 필터로 걸러지지 않은 일본영화를 선
제2회 메가박스 일본영화제 가이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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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단 우두머리 허락거쳐 파벨라 내부 촬영
위험천만한 파벨라 안에서의 촬영을 진행하기로 마음먹은 <시티 오브 갓>의 제작진은, 도시의 타락을 뒤에서 조정한 부패경찰이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방법은 도시의 실제 권력자의 허가를 받는 것뿐이었다. 다행히도 감옥에 있던 갱단 우두머리는 허락의 뜻과 함께 “영화를 만들되, 할리우드영화 같은 방법은 안 된다. 제발 진짜를 만들어달라”는 메모를 전해왔고, 제작진은 그의 부하 몇명을 스탭으로 고용했다. 이들은 제작진이 점심을 먹는 와중에, “잠시 장비를 테스트해도 될까요?”라고 물은 뒤, 조용히 총격전을 벌이며 촬영장소를 섭외(!)할 정도로 정중했지만, 끝내 네개의 구역으로 나뉜 시티 오브 갓의 한 구역 우두머리에게만 촬영허가를 얻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나머지 촬영은 하이시티 등 두개의 파벨라에서 이루어졌다. 제작진과 갱단의 밀접한(?) 인연은 개봉까지 이어졌고, 영화의 시사회장에서 전설적인 마약상이 경찰에 체
<시티 오브 갓> 탄생비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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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데자네이루 최대의 빈민가. 신의 도시라는 의미가 일찍이 들어본 적 없는 역설로 다가오는 도시 ‘시티 오브 갓’. <신시티>는 차라리 장난이었다. 동정없는 아이들, 미래를 믿지 않는 아이들이 지배하는 이곳은 눈앞에 펼쳐진 지옥이다. 코흘리개부터 20살 가까운 청소년들까지, 온갖 종류의 총으로 무장한 채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은 슈퍼마켓과 여관, 동네를 지나가는 배달트럭을 털고, 마약을 배달하고, 서로에게 총질하며 젊음을 관통한다. 제아무리 성실한 삶도 앞뒤 가리지 않는 폭력과 무질서 속에 꿈을 저당잡히는 가운데, 이들 모두는 맨살을 드러낸 힘의 논리를 일찌감치 생존의 법칙으로 받아들였다. 정말 소름끼치는 것은 만화적이고 영화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했던 <신시티>를 능가하는 이 도시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
영화 <시티 오브 갓>은 이처럼 모두가 외면하고 싶었던 브라질 슬럼의 탄생과 성장을 애증어린 시선으로 지켜본다. 그러나 전세계 대중과 평단의
<시티 오브 갓> 탄생비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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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월드> 참패로 경력이 끝나다
“저는 <워터월드>가 위대한 현대 동화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좋아하는 마음이 식지 않았습니다. 그 영화가 좋았다며 열렬한 감상문을 보내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무시해도 되는 건가요. 영화를 흥행수입만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1995년
코스트너는 에고와 야먕의 값을 비싸게 치렀다. 당시 영화 역사상 가장 비싼 영화였던 <워터월드>(1995)를 시작으로, 케빈 코스트너의 경력은 갑자기 끝이 났다. 그 자신이 “해양버전의 <블레이드 러너>”라고 대담하게 자신했던 영화는 흥행, 비평의 양면에서 재앙이었고, 해외시장에서의 성공으로 겨우 수지를 맞추었다. 현명한 배우라면 이쯤에서 할리우드 프랜차이즈로 돌아가 총을 잡았어야 온당할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워터월드>의 실패로부터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는 미래를 배경으
케빈 코스트너 연대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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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지난 유행가처럼 누구도 부르지 않던 이름, 케빈 코스트너가 돌아왔다. 미국 개봉으로부터 2년 만에 한국을 찾은 케빈 코스트너의 <오픈 레인지>(이번호 55쪽 프리뷰 참조)는 광활한 풍광을 말보로 광고처럼 두르고서 선과 악의 대결을 담아내는 구식의 서부영화이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처럼 새로운 관객의 주목을 단호히 요하는 작가의 서부영화다. <워터월드>와 <포스트맨>으로 침몰했던 케빈 코스트너는 어떻게 다시 <늑대와 춤을>과 <와이어트 어프>의 세계로 돌아와 숨을 찾았을까. 스쳐지나간 마차를 좇는 수색자의 심정으로 훑어본 케빈 코스트너의 지난한 연대기.
초라한, 이 남자를 보라
“저는 목표가 옳다고 생각하는 한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틴 컵>의 주인공은 결코 남에게 해를 끼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그가 잘못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본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설령 지더라
케빈 코스트너 연대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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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의 인터넷 만화를 원작으로 한 호러영화 <아파트>(감독 안병기)는 현재 캐스팅을 진행 중이며, 엽기발랄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아치와 씨팍>(감독 조범진)은 6년의 작업 끝에 마무리 손질만이 남은 상황이다. 용 전설을 소재로 삼은 판타지영화 <D-WAR>(감독 심형래·출연 제이슨 버) 또한 껍질을 깨고 곧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극장가 메뉴를 풍성하게 해줄 작가주의 성향 또는 독립영화 출신 젊은 감독들의 영화도 속속 등장할 예정이다. <피터팬의 공식>(감독 조창호·출연 온주완, 김호정)과 <방문자>(감독 신동일·출연 김재록, 강지환)는 이미 부산영화제에서 소개됐으며, <양아치어조>의 후일담격인 조범구 감독의 <뚝방전설>이 그뒤를 잇는다. <삼거리 극장>(감독 전계수)은 뮤지컬과 괴담, 코미디 등을 뒤섞은 복합장르 영화를 지향하는 영화다.
<내 청춘에게 고함>은
2006 한국영화 기상도 [8] - 기타 장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