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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콩 vs 티렉스
애니메이터들이 10개 이상의 카메라 앵글로 재구성
칼 덴햄 일행이 해골섬에 도착한 이후부터 피터 잭슨은 관객을 롤러코스터에 실어버린다. 순수한 오락영화로서 99%의 순기능을 발휘하는 이 대목은 초식공룡 브론토사우루스가 육식공룡 카르노사우루스에게 쫓기고, 칼 덴햄 일행은 다시 브론토사우루스떼에게 쫓기는 겹겹의 체이스 장면으로 시작해서 콩과 티라노사우루스 가족 3마리(아빠, 엄마, 아기 공룡이 다 다르게 생겼다)와 앤 대로우가 뒤엉키는 협곡신에서 완성된다. 콩-티렉스-대로우의 협곡신은 개봉 전 kongisking.net에서 이미 공개되면서 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다. 잭슨은 <반지의 제왕> 후반작업 중에 이 부분의 액션 디자인과 애니매틱스 작업에 착수했다. 잭슨이 런던에서 <반지의 제왕> 스코어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웨타의 1차 작업분이 도착했다.
전부 갈아엎은 1996년 시나리오에서 고스란히 살아난 이 대목은 “격투가 치열해지고
피터 잭슨의 걸작 <킹콩> [4] - 프로덕션 과정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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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은 똑같다. 축소 모형, 부분 모형세트, 그린스크린과 블루스크린을 준비한 다음 배우를 갖다놓고 이렇게저렇게 찍어서 CG와 합성한다. <킹콩>의 프로덕션 노트도 그 익숙한 테크놀로지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 안에서 피터 잭슨의 <킹콩>에 대한 비전을 엿볼 수 있다면 동어반복을 조금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반지의 제왕>을 통해 교훈을 얻었다. 판타지란 리얼리즘을 통해 구현됐을 때 가장 뛰어난 이야기가 된다는 사실 말이다. 관객과 캐릭터 모두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충실히 믿을 수 있을 때 가장 좋은 판타지영화가 된다.” 이 노트가 잭슨이 말한 ‘리얼리즘’의 한 도구로서 프로덕션을 이해하게 하는 작은 가이드북이길 바란다.
1. 뉴욕시
수증기 만들려고 땅 파고 배수관 묻고
<킹콩>의 오프닝 시퀀스가 감탄을 주는 이유 중 하나는 1930년대 뉴욕에 관한 디테일 때문이다. 빽빽한 자동차들과 뉴욕 시민을 보여주는 데 이어 다양한
피터 잭슨의 걸작 <킹콩> [3] - 프로덕션 과정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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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vs 부녀
피터 잭슨의 <킹콩>이 종의 경계를 벗어난 로맨스를 구현해내는 방식은 아예 로맨스를 벗어버리는 것이다. 33년작과 76년작은 ‘미녀와 야수’의 성적인 서브텍스트를 잔뜩 지니고 있었다. 33년작에서 콩은 대로우의 옷을 하나하나 벗겨서 냄새를 맡고, 76년작의 콩은 제시카 랭을 폭포수에 목욕시킨 다음 다분히 변태적인 눈초리(콩의 탈을 뒤집어쓴 특수분장가 릭 베이커의 눈초리)로 몸매를 감상한다. 하지만 피터 잭슨의 <킹콩>은 대로우과 콩 관계에 숨어 있는 성적인 함의를 피해간다. 잭 블랙의 표현에 따르면 “여배우를 자기 크기로 확대해서 범하고 싶어하는 발정난 젊은 숫고릴라” 같았던 이전의 콩과는 달리, 잭슨의 콩은 지치고 외로운 늙은이에 가깝다. 이빨은 빠지거나 삭아서 비뚤비뚤하고, 털은 바래서 헝클어져 있으며, 온몸에 상처자국이 가득한데다 뱃살은 애처롭게 출렁인다. 종족의 마지막 생존자(영화는 거대한 고릴라들의 뼈무덤을 종종 보여준다)인 그는 온갖
피터 잭슨의 걸작 <킹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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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이 빠지고, 눈이 튀어나오고, 심장이 멈추는 서사시. 어렵사리 시사회에 초대받은 팬들의 환호가 아니다. 이는 평소 모질게 쓴소리 잘하기로 유명한 <롤링 스톤>의 평론가 피터 트래버스가 보여준 호들갑이다. 과연 피터 잭슨의 <킹콩>은 비평가 양반들의 노쇠하고 차가운 심장에 9살짜리 어린아이의 박동을 되돌려놓는 영화적 경험에 다름 아니다. 피터 잭슨의 아내이자 프로듀서인 프란 월시가 술기운을 빌려 <뉴스위크> 기자에게 털어놓았던 “다른 감독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완전히(Fucking) 자포자기할 것”이라는 호언에서 거만함보다는 충만한 자신감을 읽어낼 수 있는 연유도 그 때문이리라. 순수한 오락으로서 스펙터클의 진경을 보여주는 <킹콩>의 전모를 살펴보고, 각각의 주요 시퀀스가 만들어진 과정을 통해 피터 잭슨의 비전을 살펴본다.
나는 세상의 꼭대기에 앉아 있다네. 영화가 시작되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 오를 콩의 운명을 예감하듯 유성영화 <
피터 잭슨의 걸작 <킹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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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봐야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진가신 감독은 달변가다. 그리고 스스로 얘기하듯 말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기자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지극히 짧았다. 결국 홍콩영화계의 주요 제작자로서의 입장은 충분히 들을 수 있었지만, 정작 <퍼햅스 러브>에 대해서는 꼼꼼히 듣지 못했다. 한국 기자들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타임> 아시아판과의 인터뷰를 위해 황급히 걸어가는 그에게 한국 개봉 때 다시 만나자는 이야기 외에 던질 말은 없었다. 다음은 속사포 같은 진가신 감독과의 대화.
-영화 속 영화에서 서커스를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인들에게 서커스는 일본과의 전쟁이 끝난 뒤인 40∼50년대 애환을 달래주는 큰 오락이었다. 그러니까 서커스는 상처를 잊고 새롭게 삶을 시작하자는 희망을 담고 있다. 이 영화 속에서 손나는 자신의 어려웠던 과거를 잊고 야망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손나가 기억을 잊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것을 대변하는 뜻으로 서커스를 차
<퍼햅스 러브> 홍콩 프리미어 [3] - 진가신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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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사랑의 경험이 도움이 됐다”
금성무 인터뷰
-지엔은 감정기복이 큰 역할인데, 어떻게 이해하고 연기했나.
=지엔은 10년간 한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한다. 그는 손나를 너무 미워해서 포기하지 못한다. 아마 누구나 그런 경험은 있을 것이다. 1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랑하다 미워해서 포기하지 못한 적 말이다. 나도 그런 감정의 경험이 있어서 그런 것을 참고했다. 촬영 중에는 감독과 많은 대화를 나눴고, 주신의 연기도 도움이 됐다.
-지진희와 함께 연기한 소감은 어떤가.
=각 나라마다, 배우마다 감정표현하는 방법이나 연기법이 다르다. 중국만도 워낙 크다보니까 지역별로 연기하는 방법이 다르다. 그러나 감정을 소유하는 방식은 공통적이라고 느꼈다. 지진희와는 2∼3장면을 같이했을 뿐이라 대화를 별로 못했다. 하지만 옆에서 봤을 때 중국어를 모르는 배우가 중국어로 연기하는 것이 매우 힘든 작업일 텐데, 거기에 춤과 노래까지 다 완성해야 했으니 대단하다.
-영화 안에서 왜 춤
<퍼햅스 러브> 홍콩 프리미어 [2] - 배우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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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첫인상은 차라리 거대한 영화세트장이었다. 비좁은 도로, 낡은 고층건물, 하늘을 어지럽게 가리고 있는 간판들, 그리고 분주히 오가며 목청을 높이고 있는 사람들까지, 이 모두가 어떤 영화에서라도 봤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캔톤로드에 서면 장만옥을 뒤에 태운 여명의 자전거가 달려올 것 같고, 비계로 둘러싸인 건물에선 크리스 터커와 성룡이 승강이를 벌일 듯하며, 허름한 국수집에서는 유덕화와 장학우가 국물을 들이켜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 여긴 정말 홍콩영화 속인 것이다. 하지만 ‘쇠락’이나 ‘침체’같은 단어를 쓰지 않고는 설명되지 않는 요즘 홍콩영화의 위상 탓인지, 이곳의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 또한 세피아 톤 필터가 끼어 있는 듯 갑갑하다.
12월6일 홍콩에서 프리미어 행사를 가진 진가신 감독의 신작 <퍼햅스 러브>는 이처럼 기억의 동굴 안에서 점점 희미해져가는 홍콩영화의 옛 영화(榮華)를 되살리기 위한 시도인지도 모른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퍼햅스 러브> 홍콩 프리미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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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상명대, 아주대 등에 출강하고 있는 황보성진씨는 그동안 틈틈이 남양주종합촬영소의 영상캠프 강사로 일하다 올해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다.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지난해에 인천에 있는 한 청소년수련관에서 영상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독거노인들이 많은 동네였는데 아이들과 무엇을 찍을까 고민하다가,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대신해 고향의 풍경을 찍어다 드리면 어떨까 싶었다. 제대로 진행하진 못했지만, 지난해 말에 영진위의 나하나씨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라면서 영상편지 같은 것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해서 참여하게 됐다.
-영상편지 쓰기는 반응이 어땠나.
=별로. 생각했던 것보다 가족들에게 전화를 자주하더라. 빈의자기법 같은 심리치료를 가미한 건 그런 이유도 있다.
-결혼식 때도 보니까 언어 소통이 쉽지 않던데.
=시작 전에 가장 두려웠던
이주노동자의 영화만들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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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무비 - 카메라는 어린 영혼을 달래준다
11월24일, 마석 가구공단 한가운데 위치한 녹촌분교. 전교생을 다 합해봤자 20명이 채 되지 않는 자그마한 학교다. 비밀기지처럼 가파른 골목길 아래 숨겨진 이곳을 찾느라 가구공단 주변을 몇번이고 헤맬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 들어서자 외곽에선 보이지 않는 가구공장들이 층층이 모여서 연기를 뿜고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 녹촌분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부모들은 대개 가구공단에서 밤 늦게까지 일하는 이들이다. 그러다 보니 1학년이라고 해도 오전 수업만 하고 하교하지 않는다. 오후 느지막한 시간까지 학교에서 공부하고, 먹고, 놀고, 심지어 자기까지 한다. 이명원 분교장을 비롯해서 3명의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겐 부모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정문 바로 앞에 있는 놀이방에 들어섰더니 귀부터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편의 애니메이션을 본 아이들이 제각각 의견을 내놓느라 목청을 돋우기 시작해서다. 그중 한편이 나비효과에 관한 애니메이션이
이주노동자의 영화만들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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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혼례 촬영 실습 - 오늘만은 전문 결혼식 촬영기사처럼
다들 삼삼오오 모여서 술렁이지만, 로렌스만큼은 예외다. 카메라를 든 그는 좀처럼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필리핀 출신으로 한국에서 돌침대를 만드는 일을 한다는 그에게 “한국 오기 전엔 무슨 일을 했느냐”는 등 몇 가지 잡다한 질문을 늘어놓자 더이상 입을 열지 않는다. 나 홀로 카메라를 든 첫 촬영이기 때문에 신중한 것일까. 아니면 너무 무례한 접근이라고 생각해서일까. 어쨌든 첫 대면에도 서툰 한국말로 이런저런 사연을 털어놓는 다른 친구들과는 좀 딴판이다. 뻘쭘해져 있는데, 전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황보성진씨가 다가와 로렌스에게 “너무 자기 친구들 위주로만 찍는 거 아냐?”라고 핀잔을 날린다.
대답 대신 신랑, 신부의 운당 앞 행진을 놓칠세라 부리나케 뛰어가는 로렌스. 둘러보니, 로렌스만 카메라를 든 게 아니다. “2명은 강의를 들은 친구들이고, 저기 1명은 그들의 친구인데 집에서 8mm 개인 카메라를 들고
이주노동자의 영화만들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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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에 관한 취재 기획은 올해 여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8월 말이었을 텐데, 영화진흥위원회 홈페이지에 생전 처음 보는 게시물이 하나 떴다. 남양주종합촬영소에서 ‘외국인 근로자 자녀들을 위한 연극놀이 캠프’를 개최한다는 소식이었다. 알고 보니, 남양주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 수만 5천여명. 그러나 이들을 배려한 복지 환경은 전무했고, 이를 감안한 영진위와 문화관광부가 지역사회단체들과 함께 사회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저 며칠 동안의 연극캠프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7월부터 이미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영상물 제작 강의를 시작했고, 가을에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영상을 통한 기본적인 심리치료 시간도 계획되어 있었다. 미리 김칫국부터 마신 것일까. 기대와 달리 프로그램 담당자는 취재가 곤란하다고 했다. 정식 허가를 받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정부가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는 중이라 이주노동자들이 노출되는 걸 꺼리는데다
이주노동자의 영화만들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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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조명부가 중심에 선 이유
김수경/ 이번 노조 결성에 이르기까지의 실제 과정과 개인적 소감이 궁금하다.
윤성원/ 2001년 비둘기둥지가 컸다. 이후에 임원진에 대한 논의를 해보자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촬영부가 정책연구부를 만들었다. 섣불리 노조를 만들면 찍히니까.
고병철/ 미리 찍히면 노조도 못 만드니까. (웃음)
윤성원/ 그 이후에 최 국장이 참여했다. 촬영부는 본격적으로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최 국장의 실무능력과 노동교육원이나 신문고 사업을 통해 공간을 마련한 부분이 기반이 되었다. 촬영부 노조로 먼저 출발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한편에서는 조명과는 최소한 같이 하자는 신중론이 펼쳐졌다. 그러다가 노조 시기를 못박자는 의견이 도출됐다. 논의 끝에 올해는 넘기지 말자고 추진위원들이 동의했다. 촬영과 조명이 중심이 된 상황에서 조감독 지부가 동참했다. 제작부는 신문고 사업 이후에 약간 저어하다가 얼마 전 화해하고 접점을 찾았다.
김
영화노조 포장마차 방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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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난의 족쇄’를 털어버리자
남대문역에서 3호터널 방향으로 걷다 보면 우리은행 근처에 포장마차 두곳이 보인다. 작은 천막에 몸을 밀어넣으니 다섯명의 남자가 앉아 있다. 어느 현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영화 동료들인 그들은 2005년 12월15일 출범할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하 영화노조)의 숨은 살림꾼들이다. 닭똥집, 홍합탕, 꼬치 국물을 벗삼아 천천히 이야기는 시작됐다. 노변 포장마차인 탓에 툭하면 울려되는 클랙슨 소리와 광포하게 지나가는 화물차 소리가 10분 간격으로 대화를 막아선다. 어느새 닭똥집도 홍합탕도 식어버렸지만 성긴 이야기의 그물은 밤이 깊어가고 소주병이 비워질수록 촘촘해지고 예리해져간다. 찬바람이 파고드는 포장마차에서 잔을 기울이며 그들이 털어놓은 한국 영화노동자의 차가운 현실과 뜨거운 꿈.
김수경/ 영화하는 사람이 노동자로 인정받는 지난한 과정이 작은 결실을 맺는 분위기다. 그간의 과정부터 이야기해보자.
최진욱/ 영화판에서 전개된 기존 운동은 합의
영화노조 포장마차 방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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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파적이고, 단순하고, 표면적이지만 그게 맞다”
지난 6월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았을 때 곽경택 감독은 “이 정도 스탭이면 기술력도 마인드도 최고다”라며 A급 태풍 같은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 <태풍>의 첫 시사가 열린 지 하루가 지난 12월7일, 쏟아져나온 반응을 탐색 중인 곽경택 감독을 진인사필름 사무실에서 만났다. 거대한 영화의 결과를 기다리는 담력을 캐봤더니 “크게 생각하려고 한다. 좋은 연기자, 좋은 투자·배급사를 만났고, 공들일 만큼 들였고, 고민도 할 만큼 했고, 진인사했으니,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한 셈”이라며, 대천명에 대한 믿음을 내비친다.
-<태풍> 역시 감독의 사적인 이야기로부터 시작된 작품이지만, 전작들과는 다른 영화로 느껴진다.
=내 작품들 중에서도 감독의 작가적인 간섭이 가장 덜한 영화다. 감독의 영화가 아니라 스탭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작품들에 비해 감독의 공이 절대적으로 많이 든
<태풍>이 왔다! [5] - 곽경택 감독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