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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루이스는 생전에 아이들과 어울려 있는 것이 항상 불편했다. 마흔 한살즈음, 2차대전의 폭격으로 집을 잃은 런던의 피난 아동들 몇 명을 제 집에 머물게 하면서 비로소 아이들에게 애정을 느끼기 시작한 그는 그 때 처음 <나니아 연대기>에 관한 영감을 떠올렸다. 간단한 노트만을 기록해두고 집필을 계속 미뤄온 루이스는 6년 뒤에야 <나니아…> 시리즈 첫번째권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7권으로 이뤄진 <나니아…>는 지난 50년간 세계적으로 1억부가 팔려나갔다.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가 판타지 프랜차이즈의 최고 쌍봉을 사이좋게 점령하고 난 영화 시장에 뒤늦게 <나니아…>가 나타났다. 원작의 유명세를 감안할 때 영화화 자체는 놀랍지 않다. 원작 7권 중 다섯 권을 영화화할 것이라는 제작사 월든 미디어와 브에나비스타의 원대한 계획도 놀랍지 않다. 다만 영화 <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미리 보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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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파도> <간큰가족>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에서 보여준 노인 코미디
<마파도> <간큰가족>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의 공통점은 뭘까? 첫째, ‘노인’이 주연인 ‘노인-코미디’이고, 둘째, 배우 ‘김수미’가 나왔다는 점이다.
그간의 코미디의 경향을 살펴보자. <넘버.3>(1997)는 풍자가 살아 있는 걸작 코미디이지만, 이후 조악한 조폭 코미디영화의 기원이 된다. 본격적으로 조폭 코미디가 쏟아져나온 것은 <신라의 달밤>(2001) 이후로, 그해 <조폭 마누라>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가 흥행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한다. 조폭 코미디는 2002년 <가문의 영광>이라는 변종상품의 출시로 장르의 서퇴(暑退)를 암시하더니, 2003년 <조폭 마누라2>의 ‘죽쑴’으로 약발이 다했음을 고(告)하였다. 이미 사망선고가 내려진 뒤였는지
2005 한국영화의 네 가지 경향 [5] - 노인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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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주먹이 운다> <달콤한 인생> <친절한 금자씨>에서 드러난 전시성의 위험
<형사 Duelist>를 둘러싼 각종 평문들이 쏟아져나왔다. 그 반응을 종합하면 이렇다. 우선은 관객이 시대를 앞질러온 영화의 신천지를 알아보지 못했거나 영화가 대중의 일반 감성에 너무 앞서 완성됐다고 여기며, 당대의 대중성과 미래에서 온 작품성 사이의 간극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운명론이다. 아니면, 스토리의 강박에서 해방된 한국영화의 어떤 성과가 상업적으로 외면받기는 했어도, 그것이 새로운 개척의 길이었음은 분명 상기할 만하다는 희망론이다. 그도 아니면, 여전히 스토리를 버린 것이 문제라거나, 스타일 추구 과정에서 와해된 무엇이 있다거나 하는 비판론이다. 옹호론은 정확히 같은 논거를 그 반대로 이해한다. 무엇이 됐건 중요한 것은 그 논평들의 전제가 <형사 Duelist>의 비주얼 영역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논평들은 어떤 핵
2005 한국영화의 네 가지 경향 [4] - 전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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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일기> <혈의 누> <그때 그 사람들>에서 보여주는 아버지와 아들
지나치기 쉬운 두 장면에서 시작하자. <혈의 누>의 한 장면, 영화의 도입부에 죽창에 찔려 죽은 시체를 검시하는 장면에서 남성의 페니스를 종이로 가리려 하지만, 그 틈새로 남성의 성기를 뚜렷이 볼 수 있다. <그때 그 사람들>의 한 장면. 박정희의 발가벗은 시신을 앞에 두고 각료들이 모여 묵념을 한다. 그런데 그 나신이 민망했던지 묵념이 끝나자마자 각료 중 하나가 그 시신의 성기를 모자로 덮는다. 그렇다면 한국영화에서 성기의 재현이 자유롭다고 가정했을 때, 이 두 장면의 드러남과 가려짐의 재현의 차이를 역전해서 재현할 수 있을까? 현시점에서 이는 불가능하다.
<그때 그 사람들>의 이 장면은 라캉이 분석한 바 있는 ‘노아의 외투’의 일화와 유사하다. 라캉은 ‘노아의 외투’ 일화와 관련해서 아버지에 대한 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아버지 자체가 아니
2005 한국영화의 네 가지 경향 [3] - 부자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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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아톤> <…아름다운 일주일> <웰컴 투 동막골>에서 보여주는 이야기 구조
올해 마지막 달에 이르러, 결국은 또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순간이다. 과연,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리는가?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기다리는 건 새로운 이야기일까? 화려한 스타일과 현란한 기술력과 거대한 제작비가 익숙하지 않던 시절에는, 그저 이렇게 말하면 될 것이었다. 스타일은 훌륭하군. 기술력은 도약할 만한 발전을 이루었군. 오, 돈 좀 많이 들인 티가 나는걸, 할리우드 부럽지 않아. 그러나 어느 순간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고, 영화를 보면 볼수록 이상하게도 마음에 허무한 바람만 쌩쌩 불기 시작하면, 결론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내려진다. 역시, 이야기가 중요해. 사람들은 결국 그렇게 이야기로 돌아간다.
나는 올해 개봉한 영화들, 그중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을 돌이켜보면서, 문제는 바로 이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관객 동원에
2005 한국영화의 네 가지 경향 [2] - 소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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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 대중영화의 경향은 어떠했을까? 어떤 특징이 출현했을까? 그 많은 영화들을 단숨에 정리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대중이 마시고 내쉬는 공기와도 같은 영화들을 심사숙고해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씨네21>은 기자와 평론가의 글을 모아 2005년 한국 대중영화를 바라보는 네 가지 시선 또는 네 가지 경향으로 비평특집을 마련했다. 올해는 우선 걸출한 대중 영화감독들의 작품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주먹이 운다> <달콤한 인생> <형사 Duelist> <친절한 금자씨>를 중심으로 한국영화의 전시성에 대해서 쓴 정한석은 “작품의 내적 재현 양식으로서의 전시성”이 어떻게 대중영화와 작가영화의 합의 지점에서 소용돌이치는지 주목한다. 장르영화에 대한 새로운 제작 사례들도 빼놓을 수 없다. 안시환은 <혈의 누>와 <남극일기>를 좇는다. 이 영화들에서 재현되는 “하나의 서사로 통합될 수 없는 공백을 노출한
2005 한국영화의 네 가지 경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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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세 컷으로 이뤄진 충격의 영화
처음 본다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충격을 받거나 구토를 하거나 화를 내거나 눈을 감거나. 김경묵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얼굴 없는 것들>이 만들어내는 쇼크효과는 작은 편이 아니다. <얼굴 없는 것들>은 서울독립영화제 2005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을 몰고 올 영화임이 틀림없다.
64분30초짜리 <얼굴 없는 것들>은 단 세컷으로 이뤄져 있다. 40분이 넘는 첫컷은 여관방 안을 무대로 한다. 카메라가 ‘몰카’ 앵글로 한구석에 처박혀 방 내부를 비추는 가운데, 우리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30대 남성을 보게 된다. 이윽고 교복을 입은 남자 고등학생 민수가 들어오고, 두 사람은 애정행위를 벌이기 시작한다. 30대 남자는 민수를 섹스 파트너 정도로 생각하는 듯 보이지만, 민수에게 아저씨는 사랑의 대상인 것 같다. 더 센 자극을 위해 검은 마스크를 쓴 채 민수의 항문을 탐하는 아저씨는 중학생 아들만큼은 “정상적인 남자”라고
서울독립영화제 2005 [4] - 김경묵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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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살갗을 보듬는 내면의 풍경화
시작은 <마리 이야기>가 개봉했던 2002년 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이성강 감독은 그의 첫 장편애니메이션이 대중과의 소통에 실패했다고 생각했고, (훗날 안시영화제 대상 수상으로 재평가되는 반전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몹시 심란하고 암울한 상태에서 ‘뭔가’ 떠오르는 대로 써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당시 그의 복잡한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 존재가 ‘귀신’이었다. “주변에서 멀쩡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걸 봤다. 이명이 있다든지 환상을 본다든지 하는. 그런 초현실적인 일들이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이 세상에서 우린 귀신과 함께 살아가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귀신을 본다는 것은 자기 삶에 결핍이 있고, 그런 마음이 반영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모든 이야기들을 한 남자의 경험으로 수렴하면서, 이성강 감독의 시나리오 <살결>은 틀을 잡아갔다. 옛 애인과 시한부적인 관계를 맺던 남자가 자기 곁을 맴도는 한
서울독립영화제 2005 [3] - 이성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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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연주하는 앙상블 드라마
우연히 흰 상어를 잡은 어부 영철은 친구 준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뜨거운 여름날 대구로 향하지만, 큰 판돈을 걸고 한창 노름을 벌이고 있는 준구는 도통 나타나지 않는다. 도시를 방황하던 영철은 교도소에서 출소했지만 자기 집이 어딘지 몰라 헤매는 유수를 만나게 되고, 영철 가방 속에 든 상어가 자신의 아기라고 착각하는 미친 여자 은숙의 추격을 당한다. 서울독립영화제 2005의 개막작인 디지털 장편영화 <상어>는, 이를테면 앙상블 영화다. 각자의 사연을 가진 채 영화 안에서 뒤얽히는 존재는 이들 네명 외에도 수상한 다방 여종업원 홍양과 노름판의 아저씨 등이 있다. 세상의 주변부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상어>는 영철의 가방 안에서 썩어가는 상어의 악취와 함께 이들의 내밀한 욕망과 갑갑한 소통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상어>가 비루한 삶의 풍경을 잔인하게 드러내기만 하는 건 아니다. 서로에게 낯선 존재인
서울독립영화제 2005 [2] - 김동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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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가장 마지막에 열리는 독립영화 축제인 서울독립영화제(SIFF) 2005가 12월9∼16일 서울 CGV 상암에서 열린다. 한해의 독립영화를 정리, 평가하는 역할을 해온 그동안의 행사와 달리, 서울독립영화제 2005는 54편의 본선 경쟁작 중 17편이 첫선을 보이는 데서 알 수 있듯, 새로운 독립영화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성격이 강해졌다.
총 515편의 응모작 중에서 선정된 본선 경쟁작은 단편 31편을 비롯해 중편과 장편이 각각 15편과 8편을 차지하고 있다. 중·단편의 비중이 높아지는 최근의 추세를 반영한 결과.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영화제 쪽은 머지않아 중·단편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본선 경쟁작 중 우선 눈에 띄는 작품은 독립영화계 스타 감독들의 신작이다. 서울독립영화제를 통해 첫선을 보이는 김종관 감독의 단편 <낙원>, 김곡·김선 감독의 장편 <뇌절개술>, 도내리 감독의 <고백>을 비롯해 이지상 감독의 <십우도2-
서울독립영화제 200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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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못생긴 진짜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얻는다”
-이번 레스페스트의 특별전은 섹스(SEX), 폭력(VIOLENCE), 공포(FEAR), 혼돈(CONFUSION)으로 나뉘어져 있다. 당신들이 직접 카테고리를 나눈 것인가.
=직접 나눈 것이다. 우리는 독창적으로 작업물들을 쪼개어 볼 수 있도록, 그래서 작업물들이 서로서로 숨을 쉴 수 있도록 카테고리를 나누고자 했다. 그냥 논리적인 규칙으로 나누는 것은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트랙터라는 이름 속에 숨어서 공동으로 일하는 가장 큰 장점이 뭔가.
=더 재미있다. (웃음) 또, 서로를 날카롭게 비평할 수 있기 때문에 개개인이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는다. 빠르게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스스로를 비평하지 않기 때문에 내리막길을 걷는 경우가 많다. 단점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사실이다.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하고,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 서로 토론을 시작하고, 싸우고. (웃음) 하지만 그러다보면 또 다른 방향으로
북유럽에서 온 발칙한 영상제조기, 트랙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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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적인 방식의 이야기 구조
하나로 뭉쳐 부를 수 있는 스칸디나비아식 공동체라는 것만이 트랙터의 특징은 아니다. 광고 에이전시 파르티잔 대표인 스티브 딕스테인의 말처럼 “사람들이 그들을 규정하려고 하는 순간, 트랙터는 움직이는 타깃으로 변한다”. 그래서 트랙터의 특징을 하나의 단어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랙터적(的)이라고 부를 만한 두 가지 특징을 굳이 끄집어내자면, 정치적으로 불공정해 보일 만큼 거침없고 날카로운 유머감각과 고전적인 이야기(Storytelling)에 대한 집착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트랙터는 북미와 유럽시장에서 ‘코미디 광고의 천재’로 통한다. 나이 많은 교관과의 키스를 경험한 뒤 성정체성을 찾는 보이스카우트 남자가 등장하는 디젤 청바지 광고(<Mono Village>)로부터, CG로 만들어진 거대한 뱃살을 피해 도망치는 남자가 등장하는 리복 운동화 광고(<Belly>)에 이르기까지, 트랙터는 끊임없이 시청자들의 정신을
북유럽에서 온 발칙한 영상제조기, 트랙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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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영상제조기 트랙터가 한국에 왔다. 마치 견인자동차(Tractor)처럼 들리는 트랙터(Traktor)는 여러 명의 멤버로 구성된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영상집단이다. 한국에서는 낯선 이름이지만, 1990년에 결성되어 지금껏 400여편의 광고와 5편의 뮤직비디오, 1편의 극장용 장편을 만든 이 공동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광고상을 수상했고, 뮤직비디오계와 영화계가 주목하는 새로운 재능이기도 하다. 만약 트랙터가 한국을 방문하지 않았다면, 건전한 정치적 불공정성과 관객의 신경을 벅벅 긁어대는 유머감각으로 넘치는 그들의 작품 세계를 볼 수 있는 가능성도 없었을 것이다. 레스페스트 2005의 ‘트랙터 특별전’이 반가운 이유도 그 때문이다. 지난 15년간 트랙터적(的)이라고 할 만한 고유의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영상천재들의 작품들이 이미 레스페스트의 관객과 만났고, 새로운 미디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젊은이들을 매료시켰다.
이제 레스페스트는 폐막했지만 트랙터의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북유럽에서 온 발칙한 영상제조기, 트랙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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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문제에서 도망칠 수 없다면 정면으로 다룬다”
지난 11월18일 점심시간이 막 지났을 무렵, 영화평론가 김봉석과 <도쿄 데카당스>의 원작 소설가이자 영화를 연출한 무라카미 류 감독이 무라카미의 숙소에서 만났다. 어휘 선택이나 언어 구사에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하는 무라카미 류가 말하는 무라카미 류.
-드디어 한국에서 <도쿄 데카당스>가 상영된다. 개인적으로도 몇년 만에 다시 봤는데, 여전히 재밌었다. 과거 작품들에서 흔히 다뤘던 사도마조히즘(SM)이나 폭력, 마약에 관한 것들이 “과거 일본사회에서는 은폐된 것이었으나 지금은 일상이 됐기 때문에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다”라고 표현한 인터뷰 내용을 봤다. 어떤 관점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듣고 싶다.
=그것은 시대적인 요인과 관련이 있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은 1988년에 나왔다. 그 당시에는 은폐되어 있던 요소들이 최근에는 일반화됐기 때문에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식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설
무라카미 류의 작품세계 [2] -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