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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을 보는 시청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의문을 가질 것이다. ‘어디서 매주 저런 사람들을 찾아낼까?’ 국정원과 FBI의 도움이라도 받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아니면 자료조사원이 1천명쯤 되는 것인가 하는 망상을 휴먼다큐 <인간극장>은 품도록 만든다. <인간극장>의 외주제작사 리스프로와 제3비전의 기획과정을 듣노라면 이 사람들에게 이산가족 찾기를 시키면 절묘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의문은 ‘어떻게 매번 격렬한 감정의 순간을 포착할까’ 하는 것이다. 그 비밀은 오로지 “인간적인 밀착마크”다. <인간극장>을 세상에 낳은 사람들과 5년 반 동안 매주 그들이 우리와 숨쉬도록 만든 장본인들에게 듣는 <인간극장>의 리얼 제작스토리.
<인간극장>의 탄생
<인간극장>이 움트기 시작한 것은 1999년 겨울이었다. 찬바람이 쌩쌩 불던 어느 날, 경기도 안성에 소재한 동아방송대학 기숙사에 세 사람이 모였다.
충무로 소재 공장 <인간극장> [2] - 인간극장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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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결혼원정기> <꽃피는 봄이 오면> <엄마> <말아톤> <거칠마루>, 이들의 공통점은 KBS2에서 방송되고 있는 <인간극장>을 원작으로 삼거나 영향을 받은 영화라는 점이다. 또 <맨발의 기봉씨> <친구와 하모니카> <충칭의 별 이장수> 등이 <인간극장>을 바탕 삼아 촬영 중이거나 기획되고 있다. 게다가 이들 영화는 지난해 후반부터 올해 사이에 개봉됐거나 내년 중 개봉을 목표로 한다. <인간극장>은 최근 들어 가장 각광받는 충무로의 ‘소재 공급원’인 것이다. 한국 영화계는 왜, 그리고 어떻게, <인간극장>에 매료됐는가.
<인간극장>을 소재로 만들어진 첫 영화는 지난해 추석에 개봉한 <꽃피는 봄이 오면>이다. 2001년 5월과 2002년 3월 방송된 <건빵선생님의 약속>을 원작으로 삼은 이 영화는 강원도 삼척시 도계중
충무로 소재 공장 <인간극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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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작 <이클립스>의 실패, 자존심은 구겨지고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라이트 하우스라는 영화사를 차렸고, <이클립스>라는 제목의 카지노 딜러와 마약 수사관의 사랑 이야기를 창립작으로 택했다.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제작지원을 받기도 했고, 당시 명필름에서 프리 프로덕션 비용을 감당해줬다. 그러기를 2년. “욕심이 생기더라. 영화의 스케일이 애초 계획했던 것보다 점점 커졌다.” 프로듀서를 맡기로 했던 친구와 시나리오를 함께 썼지만, 정작 결과물은 자신이 봐도 신통치 않았다. 투자를 하기로 했던 곳에서도 시나리오를 보고서 곤란하다며 모두들 고개를 저었다. “동료들과의 반목도 생겼고, 더이상 민폐 끼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회사를 접었고, 동료들은 떠났고, 빚만 남았다. 은행과 카드회사에서는 빚 독촉 전화가 하루에도 몇 십번씩 쏟아졌다. “자존심이라는 게 아주 못된 놈이다. 나를 새카맣게 태우더라고.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건데, 꿀리지 않겠다는
<연애>의 오석근 감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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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근 감독은 세 번째 영화 <연애>를 만들기까지, 지난 몇년을 털어놓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두달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상영되는 한국영화 7편을 소개하는 특집 기사 때도 그는 “그냥 세상 공부했다”는 모호한 답변만 흘렸을 뿐이다. 12월9일, <연애> 개봉을 앞두고 오석근 감독의 터전인 부산을 찾았다. <연애>는 생계를 위해 몸을 팔아야 하는 30대 주부 어진이 주인공이지만, 영화 속 그녀를 둘러싼 지옥 같은 세상이 허구의 고통 같진 않아서다. 자갈치시장 꼼장어집에 앉아 쓴 소주 없이는 듣기 어려운 과거사를 묻고 또 캐물었다. 혼자서 목구멍으로 넘긴 시원소주는 2차로 택한 선술집까지 합해 족히 5병은 돼 보였지만, 불편한 과거의 시간들은 자신의 취중언이 누군가에게 비수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그의 신중함 때문에 느리게 토해져 나왔다.
“누구라꼬?” 영화감독이라고 일러줘도, 좀처럼 믿지 않는 눈치다. 어디 부산 자갈치 아지매들뿐일까. 오석
<연애>의 오석근 감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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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라고 소크라테스 선생님이 아테네 청년들에게 가르쳤지만, 실은 가까운 이의 죽음은 가장 강렬한 철학의 연습장이다. 시월의 마지막 전날 오병철 감독은 우리에게 그런 선물을 주고 갔다. 그의 급작스런 죽음은 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공부를 한 인연으로 간간이 만나 영화와 세상살이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1기 동기들)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친지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외로이 투병하다 간 것도 매우 그다운 선택이다. 그래서 더욱 서운하고 슬퍼진 우리는 시월의 마지막 날 그의 빈소와 화장장을 지켰으리라. 인간은 고결하게 살 권리만 있는 게 아니라 고결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는 타르코프스키의 말이 오 감독 특유의 진지한 영정사진을 보며 불현듯 헤아려진다.
올해 봄 영화아카데미 동기 감독들과 만난 자리에서 여성국극 영화작업을 진솔하게 말하던 그의 모습, 봄날 꽃잔치가 벌어지던 동국대 극장에서 ‘에코가무’ 생태환경주의 콘서트에 참석하고, 그 감회와 여성국극 영화건을 담은 그의 이메일이
[추모기획] 고 오병철 감독을 향한 유지나의 추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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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석/ 이 영화를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보면서 나라면 저 부분에서 많은 것을 소진했을 텐데 훌쩍 생략한 부분도 눈에 띄고, 또 슬쩍 건너갈 수 있는 부분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궁금한 점이 몇 가지 있다. 첫 장면을 동규의 꿈, 그러니까 판타지로 시작한 이유가 뭔가.
안슬기/ 시작 부분에서 동규가 왜 집을 나왔는지를 설명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동규의 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면서 설명하는 게 싫었다. 한번에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거다. 그리고 그 첫 장면과 영화 중간 두번에 걸쳐 반복되는 복수장면은 영화 전체의 흐름에서 벗어나더라도 다른 장르로 느껴졌으면 했다.
노동석/ 동규가 영화 속에서 고2라는 설정인데, 그 나이는 원래 성에 대해서도 민감한 나이 아닌가. 하지만 시내와 동거를 시작하는 부분에선 그런 묘사가 전혀 없더라.
안슬기/ 고2 남자애들은 자기들끼리 있으면 그런 얘기뿐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가만히 보면 초등학생처럼
안슬기 감독 vs 노동석 감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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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월25일. 현재 고등학교 수학 교사로 근무 중인 안슬기 감독은 자신의 첫 번째 장편영화 <다섯은 너무 많아>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로부터 1년 전. 그가 출연한 첫 장편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했다. 지난해 12월3일 개봉한 노동석 감독의 <마이 제너레이션>이 바로 그 작품. 노동석 감독과 안슬기 감독은 사실 6년 동안 관계를 지속해온 사이로, 안슬기 감독은 그 영화에서 사채업자로 출연하여 능청스런 연기를 선보였다. 처음엔 조교와 학생이었고, 그뒤로 오랫동안 언제나 믿을 만한 선배요 후배였으며, 지금은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료가 된 이들을 한자리에 불렀다.
둘은 같은 한겨레 문화센터 영화제작학교 수강생 출신에, 수료 이후에도 끝없이 단편 작업을 이어나갔으며, 결국은 각종 사전제작지원금에 사비를 보태 디지털 장편을 완성하고 끝내 개봉까지 성사시켰다. 주류영화와 구별되는 감식안으로 쉽게 영화화되지 않았던 인물과 상황을 자신의 영화 속에 담아냈다는 것 역시
안슬기 감독 vs 노동석 감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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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순이, 맹순이, 금순이… 바야흐로 여배우들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지금 충무로는 연기력 탄탄한 30대 여배우를 기준으로 재편되는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얼굴 마담’이 아니라, 연기에 올인하는 여배우들이 손가락에 꼽기 모자랄 정도가 되었다. 이제 할리우드의 내로라 하는 여배우들도 부럽지 않을 정도로 충무로 여배우들의 힘은 강력하다. 그래서 준비했다. 충무로 대 할리우드, 여배우 대격돌! 그녀들의 성향과 연기 스타일, 과연 얼마나 비슷할까?
1. 친근한 삼순이 <르네 젤위거 - 김선아>
뚱뚱하고 엉뚱하며 때론 바니걸 복장을 하고 나타나는 과감한 패션 센스까지 자랑했던 브리짓 존스. 르네 젤위거는 브리짓이 되기 위해 몸무게를 48kg에서 63kg까지 늘리는 저력을 발휘했더랬다. 통통한 볼살과 살짝 오므린 듯 튀어나온 입술은 그녀의 강력한 트레이드마크였다. 하지만 그녀는 노련한 배우답게 우리의 기대를 기분좋게 배반<?>했다. 못 말리는
닮은 꼴 여배우 대전! 충무로 VS 할리우드 여배우 비교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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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영화로 만들자고 결심했던 프로듀서 데이비드 헤이맨은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도니 브래스코>의 마이크 뉴웰이 이상적인 감독이 돼줄 거라고 믿었다. “뉴웰은 영국인이고 여러 가지 장르에 능숙하며 예술적인 감독이었다.” 그러나 소설을 읽었던 뉴웰은 판타지의 세계와 그것을 구축하기 위한 특수효과에 겁을 먹었고, 최고의 시리즈가 될 가능성이 짙었던 프로젝트를 거절했다. 5년이 지났다. 거대한 세트와 특수효과팀이 자리를 잡고 있는 호그와트 터에 몸만 들어온 뉴웰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드라마와 감정과 연기를 매만지는 감각으로 살아남았다.
그가 고치고 싶었던 건 영국 기숙학교의 풍경이었다. “나는 영국에 있는 기숙학교에 다녔다. 크리스 콜럼버스는 어린 시절을 이상적으로 그렸고 적절한 처신이기도 했지만, 해리와 아이들은 이제 나이를 먹었다. 그 무렵 아이들은 몸싸움도 하고 비열하기도 하
<해리 포터와 불의 잔> 미리보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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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영화 프로듀서 데이비드 헤이맨은 진짜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는 비서에게 뭐 그런 이상한 제목이 있느냐며 핀잔을 주었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라니! 그는 유치한 제목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아동용일 듯한 그 소설을 무심하게 읽었고, 놀랍게도 21세기의 <스타워즈>가 될 만한 시리즈를 시작하게 되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곱편의 소설, 따라서 일곱편의 영화. 그러나 지난해 여름의 고전을 딛고 다시 겨울방학의 벗이 된 네 번째 영화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은, 조금은 위안이 되는, 조그마한 마침표이자 시작점이 될 듯하다. <해리 포터> 시리즈 전부를 각색한 작가 스티브 클로브는 “이 영화는 이전까지 만들어졌던 모든 것을 마무리했고 새로운 <해리 포터>를 경험하기 위한 무대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믿어도 좋을까. 영국과 미국의 언론은 <해리 포터와 불의 잔> 기사에 ‘change’라는 단어를 숱하게 박아넣었으
<해리 포터와 불의 잔> 미리보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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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사운드를 만드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대부분 슈퍼바이저급에 해당하는 사운드 디자이너들이자 사운드 믹서들이다. 이들만이 한국영화의 사운드를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리스트는 불완전하다. 그럼에도 이 아홉명의 이름이, 그리고 이들 아홉명이 밖으로 꺼내놓는 생각들이, 한국영화 사운드 후반작업 현장의 밑그림을 보여주는 작은 지도가 되기를 바란다(가나다순).
“소리도 연기다”
김석원/ 블루캡 대표
토목공학과 출신. 노래모임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으며 음악에 빠져지냈다. 서울오디오를 거쳐 1991년 독립해 차린 녹음실 리드사운드 시절까지 광고음악을 10여년간 작업하다 1995년 블루캡을 차리면서 영화 사운드를 시작했다. 명필름과 강제규필름의 주요 작들을 작업했고 박찬욱과의 작업을 통해 독창적인 사운드 연출력을, 강제규와의 작업을 통해 영화의 규모를 컨트롤하는 사운드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초기에는 사운드 전 파트에 관여하다 현재는 폴리 파트와 전체 믹싱을 주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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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디자인의 비밀 [5] - 사운드 디자이너 9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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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들을 수 없는 소리, <내츄럴시티>
감독 민병천 사운드 슈퍼바이저 김용훈 믹싱 서영준 사운드 이펙트 슈퍼바이저 황진수 제작연도 2003년
SF영화는 지금 이 순간 들을 수 없는 미래의 소리들을 요구한다. <내츄럴시티>의 이펙트 슈퍼바이저 황진수는 영진위 녹음실 후배들에게 “지금 우리가 보는 저 그림과 일치하는 소리는 세상에 없다”고 수십번을 강조했다. 컴퓨터에서 나는 빕사운드 하나조차도 관객이 들어본 적 없는 소리로 만들어내고자 했다. R(유지태)이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의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BMW 오토바이 엔진 소리 녹음 소스와 전기드릴 사운드 녹음 소스와 라이브러리에서 찾은 우주선 소리 등을 개별 디자인해 섞는 것은 ‘트릭’ 정도에 불과한 작업. R이 자주 찾는 오뎅집의 앰비언스 작업 과정에서는 사운드 소스 하나하나를 폴리로 녹음한 다음 일일이 개별 디자인해서 앰비언스 에디터에게 넘겼다. “미래라면 시장에서 들리는 말소리 하나, 도심에서
사운드 디자인의 비밀 [4] - 베스트 사운드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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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사운드’라는 이름으로 10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이 리스트는 한국 영화사에서 미학적 또는 기술적으로 최상이자 최고에 도달한 사운드 모듬이 결코 아니다(그렇게 완벽한 평가를 받는 사운드는 세계 영화사에도 몇편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이 리스트는 현재 충무로의 사운드 슈퍼바이저들이 자부하고 아끼는 사적인 베스트 목록에 가깝다. 그러므로 화려한 비주얼과 영화 규모만으로 덩달아 사운드 퀄리티까지 평가하게 되는 우리의 습관을 무색게 할지도 모르겠다(개봉일순).
월향검에서 사람 소리가? <퇴마록>
감독 박광춘 사운드 슈퍼바이저 이규석 제작연도 1998년
PC통신 판타지 소설을 영화화한 퇴마사들의 이야기인 <퇴마록>의 사운드는 과거 한국영화들에서 레퍼런스를 찾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완전히 새로 창조해야 하는 몇몇 사운드 가운데 가장 공들여 디자인된 것은 월향검의 소리. 이규석은 <퇴마록>의 월향검을 <스타워즈>의 광선
사운드 디자인의 비밀 [3] - 베스트 사운드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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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대사를 다시 녹음 한다고?
문이 빼곰히 열린 양수리 스튜디오 B 믹싱룸 안에서부터 와아∼ 하는 함성이 새나온다. 김기탁 ADR(후시) 레코딩 엔지니어가 왼손에 빨간 물병, 오른손에 파란 물병을 들고 40여명의 사람들에게 함성 연기를 지시한다. “지금 박경원이의 비행기가 하늘로 치솟았습니다. 그러다 보이질 않습니다. 어, 무슨 일이지? 궁금해하셔야 돼요. 이쪽 손을 보시면서 함성을 질러주시고요, 제가 손을 이렇게 하면 웅성웅성 해주세요.” 왈라 ADR 녹음 중이다. 웅성웅성, 왈라왈라 떠드는 군중의 목소리라고 해서 ‘왈라’라는 이름이 붙었다. <청연>에 필요한 군중은 500명. 이날 녹음되는 왈라를 비롯해 저음의 왈라, 일본어 대사가 구체적으로 들리는 왈라까지 세 종류의 왈라가 녹음, 복사되면 500여명은 금세 만들 수 있다.
극에 관여하지 않는 왈라 소리도 디테일하게 연출하자면 끝이 없다. 일본어 대사가 구체적으로 들리는 왈라 부분은 마침 한국을 공연차 찾은
사운드 디자인의 비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