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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편의 007 시리즈를 낳은 것은 제임스 본드라는 저력의 캐릭터였다. 4편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유쾌한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스에서 비롯됐고, 테러 막느라 늘 바쁜 형사 존 맥클레인은 <다이하드> 시리즈를 4편까지 끌고 왔다. 그리고 올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두 핵이 될 <스파이더맨 3>와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 뒤에는 스파이더 맨과 잭 스패로우라는 별난 남자들이 버티고 있다. 시리즈가 거듭돼도 여전히 철모르고 불완전한 이들은 어떻게 흥행의 열쇠가 됐을까?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그 불완전함의 매력을 따라가본다.
토비 맥과이어 Tobey Maguire
거부할 수 없는 아웃사이더
피터 파커가 슈퍼히어로의 능력을 처음으로 감지한 날, 카메라는 피터의 단단해진 근육을 비춘다. 소년의 얼굴과 남자의 근육. 이 묘한 대비는 토비 맥과이어 고유의 소년 이미지에서 비롯된다. 그는 마크 월버그, 맷 데이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스파이더 맨 vs 잭 스패로우] 당신의 불완전함을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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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공포가 있다. 1940년대 경성을 무대로 사랑과 죽음의 공포를 그린 영화 <기담>은 영화의 많은 부분을 시대의 구현에 기댄다. 영화의 우선순위 중 “첫째가 고증”이었다고 밝히는 정가 형제 감독의 말처럼 <기담>은 그만큼 시대를 주요한 무대로 설정한다. 특히 극중에 등장하는 안생병원은 영화의 공포를 위해 필히 재현되어야 할 공간. <범죄의 재구성> <그때 그 사람들>에서 미술을 담당했던 이민복 미술감독은 <기담>에서 프로덕션디자이너로 분해 총 7개의 세트를 디자인했다. 양수리 1세트장에 마련된 안생병원 세트와 2세트장의 인영과 동원의 집, 일본 병원의 수술실과 박 교수의 집이 구현된 덕소 세트, 청태산의 피막 오픈세트와 부천의 드라마 촬영세트를 개조한 화신백화점 세트 등. 특히 한달여의 제작기간을 거쳐 2억5천만원의 비용을 들여 제작한 안생병원 세트는 영화의 핵심공간이다.
세트_Y로 모이는 병원 구조
<기담>
[미술로 보는 공포영화] <기담>의 프로덕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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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1942년 경성에 위치한 안생병원. 당시 최고의 서양식 병원인 이곳에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과 사건이 포개진다. 정남(진구)은 원장 병원 딸과 정략결혼을 하기로 되어 있는 의대 실습생. 그가 따르는 의사 수인(이동규)은 어린 시절 사고로 다리를 절지만 실력은 최고다. 도쿄에서 유학 중이던 엘리트 의사 부부 인영(김보경)과 동원(김태규)은 귀국해 이 병원에 자리를 잡는다. 그러던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한 9살 소녀가 병원으로 실려오고, 시대와 단절돼 있는 듯했던 병원에는 심상찮은 기운이 느껴진다.
응급실
1.9.4.2. 갑자기 거꾸로 움직이기 시작한 시곗바늘이 수만 바퀴를 돌아 자정을 가리켰다. 조금씩 짙은 갈색으로 변해가던 벽지 빛깔은 어느새 오래된 나무의 결로 바뀌었고, 흔들거리며 소란을 피우던 하얀 매트리스는 둔탁한 목재 침대가 되어 있다. 공포소설 <기담>을 읽다 잠든 어제. 사라진 기억 너머 내가 도착한 곳은 1942년 경성에 위치한 안생병원. 안(
[미술로 보는 공포영화] <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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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아는 동화에서 제목을 땄지만 영화 <헨젤과 그레텔>은 내용상 동화와 그리 연관이 깊지는 않다. 가난으로 인해 새엄마에게 버림받는 두 남매의 슬픈 동화에서 영화가 차용한 것이 있다면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이라는 결핍의 정서다. 동화 속에는 마녀의 과자집이 배고픈 남매를 유혹하고 영화에서는 아이들의 예쁜 집이 어른들을 유혹한다. 이제 한국영화의 미술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된 류성희 미술감독(<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달콤한 인생> <괴물>)은 “외로움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되 그림에서나 볼 법한, 완벽한 행복을 담고 있는 집”으로부터 구상을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의 집은 내부 세트와 외부 세트가 각각 다른 곳에 지어졌는데, 밝음과 어둠의 대비를 보이는 1, 2층 내부 세트는 부산에, 말끔한 외부 세트는 초국적적인 느낌의 원시림이 존재하는 제주도에 지어졌다. 류성희 감독은 제주도에서 발견한 숲이
[미술로 보는 공포영화] <헨젤과 그레텔>의 프로덕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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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20대 중반인 은수(천정명)는 어머니의 병환 소식을 듣고 급히 고향으로 향한다. 혼전 임신을 한 여자친구 때문에 한편으로 마음이 불편한 채였던 은수는 한적한 고속도로 위에서 교통사고를 당한다. 어딘지 알 수 없는 깊은 숲에 처박히게 된 은수는 한 소녀의 도움으로 예쁜 집에 머물게 된다. ‘즐거운 아이들의 집’이라는 간판이 붙은 그 집에는 친절해 뵈는 부모와 세 남매가 살고 있다. 그들의 도움으로 안정을 찾은 은수는 속히 다시 길을 떠나려고 하나 미심쩍인 분위기로 가득한 이들 가족이 은수를 놓아주지 않는다.
숲
여보세요? 네? 어디쯤이시라고요? 아, 지금 숲에 계신다고요. 그럼 거의 다 오신 건데…. 맞아요, 그 숲에서 길을 찾기가 쉽진 않으실 거예요. 나무들이 어수선하게 많이 뒤엉켜 있죠. 사람 손을 거의 탄 적이 없는 야생 숲이랍니다. 토끼 잡는 사냥꾼도 오간 적이 없어요. 인적은커녕 새 한 마리 울지 않죠. 걸을수록 길이 아닌 어딘가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시라면 그
[미술로 보는 공포영화] <헨젤과 그레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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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개봉예정인 <기담>과 겨울 개봉예정인 <헨젤과 그레텔>은 독특한 공간을 무대로 삼은 호러물들이다. 세 인물군의 이야기를 묶은 <기담>은 1940년대 일제 치하를 갓 벗어난 병원에서 메스의 날처럼 살벌한 이야기를 펼치고, 동명 동화책에서 모티브를 삼은 <헨젤과 그레텔>은 아이를 유혹하는 마녀 대신 어른을 유혹하는 아이들을 등장시켜 구슬픈 동화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기담>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건물을 지었고 <헨젤과 그레텔>은 상상력으로 충만한 판타지의 공간을 세웠다. 사뭇 여러 면에서 대조점을 가진 동일 장르의 두 영화 미술을 개봉에 앞서 살펴본다.
[미술로 보는 공포영화] 공포의 집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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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십종의 케이크와 과자들은 파리의 유서 깊은 제과점 ‘라뒤레’에서 특별 제작된 것이다. 라뒤레는 샹젤리제 근처에 위치한 럭셔리한 케이크 가게로 1862년에 루이-에르네 라뒤레에 의해 창시됐다. 라뒤레는 ‘더블데커 마카롱’을 처음으로 창조한 가게로도 유명하다. 현재 런던과 제네바, 모나코에 지점이 있으며, 미국과 일본, 아랍에미리트에도 지점을 낼 예정이다. 청담동에서 문을 열 계획은 아직 없는 듯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구두들은 <섹스 & 시티>로 유명해진 구두 디자이너 마놀로 블라닉이 특별히 디자인한 것들이다.
구두뿐만이겠는가. 평소 마크 제이콥스 같은 일급 디자이너들과 친분이 두둑한 코폴라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의상을 위해서도 일급 디자이너들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주요한 ‘일’ 중 하나는 잘 차려입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챈 순간 존 갈리아노와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곧바로 떠올랐다. 그들이 런웨이
<마리 앙투아네트> 세계로 들어가는 26가지 열쇠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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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는 찬반이 격렬한 영화다. 로튼토마토닷컴의 평은 신선도 53%와 썩은내 47%로 정확하게 양분된 상태. “이 영화는 역사 수업이 아니라 통역된 역사”라는 소피아 코폴라의 대담함과 “아름답도다! 아름답도다!”라고 탄식한 전기작가 안토니아 프레이저의 흥분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절반의 관객은 “소피아 코폴라의 성인버전 바비인형 놀이에 불과하다”는 비평가들의 몸서리에 동참할지도 모르겠다. 야채와 메인디시 없이 달달한 디저트만으로 만찬을 차릴 수 있다고 믿는 코플라의 세 번째 영화에 동의하거나 말거나. 이 기절하게 화려한 ‘로스트 인 베르사유’는 잡학사전을 통해 ‘통역’을 좀 할 필요가 좀 있는 세계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사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은 형형색색의 구두 사이로 비치는 연보라색 컨버스 운동화였다. 정확한 모델명이 ‘컨버스 올스타 1923 척 테일러 농구화’인 이 운동화는 “앙투아네트가 그저 평범한 십대 소녀였다는 사실을 보여주
<마리 앙투아네트> 세계로 들어가는 26가지 열쇠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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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단할 것은 없었다. ‘캐리비안의 해적’ 라이드는 거창한 모험의 세계라기보다는 제멋대로 나대는 무뢰한들의 잔치에 가까웠다. 럼주병을 양손에 쥔 채 돼지우리에 자빠져 자거나, 술에 취해 난장판으로 싸움을 벌이고, 여자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해적들의 전시장. 하지만 어쩌면 핵심은 그것이었다. 해적이라는 단어 자체가 발산하는 무정부주의적인 일탈성을 마음껏 유희하고 소비하는 것. <캐리비안의 해적>은 그러한 라이드의 본바탕 위에 캐릭터와 이야기를 설계했다. 지극히 단순한 듯 보이지만, 사실상 고전적인 해적영화의 항로를 크게 이탈하는 선택이었다. 과거 해적영화 속, 주인공의 자리에 오른 해적들은 사실상 해적의 옷을 걸친 고결한 영웅들이었다. 그들의 해적질 뒤에는 언제나 든든한 대의가 버티고 있었다. 불의에 맞서기 위해 불가피한 수단으로 해적의 삶을 선택하거나, 혹은 나라를 위해 적국의 상선을 공격하는 역할을 자임하거나. 그들은 근본적으로 선량한 사람들이었고, 무엇보다 자신의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성공비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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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어린 시절 읽었던 소설의 희미한 기억으로, 혹은 한물간 옛날영화에 대한 추억 정도로 존재하던 해적이 다시금 스크린을 장악하게 될 줄이야. 디즈니랜드의 라이드를 모태로 탄생한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는 십중팔구 실패할 것이라는 항간의 예측을 뒤엎으며 6억5천만달러의 수입을 올렸고, 전편의 성공에 힙입어 제작된 속편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은 10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수입을 기록하며 흥행 성적을 경신했다. 10여년 전 <컷스로트 아일랜드>의 재앙에 가까운 흥행 참패 이후 사실상 고사 상태에 이르렀던 해적영화가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시점에, 놀랄 정도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대체 왜, 어떤 점이 그토록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일까. 5월24일 3부작의 마지막 편인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가 개봉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과연 무엇이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를 성공으로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성공비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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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영: 3월 초에 김혜리씨와 인터뷰를 하면서 이 영화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생각은 털어놓으셨다. 하지만 개봉 전이어서 영화 안으로 깊이 들어간 질문은 아직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이르지만 이 질문을 먼저 꺼내야겠다. 이 영화의 소재 중 하나는 유괴다. 위험한 소재다. 사회적으로 위험하기 이전에 영화적으로 위험하다. 영화 안에 유괴가 들어온 순간부터 다른 모든 것들은 삼킬 위험이 있다. 어떻게 이 소재에 이르게 됐는지.
이창동: 청문회 열기가 한창이던 1988년 <외국문학>이란 계간지에서 이청준 선생의 <벌레 이야기>라는 소설을 읽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즉각적인 느낌은 ‘이게 광주 이야기구나’란 것이었다. 청문회에서는 광주학살의 원인과 가해자를 따지고 있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이제 화해하자는 공론화 작업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었다. <벌레 이야기>에는 광주에 관한 내용이 암시조차 없는데도 나는 광주에 관한 이야기로 읽었다. 그 소설이 독자에게 이렇게 묻는
이창동의 <밀양> ② 이창동 감독, 영화평론가 허문영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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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는 즐거움을 찍고, 이창동은 괴로움을 찍는다. 물론 홍상수가 희망을 찍고 이창동이 절망을 찍는다는 말이 아니다. 상식적인 용법으로는 차라리 그 반대에 가깝다. 홍상수는 현재에 도착한 세계만을 믿고, 이창동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 혹은 같은 의미에서, 지나가버린 시간을 믿는다. 홍상수는 영화적 기호의 물질성에 몰두하며, 이창동은 미끈한 기호 뒤로 사라졌거나 오지 않은 의미를 붙잡으려 한다. 그 결과, 홍상수의 이야기는 충만으로 향하고, 이창동의 이야기는 결여로 향한다.
공통점은 둘 다 거짓말과 싸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거짓말의 범위가 조금 다르다. 홍상수는 의미 자체와 싸운다. 그는 의미작용 자체를 불신한다. 그에게, 비유컨대, 말은 필연적으로 거짓말이다. 이창동은 무의미와도 싸운다. 그는 무의미도 거짓말의 일종이라고 본다. 그에겐 거짓말이 아닌 말이 여기 아닌 어딘가에 있다. 요컨대 의미가 비워져가는 자리를 영화적 기표들의 활력이 채워가는 과정이 홍상수의
이창동의 <밀양> ① 비밀의 빛, 밀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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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내부에 있다. 수많은 커플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요인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은 집안의 반대다. 한국적인 특성이라고? 제 자식이 아까워 눈에 쌍심지를 켜고 아들 딸의 애인에게 어디 ‘기스’라도 난 곳 없나 이 잡듯 뒤져보는 부모들은 동서양의 고금을 막론하고 오늘도 여러 집안에 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무차별 총격전이라고 초특급 태풍이라고 사랑에 눈먼 커플들의 애정 포스를 막을 수 있을까. 장애를 넘고, 고난을 극복해 결혼에 골인한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내부의 적과 싸워 이기는 법’을 배워본다.
적은 내부에 있다. 수많은 커플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요인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은 집안의 반대다. 한국적인 특성이라고? 제 자식이 아까워 눈에 쌍심지를 켜고 아들 딸의 애인에게 어디 ‘기스’라도 난 곳 없나 이 잡듯 뒤져보는 부모들은 동서양의 고금을 막론하고 오늘도 여러 집안에 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무차별 총격전이라고 초특급 태풍이라고 사랑에 눈먼 커플들의 애정 포스를
[결혼 성사 프로젝트] 웨딩마치를 울리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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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레터>
이 모든 것은 <러브레터>에서 시작됐다. 지금처럼 인터넷이니, 어둠의 세계니 하는 것들이 발달하기 전, 한국과 일본은 서로의 문화를 탐하기 위해 음성적이고도 음성적인 통로를 거치거나 ‘직접 현지에서’ 비싼 값을 내고 공수하는 수밖에 없던 때, 한국 대학가를 뒤흔든 멜로영화가 있었으니 그 제목은 <러브레터>다. 순정만화적인 감성에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 신비하게 닮은 두 여자(알고 보니 일인이역이지만), 마지막의 눈물 쏟아내는 반전. 주인공이 일인이역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뭉개진 화면으로, 용케 대학에서 상영회도 연 작품이다. 눈물의 순애보로서 일본영화가 처음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뒤, 일본영화 수입 개방 조치가 내려지고 한동안 일본영화의 흥행성적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전설의 <러브레터>도, 막상 극장 개봉에서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일본영화를 포함한 일본소설 등 일본 문화 전반이 지금처럼 ‘일상적’이 되기까지
[일본 멜로영화들] <러브레터>부터 <내일의 기억>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