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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오 아르젠토에 대한 장르 팬들의 관심은 최근 몇년 동안 다시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가 찍은 두편의 <마스터즈 오브 호러> 에피소드는 완성도나 취향과는 상관없이, 그가 여전히 날카롭게 날이 선 장르 도구들을 휘둘러대며 맹렬히 활동하는 현역임을 입증했다. 이번 칸영화제에서는 새로 디지털 리마스터링한 아르젠토 최고 히트작인 <서스페리아>를 공개했고, 20여년 넘게 미완성으로 방치되어 있었던 <세 어머니> 3부작의 마지막 편인 <눈물의 어머니>가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활동 소식만 들어보면 그는 지난 10여년 동안 지속되었던 슬럼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슬럼프라. 도대체 다들 쉽게 말하는 아르젠토의 슬럼프란 정체가 뭘까?
기간을 따진다면 아르젠토의 슬럼프 기간은 다들 그의 마지막 걸작이라 부르는 1987년작 <오페라>를 찍은 이후부터 지금까지를 가리킨다. 그의 첫 미국영화인 93년작 <
[2007 납량 공포 특선] 검은 장갑의 살인마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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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세상에는 ‘무서운 공포영화’라는 게 존재하는가. 공포영화는 이제 무섭다기보다는 감독과 제작자의 돈에 굶주린 욕망에 관한 장르가 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관객은 웨스 크레이븐의 <스크림> 이후 슬래셔를 포함한 호러 장르를 일종의 농담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누구도 여자주인공이 현관문 대신 2층으로 도망치는 ‘진지한 슬래셔영화’ 따위를 진담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장르적인 고착상태을 벗어나기 위해 미국 호러 영화계는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왔다. <아미티빌의 저주>나 <시체들의 새벽> 같은 고전들을 리메이크하거나, <데블스 리젝트>처럼 아예 장르 자체를 비트는 실험을 단행하거나 아니면 더욱 극단적인 방식의 장르적 진화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를테면 국내 개봉이 금지된 일라이 로스의 <호스텔> 시리즈나 <쏘우> 같은 ‘고문 호러영화’들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순수하게 ‘무서운 영화’를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
[2007 납량 공포 특선] 클래식 공포의 새로운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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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묶어놓은 특집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호러영화의 팬들이라면 지금 특집으로 소개하는 세개의 공포들이 억지로라도 묶어야 할 만큼 끝내주는 기회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허술하고 고답적인데다 가끔은 눈뜨고 보아주기 힘들 만큼 졸렬한 호러영화들이 이미 여름의 스타트를 끊어버린 지금, 세개의 진짜 클래식 호러들이 찾아온다. 영국에서 건너온 진짜배기 장르영화 <디센트>, 제11회 부천영화제에서 상영될 ‘다리오 아르젠토 회고전’과 <마스터즈 오브 호러>의 두 번째 시리즈다. 왜 삼색공포냐고? 피 색깔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르젠토 영화의 주황색 페인트 핏물, <디센트>의 괴이할 정도로 검붉고 찐득거리는 핏물, 그리고 <마스터스 오브 호러즈2>가 선보이는 각양각색의 핏물은 모두 미술시간에 보았던 먼셀색채표로 구분 가능할 만큼 다르다. 물론 같은 것도 있다. 삼색의 공포 모두 진정한 장인들이 빚어낸 최상급의 장르영화라는 사실이다. 오
[2007 납량 공포 특선] 세가지 색 공포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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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를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 머릿속으로 그리던 변신로봇의 상상이 실현된다. <스파이더맨 3>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 <슈렉3> <다이하드4.0> 같은 블록버스터 속편들 사이에서 이제 첫 이야기를 시작하는 <트랜스포머>는 SF로봇 액션 실사영화. 올여름 블록버스터 최고의 기대작이기도 하다. 첫 공개된 <트랜스포머>, 정말 예고편만큼 멋질까? 어떻게 그런 영상을 만들어냈을까?
<트랜스포머>의 로봇은 인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무개념의 물질이 아니다. 인공지능도 아니다. 어렸을 적, 그닥 튼튼해 보이지 않던 자동차-로봇 변신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면서 머릿속으로 했던 상상이 그대로 영화화된 이야기다. 그러니까, 인간의 개입없이 알아서 움직이고 악과 맞서 싸우는 로봇들의 이야기 말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런 일이 늘 있었다. 국회의사당이 로보트 태권V의 머리 부분이라는 상상은, 그런 어렸을 적
<트랜스포머>의 상상력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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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코미디, 런던 그리고 휴 그랜트. 워킹 타이틀 영화를 보고 이 세 가지를 떠올렸다면, 당신은 제대로 짚은 거다. 노동자 계급의 진지한 드라마가 영국영화의 전부로 여겨지던 시절, 워킹 타이틀의 존재를 알린 것도 대부분 말랑말랑한 로맨틱코미디였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워킹 타이틀이 넘나드는 영역은 생각보다 넓다. 이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특정 장르가 아니라 근사한 스토리와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최근 <새벽의 황당한 저주>의 제작진이 다시 뭉쳐 만든 <뜨거운 녀석들> 역시 워킹 타이틀의 대표적인 필모그래피에 오를 만하다. 이 ‘황당’하고 ‘핫’한 프로젝트는 워킹 타이틀이 얼마나 뻔한 것에서 신선한 것을 뽑아내는 데 귀재인지를 증명해준다. 이쯤에서 다시 질문. 워킹 타이틀 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다음의 A to Z 소사전이 해답에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Atkinson, Rowan 로완 앳킨슨
본명보다 ‘미스터 빈’으로 더 익숙한 사나이. 시나리
<뜨거운 녀석들>의 제작사, 워킹 타이틀 A to 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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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물론이다. 애팔래치아 산맥으로 하이킹을 가지 않았다면, 동굴에서 골룸 사촌들에게 내장을 뜯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디센트>). 텍사스로 가지 않았다면 그 무시무시한 전기톱 소리의 존재조차 몰랐을 것이다(<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이 모든 게 쓸데없는 호기심 때문에, 혹은 한순간에 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에 생긴 일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인간의 마음이라지만, 공간 자체가 주는 공포도 만만치 않다. 본격적인 바캉스 시즌이 돌아오기 전, 미국 지도를 꺼내 여러분의 행선지를 체크해보시라. 피를 부르는 호러 패키지 8개가 막 꾸려졌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디센트>
골룸 사촌들과 함께하는 동굴탐험
여행지: 북아메리카 동부에 위치한 애팔래치아 산맥 어디쯤. 그중에서도 휴대폰이 안 터짐은 물론이고, 인적도 없고 지도에조차 표시되지 않은 동굴 속. ‘사서 하는 고생’ 컨셉의 여행지로는 안성
<디센트> <블레어 윗치> 등 공포영화로 즐기는 미국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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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1일 오후 8시 남산N타워에서 마이클 베이와 메건 폭스가 참여한 <트랜스포머> 아시아 정킷 행사가 열렸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영화가 한국에서 정킷 행사를 가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실물 크기의 주인공 로봇 ‘범블비’가 설치된 야외무대에서 마이클 베이와 메건 폭스는 사진 촬영과 TV인터뷰, 아시아 기자들과의 30분에 걸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20년 전,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는 마이클 베이는 “20년 전보다 도시가 훨씬 커졌고, 붐비는 거리가 인상적이었다”며 한국에 온 소감을 밝혔다. 당일 오후 2시, 서울하얏트호텔에서 있었던 기자간담회 정킷 행사의 간담회 내용을 모아서 정리한다.
-한국에서 정킷 행사를 가진 이유는 무엇인가.
=마이클 베이 | 사실 개봉날짜는 내가 정하는 게 아니다. 사무실에서 정하는데, 아마도 한국의 영화산업이 커진데다가 할리우드에도 중요한 시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평소 내 영화가 한국 관객에게 반응이 좋았던 걸로 알고
<트랜스포머> 로봇들에게서 영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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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작 <슈퍼맨>의 광고 문구는 “당신은 인간이 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될 것이다”였다. 그렇다면 <트랜스포머>의 광고 문구는 “당신은 거대 로봇이 움직이는 것을 믿게 될 것이다” 정도가 될지도 모르겠다.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는 마이클 베이의 지장이 선명한 여름용 블록버스터인 동시에, 코믹스와 놀이동산에서 소재를 착취해온 할리우드가 완구와 일본 애니메이션의 세계로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트랜스포머>라는 신종 블록버스터의 면모를 살펴보고 한국을 방문한 마이클 베이와 메건 폭스의 인터뷰를 첨부한다.
2005년의 어느 날 마이클 베이는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전화를 받았다. 장난감 회사 하스브로의 변신 로봇을 소재로 장편영화를 하나 연출할 생각이 없냐는 전화였다. “날더러 장난감으로 영화를 만들라고? 바보 같은 장난감 영화에는 아무 감흥도 없었다.” 하긴 세상의 어떤 정신나간 감독이 장난감 로봇에 감화받아 “그래. 지구로
<트랜스포머> 거대 로봇의 스크린 침공, 서막이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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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저편 에드거 라이트의 목소리는 주어진 20분 남짓한 시간이 초조하게 느껴질 정도로 차분했다. 하지만 막상 이야기가 시작되자 그는 차분하면서도 빠르게 이야기를 풀어갔고, 마지막 질문까지 성실하게 답해줬다.
-<뜨거운 녀석들>을 만들기로 결심하는 데 영향을 끼친 영화는 어떤 것들인가.
=경찰영화 장르 안에서라면, <더티 해리> <프렌치 커넥션>, 그리고 오우삼의 <첩혈속집> 정도다. 참, 한국 영화도 한편 있다. <살인의 추억>이라고. 물론 <뜨거운 녀석들>을 만들기 전에 봤다. 정말이지 사랑하는 영화이며 환상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올드보이>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도 좋아하는 영화고, <괴물>도 굉장하다. 그 감독 이름이 뭐더라. 봉….
-봉준호다.
=봉준호는 정말로 굉장한 능력을 지닌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쿠엔틴 타란티노 역시 <괴물&
<뜨거운 녀석들> 에드거 라이트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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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로스의 정체
<뜨거운 녀석들>에는 빌 나이히, 스티브 쿠건 같은 영국의 스타들이 카메오 아닌 카메오로 출연한다. 그런데 정말 카메오답게 출연한 두명이 있으니 그중 하나는 피터 잭슨 감독이다. 피터 잭슨은 <새벽의 황당한 저주>의 열렬한 지지자 중 하나로, 심지어 <킹콩> 촬영 중에는 에드거 라이트를 세트장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이때 <뜨거운 녀석들>의 계획을 설명했던 에드거 라이트는 피터 잭슨에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는다. 잭슨은 “그때쯤 난 영국에 있을 거니까 당신이 원하는 카메오로 출연하겠다”라고 말한 것이다. 결국 그는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감독을 몇초짜리 카메오로 기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잭슨은 카메오 출연 외에도 <뜨거운 녀석들>의 촬영장에서 에드거 라이트에게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재닌은 누군가
두 번째 ‘카메오다운 카메오’는 바로 케이트 블란쳇이다. 이 대스타는 니콜라스의 헤어진 여자친구 재닌으
알고보면 더 뜨거운 녀석들! <뜨거운 녀석들>의 숨은 그림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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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녀석들> vs <나쁜 녀석들2>
<뜨거운 녀석들>이 가장 많이 패러디한 영화는 <나쁜 녀석들> 1, 2편이다. “<나쁜 녀석들> 시리즈는 멍청한 팝콘영화의 최고봉이라는 점에서 영화에 등장시켰다”라고 말하는 에드거 라이트는 이 영화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헬리콥터가 날아오는 장면을 낮은 앵글에서 잡거나 카메라가 주인공들을 빙글빙글 도는 등 마이클 베이 감독 특유의 유아적인 스타일을 그대로 모방한다. 심지어 후반부에는 “저놈을 때려눕혀”(Punch That Shit) 같은 대사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라이트는 “그렇다고 이 영화를 비웃으려 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뜨거운 녀석들> vs <폭풍 속으로>
캐스린 비글로의 <폭풍 속으로>는 일종의 복선으로 사용된다. 대니가 니콜라스에게 <폭풍 속으로>에서 FBI 특수요원인 존(키아누 리브스)이 우정 때
따라한 녀석들! <뜨거운 녀석들>이 패러디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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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제목처럼 뜨겁다. 6월21일 개봉하는 영국발 코미디 액션영화 <뜨거운 녀석들>은 재기발랄하면서도 거침이 없고, 과격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웃음이 튀어나오는 황당한 영화다. 잠깐, ‘황당한’? 그렇다. <뜨거운 녀석들>은 3년 전 ‘로맨틱한 좀비영화’라는 새로운 서브장르를 열어젖힌 <새벽의 황당한 저주>의 감독과 배우들이 다시 힘을 합쳐 만든 영화다. 물론 <새벽의…>를 사랑했던 관객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온갖 장르를 넘나들면서 수많은 영화를 즐겁게 인용하고 경쾌하게 패러디하며, 또 그들에 경의를 바친다. 덕분에 <뜨거운 녀석들>은 전작에 못지않은 호평과 전작보다 월등한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영국 영화계뿐 아니라 세계의 극장가를 웃음의 도가니로 만든 <뜨거운 녀석들>은 어떤 영화인가,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대체 어떤 녀석들인가.
만약 누군가가 런던경시청에서 가장 잘
<뜨거운 녀석들> 웃다 죽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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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의 오이디푸스
찰스 비더의 <길다>
필름 누아르만큼 (프로이트적인) 오이디푸스의 운명이 강하게 묻어나는 장르도 없을 것이다. 찰스 비더의 <길다>(1946)는 필름 누아르가 오이디푸스적인 갈등 관계를 차용하는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느 허름한 도박장에서 크게 한건 올리고 나오던 조니는 괴한의 습격을 받는다. 이때 조니의 도박 솜씨를 눈여겨본 발린이 조니를 도와주고 자기 밑에서 일할 것을 제안한다. 큰 규모의 카지노를 운영하는 발린 밑에서 촌뜨기 조니는 꽤 세련된 도시인으로 변모하고, 상징적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발린의 충실한 심복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아버지의 여인 길다가 전면화하는 순간 삐걱거린다. 흔히 팜므 파탈로 불리는 여인들은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 갈등을 도입하고, 아들은 아버지의 여자를 탐해 아버지를 증오하는 오이디푸스적인 인물이 된다. 조니 역시 길다를 얻기 위해 아버지를 죽인다. 오이디푸스적 딜레마가 어머니를 향
[이야기의 원형을 찾아서] 비극적 신화 <오이디푸스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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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의 로미오와 줄리엣
프랭코 제피렐리의 <로미오와 줄리엣>
프랭코 제피렐리의 1968년작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가장 충실하게 영화적으로 번안한 작품이며 뭇 남성들에게 올리비아 허시를 줄리엣의 원형으로 기억하도록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분명 당대의 대중적인 드라마였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에는 지식인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지곤 해서 흥행에서 신통치 않은 결과를 가져왔는데,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셰익스피어를 지향했던 제피렐리의 이 작품은 흥행에서 엄청난 성공을 기록하기도 했다. 원작의 주인공들과 거의 같은 나이였던 레오나르도 화이팅과 올리비아 허시는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10대의 열정을 풋풋하게 그려냈고, 첫날밤에 대한 감독의 관능적인 해석이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었다. 제피렐리는 시적이고 문어체적인 대사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갈 수 있도록 세팅을 세심하게 배치하고 두 가문의 갈등을 색감을 통해 대비시킴으로써 시대극
[이야기의 원형을 찾아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