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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공인하는 에단 호크의 ‘내 인생의 영화’는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 <트레이닝 데이>는 그를 오스카 조연상 후보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배우 에단 호크의 정수는 여러 영화에 흩뿌려져 있다.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기대작으로는 시드니 루멧 감독의 근작 <악마가 알기도 전에 넌 죽었다>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1989)
대다수 관객이 최초로 접한 배우 에단 호크의 얼굴은, 풍부한 감수성을 가졌으나 그것을 날숨으로 내보내지 못하는 여리고 내성적인 소년 토드 앤더슨이었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이 영화의 성공은, 촬영을 마친 뒤 배우 생활을 접고 영문과 대학생으로 돌아가려 했던 에단 호크의 계획을 뒤틀어놓았다. 거절하면 바보처럼 느껴지는 좋은 기회들이 쏟아졌다고, 호크는 회고한다. 당시 에단 호크와 로버트 숀 레너드가 식사를 하러 간 레스토랑에서 손님들이 모두 테이블에 올라가 “마이 캡틴”을 외쳤다는 일화가 전해
X세대 스타에서 중견배우로, 에단 호크의 뜨거운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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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단 호크의 첫 번째 소설이자 두 번째 영화 연출작인 <이토록 뜨거운 순간>(The Hottest State)을 쉽게 소개하자면 ‘뉴욕판 <봄날은 간다>’다. 신인배우로 일거리가 생기기 시작한 청년 윌리엄(마크 웨버)이 가수의 꿈을 품고 맨해튼에 온 사라(카탈리나 산디노 모레노)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달콤하기 그지없던 밀월여행이 끝나자마자 여자는 뒷걸음질치고 남자는 지옥을 맛본다. <봄날은 간다>와 달리 <이토록 뜨거운 순간>의 연인은 둘 다 스무살 언저리인데, 이 점 물론 연애를 구제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토록 뜨거운 순간>에서 “앗 뜨거워라” 싶은 순간 하나는 감독 에단 호크가 윌리엄의 아버지로 출연하는 장면이다. 번민의 바닥에 떨어진 윌리엄은, 텍사스에 새 가정을 꾸린 아버지를 찾아가 오래전 삼켰던 질문을 던진다. 텍사스의 학생 부부였던 에단 호크의 부모는 그가 세살 때 결혼을 청산했고, 어린 에단은 엄마
<비포 선라이즈> 이후 12년, 에단 호크가 동년배 기자와 필담을 나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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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늙어가는 처지’라는, 흔전만전 쓰이는 말이 있다. 에단 호크와의 전화 인터뷰 기회가 있다는 전갈을 받고, 동년배 기자는 엉뚱하게도 그 말을 떠올렸다. 1970년생 에단 호크는 <익스플로러>(1983)로 프로 연기에 입문했다. 그 영화에서 공연했던 동갑내기 리버 피닉스는 스물세살에 멈추어 영원히 머물렀으나, 에단 호크는 우리가 지켜보는 앞에서 소년의 솜털을 벗고 청년 시절을 건너 중년의 기슭에 이르렀다. <청춘 스케치>(Reality Bites)(1994)와 <비포 선라이즈>(1995)로, ‘X세대 아이콘’로 호명됐던 호크는, 그 뒤로 10여년 동안 부지런히 경험의 바다를 헤엄쳤다. 다양한 영화를 맛본 중견 배우로 성숙했고, 두권의 소설을 출판했으며 <트레이닝 데이>의 연기와 <비포 선셋>의 공동각본으로 오스카 노미네이션을 받았고 토니상 후보지명도 받았다. 동료 우마 서먼과 결혼해 남매를 얻은 다음 헤어지기도 했다. 12월2
[에단 호크와의 대화] 단지, Carpe D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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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친구고 나는 친구들과 일하는 게 즐겁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일한다.” 이건 거의 웨스 앤더슨의 관용구다. 주목해야 할 더 많은 친구들이 있겠지만 이 자리에서는 <다즐링 주식회사>에 출연한 친구들만 살펴보자.
오언 윌슨
대학 때 마음이 맞은 뒤 웨스 앤더슨의 평생의 단짝. 지금까지 다섯편의 영화에 한번도 빼놓지 않고 모두 출연했다. 윌슨가의 나머지 두 형제 루크, 앤드루와 웨스 앤더슨을 연결해준 장본인.
“너도 알다시피 우리 가족은 삼형제잖아. 이 형제들이 서로 어떻게 해야 역동적일지 잡히는 것 같더라. 그건 정말 우스꽝스럽지만 슬프기도 한 그런 종류거든.”
(<다즐링 주식회사>의 시나리오를 보여주자 어떻게 연기하면 될지 알 것 같다며)
제이슨 슈워츠먼
<맥스 군 사랑에 빠지다>의 맥스 피셔로 자신의 연기 인생을 시작했다. “언제나 웨스를 나의 멘토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번 영화의 또 다른 각본가 로만 코폴라와는 사촌지간
오언 윌슨 등 웨스 앤더슨의 친구들과 말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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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 테넌바움>이 개봉한 건 2002년 3월이다. 근 5년이 넘어서야 웨스 앤더슨의 새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됐다. <다즐링 주식회사>는 이리저리 뜯어봐도 귀여운 영화다. 소품인 것 같지만 깊이가 있고 귀여운 인물들과 재치있는 대사들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웨스 앤더슨의 원색적인 화면은 인도에 와서 물 만난 고기 같다. 덜떨어진 삼형제는 왜 인도로 간 걸까. 그곳에 가서 그들은 무엇을 찾았을까. 이 유쾌한 여행기를 소개한다.
웨스 앤더슨이 선호하는 등장인물들은 어딘가 좀 이상하고 신기하다. 지난 네편의 장편영화 <바틀 로켓>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원제 <러시모어>) <로얄 테넌바움>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을 보면 그렇다. 누군가는 팔푼이에 머저리다. 실력도 없으면서 한탕을 꿈꾸는 <바틀 로켓>의 디그넌이 그런 인물이다. 웨스 앤더슨의 절친한 친구이자 페르소나인 오언 윌슨이 이
웨스 앤더슨의 로드무비 <다즐링 주식회사>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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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액션, <본 얼티메이텀>
모로코 탕헤르에서의 숨막히는 질주
‘본’ 시리즈 중 최고의 흥행 성적을 거둔 3편 <본 얼티메이텀>은 여전히 박진감 넘치고, 여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에 비해 역시 독창적이며, 종종 숨이 멎을 것 같은 서스펜스를 제공한다. <가디언>의 기자와 몰래 접선하는 런던 워털루역 장면부터 스피디한 장면 전개는 상상을 불허한다. 2편부터 메가폰을 잡고 있는 폴 그린그래스는 어떤 장르에 손을 대더라도 극도의 사실감을 추구하는 특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특히 모로코 탕헤르에서 펼쳐지는 액션신은 표적과 추적, 유인과 이탈, 골목과 거리, 건물과 건물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그러면서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질서정연하게 질주하는 최고조의 액션을 펼쳐 보인다. 그것의 마무리는 일체의 사운드트랙 없이 오로지 숨소리와 타격음만으로 이뤄진 두 워커홀릭 첩보원의 가공할 맨손 대결이다. 웰메이드 홍콩 액션영화의 그것과 비교해도 창의성과
2007년을 빛낸 올해의 장면들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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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요리, <카모메 식당>
콱 베어먹고 싶은 오니기리
카모메 식당의 주인 사치에는 “왜 메인 메뉴를 오니기리로 했냐”는 미도리의 물음에 답한다. “오니기리(주먹밥)는 일본인의 솔푸드(Soulfood)니까요. 1년에 2번 운동회랑 소풍 때 아버지가 오니기리를 만들어주셨죠. 오니기리는 자기가 직접 만드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주는 게 더 맛있다고 하시면서요. 사실 다른 아이들의 벤토에 들어가던 계란부침이나 소시지는 없었어요. 연어, 매실, 가다랑어. 딱 세 종류의 오니기리밖에 없었거든요. 크기도 크고 모양도 별로였고. 근데 그게 또 아주 맛있더라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카모메 식당>의 오니기리가 인생의 철학이 담긴 음식이어서 ‘올해의 요리’로 선정하는 건 아니다. 진짜 이유? 혀에 고인 침이 쇄골까지 흘러내리도록 맛나 보인다는 것. 심플 이즈 베스트.
올해의 뮤직비디오, <M>
몽롱한 꿈속의 이미지
특별히 영화에 대한 공과를 논하자는 것은
2007년을 빛낸 올해의 장면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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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대사, <트랜스포머>
“나는 옵티머스 프라임이다!”
<트랜스포머>는 국내 박스오피스 역사를 트랜스폼(Transform)했다. 개봉 5일 만에 200만명 돌파. 11일 만에 400만명 돌파. 17일 만에 500만명 돌파. 결국 영화는 21일 만에 600만명을 돌파하며 수입영화 흥행의 상한선이라던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의 596만명을 격파했고, 737만명이라는 무시무시한 최종 관객 수를 기록하며 수입영화 사상 최고 흥행작의 지위를 쟁취했다. <트랜스포머>는 디지털 특수효과가 창조한 규모의 법칙을 카피하려는 우리의 시도를 완벽하게 무력화하는 할리우드의 무기다. “나는 옵티머스 프라임이다!”라는 간결한 기계로봇의 통성명은 “그레타 가르보가 말한다”던 옛 할리우드 유성영화의 광고문구와도 비견할 만하다. 이제 영화가, 아니, 할리우드가 할 수 없는 것은 없다. 기술만 카피하려는 뱁새들은 이무기에게 먹힐 뿐이(었)다.
올해의 데우스 엑
2007년을 빛낸 올해의 장면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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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24개의 장면으로 만들어진 2007년 지도가 있습니다. 선정 이유를 알려드리죠. 어떤 장면은 진실로 기억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 명장면이기 때문에 선정했습니다. 어떤 장면은 작정하고 놀려보려는 엉큼한 마음으로 선정했다는 걸 인정합니다. 또 어떤 장면은, 그저 짝수를 맞추기 위해서 들어갔습니다. 조금만 더 진지한 자세로 설명해볼까요. 전도연과 이명박의 사진은 2007년 한국 영화계의 엇갈린 영광의 상징입니다. <디 워>와 <트랜스포머>의 장면들은 한국과 할리우드의 SFX블록버스터의 현재에 대한 증언입니다. <색, 계>와 <300>과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의 장면들은 영화가 전시하는 육체의 쾌락이 소화되는 전혀 다른 세 가지 방식입니다. <씨네21>이 여기 선정한 장면들은 2007년의 모든 것에 대한 가장 공정한 지도는 아닐 겁니다. 오히려 이것은 공정해지려는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올해의 장면] 이 장면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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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주소:
“<씨네21> 블로그 같기도 하고, <한겨레21> 블로그 같기도 하고.” 이 아리송한 말은 ‘굿모닝 대디 굿나잇 마미’ 블로거인 김신식씨의 자평이다. 그는 현재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취업준비생이다. 그만큼 그의 블로그에는 영화 얘기 외에도 정치, 사회를 포함해 TV와 광고 등 여러 대중문화의 갈래들을 아우르는 글들이 많다. 삼성 애니콜의 새로운 광고를 보고 ‘애니밴드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6년 만에 돌아온 박진영에게 ‘정치적 딴따라’라고 말하는 그의 글들은 물론 스펙트럼도 넓지만 글의 수준도 상당하다. 몇달 전 노현정과 김옥빈에 대해 쓴 글은 열띤 논쟁을 끌어내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씨네21>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코너를 웹상에서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씨네21> 블로그 섹션에서 그의 블로그가 인기를 끄는 이유도 그러한 점에 기인한 바 크다. 그 역시 다른 블로거들처럼 시작은 소
[씨네블로거 BEST4] 영화를 읽는 사회과학적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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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주소:
2046slacker 블로그의 초기 화면은 이제는 사라진 영화 월간지 <KINO>다. “실제로 아직도 <KINO>를 기다리는 독자이기도 하다”는 그는 과거 매달 독자엽서를 꼬박꼬박 써서 보내던 성실한 독자였다. 이후 <KINO>는 생명을 다했고 더이상 학생이 아니었던 그는 이른바 ‘사회인’이라는 이름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일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3개월여 만에 그만두게 되면서 2005년 4월 처음으로 <씨네21> 블로그를 만들게 됐다. <인 디스 월드>에 대한 글이 메인에 걸리면서 긴 인연이 시작됐고, 당시 어려운 일이 겹쳤던 그는 블로깅을 하면서 차차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블로거 누구나 그렇듯 별다른 이유없이 글이 뜸해졌고, 이후 모 영화잡지에 실린 <천년학>(과 임권택 감독을 ‘씹는’) 기사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홧김에’ 재가입한 뒤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의 블로그는
[씨네블로거 BEST4] 핫한 미드 정보부터 전문적인 영화평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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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주소:
<씨네21> 블로그 섹션에서 홍콩영화에 관한 한 최고의 블로그다. 주인장인 김영진씨는 이미 올해 초 <씨네21>의 ‘홍콩영화는 죽지 않았다’는 제하의 특집(597호)에 ‘홍콩영화 열혈 마니아’라는 이름으로 ‘영원한 열혈남아의 도시’라는 장문의 글을 쓴 필자이기도 하다. “내 공간을 버려두기 싫어서” 글을 올리기 시작했지만 “내가 읽고 싶어하는 홍콩영화 관련 글들, 그리고 궁금한 중화권 소식을 그 어떤 매체에서도 다뤄주지 않는다. 이제 홍콩영화는 그저 과거형에 지나지 않아서인지 신작에 관한 자세한 분석글은 고사하고, 대부분 소설 수준의 가십성 기사는 오기투성이일 만큼 현재의 홍콩영화에 대해 무관심하다보니 홍콩영화 관련 포스팅을 소홀히 하면 안 되겠다는 어떤 의무감이 생겨버렸다”는 게 그의 얘기다. 김영진씨가 블로그에 매진하게 된 것은 2002년 두기봉 감독의 <미션>(1999)을 접하고서다. 당시 불현듯 개설한 인터넷 카페가 여기 &l
[씨네블로거 BEST4] 기성 언론도 못 당해낼 깊이있는 홍콩영화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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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주소:
부동의 1위. 물론 이런 표현이 적절하진 않겠지만 <씨네21> 블로그 섹션에서 다카이 오사무가 운영하는 ‘한 일본사람 눈으로 보는 일본영화’는 최고 인기 블로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카이 오사무(高井修)라는 이름의 한자어를 그대로 한국 이름으로 쓰고 있는 그의 블로그는 일본영화와 연예계에 대한 최신 정보는 물론, 일본어가 유창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감히 접근하기 힘든 흥미로운 인터뷰들도 손수 번역해 올려주시니 그야말로 더없이 소중한 블로그다. 그는 프리랜서 필자로서도 명성이 높은데, TV웹진 <매거진t>에 연재하고 있는 ‘나는 오사카의 TV오타쿠’는 수많은 고정팬들을 거느린 인기 코너다.
고정수씨가 처음 <씨네21>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4년 처음으로 인터넷을 시작하던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그 이전에 <쉬리>(1998)를 통해 한국영화에 눈뜨고, 곧장 재일 한국인이 운영하는 비디오 가게에 가서 한국영화
[씨네블로거 BEST4] 인터넷에 한·일영화의 오작교를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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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궁금했다. 물론 블로그의 세계란 것이 익명성의 공간이지만 그들이 허락만 해준다면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여느 평론가나 전문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감탄하게 만드는 필력도 궁금했고, 그 어디서도 접하기 힘든 정보들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그들이 고맙기도 했다. 이들은 <씨네21> 홈페이지의 블로그 섹션에서 이미 인기 필자로 이름난 블로거들이다. <쉬리>를 시작으로 한국영화에 빠져 영화 블로그를 시작한 ‘한 일본사람’부터, 홍콩영화에 관해서라면 홍콩을 수시로 찾는 것은 물론 전국의 각 국제영화제들을 낱낱이 섭렵해야 직성이 풀리는 열혈 홍콩마니아, 이제는 사라진 영화지 <KINO>의 부활을 언제나 믿으며 영화에 대한 사랑을 계속 나누고 싶다는 영화청년, 그리고 블로그를 통해 이제는 어느덧 자유기고가의 길을 걷게 돼 기쁘다는 한 대학 졸업반생에 이르기까지 <씨네21>이 그들과의 만남을 간절히 요청했다.
[씨네블로거 BEST4] 기자보다 정확하게, 평론가보다 깊이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