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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 가족 이야기>는 애초 2025년 공개를 점쳤으나 푸티지에 반한 프로그래머가 개막작으로 월드프리미어를 권해 레드씨국제영화제의 첫 번째 밤을 수놓게 됐다. “제작 국가 중 한곳의 영화제이자 중동을 대표하는 영화제가 이런 기회를 줘서 뿌듯하다.” 카림 엘 슈나위 감독의 말대로 이 작품은 MENA의 영화 강국 이집트와 신성 사우디아라비아가 공동제작했다. 앞서 쿠웨이트, 레바논 등에서도 시리즈 연출 경력을 쌓은 슈나위 감독은 “이 지역의 여러 재능을 만나는 일에 익숙”하다. 영화의 주제도 이와 닿아 있다. “이집트가 배경인 <다이 가족 이야기>는 다양성에 관한 영화로, 서로 다른 피부색, 방언, 음악, 풍경을 아우른다.”
주인공 다이(바드 무함마드)는 감독의 의도를 대변하는 존재다. 백색증으로 유독 흰 피부를 가진 그는 급우들의 놀림을 받지만 노래할 때만큼은 자유롭다. 방송국 오디션 참가를 결심하고 헌신적인 선생님, 엄격한 어머니, 티격태격하는 누나와 함께 카
[인터뷰] 중동영화의 허브로부터, <다이 가족 이야기> 카림 엘 슈나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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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맘때 <씨네21>은 국내 언론 최초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레드씨국제영화제를 방문했다. 이제 막 꿈틀거리기 시작한 시장의 태동에 귀 기울이기 위해서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상업적인 영화 상영을 금지한 35년의 세월을 지나 2018년에야 비로소 극장 문을 다시 열었다. 엔터테인먼트 개발로 석유 의존에서 벗어나겠다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비전 2030’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영화산업”이라는, 한국에선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문구를 현실화하는 중이다. 그 역동의 한가운데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 문화부 장관이 설립한 비영리단체 레드씨영화재단이 있다. 재단은 자국 영화 제작·배급·교육에 앞장설 뿐 아니라 제다에서 중동 지역 최대 규모로 영화제를 주최해 세계 영화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씨네21>도 2년 연속 제다를 찾았다. 한국의 부산에 비견되는 이 도시는 12월이라는 날짜가 무색하도록 햇볕이 강하다가도 저녁마다 해안가의 순풍
[기획] 풍요로운 홍해의 무비 로드, 제4회 레드씨국제영화제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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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민주주의 수호 에디션 드디어 구했다! 민첩한 하루 되세요~.”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불참한 105명의 국민의힘 의원들을 1면에 박제해버린 <한겨레>가 일종의 굿즈가 되어버린 2024년의 시위 풍경. 누군가는 이를 두고 “집회 특전(팬덤 사은품) 받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 과거 시위를 이끌어온 OB세대를 ‘경력직’이라 일컬으며 존중하거나 핫팩·초콜릿 등을 ‘무나’(무료나눔)하는 풍경은 팬덤 행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사례를 통해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렇다. 2017년 9월, KBS가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현직 연출자 대부분이 공석에 이르자 부장급 연출자들이 실무를 도맡아야만 했다. 이때 <뮤직뱅크>는 의도치 않게 고연차 ‘짬바’가 드러나는 완벽한 카메라앵글을 구현했고 아이돌 팬덤은 이를 ‘부장뱅크’라 부르며 역사처럼 회고한다. 경력과 연륜이 묻어나는 결과물을 팬들이 기꺼이 반기고 존중하는 것이다.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 울지 않게 나를 도와줘” 2024년 탄핵 시위 풍경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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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혼란스러웠던 11일이었다. 12월3일 현직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12월14일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기까지 온 국민은 잔뜩 긴장하며 정국을 살펴야 했다. 우선 <씨네21>은 2차 탄핵소추안이 가결될 것인지 온갖 추측이 난무하던 12월11일 수요일, 국회 내부로 들어가 긴장감이 감도는 정계의 기운을 포착했다. 그리고 마침내 12월14일 거리의 온 시민이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던 그때의 현장에도 함께했다.
12월11일 국회 본회의는 국무위원 현안 질문 등으로 본격적인 탄핵 정국의 한복판을 통과하고 있었다. 본회의가 끝나고 의원들이 퇴장하자 국회 본관 로텐터홀은 수많은 취재진의 열기로 가득 찼다. 하지만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특별한 입장 발표 없이 묵묵하게 국회를 나섰다.
<씨네21>은 영화 <나의 촛불>을 연출하기도 한 주진우 기자와 함께 국회 곳곳을 누볐다. 주진우 기자는 국회를 오가는 국회의원들을 붙잡으
불안, 초조 그리고 환호 - 탄핵 정국의 국회 풍경부터 탄핵안 가결 순간의 여의도 거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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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팔라비 왕조의 마지막 황제이자 이란 역사상 마지막 군주,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는 1941년 제위에 올랐다. 재임 기간 동안 그는 급진적인 근대화와 산업화를 통해 이란을 강대국으로 이끌고자 했다. 이것이 바로 ‘백색혁명’이다. 196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추진된 이 개혁은 국영기업의 민영화와 농촌 개발, 여성 참정권 확립과 아동결혼 금지, 토지개혁 및 문맹 문제 해결 등을 바탕으로 친미노선을 추구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팔라비 왕조는 이를 경계하는 반체제 운동을 탄압하며 독재체제를 구축했고, 1978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반팔라비 시위가 시작되자 계엄령을 선포하며 무력 진압을 시도했다. 끝내 시민의 승리로 돌아간 이란 이슬람 혁명은 민중의 투쟁으로 왕정을 무너뜨린 시민혁명으로서 역사적 의의를 갖지만 혁명 직후 수립된 신정부에서 또 다른 독재체제를 이어오며 이슬람 근본주의로 퇴보했다는 평이 따른다.
벤 애플렉 감독의 <아르고>(2012)는 이란 이슬람 혁명
새로운 물결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이란 이슬람 혁명의 영화들 - <아르고> <옥수수밭의 아이들> <페르세폴리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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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칠레는 경제위기에 봉착했다. 칠레 전역에서만 1970년 한해 동안 5295건의 노동자 파업이 일어났으며, 우파 정부의 토지 개혁 공약 이행을 요구하는 무토지 농민운동이 벌어졌다. 같은 해 좌파 정당 연합인 인민연합이 추대한 살바도르 아옌데가 칠레의 새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아옌데의 당선 이후에도 노동자와 자본가의 투쟁은 이어졌고 아옌데는 1973년 8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피노체트는 그해 9월11일, 군대를 동원해 쿠데타를 일으킨 후 17년간 군부독재를 이어갔다. 피노체트는 쿠데타와 취임식 사이 최소 3만여명의 칠레 국민을 살해했고 자신에게 맞선 노동자들을 색출해 고문했다.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정부가 사라져야 한다는 명목하에 쿠데타 전후로 미국의 배후 지원을 받았다. 1989년 야권 후보인 파트리시오 아일윈에게 패배한 피노체트는 대통령직을 넘기는 대신 총사령관 직책은 유지했다. 하지만 1998년부터 이어진 끝없는 형사소송과 국제사법재판으로
칠레의 영화는 지지 않는다, 피노체트 쿠데타와 칠레의 영화들 - <세 마리의 슬픈 호랑이> <칠레 전투> <공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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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우상향하던 유럽의 경제성장은 산업 주류를 이루던 제조업이 쇠퇴하며 침체를 겪는다. 정부는 날로 극심해지는 지역간 불균형과 청년실업 문제에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유럽의 청춘들은 염세주의와 모순이 팽배한 전후 국가에서 새로운 것을 열렬히 희망했다. 무엇보다 유럽 대륙 밖에선 여전히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알제리나 쿠바의 내전 소식이 연일 매스컴을 통해 보도됐다. 그리고 미국은 베트남전을 벌였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태어난 전후세대는 기성세대가 자신들이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과거의 역사를 없던 일로 치부하며 정치와 사회에 무관심한 채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현실에 분노했다.
1968년의 봄
1967년 파리 낭테르대학교의 학생들은 권위주의에 매몰돼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학교에 분노하며 등교를 거부했다. 이 움직임은 프랑스전국학생연합의 수업 거부로 이어졌다. 이 가운데 파리, 베를린, 로마에서 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반전시위가 연이어 일어났고 1968년 3월,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68혁명과 프랑스, 독일의 영화들 -<만사형통>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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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1980년 5월20일 <전남매일신문> 기자 일동.” 1979년 12월12일 군사 반란 이후 전두환을 중심으로 구성된 신군부는 민주화 열기를 억누르고자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일으킨다. 이듬해 4월부터 반민주적인 정권에 저항하는 규탄 시위가 끊이지 않았고 19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 시민들에 의해 대규모 민주화운동이 일어난다. 5·18민주화운동은 오명과 누명을 딛고 있다. 모든 시민이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는 목표 하나로 광장에 모였지만 정권과 언론에 의해 폭도, 폭동, 간첩 같은 단어를 뒤집어쓰며 지역적으로 철저히 고립된 채 인권탄압과 민간인 학살, 불법 처형과 성범죄에 노출돼야 했다.
장선우 감독의 <꽃잎>(1996)은 전두환의 신군부 세력과 계엄군이 자행한 대규모 학살의 처참한 그림자를
우리를 구원한 빛고을의 시간,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들 -<꽃잎>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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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사상 대한민국엔 총 17차례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그중 16번은 이승만, 박정희로 대표되는 독재정권이 대한민국을 압제하던 20세기에 자행되었다. 마지막 계엄령 선포 이후 45년 만인 2024년 12월3일. 윤석열 대통령은 17번째 계엄령을 기습 선포했다. 이승만 정부는 1948년 제주도에서 벌어진 제주 4·3사건과 여수와 순천에서 벌어진 여수·순천 10·19 사건을 반란으로 간주해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군은 제주도 중산간마을 주민들을 반동분자로 몰아 학살했고 여수와 순천에서도 대규모 군사 작전과 민간인 탄압이 이루어졌다. 이중 4·3사건은 다양한 영화를 통해 재현됐다. 조성봉 감독은 1996년 4·3사건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레드헌트>를 연출해 이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했다. 하지만 <레드헌트>는 여러 고초를 겪었다. 경찰은 조성봉 감독을 이적표현물 제작을 이유로 체포했고, 서울인권영화제에서 <레드헌트>를 상영한 당시 서준식 서울
권력자가 악용했던 계엄의 비극사, 계엄령과 한국의 영화들 - <레드헌트>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 <그때 그사람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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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이후부터 1980년대 후반 민주화가 꽃피기까지 한국은 길고 긴 독재와 검열의 시대를 지났다. 이 어둠의 시간은 한국의 영화사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수많은 영화가 국가의 주도하에 여기저기 잘려나갔고, 수많은 영화인이 억압당했다. 그럼에도 한국영화는 그 명맥을 이어 현재에 당도했다. 작금 한국영화가 있기까지의 그 어려움을 되살피는 일은 지금의 우리가 마주한 위기에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영화예술의 꺼지지 않는 생명력을 긍정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시민의 힘으로 대한민국 제1공화국을 타도한 1960년 4·19 혁명은 민주주의의 승리와 함께 한국영화의 풍요를 불렀다. 혁명 이후 5월부터 정부는 국가기관 주도의 영화 검열을 철폐·완화했고 6월엔 헌법 개정을 통해 언론, 출판을 비롯한 영화에 대한 검열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8월부터 민간기구인 영화윤리전국위원회가 출범해 영화 심의를 시작했고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완전한 자율성을 보장받기 위해 노력했다. 잠깐의 자유
시대가 만든 바보들, 검열, 독재 시대의 한국영화 - 중앙정보부의 검열부터 블랙리스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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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영화는 참극의 기록과 보존, 재현이 시청각 매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이라 믿으며 카메라를 들고 독재와 검열의 시대에 목소리를 드높였다. 2024년. 대한민국 국민들은 12·3 내란이 벌어진 지 11일 만에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촛불과 응원 봉을 들고 무장한 계엄군과 경찰에 맞서 “윤석열 퇴진”을 외친 풍경은, 분명 지난 70년간 세계 각지에서 터져나온 민중의 분노가 시대를 넘나들어 서로를 돕고 구하는 매치컷과 다름없다. 지금 <씨네21>은 영화가 관객과 함께 민주주의와 혁명을 부르짖은 역사를 되새기려 한다. 먼저 대한민국과 프랑스, 독일과 칠레와 이란에서 총칼로도 꺾을 수 없었던 혁명의 횃불을 영화가 어떻게 지피고 수호했는지 정리해보았다. 이어 서울 용산과 여의도를 오가며 현실과 영화 모두가 스러지지 않도록 목소리를 드높인 이들의 르포르타주를 담았다. 영화가 앞서서 나가며 깃발을 나부꼈으니, 산 자인 우리가 따르며 뜨거운 함
[특집] 영화로 돌아보는 민주주의 혁명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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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위기론을 마주하는 지금, 거장들이 건네는 안부에 우리는 결국 손 내밀게 되는 것일까. 2023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파벨만스>가 <씨네21> 선정 올해의 해외영화 1위로 꼽힌 데 이어 2024년의 영화로는 <클로즈 유어 아이즈>가 다수의 고른 지지를 받아 1위에 올랐다. 필름영화의 물성, 그리고 목격과 기억의 성소로서 극장의 아름다움을 되새기는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동시대 관객이 잃어버린 많은 것들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빅토르 에리세 감독이 어둠 속 스크린 앞에 기꺼이 앉아줄 것을 요청했다면, 2위를 차지한 <사랑은 낙엽을 타고>의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영화적 태도로 절망을 뚫고 전진하는 애처롭고도 씩씩한 보법을 선보인다. 전쟁과 경제위기, 심화된 고독 속에서 사랑하는 연인을 그리는 헬싱키의 프롤레타리아 드라마는 불쑥 찰리 채플린의 그림자를 이식해 찬란한 결말로 나아간다. 앞선 두 작품 위로 다시 검은 잿빛을 드리우는
[특집]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올해의 해외영화 총평, 6위부터 10위까지의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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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클로즈 유어 아이즈>
과작의 감독이 31년 만에 내놓은 영화를 향한 메시지,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 다수의 표가 모였다. 노년의 영화감독 미겔이 자신의 미완성 영화와 사라진 배우를 수십년 만에 다시 마주하려는 여정을 담은 영화다. 잊힌 것을 되살리기 위해 방랑하는 자의 여정은 동시대에 빅토르 에리세가 전하는 “망각을 위한 비망록”(김예솔비)으로 자리 잡는다. 16mm 필름으로 촬영된 영화 속 영화 <작별의 눈빛>이 스페인 내전 직후를 가리킨다면, 디지털 화면으로 전환된 영화의 몸통이 위치한 시대는 TV 범죄 수사 프로그램의 인기가 한창인 2012년이다. 종국에 기억을 잃은 훌리오를 찾아낸 미겔은 영사기사 친구의 도움으로 옛 필름을 꺼내어 그의 앞에 데려다놓는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극장에서.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OTT 서비스의 등장으로 영화 보는 형태가 바뀌면서 영화관이 사라지고, 영화 관객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오늘날의
[특집] 2024 올해의 해외영화 베스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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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제작자 <파묘> 김영민 프로듀서
<파묘>는 한국을 넘어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외에서 이같은 호응을 이끌어냈다는 것만으로도”(문주화) <파묘>의 제작자는 “흔치 않은 기획을 여하튼 성공시킨 대담함”(김영진)을 지녔다. “창작자의 세계를 보호하며 넓힐 줄 아는” (이유채) 김영민 프로듀서의 섬세함이 빛을 발한 것이다. 김영민 프로듀서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안고 <씨네21>을 읽어온 독자로서 ‘올해의 제작자’에 내 이름이 호명됐다니 영광스럽고, 뭐라고 말씀드리기 어려울 정도로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영민 프로듀서는 <파묘>를 준비하며 “우리만의 ‘험한 것’이 무엇일지 스태프들과 정말 많이 고민”하고 “‘이게 실제로 벌어지는 일일 수 있겠다’고 관객들이 영화를 믿게 할 방법을 수없이 강구했다.” 결과적으로 <파묘> 작업의 시작부터 끝까지 현실과 쉽게 타협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특집] 2024 올해의 제작자, 올해의 신인감독, 올해의 시나리오, 올해의 촬영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