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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의 박사과정 졸업 시험을 앞두고 박지윤 감독은 오랜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박사과정 연구의 일환으로 완성한 <(환영합니다) 난초의 행성입니다>는 홍콩, 런던에서 소개된 적은 있지만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건 이번 서울독립영화제가 처음이다. 영화는 식물 중심의 관점에서 난초의 삶, 난초와 다른 종간의 관계를 그린다. “본래 식물을 좋아하는 편인데 홍콩에 살면서 난초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홍콩에서는 난초가 번영과 부귀의 상징이기 때문에 새해 혹은 가게 개업 등을 축하할 때 선물로 많이 주고받는다. 그런데 꽃이 시든 뒤 골목에 버려진 난초들을 정말 많이 봤다. 꽃이 졌다고 식물이 죽은 게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작품을 통해 식물을 동등한 주체로 다뤄보고 싶었다. 지구는 70~80%가 식물로 구성됐고 인간종은 0.01%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식물이 인간을 자기 행성으로 초대해준 것이란 아이디어가 떠올라 <(환영합니다) 난초의 행성입니다>라고 제목을
[인터뷰] 난초의 목소리를 듣기 위하여, <(환영합니다) 난초의 행성입니다> 박지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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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고백하지마>의 공개를 앞두고 감독 겸 배우 류현경은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지인에게 영화를 보여줬을 때 악평에 가까운 피드백을 받았다. 독립영화라고 하니 심오하고 깊은 작품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가볍고 웃겨서 좋은 인상을 받지 못한 것이다. 위축된 마음으로 관객 반응도 별로일까 걱정하다가, ‘내가 재밌으면 됐다’고 여기며 겨우 잠들었다. 상영 때 많이 긴장했는데 객석 여기저기서 내가 웃은 부분에서 똑같이 웃음이 튀어나와 신기하고 기뻤다.” 류현경 감독의 장편 <고백하지마>는 김오키 감독의 영화 <하나, 둘, 셋 러브>의 촬영이 마무리된 후 주연배우 충길(김충길)이 동료 배우 현경(류현경)에게 급작스럽게 고백하면서 시작한다. 현경은 충길의 마음이 부담스럽지만 우연한 만남이 이어지며 둘의 관계에도 변화가 인다.
<고백하지마>는 실제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김오키 감독의 <하나, 둘, 셋 러브> 현장에서 시
[인터뷰] 순간을 정성스럽게 담고 싶어서, <고백하지마> 배우 겸 감독 류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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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28일 치러진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의 개막식은 예년과 다른 풍경이었다. 50주년을 기념해 CGV압구정이 아닌 CGV영등포로 위치를 옮겼고 리셉션과 포토존을 설치해 개막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왁자지껄한 축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날 행사는 배우, 감독, 영화계 관계자들로 좌석이 가득 찬 성대한 축제 첫날이었다. 개막식에는 20년간 호흡을 맞춰온 권해효, 류시현 배우가 다시 한번 사회자로 나섰으며 50주년을 맞아 특별 제작된 아카이브 트레일러가 상영됐다. 아카이브 트레일러는 2022년 <다섯 번째 흉추>로 서독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박세영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50년간 축적된 서독제의 자료 화면과 영상을 장시간의 노출 사진 기법으로 하나의 프레임으로 응축해 완성했다. 개막 영상은 감독 겸 배우 구교환이 연출한 <징크스 몽타주>였다. 구교환 감독과 개막 영상에 출연한 김소율 배우가 참석해 인사를 전했는데, “이 개막 영상은 제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다,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식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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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적 시도를 반기는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의 50주년 개막작으로 이보다 어울릴 작품은 없을 것이다. 2023년 9월 백현진 배우가 연출자로서 올린 공연 <백현진쑈: 공개방송>의 기록 영상에서 출발한 영화 <백현진쑈 문명의 끝>은 여기에 박경근 감독이 찍어둔 백현진의 일상과 페이크다큐멘터리를 섞어 완성됐다. 미술가이자 배우, 음악가, 연출가로서 정형화되지 않은 작업을 이어가는 아티스트 백현진의 세계를 더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다.
- 이번 작품은 유독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하다고 말한 바 있는데, 개막식 상영 및 GV 이후 받은 피드백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나.
보통 결과물이 만들어지면 바쁘게 다음 일을 시작하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관객 반응이 무척 궁금하더라. GV 때 한 관객도 평소랑 다르게 왜 이번 작품이 더 궁금하냐고 묻길래 답했다. “이건 남의 작업이잖아요.” (웃음) 엄연히 박경근 감독의 연출작이고 나는 프로듀서로서 참여한 거니까.
[인터뷰] 수많은 우연성, 즉흥성을 환영한다, 제 50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 <백현진쑈 문명의 끝> 배우 백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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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의 마지막 영화축제, 9일에 걸친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가 막을 내렸다. 내년도 예산 전액 삭감이라는 어려운 실정에도 불구하고 ‘50을 넘어 무한을 향해’라는 의미의 ‘오공무한대’를 슬로건으로 건 서독제는 총 147편의 영화를 상영했다. 1975년 ‘한국청소년영화제’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50년의 역사를 이어온 서독제는 여전히 감독, 관객, 영화를 잇는 장소이자 한국 독립영화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회로서 자리한다. 50회를 맞아 더 성대하게 치러진 이번 축제를 결산하기 위해 개막작 <백현진쑈 문명의 끝>의 프로듀서이자 출연자인 백현진 배우, 월드프리미어로 신작을 상영한 <고백하지마> 류현경 감독, <(환영합니다)난초의 행성입니다> 박지윤 감독,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 박효선 감독을 만났다.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김진유·장우진 감독, 정지혜 평론가와 서독제 및 독립영화계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보는 대담도 마련했다
[특집] 서독제의, 서독제에 대한, 서독제를 위한,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결산 -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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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퀄리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그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 속 맨슨 패밀리의 일원으로 눈도장을 찍은 이후 <포시/버든>(2019), <조용한 희망>(2021)으로 두 차례 에미상에 지명됐고, <가여운 것들>(2023),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2024)까지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에서 신스틸러로 활약했다. 그리고 퀄리는 <서브스턴스>의 공동 주연으로서 맹렬한 폭주로 가득한 영화에 굉장한 활력을 불어넣는다. <서브스턴스>만큼이나 뜨거운 더위가 가시지 않았던 지난 8월, 작품의 스페셜 스크리닝을 위해 런던을 방문한 마거릿 퀄리와 나눈 화상 대화를 전한다.
- 수는 엘리자베스(데미 무어)로부터 탄생한 존재고, 엘리자베스이면서 엘리자베스이길 거부하는 캐릭터다. 수를 연기하기 위해 엘리자베스로부터 가져온 특성이 있나.
오히려 나와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인터뷰] ‘악몽을 마주하다’, <서브스턴스> 배우 마거릿 퀄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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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서브스턴스>는 영화만큼 영화 바깥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작품이다. <사랑과 영혼> 이후 34년 만에 최고의 글로벌 흥행작을 내놓은 배우 데미 무어, 첫 대형 배급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스트리밍 사이트 MUBI, 눈을 뗄 수 없는 강렬한 특수효과까지. <서브스턴스>를 둘러싼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정리해보았다.
빛나는 그 이름, 데미 무어
냉정히 말해 21세기의 데미 무어의 출연작 대부분은 졸작이었다. 또한 연기보다 타블로이드지에 오르내리는 가십으로 주목받았다. 무어는 매니저로부터 “우선 아무 말 안 할 테니 이 시나리오를 읽어보세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서브스턴스>를 만났다. 모두 영화 속 엘리자베스는 ‘데미 무어의 커리어에 대한 은유’라고 평했고 노출 연기와 특수분장 등 60대에 접어든 배우가 감당해야 할 몫도 많았다. 무어는 엘리자베스가 마주하는 ‘업계의 거절’과 이에서 비롯한 ‘스스로에게 가하는
비극적이면서도 괴기하고 우아한, <서브스턴스>로 더 흥미롭게 만드는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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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여배우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은 한 방송국에 스타 에어로빅 강사로 출연하고 있다. 50번째 생일날, 그녀는 방송국 사장으로부터 50살이 되면 여자는 끝났다는 말을 듣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얼굴이 걸려 있던 도로 간판이 철거되는 광경에 한눈을 팔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자동차가 박살났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다치지 않았다. 그러나 병원을 나온 그녀의 코트 주머니에는 수상한 쪽지가 들어 있고, 그것이 수(마거릿 퀄리)라는 젊은 몸으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된다. 증강된 신체로 다시 태어나기 전에 엘리자베스는 대중매체가 규정하는 미의 기준에서 탈락되었다는 의미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에 상응하는 물리적인 충격이라는 죽음의 상징적인 절차를 이중으로 통과해야 한다. <서브스턴스>가 보디 호러로서 성립하는 방식은 영화의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사회적인 의식의 위협과 공포가 육체의 물질적인 훼손으로 치환된다는 규칙을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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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혐오의 우로보로스, <서브스턴스>가 여성의 자기혐오를 공포로 치환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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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일찍이 피식자이던 여성이 포식자가 돼 직접 피 튀기는 복수를 단행하는 <리벤지>를 연출해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 그가 또 한번 문제작 <서브스턴스>를 들고 와 호평 속에서 박스오피스 흥행까지 쏠쏠히 챙기는 중이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이후 방문하는 영화제마다 다종다양한 충격을 선사하는 보디 호러 <서브스턴스>의 리뷰를 전한다. 알고 보면 더 재밌을 <서브스턴스>의 트리비아와 영화에서 잊을 수 없는 생명력으로 펄떡이는 배우 마거릿 퀄리와의 인터뷰도 함께 담았다. 당신도 이 영화와 ‘하나가 될’ 차례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보디 호러 영화 <서브스턴스> 기획이 계속됩니다.
[기획] 이 영화가 대단하다! 본 적 없는 괴이한 보디 공포, <서브스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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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강한나는 불일치의 여자들을 주로 연기해왔다. <순수의 시대>에선 복수를 품은 채 무인에게 접근하는 기녀 가희를 맡아 이름을 알렸고 <붉은 단심>에선 가슴속에 큰 뜻을 숨긴 채 궁궐 안으로 걸어 들어간 조선의 여인 유정으로 분해 궁중 로맨스 마니아층의 마음을 흔들었다. <간 떨어지는 동거>의 혜선은 격차가 실로 컸다. 실제로는 747살의 구미호지만 22살 여대생이 되어 험난하고 달콤한 인간세계를 겪었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의 정유진 팀장과 <스타트업>의 원인재 대표에겐 이런 수식이 앞에 붙는다. 미모, 실력, 재력을 갖춰 완벽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여자. 사랑이 없어서, 더 높은 자리를 원해서 늘 부족함을 느끼는 여자. 올해 주연작 드라마 <비밀은 없어>에서는 늘 오케이를 외치지만 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은 예능 작가 온우주 역을 맡아 한 인물의 명암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10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 <
[기획] 강인하게 또박또박 나아가는, <대가족> 배우 강한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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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초겨울은 영화 보기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기습적인 호우와 진눈깨비, 햇살, 우박으로 수시로 표정을 바꾸는 바깥에 있느니 극장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 동굴의 안식을 찾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기 때문이다. 이곳에 온 이튿날부터 마음의 명령을 따라 충실히 영화를 보기로 작정했다. 2024년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의 프로그래밍을 요약하면 호들갑을 떨 만한 발견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한국 다큐멘터리의 생동하는 기운에 대해 뭔가 할 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올해 암스테르담에서는 4편의 한국 다큐멘터리영화가 프로그래밍되었다. 지난 1년간 국제 다큐멘터리 축제에서 성공적인 순회 커리어를 쌓은 작품들을 모은 ‘베스트 오브 페스트’ 섹션에 당당하게 포함된 2023년의 기린아 <애국소녀>(K-Family Affairs, 2023)를 제외하고, ‘루미너스’ 섹션에서 진정으로 빛난 <
‘움직이는 것들’에 관한 네편의 에세이, 2024년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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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가 11월13일부터 24일까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렸다. 올해로 37회를 맞이하는 IDFA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리는 핫독스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와 더불어 세계 다큐멘터리의 경향과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영화제 중 하나다. 올해 IDFA에는 <네가 증오하는 우리의 진동> <애국소녀> <브라이트 퓨처> <에디 앨리스>까지 네편의 한국영화가 소개됐다. 다큐멘터리는 영상매체 중에 시대정신을 가장 예민하고 빠르게 반영하는 척도인 만큼 한치 앞을 예상하기 힘든 정국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2024년, 다큐멘터리의 문제의식은 초국가적으로 연결 중이다. 올해 IDFA를 방문한 장병원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생동하는 한국 다큐멘터리들의 기운에 대한 긴 글을 보내왔다. 바야흐로 지구촌의 환상이 깨어지고 다시 다극주의가 등장 중인 지금, 어쩌면 더욱 중요한 것은 ‘세계’라는 거창한 담론이
[기획] 2024년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탐방기, 한국 다큐멘터리의 생동하는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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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세안 차세대 영화인재 육성사업(이하 FLY2024)의 여러 프로그램 중 자막 현지화 및 더빙 전문회사 아이유노의 말레이시아 법인장 조앤 칸의 특강은 참가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끌어냈다. 강의의 제목은 ‘미디어 현지화(로컬라이제이션)는 무엇인가?’. FLY2024에 참가한 영화학도들 모두 자국의 문화콘텐츠만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자국의 미디어 업계를 넘어 세계 영화시장에 진출하길 꿈꾼다는 점에서 자신의 작품을 수출국의 언어로 로컬라이징하는 여러 전략에 관심을 기울였다. 참가자들의 질문은 <씨네21> 독자들이 로컬라이제이션에 관해 가질 법한 의문과 맞닿아 있다. 특강 중 나온 인상적인 Q&A를 <씨네21>이 단독 지상중계한다.
Q. 로컬라이제이션은 원본 IP에 대한 저작권을 가진 주체가 특정 국가의 배급사에 콘텐츠 배급을 제안하는 과정인가.
A. 로컬라이제이션은 배급 이후의 과정이다. 플랫폼이 콘텐츠를 구매하면 배급 전 로컬라이제이션
다양한 언어로 콘텐츠를 즐기는 방법, FLY2024 특강 ‘미디어 현지화(로컬라이제이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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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Y를 거친 여섯명의 선배 영화인이 비엔티안으로 금의환향했다. FLY2024 참가자를 응원하고,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실질적 조언을 건네기 위해서다. 각국에서 전방위로 활약 중인 졸업생들이 느끼는 업계의 현실은 어떨까. 후배들을 만나기 전, 졸업생들은 라운드 테이블에 모여 출신 국가 영화계의 냉혹한 현실과 개선 방안을 함께 논의했다.
필리핀 졸업생 엘린 벤디술라(2012년 졸업), 지오 테렌스 곤잘베스(2018년 졸업)
“필리핀의 수많은 지역 영화제가 자신만의 영화를 선보이고 싶은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플랫폼으로 기능하지만, 그 지원이 궁극적으로 영화인들에게 재정적 수익을 가져오지 못한다. 한국의 경우 영화진흥위원회 등 기관이 독립영화를 위해 200만달러 정도의 금액을 지원한다고 들었다. 필리핀 또한 같은 규모의 돈을 지원하지만 단위가 페소라 영화산업이 선진화된 나라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액수다. 임금체불과 열악한 근로환경 역시 필리핀 영화계의 발전을 위해 반
아늑한 인큐베이터 바깥의 현실은, FLY2024 졸업생 라운드 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