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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 폐지론 - 영상문화의 다양성 확보를 위한 마지노선 사수해야
1997년 10월11일.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다음날이기도 했던 이날 파라다이스호텔에선 영화인들과 대선정지작업을 위해 지방을 순회중이던 당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의 만남의 자리가 있었다. 이날 김 총재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후 국민의 정부 영상정책의 골간이 된 ‘영상산업진흥정책’에 대한 공약을 발표했다. 이날 영화인들에게 약속한 골자 중에는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이 40%가 될 때까지 쿼터제를 유지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여기서 잠깐. 당시 공약 내용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불필요한 오해를 가질 수도 있다. 하반기까지 모두 봐야겠지만, 만약 올해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이 40%가 넘는다면, 내년에는 쿼터제가 축소, 또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또한 10월 부시 미 대통령의 방한 일정이 잡혀 있고, 덧붙여 최근 한 소식통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한-미 상호투자협
한국영화 점유율 40% 시대의 고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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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난 - 스타급 배우에겐 시나리오 200편, 캐스팅 좌절로 프로젝트 무산 속출
한국영화의 1편 평균 제작편수가 60편을 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돈이 없어서? 감독이 없어서? 촬영감독이 없어서? 시나리오가 없어서? 다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는 요소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배우가 없어서다. “배우가 없어 영화 못한다”는 소리야 하루이틀 듣던 게 아니지만 최근 스타급 배우를 확보하려는 충무로 제작사들의 구애는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열명 안팎의 스타급 배우들에게 200여편의 시나리오가 몰리다보니 병목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손에 꼽는 배우들이 많아야 1년에 2편, 평균적으로 1년에 1.5편씩 출연하고 있는 게 고작이다. 시나리오는 나왔는데, 배우들로부터 확답이 없으니 제작자들은 모였다 하면 푸념뿐이다. 배우와의 만남조차 갖기 어려울 정도인 신생 또는 군소 제작사의 경우, 그 불만의 톤은 매우 높다. 혹시 그 배우가 시나리오를 읽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
한국영화 점유율 40% 시대의 고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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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급독과점 - 스크린 216개 개봉작 7개, 시장논리가 다양성을 죽인다
지난해 배급사별 시장점유율 1, 2위를 차지한 CJ엔터테인먼트와 시네마서비스는 연초에 상반된 전망을 내놓았다. “올해는 할리우드영화들이 세다. 피해가는 게 상책”이라는 게 CJ의 입장이었던 반면 시네마서비스 대표 강우석 감독은 “여름 극장가까지 한국영화가 휩쓸 것”이라고 자신했다. 결과는 <신라의 달밤> <엽기적인 그녀>의 흥행으로 드러났다. 요즘 시네마서비스 배급팀은 행복한 고민에 휩싸여 있다.
<신라의 달밤> <엽기적인 그녀>에 이어 <세이 예스>까지 개봉시키자니 극장잡기가 만만치 않다. <엽기적인 그녀>를 걸기 위해 <신라의 달밤>을 종영시킬 수도 없고 <세이 예스>를 위해 <엽기적인 그녀>에 양보를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영화 1편 걸기도 만만치 않은 시기에 3편을 배급하는 지금 상황은 1년 전만
한국영화 점유율 40% 시대의 고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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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비 급상승 - 5년새 200% 증가, <쉬리>쯤은 비교가 안 된다
질문: “제작비 규모가 27억원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영화의 제작여건에서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닌가.”
답변: “일단 돈이 많이 드니까 우려할 만도 하다. 하지만….”
1998년 7월 <씨네21>이 당시 <쉬리>를 제작중이던 강제규 감독과 가진 인터뷰에서 나온 이 대화는 한국영화 제작비의 상승곡선이 얼마나 가파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불과 3년 전 “너무 무리하는” 수준으로 평가됐던 총제작비 27억원은 한국영화계에서 이제 ‘평범한 수준’이 됐다. <씨네21>이 자체 조사한 2001년 시네마서비스, CJ엔터테인먼트, 튜브엔터테인먼트의 투자배급작 28편의 경우, 총제작비 평균은 무려 33억원대에 이른다(<표> 참조). 이중 5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대작영화 5편을 논외로 해도 총제작비 평균액은 24억7천만원이다. 1995년 순제작비 9억원, 마케팅비 1억
한국영화 점유율 40% 시대의 고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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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점유율 50% 시대 임박, 새로운 과제 5가지 점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요즘 한국영화의 활약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친구>가 전국관객 800만명을 넘기며 상반기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을 38.3%로 끌어올린 데 이어 <신라의 달밤>과 <엽기적인 그녀>가 여름 시즌 흥행 1, 2위를 다툴 것이 확실시되는 지금, ‘시장점유율 40% 시대’는 먼 미래를 기약하는 구호가 아니라 이미 도래한 현실이 됐다. 관계자들은 2001년 한국영화가 유례없는 호황을 맞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최소한 1988년 직배영화가 들어온 이후 한국영화가 지금처럼 관객을 불러모은 적은 없다. 직배사들이 “직배영화 의무상영일수 보장하라”며 시위하는 날이 오지 않겠느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지경이다.
정말 스크린쿼터가 필요없는 시대가 온 것일까? 영화계 종사자들을 당황하게 하는 건 이런 활황이 대단히 느닷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한국영화가 90년
한국영화 점유율 40% 시대의 고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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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초반부에 태수(유오성)과 민(정우성)이 오토바이가게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신. 이 신은 오토바이가게 앞에서 찍은 것이 아니고 사실 편의점 앞에서 찍었다. 오토바이가게 인서트는 따로 찍고 두 사람의 대화는 편의점에서 나오는 밝은 불빛을 이용해서 찍은 뒤 편집 때 붙인 것. 또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민이 두손을 손잡이에서 뗀 채 오토바이를 타는 신 역시 실제로 민이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운전컷을 찍을 때 사용하는 레커차 위에서 찍었다. 결국 둘 다 가짜인데 두 신의 분위기만큼은 진짜 이상의 느낌을 주는 것 같다.<아름다운 시절> 총 131컷밖에 안 되는 영화 중에(칸에는 119컷이 갔다) 애정이 안 가는 컷이 있을까. 성민이네가 마차를 끌고 이사오는 풀숏은 원래 한번 촬영했는데 전봇대를 피해서 찍으려다보니 엉성한 앵글이 되어 맘에 안 들었다. 결국 그 자리에 있는 전봇대를 뽑고 가장 좋은 앵글에 자연광이 제일 좋은 시간대를 기다렸다가
김형구가 말하는 “잊기 힘든 이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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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가장 가까이서 감정을 포착하는 눈김형구의 카메라는 선동하지 않지만 끊임없이 도발한다. 그리고 정확하다. 그가 만들어내는 숏은 넓게 찍든 타이트하게 찍든 고정돼 있든 흔들어서 찍든간에 찍어야 하는 내용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찍어낸다. 단편 <비명도시>부터 <비트> <태양은 없다>, 개봉을 앞둔 <무사>까지 김형구와 짝패를 이루어 작업해온 김성수 감독은 “좋은 시나리오를 구별하는 좋은 눈에, 미세한 움직임의 순간까지 완벽히 포착해내는 타고난 감각. 즉 문학적 머리, 감각적인 손을 가진 김형구는 단순히 그림을 찍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스토리를 이해하고 그 스토리를 영상으로 풀어내는 방식을 고민하는 지적인 촬영감독이다”라고 말한다.조민환 프로듀서 역시 “촬영이란 풍경을 찍는 행위가 아니라 감정을 찍는 행위다. 영화를 보다가 똑같은 바스트숏이라도 조금 더 들어갔으면, 조금 더 빠졌으면 하는 느낌이 드는 건 감정의 사이즈가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촬영감독 김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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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에서 <봄날은 간다>까지, 정(靜)과 동(動)의 극을 경공하는 카메라맨 김형구를 만나다1997년 <비트>라는 영화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사람들은 새로운 청춘스타 정우성의 시대가 도래했음과 동시에 김성수라는 감각적 스타일리스트의 탄생을 두팔 벌려 환영했다. 그러나 촬영계는 한 유학파 촬영감독이 스크린에 그려대는 반역적 영상에 잠시 아찔한 기운을 느껴야 했다. 광각렌즈의 극단적 클로즈업을 통한 대상의 왜곡, 끊임없이 흔들리고 갈겨대는 스탭프린팅의 저속촬영, 머리 위에서 직각으로 내리쳐 눈 아래의 음영이 강조되는 과감한 조명까지 그동안 충무로에서 정석으로 통용되었던 모든 규칙을 깨트리면서 만들어낸 <비트>의 영상은 무심코 흘려보내던 엔딩크레디트 중 촬영감독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들었다.‘촬영감독 김형구.’ 충무로 도제시스템의 그늘이라고는 AFI 유학 전 촬영부 생활이 고작이었던 이 젊지도 늙지도 않은 촬영감독은, 그러나 ‘앙팡테리블’이란 수
촬영감독 김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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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 사건, 사실적 폭력, 건조한 비극, 강렬한 쾌감, 일체의 웃음과 과장을 제거한 한국 최초의 정통 하드보일드 무비 <복수는 나의 것>이 8월 13일 지하철 6호선 버티고개 역에서 대장정의 첫 발을 내디디며 촬영현장을 공개하였다.
‘초췌하고 날카로운 모습으로 돈 가방을 들고 지하 깊은 곳을 응시하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동진(송강호), 비밀스럽고 조심스럽게 그 뒤를 밟는 영미(배두나)…. 그들의 충격적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건 발단의 초반부에 해당되는 이 씬은 일체의 대사가 없이 두 배우의 눈빛만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연출하였다.
삶의 희망이자 존재의 이유인 딸을 되찾으려는 남자, 동진의 슬픔을 예견하는 눈빛, 착한 유괴를 꿈꾸며 모든 비극의 시작을 부르는 여자, 영미의 건조하게 빛나는 눈빛- 두 배우의 강렬한 눈빛 연기는 모든 스탭 들을 한 곳으로 몰입 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전과 다른 모습, 전과 다른 색깔로 촬영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늦추지 않은
<복수는 나의 것> 크랭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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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무기를 휘두르거나 초능력 자랑을 하지도 않지만, 모험 이야기라고 부를 수밨에 없는 작품이다. 모험 이야기지만, 선악의 대결이 주제는 아니다. 선인과 악인이 모두 섞여서 존재하는 세계 속에 던져져 수행하고, 우정과 사랑, 헌신을 배우고, 지혜를 발휘해 제자리를 찾아가는 소녀의 이야기다. 소녀는 곤경을 이겨내고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그것은 악을 없애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소녀 스스로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은 결과다.많은 것에 둘러싸여 보호받으며, 그러면서도 소외된 채로 살아가는, 산다는 느낌조차 막연한 일상 속에서 아이들의 자아는 더 허약해질 수밖에 없다. 치히로의 연약한 손발이나 시큰둥한 표정은 그 상징이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는 위기에 직면했을 때, 치히로는 자신도 알지 못했던 적응력과 인내력을 발휘하게 되고, 과감한 판단과 대담한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아마 이러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패닉상태
미야자키 하야오가 말하는 `이 영화가 노리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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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 뒷좌석에서 뒹굴며 시골 마을로 향하는 열살배기 치히로는 따분함을 감추지 못한다. 일행을 맞이하듯 미소를 띤 차창 밖의 기묘한 석상도, 마을 입구의 어두운 통로도 통 맘에 안 드는 치히로. “난 안 가! 아빠, 집에 가요.” 하지만 떼를 써봐도 소용이 없다. ‘신기한 마을’에 도착해버렸으니까. 2. 이상하리만치 한산한 마을. 유일하게 음식이 차려진 식당을 발견한 치히로의 부모는 주인을 찾다가, 일단 먹고 나서 값을 치르기로 한다. 아무리 말려도 식탐을 참지 못하는 부모를 두고 혼자 돌아다니던 치히로는, 화려한 온천호텔 ‘아부라야’에 이른다. 하지만 주변이 점점 어두워지자 썰렁하던 거리는 검은 그림자 같은 ‘고스트’들, 그리고 감투를 쓴 ‘봄날’님, ‘왕병아리’님 등 온천을 즐기러 배를 타고 온 각종 요괴들의 천지로 변한다. 놀란 치히로는 부모에게 달려가지만, 엄마와 아빠는 돼지로 변해 있다! 3. 설상가상으로 투명하게 변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치히로. 잔뜩 겁에 질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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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는 것의 불가사의와 죽어 있는 것의 불가사의.”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97년 <원령공주> 이후 4년 만에 발표한 신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隱し, 이하 <센과 치히로…>)의 팸플릿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이 말에서 느낄 수 있듯 <센과 치히로…>는 선뜻 ‘이런 작품이다’라고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애니메이션이다.지금까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은 큰 스케일에 비해 내용이 난해하거나 복잡한 모럴을 요구하는 작품이 아니었다. 그의 애니메이션에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관과 유년 시절의 동심으로 꿈꾸는 상상력이 담겨 있다. 즉, 국적이나 연령을 초월해서 즐길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센과 치히로…>는 그런 이전의 행보와는 확실히 다른 작품이다.<센과 치히로…>는 지난 7월20일 일본 전역 도호 계열의 극장에서 일제히 개봉한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미리보는 미야자키 하야오 신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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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도대체 왜 로봇들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걸까요? SF를 보면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치는 로봇들로 가득하잖아요. 이번에 나온 <A.I.> 도 예외는 아니지요.B 그건 서구 기독교문화의 유물이라고 할 수 있죠. 자, 기독교문화권에서 영혼이라는 것을 가지고 불멸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들은 인간뿐입니다. 동물들은 털 달린 기계에 불과해요. 요정이나 인어와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들도 그 정도 해택은 못 받지요. 따라서 인간보다 능력이 많고 또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사는 이런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우리와 같은 미약한 인간이 되려고 하는 것도 논리적으로는 이상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되는 건 영혼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영혼을 얻는 것은 영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걸요.A 물론 우리는 진짜 소년이 되고 싶어하는 로봇 이야기가 <피노키오>에서 나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피노키오>는 로봇 이야기의 선조이기는 하지만 진짜 로봇 이야기는 아니고 당연히 옛
영화 속 인공지능에 대한 5문5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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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릭+스필버그1-<E.T.> 지상의 어둠을 서서히 지우며 떠오는 둥근 빛. 실루엣으로 그 빛을 가르며 나르는 소년과 외계인의 자전거. 영화사가 기억할 <E.T.> 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A.I.>는 어둡게 인용한다. 저건 달일까, 아니 우리를 잡으러온 인간의 비행선일까. 스필버그는 변함없이 아름다운 달의 이미지에 공포와 환희의 이중적 의미를 새기며 빛과 어둠을 함께 응시한다. 스필버그적인 것과 큐브릭적인 것의 기적적인 조우를 자축하는 명장면.큐브릭+스필버그2-<시계태엽장치 오렌지>큐브릭의 <시계태엽장치 오렌지>는 악마적인 인간 묘사와 함께 외설적이고도 정련된 프로덕션 디자인으로 이름높다. <A.I.>의 두 주인공이 닥터 노를 찾아간 루즈 시티는 화려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디자인에서부터 <시계태엽장치 오렌지>를 연상케 한다. 이런 색감의 무대를 스필버그의 전작에서 찾기는 불가능하다. 이 타락의 환락가에선 &
큐브릭+스필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