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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의 제작과정을 살펴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규모다. 무사가 남기고 간 숫자만 살펴봐도 비용과 제작진이 흘린 땀이 얼마쯤인지 짐작이 간다.5=기상시간. 매일같이 새벽에 일어나야 했던 스탭들에겐 지옥 같은 숫자.20=다음날 아침까지 촬영이 이어진 날짜 수. 이렇게 24시간 작업한 다음에도 휴식은 반나절도 채 주어지지 않았다.149=2000년 8월6일 크랭크인, 12월22일 크랭크업할 때까지 촬영기간의 일수. 사막의 모래바람과 엄청난 더위, 그리고 혹한이 동반했다.300=최대 스탭 수. <무사>의 스탭은 적을 땐 120명, 많을 때는 300명에 이르렀다. 웬 중국 여인이 촬영장을 한동안 따라다녔는데 모두 그녀가 스탭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얼굴들을 익히지 못한 현장상황이 빚어낸 촌극.4,000=촬영해온 총 컷 수. 1초라고만 잡아도 66분40초에 달한다.14,900=아침식사 대용 컵라면 개수. 200명의 스탭 중 절반만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
숫자로 본 <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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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영하회족자치구 중웨이(中衛) : 2000년 7월5∼7일. 테스트 촬영.② 베이징시 베이푸퉈(北京市 北普陀) : 8월6∼7일. 크랭크인. 난징가도 세트. 명으로 향하던 고려 무사들 간첩 누명쓰고 저지당하다.③ 베이징 근교 샹산퇀청(香山團城) : 8월9일. 사신단 및 무사, 무장해제당하다.④ 영하회족자치구 중웨이 : 8월14∼21일. 명에 의해 귀양 떠나던 사신과 무사 행렬, 원군에게 습격당하다.⑤ 영하회족자치구 인촨시 수이둥거우(水洞構) : 8월23∼29일. 무사 일행, 고려를 향해 사막을 횡단하기로 하다.⑥ 인촨시 타오러(陶樂) : 8월30일∼9월8일. 무사 일행, 사막에서 객잔을 발견하다. 부용 공주를 납치해가는 원군도 만나다.⑦ 인촨시 빙거우차오(兵構橋) 계곡 : 9월10∼18일. 부용 공주를 구출하다. 무사 일행, 난징으로 향하다.⑧ 내몽고자치구 싼관(三關) : 9월19∼27일. 원군, 부용 공주를 되찾기 위해 뒤쫓다. 원군과 무사 일행의 대추격전 펼쳐지다.⑨ 타오러 : 9
<무사>가 달려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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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 여솔(사신단 부사인 이지헌의 노비)김성수 감독의 영화 속 자아 격인 그는 <무사>에서 폭발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는 스탭들의 흉내를 내는 등 쾌활한 청년이었지만 막상 촬영이 시작되며 보는 이를 오싹하게 할 정도로 눈동자를 이글거리며 강한 연기를 펼쳤다. 중국 프로듀서 장샤도 그를 두고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진지한 연기태도를 보여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주진모 / 최정(왕실 경호대 용호군의 장군)독선적인 성격으로 무사 일행을 고난에 빠뜨리지만, 부용공주를 향한 뜨거운 애정이 밉지 않은 최정 역의 주진모는 다른 배우들보다 늦게 캐스팅돼 촬영 초반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는 현장에서 장군옷을 입고 에어로빅춤을 추거나 고글을 쓰고 마징가 흉내를 내는 등 분위기메이커를 자임했다.안성기 / 진립(평민으로 구성된 주진군의 하급무사)무사 일행의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하는 진립 역의 안성기는 촬영장에서도 큰형 같은 존재였다. 가장 일찍 나와 가장
<무사>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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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1월6일<무사>의 마지막 촬영지인 씽청으로 간다. 베이징에서 차로 6시간. 후팅샤오가 지은 토성은 수백년 시간의 손길이 쓸고 지나간 듯 거기 서있다. 고려의 아홉 무사들이 고향에 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수많은 고비를 넘기며 해안토성에 도착했듯 우리 스탭도 마침내 이곳에 이르렀다. 가만히 있어도 온몸이 덜덜 떨리는 이 추위에 우리는 비까지 뿌려가며 촬영을 해야 한다. 다들 견뎌낼 수 있을까? 그럴 것이다. 우리에겐 물러설 곳이 없다.2000년 11월10일눈이 와서 이틀간 촬영을 못했다. 눈이 오는 걸 보며 스탭들이 술렁인다. ‘올해 집에 돌아가기 힘들겠구나’ 하는 표정이다. 스케줄이 말썽이다. 장쯔이와 우영광(몽고군 장군 람불화 역)을 내년까지 붙잡을 수 없다. 둘 다 12월에 다음 영화 스케줄이 시작된다. 날씨도 문제다. <무사>에는 눈오는 장면이 없는데 12월 들어가면 눈 때문에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내년에 다시 와서 찍는다? 있을
<무사> 제작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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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9월5일밤장면을 찍을 때 보통 촬영 종료시간은 새벽 5∼6시. 그런데 오늘은 3시30분에 끝나버렸다. 일찍 끝났다는 사실에 좋아하며 정리하려고 하는데, 감독의 목소리가 들린다. “촬영감독님, 한번만 더 가죠.” 분명 OK사인을 내렸는데 다시 찍자는 감독의 말에 김형구 촬영감독이 왜 그러는지를 묻자 감독이 악동 같은 얼굴로 대답한다. “너무 일찍 끝났어…. 이러면 안 되는데. 우리 찍기로 한 시간까지는 찍어야 되잖아.” 어이없어하는 촬영감독, 조명감독 그외 모든 스탭, 배우들. 감독은 여전히 애처럼 떼를 쓴다. “촬영감독님, 한번만 더 가자니깐…. 가야 돼∼.”2000년 9월6일새벽에 촬영이 조금 일찍 끝났다고 오전에 다시 기상해서 오후 촬영에 들어갔다.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스케줄이 밀리고, 제작비는 초과하고, 그러다보니 강행군을 멈출 수 없고….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다. 내일은 또 5시 기상이다. 한달이 지났는데 30%도 못 찍었다.2000년 9월12일추석이다.
<무사> 제작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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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영화 <무사>의 시작은 1997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비트> 후반작업을 할 때 김성수 감독이 “한 무리의 무사들이 중국 대륙을 횡단하는 이야기를 하면 어떻겠냐”는 얘기를 처음 했다. <용문객잔> <유성호접검> 같은 무협영화를 좋아했던 나는 “좋다”고 말했지만 그런 영화를 언제 찍게 될지는 몰랐다. <태양은 없다>를 개봉하고 감독이 다시 그 얘기를 꺼냈다. “지난번에 내가 했던 얘기 기억하냐? 그 영화, 성을 짓고 찍었으면 좋겠어”라고. “응,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뭐.” 건성으로 듣고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심 두려움이 밀려왔다. 성을 짓는다고? 이 양반이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그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서 감독이 입버릇처럼 칭찬하는 영화 를 봤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엔 장풍도 없었고 칼바람도 없었다. 내가 생각한 무협영화와는 전혀 다른 액션이 아닌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에 끼어들고 있
<무사> 제작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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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2001, 중국 대륙의 모래바람 뚫고 김성수 감독의 <무사>가 태어나기까지, 그 험난한 여정의 기록600여년 전 한 무리의 고려인들이 원말 명초 혼란기의 중국 대륙에서 자취를 감췄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그들에게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사>는 공식적인 역사서에서 물음표로 남겨둔 여백에서 출발한 영화다. 김성수 감독은 여기서 난생처음 사막의 모래폭풍에 휩싸인 사람들을 떠올렸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인간 한계를 넘는 한발한발을 내딛는 사람들, 그들은 오래 전 구로사와 아키라의 와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 같은 영화들에서 자신을 매혹시켰던 존재의 극단에 있는 인간이었다. 어느날 아침 수백명이 바삐 움직이는 <무사> 촬영장에서 그는 자신의 꿈이 눈앞에 현실로 펼쳐지는 걸 봤다. 역사가 눈길을 돌린, 실패한 자들의 전쟁을 복원시키는 작업이 중국의 낯선 풍광에 스며들고 있는 것이었다. &l
<무사> 제작, 그 천일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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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비슷하게 애니메이션을 시작한 동료들은 다 유명 감독이 돼 있다.” 후루카와 다쿠 감독이 웃음을 띠며 건넨 이 한마디는 의미심장하다. 이 ‘유명 감독’들에는, 41년생 동갑내기로 일본애니메이션의 시대가 열리던 60년대 중반 함께 출발선에 섰던 미야자키 하야오와 린 타로가 포함된다. 하지만 40여년이 흐른 지금, 이들은 제각각 다른 고지에 이르러 있다.그 중 후루카와 다쿠는 “늘 혼자 투계장 같은 스튜디오에서” 독립애니메이션을 고수해왔다. 후루카와 다쿠는 일본 독립애니메이션의 2세대 감독. 60년대 일본 독립애니메이션을 개척한 구리 요지와 마찬가지로 만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꾸준히 실험적인 작업을 해왔다. 이번 SICAF에서도 상영된 그의 작품들은, 자유로운 실험과정을 짐작게 한다. 74년작인 <페나키스티스코프>는 19세기의 동화(動畵) 장치를 응용해 18개로 분할된 그림을 동시에 보여주며, 78년작 <모션 루미네>에서는 사람의 관절 위치대로 종이
단편 <상경 이야기>의 후루카와 다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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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 가는 얼굴에 긴 손가락, <가발제작자>의 정밀한 인형 세상을 빚어낸 감독답게 슈테픈 셰플러(33)는 섬세한 인상의 독일 청년이다. <가발제작자>는 영국아카데미와 안시, 올해 오스카 단편애니메이션상 후보까지 각종 영화제 수상권을 오르내리며 화제를 모았던 인형애니메이션. 흑사병이 돌아 시체가 쌓여가는 중세의 마을, 전염될까 두려워 병든 이웃이 죽어나가도록 외면하지만 결국 자신도 죽음을 맞는 가발제작자의 이야기다. 지난해 부천영화제에도 <페스트>란 제목으로 소개된 바 있는 이 작품은, 표정이 섬세한 인형들의 연기와 정교한 세트에 고딕풍의 양식미와 ‘진짜 같은’ 숨결을 품은 수려함으로 셰플러를 영화제 단골손님 목록에 올려놨다. 이번 SICAF에도 작품과 함께 단편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초대됐다.실사영화 이상으로 사실적인 <가발제작자>의 연출은 셰플러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세상의 이목을 끈 것은 애니메이션이지만, 셰플러는 독일 바덴-뷔르텐베
<가발제작자>의 슈테픈 셰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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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노래 하나가 있는데요. 사람들이 사람을 물건으로 본다는 거예요. 누가 횡단보도를 가다 넘어져도, 그 사람이 물건처럼 보이기 때문에 일으켜 세워주지 않고 그냥 간다는…. 요즘 애니메이션도 사람을 물건처럼 다루는 것 같아요. 그런 게 싫어서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7월21일부터 일본에서 상영중인 ‘건강한 애니메이션’ <아리테 공주>가 SICAF에 초청, 상영됐다. 감독 가타부치 수나오는 경쟁장편부문의 심사위원까지 맡아 서울을 찾았다. <아리테 공주>는 보는 사람마다 “공주님은 어디 계시지?” 하고 묻게 되는, 전혀 공주 같지 않은 어느 공주의 이야기. 성탑에 갇혀 살다 사기꾼 마법사에게 시집보내진 어린 공주가 마법사에게서 탈출하여 늘 꿈꾸던 대로 세상을 몸소 체험하며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대지에 발디디고 살아가는 삶의 아름다움’이라는 메시지가 소녀의 목소리를 통해 힘있는 감동으로 다가오는, 매우 따뜻하고 진실한 작품이다. 자극적인 요소라곤 전혀 없는
<아리테 공주>의 가타부치 수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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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만매가량의 셀을 썼다는 <메트로폴리스>가 지금껏 일본에 없었던 풀애니메이션이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에서인가. 리미티드 방식이 나오기 전인 58년작 <백사전>도 초당 24컷을 보여주는 풀애니메이션으로 알고 있는데.= 맞다. 도에이동화에 들어갔을 당시에는 <백사전>을 비롯해 풀애니메이션이 몇편 있긴 했다. 그땐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이란 말 자체가 없었고, 풀애니메이션이라고 안 해도 다 풀애니메이션이었으니까. 하지만 40년 정도 전 일이다. 그뒤 TV애니메이션 역사가 아주 길었고, 그동안은 풀애니메이션이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풀애니메이션은 디즈니처럼 셀 매수를 많이 쓰고 아주 실감나는 액션이 들어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에서 진정한 풀애니메이션은 없었고, <메트로폴리스>는 지금껏 없었던 풀애니메이션이다.+ <환마대전> 에서는 도쿄 시내를 부수고, <메트로폴리스>에서는 지그라트를 산산조각내는 등 파괴의
<메트로폴리스>의 린 타로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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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 3세대의 합작, 린 타로의 <메트로폴리스>아톰과 아키라가 마주 보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가 <아키라>의 세계관을 만난 <메트로폴리스>는 태생부터 범상치 않았다. 50∼60년대 일본만화와 TV애니메이션을 이끈 데즈카 오사무 원작에, <아키라>의 오토모 가쓰히로가 각본을 쓰고 린 타로가 연출을 맡은 애니메이션이라니. 일본 애니메이션 3세대의 내로라 하는 감독들이 셋이나 연루된 사실만으로도 <메트로폴리스>는 기획단계부터 화제에 오르내렸다. 더구나 온화하고 동글동글한 인상의 ‘아톰’들과 차갑고 염세적인 <아키라>의 디스토피아라는 이질적인 조합으로, 요즘 세대에게는 그리 익숙지 않은 데즈카의 스타일을 어떻게 재창조해낼 것인가하는 귀추를 주목할 만한 실험이었다. 그리고 5년. 오랜 숙성기간을 거친 <메트로폴리스>는 지난 5월 일본에서 개봉됐고, 이번 SICAF 2001의 초청작으
SICAF에서 만난 애니메이션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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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유성영화 초기 사운드의 대담한 실험 <우리에게자유를>A Nous la Libert 1931년, 흑백, 95분 감독 르네 클레르 출연 앙리 마샹, 레이몽 코르디1930년대 초부터 르네 클레르가 일했던 토비스 클랑필름의 스튜디오는 교외의 공업지대 근처에 있었다. 잡초와 들꽃이 무성한 가운데 공장의 굴뚝이 솟아 있는 그런 현실의 이미지에서 클레르는 자연과 산업의 묘한 대조를 보았고 그것에서 스토리를 하나 착상해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산업사회에 대한 풍자코미디 <우리에게 자유를>이다.영화는 감옥에 갇혀 있다가 탈옥한 두 친구의 이야기를 경쾌한 목소리로 전해준다. 루이는 축음기를 제조하는 회사의 사장이 돼 있고 다른 친구인 에밀은 거리를 떠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루이의 공장에 들어오게 된다. 그렇게 재회하게 두 친구. 여기서 에밀은 공장에서 일하는 아름다운 여성 잔의 사랑을 얻으려 애를 끓이고 루이는 자신의 재산을 노리는 갱들의 협박으로 안절부절못한다.&
제3부 아주 특별한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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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히치콕, 영국시대를 마감하다 <숙녀사라지다>The Lady Vanishes 1938년, 흑백, 97분 감독 앨프리드 히치콕 출연 마거릿 록우드, 마이클 레드그레이브앨프리드 히치콕의 영국 시절을 마감하는 영화는 실제로는 <자메이카인>(1938)이었지만 그전 작품을 만들고 있을 때 이미 그는 할리우드의 손길을 받아들이리라 내심 결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 시절을 화려하게 마감하는 요약본과도 같은 영화를 만들어보고자 했는데 그렇게 나온 영화가 바로 <숙녀 사라지다>이다. 실제로도 이 영화는 영국에서 제작된 히치콕의 영화들 가운데 당당히 최고작 대접을 받고 있다.영화는 주인공이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고전적 상황에서 출발한다. 휴가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영국인 여성 아이리스는 같은 기차를 탄 노부인 미스 프로이와 알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미스 프로이가 사라지는 일이 벌어진다.
제2부 영화의 신, 불멸의 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