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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이 멀지 않은 인근의 폐공장. 검은 교복 차림의 조금은 나이들어보이는 학생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한다. 이어서 강풍기가 톱밥과 먼지를 동반한 바람을 뿜기 시작하고 호흡을 고르고 있던 학생들은 “웃지 말고 레디∼ 액션!” 소리와 동시에 순식간에 한 덩어리가 되어 주먹이 오가는 패싸움을 시작한다. “컷.” 감독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몸을 던져 싸움에 몰입한 학생들이 다른 스탭들의 외침을 듣고서야 몸을 털며 일어난다.4명의 고교 동창들이 건달로 살아가며 그들의 세계를 그리게 될 코믹갱스터영화 의 촬영현장이다. 무식함에 고집까지 세고 오륜기를 아우디 차에 달고 다녀서 아우디(허준호)라 불리는 첫 번째 발가락. 단순, 무식, 과격의 대명사로 그랜져 승용차 중에서도 각진 그랜져만을 고집해 각그랜져(박준규)로 불리는 두 번째 발가락. 주먹의 달인으로 하얏트(HYATT)호텔을 해태호텔로 착각하고 있어 해태(이원종)라 불리는 세 번째 발가락. 주먹과 머리 모두를
코믹 갱스터 <4발가락>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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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3일 일요일3월에 개봉할 영화사운드 본 믹싱 마지막 날일주일 가까이 진행된 사운드 믹싱에 마침표를 찍는 날이기도 하다. 1권부터 5권까지, 총 95분의 영상과 소리를 보며 복잡한 심경이 되다.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작업이 모두 끝나고, 그러나 감독은 여전히 이것저것 아쉬운 표정이다. 그때까지 저녁을 못 먹은 우리는 양수리 근처의 포장마차에 들러 국수 한 그릇씩 비우다. 어둠에 싸인 양수리의 팔당대교를 달리는 차 안, 새벽 2시. 오늘 이렇게 한편의 영화를 일단락했다. 그런데 왜 마음이 텅텅 빈 듯하지.2월4일 월요일아침부터 회사 이사회의. 회사 운영이 어떻고, 올해 라인업이 어떻고, 팀장 체계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등등 긴 대화가 오가다. 바로 이어서, 또다른 영화 마케팅 회의. 포스터 시안이 맘에 들지 않는데, 요렇게 조렇게 좀 고쳐보시지 하며 ‘영화의 내용과 주제’를 정확하게, 확실하게, 폼나게 전달해야 한다고 주절거리고 있는 나. 맞는 얘기 하고 있는 거야, 지금? 내
양말을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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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상영관에서 처음 영화를 접한 것이 중학교 시절 같다. 중간고사인가 기말고사인가 끝난 뒤 단체로 교복을 입고 영등포 어느 극장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본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난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옆 친구와 도시락 반찬을 비교해야 했던 나에게는 영화 속의 사랑이나 환상이 시답지 않게 보였는지 모른다. 오로지 이 한몸 던져 출세가도를 달려가야 하는 것이 나의 역사적 사명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인가 침을 튀겨가며 영화이야기 하는 친구들이 이해가 안 됐다. 영화나 환상에 매몰되는 것은 나에게 죄악이었다. 그만큼 난 범생이었다. 범생이!
고등학교 1학년 때 포르노를 처음 봤다. 중소기업체 사장을 아버지로 둔 친구네 집에서였는데, 그 친구는 나에게 비디오라는 것을 보여준다며 안방으로 끌고 갔다. 아바의 공연실황을 담고 있는 비디오였다. 아바의 노래 <Thanks for the music>이 흘러나오고
웃거나 혹은 구라치거나, <라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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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원고료라는 녹을 먹어본 많지 않은 경험 중, 이렇게까지 도대체 뭘 쓰지 하고 머리를 굴려본 적도 없었고, 굴렸는데 잘 안 돌아가서 절망한 적도 많았고, 기껏 굴렸는데 편집 단계에서 슥슥 바뀐 적도 없었고, 마감에 맞춰 보내놓고 잘릴지 말지 스트레스 받아본 적이 없었고, 이렇게까지 마음이 부서진 상태에서 영화를 보며 글을 만들어본 일도 없었습니다.<마네킨2>를 다시 보다가, 갑자기 와락 울고 싶어졌습니다. 한없이 사랑스럽게만 느껴지던 마네킨 미녀 크리스티 스완슨이 천년 동안의 잠에서 깨어나 80년대의 新문물들을 보면서 내내 ‘amazing! I love 20th century!’라고 꽥꽥 소리질러대는 것을 보다가 갑자기 그녀의 텅 빈 플라스틱 주먹으로 뒷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아니, 고작해야 깃털침대, 샌드위치, 네온사인 따위를 보고서 저런 말이 저렇게 쉽게 나온단 말이야. 마치 늘 공부 안 해도 잘해서 부럽던 친구가 남 눈 몰래 열나게 단어장 외우는 광경
김현진의 오! 컬트 <마네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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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벌어지는 학술 심포지엄이니 토론회니 이름 붙은 행사들은 대개 가장 진지한 형태의 코미디들이다. 내 생각에, 한국의 학술이 갖는 내용과 수준은 도무지 그렇게 많은 심포지엄이나 토론회를 감당할 형편이 못 되는 것 같다. 그런 학술 행사의 목적이란(그런 행사가 내건 목적과는 애당초 상관없이) 그런 학술적 행사의 개최나 참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개최와 참여 자체에 있다. 행사 진행이 예정 시간보다 늘어지고 있음이나 끊임없이 환기시키며 행사의 실제 목적을 벗어나지 않으려 분투하는 진행, 아무런 내용이 없거나 너무나 지당해서 새삼 발표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발표, 이른바 학술계의 위계에 입각한 비굴한 아부와 타협의 이런저런 변형으로서 토론, 그리고 그 모든 코미디의 총화인 술잔을 휴지로 받쳐들고 분주히 사교에 몰두하는 리셉션!잡글이나 쓰는 처지인지라 그런 코미디의 주최나 참여를 일삼지 않아도 되는 걸 천만다행이라 생각하지만 이런저런 인간적 인연들을 무작정 거스를 순 없어 빼고 미루
학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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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프간이여…아프리카여…두 이란 감독의 영화가 한데 묶여 오는 3월1일 서울 동숭동 하이퍼텍 나다에서 동시에 개봉한다. <에이.비.씨 아프리카>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 작가로 부상해 97년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아프리카 우간다를 찾아가 내전과 에이즈에 시달리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삶을 기록한다. 이제껏 사회문제를 정면에 내세운 적이 없는 이 거장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반면 이란 민주화운동으로 6년간 복역한 뒤 줄기차게 사회참여적인 영화를 만들어온 `운동권` 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칸다하르>에서 내전과 기아로 벼랑에 내몰린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삶을, 기이한 이미지에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영화가 사회현실을 어떻게 비춰야 하는지, 또 그 현실에 어떤 작용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새삼 생각해볼 거리들을 던져주는 많지 않는 기회다.<칸다하르>는 영화의 내용이 주인공 여배우의 실제 이야기와 흡사하다. 주인공 나파스
두 이란감독 영화 3월1일 동시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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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y 죽마고우인 세 친구 중 순둥이인 대런(제이슨 빅스)에게 지적이고 섹시한 애인이 생긴다. 그런데 웨인(스티븐 쟌)과 제이디(잭 블랙)는 대런의 여자친구 주디스(아만다 피트)가 영 마뜩찮다. 주디스가 대런을 자신의 노예나 꼭두각시쯤으로 생각한다는 데 경악한 그들은 어떻게든 둘의 사이를 떼어놓으려 하지만, 주디스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때마침 대런의 첫사랑인 샌디가 돌아오지만, 그녀는 곧 수녀가 될 몸. 이들은 대런과 샌디의 만남을 주선하고, 시간을 벌기 위해 주디스를 납치하기로 한다.■ Review 패럴리 형제는 섹스와 배설물로 관객을 웃겼다. 그땐 그게 신선했다. 정작 패럴리 형제 당사자들은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이후 한결 점잖아졌지만, <아메리칸 파이>로 정점에 오른 섹스코미디의 제작 붐은 아직도 가실 줄 모른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했던가. <악마같은 여자>도 패럴리식의 저속한 농담에 매혹된 영화다. 하지만
[Review] 악마같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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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y 지방대학 영화과 교수인 김(설경구)은 유부남이지만 아내와 자식들과는 잠시 떨어져 혼자 살고 있다. 그에게는 중학교 교사인 영희(김소희)라는 애인이 있다. 영희는 김에게 그녀의 고향에 함께 내려가 부모님에게 인사드릴 것을 요구하지만 김은 주저한다. 결국 마지못해 영희를 따라나선 김은 그녀를 여관방에 남겨둔 채 홀로 돌아오고 만다.■ Review 데뷔작 <내 안에 우는 바람>(1997)에 이은 전수일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가 드디어 우리 앞에 도착한다. 완성되고 나서 거의 3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도착한 이 영화는 오염된 진흙탕 속에서 퍼덕거리던 철새처럼 애처로워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영화가 자리를 잘못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의 우리가 역사와 현실을 장르 속으로 밀어넣고 덧없는 웃음과 거짓 비장함이라는 양날의 칼로 곤죽을 만드는 동안, 전수일은 우리의 영화가 왜 텅 빈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일
[Review]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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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y 2000년 3월, 키아로스타미는 우간다 땅에 발을 내디딘다. 고아문제가 심각한 이곳에서 그는 고통 앞에 선 아이들을 만나는 여행을 하며 그것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Review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라는 영화감독에게 어린이는 남다른 중요성을 갖는 존재들이다. 키아로스타미는 1969년, 이란의 아동·청소년 지능개발기구 안에 영화 부서를 신설하는 데 일조했고 바로 그곳을 기반으로 첫 단편을 만들었으니 그의 영화 경력부터가 어린이와의 관계 속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또 우리는 기억한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에서 보여준 여리고 맑은 눈동자에 대한 키아로스타미의 공감 어린 시선과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1992)에서 어린이의 행방을 쫓던 그의 염려 섞인 발걸음을. 그러고보면 키아로스타미가 고아문제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을 불러모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고 또 그에 응답한 것은 거의 필연적인 일처럼 보이기까지 한다.영화는
[Review] ABC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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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y 운이 좋다면, 48일 뒤 대학 졸업장을 타게 될 삼총사 데이브(데본 사와), 샘, 제프. 이들은 폭탄소동, 전산망 해킹, 시험지 탈취작전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 대학 4학년까지 진급해온 ‘커닝의 달인들’이다. 그러나 꼬리도 길면 잡히는 법. 기말고사장에서 옆자리에 앉은 미모의 여학생 안젤라(제임스 킹)에게 치근대던 데이브는 마침 그녀를 스토킹하던 변태, 이단(제이슨 스왈츠맨)에게 커닝현장을 목격당한다. 안젤라에게 전해준 전화번호와 이름이 적힌 시험지를 증거로 데이브와 그의 친구들을 협박하는 이단. 이단의 요구는 이들의 발빠른 정보수집력을 이용, 안젤라와 자신을 엮어달라는 것. 그러나 데이브는 임무를 망각한 채 안젤라와 사랑에 빠지고, 이 사실을 안 이단의 집착은 질투를 기름삼아 더욱 활활 타오른다.■ Review 기우 하나. 이 영화를 <비포 선라이즈> <웨이킹 라이프>로 유명한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91년작 <슬랙커>와 혼동하지 않길 바
[Review] 슬랙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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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y 아프가니스탄 출신으로 현재는 캐나다에 살고 있는 저널리스트 나파스(닐로우파 파지라)는 칸다하르에 거주하는 여동생으로부터 20세기 마지막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날 자살하겠다는 편지를 받고 그녀의 죽음을 막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고향 칸다하르로 향하는 한 가족의 네 번째 부인으로 위장하여 여행길에 오른다. 그러나 강도를 만나 그녀는 혼자 사막에 남겨지고 이번에는 코란학교 퇴학생인 칵(사두 테이모우리)의 안내를 받아 다시 칸다하르로 향한다. 우물물을 잘못 마셔 병을 얻은 나파스는 동네의 진료소를 찾아갔다가 무자헤딘 출신의 의사 사히브(하산 탄타이)를 만나 도움을 얻는다. 나파스는 한 결혼식 행렬에 몸을 감춘 채 동생을 찾아가지만 개기일식의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Review 9·11 테러사건이 마흐말바프의 <칸다하르>를 그 이전과는 상이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해석의 장으로 이동시켜놓았음은 분명하다. 기억의 저편에 자리하고 있던 아프가니스탄
[Review] 칸다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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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y 뉴저지 교도소에서 풀려난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은 출감하자마자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세곳의 현금이 모이는 철통 같은 금고를 터는 계획을 추진한다. 세 카지노의 주인은 대니가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전처 테스(줄리아 로버츠)의 애인이자 냉혈한 사업가인 테리 베네딕트(앤디 가르시아). 대니는 할리우드 배우들에게 카드를 가르치며 지루한 나날을 보내던 단짝 러스티 라이언(브래드 피트)과 재결합하고 멤버 규합에 나선다. 물주 루벤(엘리엇 굴드), 폭파전문가 배셔(돈 치들), 곡예사 옌(샤오보 퀸), 운송담당 쌍둥이 형제 터크(스캇 캔)와 버질(케이시 애플렉), 베테랑 사기꾼 사울(칼 레이너), 보안전문가 리빙스턴(에디 제미슨), 천재 소매치기 라이너스(맷 데이먼) 등은 대니와 러스티의 치밀한 계획 아래 1억5천만달러가 걸린 불가능한 미션에 착수한다.■ Review 대니 오션의 대담무쌍한 카지노 강도계획에는 열한명의 최정예가 필요하다. 그들은 핵무기고 수준의 보안시스템을 갖춘
[Review] 오션스 일레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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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y 1964년 로마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캐시어스 클레이(윌 스미스)는 세계 헤비급 챔피언 소니 리스턴에게 도전한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는 명언을 던지며 링을 오른 알리는 통쾌한 KO로 왕좌에 등극한다. 말콤 엑스의 친구이며, 이슬람교 신자인 알리는 그뒤 자신의 이름을 무하마드 알리로 바꾼다. 67년 알리는 징집을 거부한다. 베트남에 가서 베트콩과 싸우느니, 이 땅에서 흑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당신’들과 싸우겠다고 선언한다. 알리는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국내에서의 시합은 물론 출국까지 금지된다. 전성기인 20대 후반을 흘려보낸 알리는 대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링에 복귀한다. 재기전에서는 승리했지만 71년 조 프레이저와의 타이틀전에서는 15회 판정패로 무기력하게 물러난다. 알리는 프레이저에게 재도전하기 위해 2년을 기다리지만, 타이틀은 다시 24살의 조지 포먼에게 넘어간다. 74년 자이르에서 조지 포먼과 타이틀전을 갖기로 결정되었지만, 현실적인 난관들이
[Review]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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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y 한때 범죄조직과 관계맺었던 여인 경선(이혜영)은 도박에 빠진 남편이 남긴 빚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택시운전을 하며 성실히 살아보려 하지만 빚독촉을 피할 길이 없다. 어느날 경선의 택시와 부딪힌 빨간 스포츠카, 차를 몰던 젊은 여자 수진(전도연)은 사고현장에 휴대폰을 흘린다. 휴대폰을 찾으러 경선을 만나러간 수진이 경선의 빚을 받으러온 칠성파 건달들에게 납치되면서 경선과 수진은 가까워진다.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수진은 투견장을 관리하는 전직 권투선수 독불(정재영)에게 맞고 사는 데 진력이 났다. 독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던 수진은 경선에게 제안을 한다. 며칠 뒤 투견장에 가짜 경찰이 들이닥치는 사건이 날 테니 그때 돈을 들고 튀자는 것이다. 그들의 계획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Review 류승완 감독이 보기에 세상은 너무 위험하다. 사람들은 투견장의 개들처럼 서로 물어뜯지 않으면 살 수 없다며 으르렁댄다.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보여준
[Review] 피도 눈물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