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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영화를 찍고 싶다는 스와 노부히로 감독의 제의는 한통의 편지에 실려왔다. 편지를 받을 당시 나는 스와 감독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주위의 도움으로 그에 대한 정보를 조금 얻었고, 그의 작품을 서둘러 보게 되었다. 그의 작품을 처음 보고 난 뒤 나는 약간 당황했다. 영화의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했고 그런 모호함에 관해 영화들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당혹감 역시 일반적인 작품에 익숙해져 있는 나의 편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됐건 솔직함과 겸손함이 배어 있는 편지 한통에 나는 스와 노부히로 감독과 작업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품게 되었다. 결정을 내리자마자 모든 일들은 순식간에 진행됐다.나는 나의 연기를 한다… 나란…작업을 함께하고 싶다는 답장을 띄우자마자 이틀 뒤에 스와 감독은 한국으로 나를 찾아왔다. 하루 동안 시간을 보내며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었지만, 정작 이번 영화의 진행 방법이나 작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았다. 다만 스와 감독은
배우 김호정이 쓴 <응시 혹은 2002년 히로시마>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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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를 대표할 미래의 거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스와 노부히로(42) 감독은 전통적인 양식의 영화를 배반하는 ‘다른’ 영화를 줄기차게 모색해왔다. 사적인 실험영화로 영화에 발을 들여놓은 스와는 이시이 소고 등 독립영화 감독의 작업을 도우면서 수련했다. 그의 장편 데뷔작 <듀오>는 조금씩 멀어져가는 동거남녀의 심리적 궤적을 픽션과 다큐멘터리 중간에 서 있는 카메라로 담아 호평받았다. 제1회 전주영화제에서 소개된 는 이혼남과 동거하는 여성과 어느 날 갑자기 세 번째 식구가 된 남자의 아들 사이에 생겨나는 깊지도 얕지도 않은 감정의 계곡을 그린 작품. 세 번째 영화 는 <히로시마 내 사랑>의 리메이크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여기서 스와 노부히로는 전작 두편에 비해 완성된 각본의 설계에 충실하면서도 인간관계의 연구라는 기조는 지속했다.배우의 즉흥적 표현과 능동성을 적극 활용하며 영화 만들기 과정 자체를 개방하는 작업 방식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스와 노부히로에게 <응시
스와 노부히로 감독과 <응시 혹은 2002년 히로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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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심사관>으로 아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았던 배우 주성치가 10년 만에 다시 한국에 왔다. 이번에는 그가 감독, 각본, 주연을 맡은 자기 영화 <소림축구>를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원래 그가 타기로 돼 있던 비행기는 4월22일 서울 도착 2시 반 비행기. 그러나 주성치가 인천공항에 내린 것은 예정돼 있던 기자회견 시간이 훌쩍 넘은 저녁 5시 반이었다. 홍보사쪽은 “전날 있었던 제32회 금마장영화제에서 <소림축구>가 감독상, 남우주연상, 작품상, 남우조연상 등 7개 부문의 상을 휩쓴 후유증”이라고 밝혔고, 그 후유증이란 다름 아닌 ‘축하주 과음’이었음이 알려졌다. 기자들에게 점심까지 사며 “일생에 그렇게 많은 상을 한꺼번에 받기는 처음이었다. 한번 있는 일이니 봐달라”라고 다음날 오전 새로 마련된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를 한 주성치에게 사람들은 모두 미소를 보냈다. 그날 오후, 일찍이 <소림축구>를 본 뒤 주성치와 만
강우석, 주성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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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4회를 맞은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시상식에선 이채로운 풍경이 연출됐다. 이 공모전의 공동 주최자인 한석규씨가 “받아주실 거죠?” 하는 애교스런 멘트와 함께 두 수상자에게 꽃다발을 건넨 것이다. 그렇다. 당선작과 가작, 올해의 두 수상자는 모두 여성들이다.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인지도를 높여 온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에는 지난 해의 339편 보다 크게 늘어난 413편의 시나리오가 접수됐다. 당선작은 한 여인의 사랑과 배신에 관한 기억으로 되짚어 보는 살인 사건을 그린 혼합 장르물 <마늘>이다. 가작은 시장의 매춘 여성에게 결박된 청년의 치명적인 사랑 이야기 <포이즌>이다. 두 작품 모두 ‘강한 여성’이 이끄는 ‘스릴러’이며, 작가도 여성들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올해의 심사는 한석규씨와 <접속> <텔미 썸딩>의 장윤현 감독, <정사> <순애보>의 이재용 감독이 함께 했다.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은 영화배우 한석규
제4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 발표 Girls, Be Ambit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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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귀숙씨는 타고난 글쟁이다. 한자리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극장에 가는 대신 비디오로 보는 걸 즐긴다면서도, 글 쓸 때는 한번 자리에 앉으면 10시간을 훌쩍 넘긴다고 한다. 어깨 인대가 늘어나서 병원을 드나들어야 할 만큼이다. 지나온 직업도 모두 글을 쓰는 일이었다. 다큐 작가, 대필 작가, 구성 작가 등등. 방송사 일을 그만두고 시나리오 쓰겠다고 집에 들어앉은 것이 2년 전 일이다. “내 인생에 계획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으로 삼십줄에 들어 ‘시나리오 작가’라는 직함을 달았고, 영상작가 교육원에서 작가수업을 받으면서, 장단편 10편의 습작을 남겼다. 관객으로서는 <중앙역> <천국의 아이들> <집으로 가는 길>처럼 따뜻한 영화를 좋아하지만, 작가로서는 장르와 스타일 가리지 않고 더 많은 훈련을 쌓아야 할 때라고. <마늘>은 처음 시도한 스릴러지만, 낙방해도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공을 들인 작품. “당선이 끝이 아니라, 고생의 시작
당선작 <마늘> 한귀숙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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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마늘> 시놉시스직장을 그만두고 고향 월하도로 내려온 은이는 심한 불안증세를 보인다. 월하도로 가는 여객선에서 우연히 접한 신문기사엔 그녀의 애인인 준서와 그의 여자 세린의 살인사건이 실려 있다. 아무도 모르게 살인현장에서 가져온 칼을 바다에 던진 은이는 버스 안에서부터 자신을 지켜보던 남자 영훈이 거추장스럽기만 하다.하루가 멀다하고 은이 집에 찾아오는 전경 영훈은 은이를 보자마자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반말을 해대고, 은이는 그런 영훈에게서 준서를 본다. 영훈 역시 애인의 변심으로 마음고생을 하는 중. 이들은 서로의 닮은 상처를 위로해간다.어느날 영훈에게로 부쳐진 옛 애인의 편지 때문에 은이와 영훈의 사이는 급속히 냉랭해지고, 때맞춰 강력계 민 형사와 조 형사가 월하도 은이 집에 들이닥친다. 준서와 세린의 유력한 살인용의자로 지목된 은이는 완강하게 자신의 혐의를 부인한다. 서둘러 서울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은이는 살인현장에서 가져온 준서와 세린의 섹스비디
당선작 <마늘> 시놉시스 &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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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페미니스트’ 작가를 만나게 된 건 행운이다. 최근 한 여성 평론가가 한국영화 속에서 여성이 사라지고 있다고 개탄했지만, 그건 정현주씨가 나타나기 전의 일이다. 시나리오를 배우고 쓰기 시작한 지 올해로 2년째인 정현주씨는 역대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 당선자가 남성뿐이었다는 사실에 주춤거려지기도 했다지만, “한국영화 사상 유례없는 악녀”를 만들고 싶어 구상했다는 시나리오 <포이즌>으로 보란 듯이 ‘등단’에 성공했다. 정현주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업주부’였다. 물론 지금도 주부이고, 매인 직장이 없는 건 마찬가지지만, 시나리오 쓰는 걸 ‘업’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으니, 큰 변화가 생긴 셈이다. 정현주씨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이른 결혼 뒤에 한동안 가정을 돌보는 일에 묻혀 살았다. 틈틈이 소설 습작을 하고, 극장을 드나들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 두 가지 취미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발견했으니, 바로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었다. 잔잔한 드라마 <집으로…
가작 <포이즌> 정현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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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포이즌> 시놉시스돌아가신 큰아버지의 약국을 맡게 된 상우는 출근 첫날, 재래시장 화장실에서 어떤 남자와 섹스를 하는 미순을 보게 된다. 음습하고 지저분한 타일 벽에 기대어 격렬한 섹스를 하는 미순과 우연히 눈이 마주치게 된 것이다. 냉소적이면서도 섬뜩한 눈빛 아래 묘한 미소를 머금은 그녀의 첫인상은 그렇게 상우의 뇌리에 강하게 남는다.시장통의 생선가게 주인인 미순은 알게 모르게 매춘을 하고 있었으니, 모두 그녀의 아랫도리를 구경하는 게 소원일 지경이었다. 그런 미순이지만, 유독 정육점 철구한테만큼은 차가웠다. 참다 못한 철구는 미순을 겁탈하려고 하고, 미순 곁을 서성이던 마영달이 그를 저지하는 소동이 벌어진다. 그 사건을 계기로 상우는 미순과 뜻밖의 병원 동행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식물인간이 된 미순의 남편 규식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규식은 노름판에 마누라를 내돌리는 인간 말종이지만, 미순은 그런 남편이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상우와 미순은
가작 <포이즌> 시놉시스 &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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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째를 맞은 전주국제영화제(조직위원장 최민)가 2일 막을 내렸다. 경쟁부문인 `아시아 독립영화 포럼'의 `우석상'(상금 1만 달러)은 홍콩 얀얀막 감독의 <형>에 돌아갔고, `디지털의 개입' 부문의 `디지털의 모험상'(상금 5천 달러)은 체코 블라디미르 미할렉 감독의 <엔젤역 출구>가 수상했다. 또 관객들의 인기투표 결과 주어지는 최고인기상은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돌아갔다. 이번 영화제에서 화제작은 단연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였다. <죽어도…>는 일흔이 넘어 배우자와 사별한 뒤 만난 두 노인의 사랑과 섹스를 다룬 작품. 노인들이 주인공인 만큼 뭔가 좀 칙칙해 보일 거라는 선입견을 깨고, 유머스럽고 자연스럽게 노년의 성을 표현했다.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으론 처음으로 황금곰상을 수상한 <센과 치히로의…>
`죽어도 좋아` 등 시선집중 미 독립영화들도 수작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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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에단 코엔 형제의 10번째 작품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2001)가 3일 서울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에서 개봉한다. 코엔 형제는 <바톤 핑크>(1991)와 <파고>(96)에 이어 이 작품으로 칸 영화제에서 세 번째 감독상을 수상했다. 지금까지의 작품에 비해 유머를 좀 덜어낸 대신 줄거리의 짜임새를 더 강조했다. 이발사 에드(빌리 밥 손튼)의 일상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그는 처남 소유의 이발소에서 일한다. 과묵하고 침착한 에드로선 말 많은 처남과 손님들의 수다 듣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어느 날 두 가지 새로운 계기가 닥친다. 하나는 백화점 판매원인 아내 도리스(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외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에드는 아내가 직장 상사 빅데이브(제임스 갠돌피니)를 집에 초대했을 때 육감으로 아내가 그와 외도중임을 알아챈다. 다른 하나는 어느 뜨내기 손님이 수다를 떠는 중에 흘린 `드라이 크리닝'이라는 새로운 사업에 관한 정보다. 그가 사업 아이
일상이라는 이름의 감옥 현실속에서 비상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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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드러운 미소는 변함이 없다. 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표정, 듣는 이의 가슴을 다독이는 목소리, 영화출연작이 없던 지난 3년 동안에도 한석규의 이미지는 늘 우리 주변을 맴돌았다.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시상식을 위해 한겨레신문사 계단을 올라오는 그의 모습에서 뭔가 낯선 것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참으로 기이해 보인다. 그는 마치 어제 본 영화에서 걸어나온 사람처럼 친숙하게, 반갑게 인사를 한다. 실은 배우 한석규의 힘이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영화라는 판타지 속에 있었지만 언제나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사람으로 살았다. 친해질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남자로, 한석규는 한참 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켰다.그러나 그도, 출연작이 없던 지난 3년이 부담스러운 건 분명했다. 시상식이 끝나고 인터뷰를 하자는 말을 건네자 “무슨 말을 하겠어요. 별로 할말이 없어요”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3년간 왜 영화에 나오지 않았느냐?”고 물을 게 뻔한데 그게 쉽게 답
3년만에 영화로 돌아온 한석규를 만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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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이중간첩>5월부터 촬영에 들어갈 한석규의 신작 <이중간첩>은 <공공의 적> 시나리오를 썼던 김현정, 백승재 팀에 심혜원 작가가 합류해 내놓은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은 김현정 감독은 영화아카데미 출신. 한석규는 이 영화에서 어떤 인물이 되어 관객과 만날까? <이중간첩>은 어떤 점에서 시나리오 고르는 데 까다롭기로 이름난 한석규의 마음을 사로잡았는가?“남북관계를 소재로 한 영화로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가 있었잖아요. <쉬리>가 남북 대결구조를, <공동경비구역 JSA>가 화해를 다루고 있는데 <이중간첩>은 남북문제를 내부에서 들여다보는 영화예요. 내부의 적이 있다는 시각인 거죠. 통일을 원하는 것처럼 말하면서도 남북의 권력층이 분단을 체제유지의 도구로 이용하느라 실제로는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권력자에게 통일은 그저 구호에 지나지 않고 통일을 막는 적
3년만에 영화로 돌아온 한석규를 만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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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덜 월레스 감독의 <위 워 솔저스>는 지난 1965년 11월14일 베트남 아이드랑 계곡 엑스레이 지역에서 벌어졌던 미군과 월맹군 사이의 72시간에 걸친 전투를 다룬 영화다. 한국전쟁 참전 경험이 있는 할 무어(멜 깁슨) 중령은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공수부대원 395명을 이끌고 아이드랑 계곡에 헬기를 통해 고공침투한다. 이 지역은 불과 11년 전인 1954년 프랑스의 연대 병력이 인도차이나군에 전멸당한 곳. 그들을 맞이한 2천명의 월맹 정규군은 바로 그 빛나는 전과를 기록했던 부대다. 무어의 부대는 장비와 병력과 전투경험 등 모든 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월맹군에 맞서 헬기와 폭격기의 지원을 받으며 사흘 밤낮 사투를 벌인 끝에 이 죽음의 계곡을 점령한다. 랜덜 월레스 감독이 <브레이브 하트>와 <진주만>의 시나리오를 쓰고 <진주만>의 제작을 맡았던 인물임을 상기한다면 영화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무어 중령이 퇴역한 뒤 당시 종
미군과 월맹군 `3일간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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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기자로 일하는 기쁨이자 권리 가운데 으뜸은 일반 대중보다 먼저 한국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화 행위 결과물들을 맛보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화가 극장에 걸리기 전에 미리 보는 혜택도 그중 하나로, 많을 때는 하루 서너번의 시사회로 해가 진다. 월급 받으며 공짜로 영화를 보러 다니는 건 현대판 `음풍농월' 격이라 할 만한데, 사실을 알고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남보다 앞서서 영화를 볼 때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라, 정보를 널리 알리고 입소문을 내기 전에 정확한 감상과 비평이 뒷받침 돼야 한다. 배부른 소리일지 모르나, 일이 된 영화보기는 괴로울 때가 더 많다. 시사회에서 본 영화를 다시 개봉관에서 보거나 비디오로 볼 때 훨씬 즐거워지고 작품평에서도 후해지는 경우가 꽤 된다. 비판을 위해 곤두세운 신경을 끈 마음이 훨씬 느슨해지기 때문이지 싶다. 시사회장 풍경도 편하게 영화보기를 방해하는 한 요인이랄 수 있다. 새 상품을 출시하는 제작사로서는 좋은 평, 재미있다는 기사 한
제작자의 `시대코드 따라잡기` 속타는 변신 몸부림에 착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