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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근대성-여성, 삼각축의 불가해한 매력
미조구치 겐지에서 이치가와 곤까지 일본 고전영화 속의 여성
Ten Dark Women
이치가와 곤 / 1961년 / 103분 / 35mm / 아시아특별전
한 남자가 있다. 아내와 9명의 정부 사이에서 줏대없이 왔다갔다하는 TV 프로듀서 카제 마츠키치는 그의 정부들이 자신을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그는 급기야 호색한 남편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사업에서 즐거움을 찾던 아내에게 도움을 구한다. 영리한 아내는 덜미를 잡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정부들은 자기 꾀에 빠져 여기에 걸려들고 만다. 누아르풍의 화면을 보여주는 〈1명의 아내, 9명의 정부>는 1960년대 영화라는 것을 믿기 힘들다. 정교한 유머감각이 그렇고 스타일이 그렇다. 열명의 여성들이 한 남자를 실질적으로 ‘공유’하면서 때로 라이벌이 되고 때로 친구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TV방송사라는 배경은 여성의 노동, 근대성의 상징으로 비춰 더욱 흥미진진
4가지 욕망코드로 골라보는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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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관계들의 상처
세상 끝까지> To thr other End of the World
<리사 마도에린 / 스위스 / 2003년 / 28분 / 베타 / 다큐멘터리 / 여성영상공동체
한국계 스위스인인 리사 마도에린 감독의 자전적 다큐멘터리 <세상 끝까지>는 자기 어머니의 과거를 통해 가족 또는 관계에 대한 여성의 욕망을 이야기한다. 30분이 채 되지 않는 이 짧은 다큐멘터리는 옛날 것으로 보이는 젊은 연인의 사진을 비추며 시작한다. 그들은 마도에린 감독의 친부모, 아키오 이치가와와 김명희다. 마도에린 감독은 클럽 가수였던 어머니와 당시 딸 셋을 둔 가장이었던 아버지가 어떻게 사랑을 시작했고 끝을 맺게 됐는지, 어머니와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하나하나 기록해나간다. “세상 끝까지라도 당신을 쫓아가겠어”라는 달콤한 사랑고백을 한 아버지와 그런 남자의 아이를 결국엔 혼자서 낳아야 했던 어머니. 그리고 딸은, 두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 친아버
4가지 욕망코드로 골라보는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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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인 활동가로 불러주오
<벌거벗은 페미니스트> The Naked Feminist
루이사 아칼리 / 호주 / 2003년 / 58분 / 베타 / 다큐멘터리 / 영페미니스트 포럼
<벌거벗은 페미니스트>가 선택한 장은 포르노 산업이다. 장편 극영화 <원 테이크>를 만들었으며, 독립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루이사 아킬리는 한 잡지에서 포르노 스타 니나 하틀리에 관한 기사를 읽고 포르노 산업 내의 페미니즘 가능성을 발견하고는 곧 <벌거벗은 페미니스트>의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이 다큐멘터리는 오랜 기간 남성들의 시각적 쾌락에 종속돼온 것으로 악명 높았던 포르노 산업 속에서 오히려 ‘전복적인’ 페미니즘 투사들을 발견한다. 포르노 스타 베로니카 하트, 캔디다 로얄, 글로리아 레오나드, 애니 스프링클, 베로니카 베라 등은 자신들의 긍정적인 자부심과 세계관, 활동 방식, 작업 형태들을 준거로 포르노그라피가 단순히 남성 전유물
4가지 욕망코드로 골라보는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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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욕망은 지금 몇시인가?”
아마도 부산영화제나 부천판타스틱영화제를 이런 식으로 재편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4월2∼9일)의 섹션 구획을 임의로 해체해 ‘여성의 욕망은 지금 몇시인가?’라는 조금은 억지스러운 시침으로 상영작을 분류하자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성적 욕망, 문화적 욕망, 정치적 욕망, 가족·관계에의 욕망이란 그물망에 상영작들이 대체로 분류됐다(아시아 단편경선과 성장영화 정도를 빼놓고 아시아특별전과 감독특별전까지 이를 적용할 수 있었다). ‘여성’이란 이름으로 말해야 하고, 해야 할 것이 그만큼 곳곳에 산적해 있다는 뜻일 게다. ‘의외의 일’이란 이런 분류가 가능했다는 것이 아니라 이 분류를 통해 좀더 명확히 드러나는 변화와 차이다. 예컨대 페미니즘과 웬만해선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어 보였던 포르노가 어느 순간 페미니즘의 무기가 되어 있고, 자신의 몸을 토대로 한 성적 욕망이더라도 그 여성이 어느 땅에서 태어났느냐, 어떤 계급에 속해 있느냐에
4가지 욕망코드로 골라보는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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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 떨리는 몸과 멍한 눈빛으로 소년은 휴대폰을 손에 꼭 쥐고 있다. 그는 방금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저 살아 있어요.” 그의 주위에, 역의 잔해 속에는 200구의 사체가 널려 있고, 전화가 울리지 않은 200명의 가족의 고통이 있다. 내 옆사람은 신문을 다시 접고, 마드리드 공항은 비행기의 날개 아래에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은 일요일 아침이고, 나는 카나리아 제도를 향하고 있다. (3월11일 마드리드 기차역 폭탄테러는 약1400명의 사상자를 낳았다.편집자)
에스파냐 남쪽 끝, 아프리카 해안을 마주보는 곳에 위치한 이 제도에서 열리는 제5회 라스팔마스영화제(3월12~20일)에 초청을 받은 것이다. 나는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사진)를 청중에게 소개하고 어디든 빠지지 않는 김동호 위원장, 장선우, 정재은 감독, 그리고 막 최초의 스페인어 한국영화 서적을 엮은 알베르토 엘레나 교수 등과 함께 토론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이틀 전부터 나는 고민해왔다. 올 세기 들어
[외신기자클럽] 스페인의 이몽룡 (+불어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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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감독 알모도바르?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사진)의 <나쁜 교육>(Bad Education)이 자국 스페인 박스오피스에서 선전하고 있다. 3월19일 세계 최초로 개봉한 <나쁜 교육>은 주말 3일 동안 145만달러를 벌어들여, 알모도바르의 작품 중 가장 좋은 오프닝 성적을 기록했다. 오는 5월12일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이 영화는 1960년대 스페인의 가톨릭 학교를 시작으로 두 소년이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마이클 윈터보텀 신작
<이 세상에서> 등 주로 다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한 극영화를 만들어온 마이클 윈터보텀이 축구영화 <골!>의 감독으로 결정됐다. <골!>은 세계적인 스타를 꿈꾸는 LA 출신의 젊은 라틴계 축구선수의 이야기. 총 3부작으로 제작될 예정이며 마지막 편은 월드컵 시즌에 맞춰 2006년에 개봉한다. 주연은 <이 투 마마> <프리다> 등에 출연한 디에고 루나가 맡
[해외단신] 흥행감독 알모도바르?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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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는 <체인지>라는 한국영화부터 멀게는 <존 말코비치 되기>의 재기발랄함까지, ‘몸 바꾸기’의 판타지는 코미디영화의 오랜 소재 중 하나다. <프리키 프라이데이> 역시 이 오래된 아이디어를 웃음의 도구로 끌어낸다. 엄마인 테스와 딸인 애나는 ‘보수적이고 경직된 커리어우먼 엄마’와 ‘반항기로 똘똘 뭉친 틴에이저 딸’의 관습적인 구도를 형성한다. 테스의 재혼을 앞두고 으르렁거리던 그들은 중국 레스토랑에서 받은 포천쿠키의 마력으로 서로의 몸을 바꿔쓰게 된다. 모녀는 몸이 되돌아올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서로의 흉내를 내며 살아가는 동시에 몸을 되찾을 해결책도 찾아야 한다. 문제는 서로를 흉내내기에 둘은 너무도 다르다는 거다.
<프리키 프라이데이>의 웃음은 바로 이 ‘다름’의 묘약이다. 그리고 그 웃음은 심리치료사인 엄마가 딸의 몸을 하고, 자유분방한 록밴드 멤버인 딸이 엄마의 몸을 하고 서로의 입장을 역동적으로 파괴하는 그 혼란스런
다름의 묘약이 주는 웃음, <프리키 프라이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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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감호소에서 범죄자들의 심리상담을 맡고 있는 정신과 전문의 미란다(할리 베리)는 악마에게 강간당한다고 주장하는 환자 클로이(페넬로페 크루즈) 때문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폭풍우가 거세게 몰아치던 어느 날 밤, 집으로 돌아가던 미란다는 도로가 끊기는 바람에 원래 가던 길이 아닌 우회로를 통과하게 된다. 그리고 우회로 한복판에서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흐느끼고 있는 피투성이 소녀를 보게 된다. 그녀를 만난 직후, 미란다는 집이 아닌 감호소의 독방에서 깨어난다. 사랑하는 남편이자 감호소장 더그의 살해범으로 3일 동안 구금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녀에게 있어 3일 동안의 기억은 송두리째 사라진 상태다.
마티외 카소비츠의 신작 <고티카>를 보고 있노라면 <스크림>에서 공포영화의 규칙들을 열거하며 농담 따먹기를 즐기던 주인공들이 저절로 떠오른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오컬트 무비에서 사이코스릴러로, 그리고 동양적 한을 접목시키는 데 골몰한 듯한 최근
공포영화의 종합선물세트, <고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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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하자 <폴리와 함께>의 주인공 루벤 페퍼(벤 스틸러)는 행복한 신혼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아내의 이름은 ‘폴리’(제니퍼 애니스톤)가 아니라 ‘리사’이다. 신혼의 꿈은 아내가 신혼여행지에서 만난 스쿠버다이버와 바람을 피우면서 순식간에 파경에 이른다. 그것은 예정되어 있던 것이다. 두 번째 만나게 되는 여자의 이름이 비로소 폴리이다. <폴리와 함께>는 한번의 가짜 이후에야 진정한 진짜를 찾게 된다는 다소 계몽적인 할리우드 로맨틱 서사를 끌어간다. 그리고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자기 변화의 감동적인 모티브와 실수 연발의 웃음 코드들이 배치되어 있다. 우선은 그 캐릭터들의 상충되는 면이 호기심을 자아내고, 그 성격차가 웃음을 유발하는 촉진제가 되며, 다시 진지한 사건의 갈등에 이른 뒤에, 중요한 일생일대의 감정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도착하게 된다.
말하자면, 루벤은 삶을 위험도의 확률로 계산하며 살아가야 하는 손해보험사정사이고, 조금만 맞지 않는 음식을 먹어
평이한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 <폴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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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제도에 대한 독한 회의(懷疑)가 그 주제만 아니라면, 결혼제도의 인위적 성격은 로맨틱코미디가 꽃피기 가장 좋은 환경이다. 따라서 아무리 극단적으로 다른 커플이라도 결혼반지라는 절대반지의 구속에 스스로를 변모해내게 마련인 것이다. 이처럼 결말이 이미 내장되어 있는 바에야 그 설정이란 여하간 상관없는 편이다. 여기, 24살의 바람기 다분한 청년 상민(김래원)과 16살의 보은의 결혼도 그렇다. 건강이 악화된 할아버지 때문에 억지로 하기 싫은 결혼을 ‘어쩌다 보니’ 했지만 그 다음은 모두 진짜 부부가 되기 위한 도상일 뿐인 것이다.
여기서 개화기도 아닌 요즘 세상에 정혼 같은 것이 도대체 가능한 것인가 하는 따위의 질문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포인트는 ‘정혼’을 통해 파격적으로 삭감된 신부의 ‘나이’이다. 그러니까 ‘낭랑 18세’가 아니라 ‘낭랑 16세’ 정도랄까. 그러나 이 ‘두살’의 의미는 적지 않다. ‘성년’과 ‘미성년’의 경계가 이 사이에 놓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TV드라마와
깜찍함으로 승부하는 얄팍한 결혼 이야기, <어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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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사만 빼면 원제 그대로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당연한 말이지만) 예수의 옷차림(fashion)이 아니라 수난(Passion)을 다룬 영화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수난극은 오직 피 흘리는 피부밖에 걸칠 게 없었던 한 인간의 처절한 패션쇼이기도 하다. 예수는 인류 최악의 고문으로 온몸이 찢어질 때까지 아무 기적도 행하지 못한 채 줄곧 상처투성이 육체로만 존재한다. 그러니까 유다가 예수를 유대인 제사장들에게 팔아넘기고, 예수는 신의 아들을 자처했다는 불경죄로 공격당하며, 로마 총독 빌라도는 유대 군중의 압력에 밀려 십자가형을 언도하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사흘 뒤 부활하더라, 는 줄거리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이런 유의 사극엔 으레 따라붙는 내레이션이나 배경 설명이 전무한 <패션…>은 모든 인물과 내러티브를 관객이 다 안다는 전제 아래 출발한다. 관객은 마치 <패션…> 10부작의 최종회를 보듯, 겟세마네 동산에서 골고다 언덕으로 이어지는 예
철저하고 처절하게 재현해낸 예수의 수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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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 1%’다. 물론 고급승용차를 타는 1%가 아니다. 92년 1.0%, 97년 1.2%, 2002년 3.9%. 내가 찍은 대통령 후보들이 얻은 득표율이다. 투표 경력 10년이 넘었지만, 내가 찍은 후보가 당선은커녕 당선권에도 들어가본 적이 없다. 좋게 말해서 정치적 소수자고, 나쁘게 말해서 철없는 똘아이다.축제가 한창이다. 뉴스에도 중계된다. 축제의 슬로건은 ‘Again 1987’, 노래는 ‘아 옛날이여’, 준비물은 촛불이다. 긴 밤 지새우며 이들이 할 일은 “6월 항쟁의 쓰다만 뒤 페이지를 다시 쓰는 일”이다. 공화국의 시민이라면 촛불을 들어야 마땅한 분위기다. 잠시 그의 과오는 잊고, 적들의 침탈에 맞서야 한다. 상식있는 자는 광분해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1%는 그 상식에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는다. 1%는 공화국의 헌정질서에 흔쾌히 동의할 수 없다. 그저 대한민국에 대한 ‘안 좋은’ 기억만 많다. 초라한 1%는 졸지에 상식없는 놈까지 된다.그리하여 세상에는 또다
대한민국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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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매혹의 시대로의 여행“영화는 시를 위한 가장 강력한 매체이다”라는 문장을 실제로 쓴 사람은 장 엡스탱이었지만 아마도 이것의 요체에 대해서는 장 비고도, 그리고 장 콕토도 동의하지 않았을까 싶다. 엡스탱, 비고, 콕토는 세인들로부터 우선 영화의 시인들이라고 불렸던 시네아스트들이다. 그건 영화 만들기를 통해서 그들이 공히 고심했던 것이 자유롭게 눈을 위한 글을 쓴다는 것의 문제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론적으로든 직관적으로든 아니면 경험적으로든 그들은 자신들이 이용할 언어에 대한 성찰에 이르려 했고 그로부터 나온 자신들의 혁신적인 문체로 상상력을 좀더 효과적으로 이끌어내면서 그들만의 매혹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그래서 그 시인들은 아방가르디스트들이면서 시각적 몽상가들이기도 했다. 엡스탱의 죽음에 즈음해 콕토는 그에 대해 쓴 한 글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이미지들과 리듬은 노화를 겪지 않았기에 우리는 여전히 아주 우아하고 힘이 있는 리듬과 이미지를 발견하고는 즐거움을 느끼
‘프랑스 아방가르드 회고전’ 세 거장의 대표작 18편 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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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안 하겠다는 남자의 얘기.” 구자홍 감독은 연출의 변에서 <마지막 늑대>를 이렇게 요약한다. 딱 한줄로 요약할 수 있는 하이컨셉이 이 영화에 귀가 솔깃해지는 이유다. 주인공 최철권(양동근)은 서울에서 강력계 형사로 일하다 탈진한 어느 날 선언한다. “오늘부터 나 일 안 해.” 곧이어 강원도 산간오지 무위마을에 도착한 최철권이 보인다. 맑은 공기, 푸른 숲, 청명한 하늘, 무위도식을 위한 최상의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수십년간 범죄가 없는 마을, 일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 작은 파출소에서 꿈같은 시간이 흘러간다. 그러나 1년 뒤, 범죄율 낮은 파출소를 없앤다는 공문이 내려오면서 문제가 생긴다. 아무 일도 안 하기 위해 그는 이제 구슬땀을 흘려야 한다. 없는 범죄도 만들어내야 한다. 나의 평화를 위해 마을의 평화를 흔들어야 하는 아이러니, 거기서 <마지막 늑대>의 코미디가 시작된다.
물론 아이러니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야 제 맛이다. <마지막
파출소 폐쇄위기에 처한 두 경찰의 악전고투, <마지막 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