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영화감독
<아제 아제 바라아제> <장군의 아들> <장군의 아들2> <장군의 아들3> <서편제> <태백산맥> <축제> <노는 계집 창> <춘향뎐> <취화선> <하류인생>
“내 영화 인생에서 여러 성과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큰 성과를 낸 제작자가 이태원 대표였다. <장군의 아들> <서편제> 같은 기억에 남는 영화들을 이태원 대표와 제작했으니까. <장군의 아들>을 찍을 때 이태원 대표의 배짱이 굉장히 좋다는 걸 알았다. 가령 감독이 신인을 기용해보자고 했을 때 제작자가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나. 그럼에도 망설이지 않고 선뜻 그러자고 했다. <하류인생> 같은 경우는 영화 제작 때문에 만나서 자주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 가끔씩 당신이 산 이야기들을 해줬다. 그걸 영화로 만들자, 이렇게 이야기한 건 아니지만 슬그머니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는 거다. 그걸 들으면서 ‘액션물을 제작하고 싶어 하는구나’ 생각해 <하류인생>을 제작했다. 이태원 대표는 아마도 처음부터 내가 <장군의 아들> 같은 영화를 찍길 바랐던 것 같다. 그런데도 내가 <아제 아제 바라아제>를 하고 싶다고 하니, 그걸 먼저 제작해줬다. 마음속에 자기가 원하는 영화가 있어도 먼저 제시하지 않고 어떤 영화를 하고 싶은지 감독의 의견을 먼저 물어보고 존중해주는 그런 제작자였다.”
배창호 영화감독
“이태원 대표는 작품과 캐스팅이 결정된 후로는 작품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기쁜 우리 젊은날>은 롱테이크가 유독 많은 영화였다. 제작 부서에서 하루에 2~3컷 찍는다고 보고가 올라갈 때 의아해하면서도 아무런 내색을 않으셨다. 영화에 대한 평도 시사 때 ‘배 감독, 연애하는 영화인데 포옹하는 장면 하나 없네’ 하는 게 전부였다. 우려 속에 개봉을 했는데 첫날부터 인파가 모인 걸 보고 말씀하셨다. ‘배 감독, 내가 영화의 새로운 면을 발견했어.’ 그전의 생각을 버리고 영화를 완전히 인정해주신 거다. 제작자로서 그런 말을 하기 쉽지 않은데 그만큼 솔직하신 분이었다. <꿈>을 연출했을 때는 관객이 많이 들지 않아 손해가 컸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니 일언지하에 ‘작품이 좋았으면 됐지 뭐’ 하셨다. 감독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끔 신뢰하고 지원해주신, 참 낭만적인 시대의 제작자였다.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이태원 대표가 생각이 많이 난다.”
정일성 촬영감독
<장군의 아들> <장군의 아들2> <장군의 아들3> <서편제> <춘향뎐> <취화선> <하류인생>
“영화를 사랑하고, 또 한국영화 발전에 기여했던 제작자의 마지막이 참 안타깝고 슬프다. 이태원 대표는 영화감독이 마음 놓고 연출할 수 있게끔 전적으로 도와줬다. 가족들과 있는 시간보다 스탭들과 있는 시간이 더 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현장을 누볐다. 보통 애정 없이는 그렇게 안된다. 좋은 작품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좋은 제작자였다.”
이명세 영화감독
<개그맨> 연출, <기쁜 우리 젊은날> 각본, <꿈> 조연출
“<개그맨>은 한번 거절당한 작품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그 작품을 다시 갖고 찾아온 것에 감동을 하시더라. ‘대부분 거절당하면 잘 안 오는데, 또 하자고 해서 고맙다’라며 작품을 시작하게 됐다. 의리를 중시하는 ‘사나이 기질’이 있는 분이셨다. 시나리오 전체보다도 어떤 한 장면에 꽂히면 제작을 결정하셨다. <개그맨>도 내가 아직 만들지도 못한 장면을 듣고 당장 하자고 말씀하셨고, 바로 제작부를 소집해 한달 만에 영화를 찍었다. 태흥영화사의 타율이 유독 좋고, 한국영화사의 빛나는 시절을 남긴 건 이태원 대표의 그런 결단력 덕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