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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최선의 삶' 다른 곳에 닿고 싶어 하는 세 친구
이주현 2021-08-27

열여덟살 강이(방민아), 아람(심달기), 소영(한성민)은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꿰뚫는 같은 반 단짝 친구들이다. 언덕 위 오래된 아파트에서 부모와 함께 사는 강이는 집에서는 무뚝뚝하지만 친구들과 함께일 땐 곧잘 환하게 웃음을 터뜨린다. 예쁘고 똑똑하며 상황을 주도하는 성격의 소영은 모델이 꿈이고, 아빠의 폭력을 견디며 살아가는 아람은 불쌍한 것들에 마음 주는 일로 자라나는 슬픔을 잘라낸다. 자라온 환경도, 꿈도, 성격도 서로 다른 세 친구는 다만 공통적으로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닿고 싶어 한다. “나 집 나갈 거다. 같이 나갈 사람”이라는 소영의 문자에 강이와 아람은 짐을 싸 집을 나온다. 대전을 떠나 서울로 가출한 세 친구는 모텔과 길거리를 전전하다 지하방을 얻어 잠시 부유하는 몸과 마음을 누인다.

가출 생활은 만족스러운 해방감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모델 시험에 응시한 소영은 결과에 좌절하고, 아람은 또다시 폭력적인 남자들을 상대하게 된다. 소영의 금 간 자존감에 반창고를 붙여주거나 술 마시고 들어온 아람의 등을 쓰다듬어주는 건 강이의 몫이다. 그러던 어느 무더운 여름밤, 더위에 지쳐 잠을 뒤척이던 강이와 소영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다. 얼마 후 가출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온 소영은 강이를 따돌리고, 세 친구의 관계는 더이상 예전 같지 않다.

영화의 원작은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인 임솔아 작가의 동명 소설이다. 임솔아 작가가 담담히 써내려간 주인공 강이의 안간힘은 영화에서도 먹먹하게 재현된다. 그저 친구들과 함께인 게 좋았던 강이가 오롯이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겪게 되는 폭력과 배신의 세계가 강이의 시선과 목소리를 따라 전개된다. 영화는 강이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고 또 끝난다. “떠나거나 버려지거나 망가뜨리거나 망가지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그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소설의 어떤 문장들은 지나간 시간을 무감하게 돌아보는 강이의 내레이션으로 되살아났다.

영화 <최선의 삶>은 원작의 사정권에서 멀리 벗어나기보다 원작의 영향 아래에서 영화적인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한여름 밤 강이와 소영 사이에 발생한 기류를 담아낸 장면이라든지, 설명하는 대신 보여주고 보여주는 대신 생략하는 방법으로 컷과 컷 사이 의미를 만들어내는 방식들이 그렇다.

눈에 띄는 건 영화의 의도적 생략과 거리두기다. 영화는 세 친구의 우정이 잔인하게 변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리적 폭력을 보여주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멀찍이 물러난 카메라는 사건 발생 전후 감정의 잔여물을 담는다. 마찬가지로 영화는 강이가 느끼는 감정이나 행동에 친절히 주석을 달지 않는다. 아람의 거짓말에 대해서도 소영의 태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최선의 삶>은 때로 시처럼 다가온다. 행간을 읽는 게 중요한 시처럼 영화에서도 생략된 사연과 감정을 읽는 게 중요해진다. 그 때문에 강이의 내레이션으로 강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도 강이의 마음에 정확히 접속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원작의 사건들을 뉘앙스만 남기고 생략한 것에 대해 이우정 감독은 “강이도 관객도 잃어버린 퍼즐이지만, 그 퍼즐의 구멍을 보면 느낄 수 있을 거라 믿었다”고 말했다.

영화의 세 배우는 모두 최선의 연기를 선보인다. 걸스데이 출신 방민아는 상처가 굳어 생긴 딱지를 가만히 쓰다듬듯 강이의 마음을 과장되지 않게 전달하고, 여러 독립영화들에서 재능을 뽐내온 심달기는 속을 헤아릴 수 없는 아람 캐릭터를 장면마다 낯선 얼굴로 그려낸다. 강이의 졸린 눈과 대비되게 또렷한 눈을 지닌 소영은 모델 출신 신인배우 한성민이 맡았다. 연출은 단편 <송한나> <애드벌룬> <서울생활> 등을 연출했고, <출중한 여자>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등에서 배우로도 활약한 이우정 감독이 맡았다. 이우정 감독은 장편 데뷔작 <최선의 삶>으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KTH상, CGK&삼양 XEEN상,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 선택상 등을 수상했다.

CHECK POINT

시대적·공간적 배경

영화는 2000년대 초반의 대전과 서울을 이야기의 무대로 삼는다. 낮은 채도의 화면이 과거의 느낌을 살리고, 배우들의 의상과 소품에서도 2000년대 초반의 정서를 확인할 수 있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읍내동과 전민동 등 대전의 동네가 배경이다.

핸드헬드

촬영은 모두 핸드헬드로 이루어졌다. 철저하게 강이를 따라가는 게 컨셉이었다고 한다. <메기> <수성못>의 이재우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들었고, 담백하면서도 생생하게 10대 소녀들의 표정과 행동을 담았다.

주요 스탭

음악은 무키무키만만수로 활동하다 <기억의 전쟁> <한여름의 판타지아> 등 영화음악까지 활발히 작업하고 있는 이민휘 음악감독이 맡았다. <미쓰백> <걷기왕>의 한영규 편집기사가 영화의 컷을 매만졌고, <보건교사 안은영> <콜>의 박용기 믹싱기사가 현장감을 살린 사운드로 영화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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